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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2-28 06:02
[한국사] 명나라 요동변장과 조선의 영토 위치: 1500년대 조선의 영토 상실(긴글버전)
 글쓴이 : 보리스진
조회 : 2,049  


1. 1469년 명나라 요동변장(遼東邊墻) 건설 
1469년 명나라에서는 보(堡)와 장장(長墻)을 남쪽으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무순(撫順)에서부터 애양보(靉陽堡)까지였다. 무순에서부터 동주보, 마근단보, 청하보, 감양보, 애양보까지 이어진다. 거점 지역에 보를 건설하고, 이 사이에 장장을 설치한 것이다. 이 장장을 흔히 요동변장(遼東邊墻)이라 부른다.

2. 1469년 요동변장과 조선 영토의 접경 발생
요동변장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조선의 영토와 접경하게 되었다. 접경한 곳은 평안도 삭주, 평안도 창성이다.
1) 요동변장에서 남쪽으로 60리 떨어진 곳과 요동변장에서 동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조선의 영토가 있었다.
2) 요동변장의 봉수대에서 조선의 봉수대까지 서로 바라다보이는 거리였다.
3) 요동변장에서 조선의 영토까지 걸음거리로 하룻길이었다. 

3. 1469년 조선의 영토 위치
이 위치는 다음과 같다. 평안도 삭주 구령구자는 현재의 요녕성 봉성시 대흥진 부근, 평안도 창성 운두이연대는 현재의 요녕성 관전현 우모오진 부근에 있었다.

4. 1500년대 조선의 영토 상실
이 내용은 다음 기회에 글을 쓰면서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겠다. 1487년부터는 명나라에서 애하(靉河)를 따라 남쪽으로 더 내려와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487년에는 개주진(開州鎭)을 설치하였다. 1493년에는 탕참보(湯站堡)를 설치하였다. 1496년에는 파사보(婆娑堡)를 설치하였다. 이 지역들은 전부 애하(靉河) 북쪽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요동변장은 애양보(靉陽堡)까지만 설치되었고, 남쪽으로는 건설되지 않았다. 이 때까지는 명나라와 조선이 애하(靉河)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그러나 1574년에 관전보가 설치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관전보는 조선의 삭주와 창성 남쪽에 자리잡았다. 1574년이 되면 삭주와 창성 지역을 완전히 빼앗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1500년대에 조선의 영토 상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5. 요동변장과 애양보는 위치 이동이 없었다.
영토의 위치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기준이 되는 지역이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요동변장은 기준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500여년동안 위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문서와 지도에서 이를 증명해준다. 명·청시대의 고지도에 요동변장이 그려져 있고, 현재까지 전해져내려온다. 
요동변장은 애양보까지 건설되었다. 애양보(靉陽堡)도 기준으로 삼기 알맞은 지역이다. 당시의 지명이 그대로 살아서 지금까지 전해졌다. 현재 애양진이 당시의 애양보였다. 명·청시대의 고지도에 애양보가 그려져 있고, 현재까지 전해져내려온다.

6. 기록의 높은 신뢰도
이 기록은 매우 신뢰도가 높다. 양국 간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었다. 조선 측에서는 수도를 옮겨야하나 논의하며 중요하게 다루었다. 또한 군사적인 기록들이라 위치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명나라의 기록과 교차분석이 가능하다. 추후에 명나라의 기록과 대조해보는 연구가 필요하다.

7. 과학적인 거리 분석 가능
과학적인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명나라의 봉수대와 조선의 봉수대가 서로 마주보인다고 하였다. 뉴스 기사를 찾아보면 봉수대의 간격은 평균적으로 40~50리이다. 사람이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한정적이다. 봉수대는 산 정상에 있다. 산에서 산까지 서로 바라다보이는 거리였다. 과학적인 분석을 해볼 수 있다. 봉수대라는 건축물이 있었을 것이므로 고고학에서 연구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 평균 하루 이동거리는 약 60리이다. 연행길과 조선통신사길에서 알 수 있다. 거리 계산은 수학적으로 풀어볼 수 있다. 추후 연구가 필요한 사안이다.


참조: 실제 기록 발췌

1) 요동변장에서 조선의 영토까지의 거리
요동변장과 창성은 100여리 떨어져 있었다. 요동변장과 삭주는 60여리 떨어져 있었다. 요동변장은 무순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서 애양보에서 끝난다. 건설되는 와중에 조선의 영토와 맞닿게 되어서, 조선의 관료가 거리 측정을 했다. 정확한 지점은 확실하지 않은데, 대략 건설 진행률 95%~100%정도의 지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양보에서 걸음거리로 하루거리라는 기록이 있다. 다른 기록을 비교해보면 조선의 관료가 거리 측정을 한 지역이 애양보와 가까운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장(長墻)으로부터 동쪽으로 창성부(昌城府)의 운두이 연대(雲豆伊煙臺)와의 거리가 1백여 리이고 남쪽으로 구령 구자(仇寧口子)까지의 거리가 60여 리이다. 自長墻, 東距昌城府 雲豆伊烟臺百餘里, 南距仇寧口子六十餘里
예종실록 7권, 예종 1년 8월 13일 갑자 4번째기사 1469년

2) 명나라 연대(煙臺)에서 조선 연대(煙臺)까지 서로 마주보이는 거리
요동변장의 마지막 지점은 애양보이다. 이 애양보의 연대에서 창성의 연대까지 서로 마주볼 수 있었다. 연대(煙臺)는 전방에 있었던 봉수를 의미한다. 봉수대의 간격은 평균 40~50리이다. 길면 70리 떨어져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전방에 있었던 연대는 비교적 거리가 짧다. 애양포는 애양보와 동일한 지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 설치한 장장(長墻)에 쌓아둔 5보(堡) 가운데에 첫째는 애양(靉陽)인데, 그대 나라의 창성(昌城)과의 거리가 1일여 정(程)이 되므로, 우리의 연대(煙臺)에 오르면 그대 나라의 연대를 멀리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新設長墻居置內五堡: 一曰靉陽, 距汝國昌城一日餘程, 登我烟臺, 可遙望汝國烟臺
성종실록 1권, 성종 즉위년 12월 5일 甲寅 4번째기사 1469년
애양포(靉陽鋪)는 상류(上流)에 진수(鎭守)하고 있으니, 우리의 창성(昌成)과는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입니다. 靉陽鋪又鎭上流與我昌城相望。
성종실록 216권, 성종 19년 5월 27일 경인 2번째기사 1488년
요동변장의 연대에서 삭주 연대까지 서로 마주보였다. 문맥을 보면 요동변장의 연대는 애양보의 연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中國)의 장장(長墻)은 바로 우리 삭주(朔州)의 구령 구자(仇寧口子)에서 연대(煙臺)가 서로 바라보이므로, 오랑캐의 기병(騎兵)이 구령(仇寧)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와 방산 구자(方山口子)에 이르렀다면, 중국 장장(長墻)의 애양보(靉陽堡)도 이미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 구령(仇寧)에 명령하여, 장장(長墻)에서 서로 바라보이는 연대(煙臺)에 여러 차례 직상화(直上火)를 놓게 하여서 장장(長墻)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賊)이 남하(南下)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면,
中國長墻, 直我朔州 仇寧口子, 烟臺相望, 虜騎過仇寧, 而南至于方山口子, 則於中國 長墻 靉陽堡, 亦已過矣。今令於仇寧, 長墻相望烟臺, 數放直上火, 使長墻之人, 知賊南下,
성종실록 31권, 성종 4년 6월 4일 癸亥 3번째기사 1473년

3) 요동변장에서 조선의 영토까지 걸음걸이로 하루 거리
요동변장의 애양보에서 조선 창성까지의 거리가 하루라고 하였다. 사람이 평균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약 60리이다. 엄청 길게 가는 경우 약 100리까지는 갈 수 있었다.
새로 설치한 장장(長墻)에 쌓아둔 5보(堡) 가운데에 첫째는 애양(靉陽)인데, 그대 나라의 창성(昌城)과의 거리가 1일여 정(程)이다. 新設長墻居置內五堡: 一曰靉陽, 距汝國昌城一日餘程
성종실록 1권, 성종 즉위년 12월 5일 甲寅 4번째기사 1469년
애양포에서 조선 삭주까지의 거리가 하루라고 하였다. 애양포는 애양보와 동일한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애양포(靉陽鋪)에서 삭주(朔州)까지의 거리가 하룻길인데, 靉陽鋪距朔州一日程
성종실록 48권, 성종 5년 10월 28일 경술 4번째기사 1474년

4)요동변장의 마지막 지점 위치
요동변장의 가장 남쪽 지점은 애양보(靉陽堡)이다. 이보다 남쪽으로는 건설되지 않았다.
중국(中國)에서는 요동(遼東)으로부터 애양보(靉陽堡)까지 장성[長墻]을 쌓아서 적로(賊路)를 막았습니다. 애양보(靉陽堡)로부터 압록강(鴨綠江)까지는 비록 장성이 없다 하나....... 
中國自遼東至靉陽堡築長墻, 以防賊路, 自靉陽致鴨綠雖無長墻
성종실록 217권, 성종 19년 6월 11일 癸卯 2번째기사 1488년

5)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비교
세종실록지리지(1453년)에는 채가동(蔡家洞), 사창포(沙倉浦), 호조리(胡照里)가 조선의 영토였다고 나온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의 기록에는 압록강 바깥에 있는 지역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1453년에는 압록강 바깥에 벽동군(碧潼郡)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1500년대에 영토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
(벽동군에는) 요해 구자(要害口子) 4곳이 있으니, 여시산(餘侍山)ㆍ채가동(蔡家洞)ㆍ사창포(沙倉浦)ㆍ호조리(胡照里)이다. 又有要害口子四, 餘侍山、蔡家洞、沙倉浦、胡照里
『세종실록지리지』, 「평안도 삭주도호부 벽동군」(1454년)
다음의 지명들은 압록강 바깥 땅에 소속되어 있다. 채가동(蔡家洞), 사창포(沙倉浦), 호조리동(胡照里洞).(일부 요약) 余時山,以下係鴨綠江外之地。蔡家洞,金伊洞,沙倉浦,銅山,斜陽岾,賣昌洞,胡照里洞,銅子洞,都乙恨洞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벽동군」 (15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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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22-03-01 02:02
   
잊지 말자. 우리 역사.
     
보리스진 22-03-01 05:01
   
감사합니다.
보리스진 22-03-01 05:02
   
여말선초에 압록강이 이동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 기록들입니다.
구르뫼 22-03-01 15:55
   
잘 읽고 갑니다...
제가 조선사는 아직 접근도 못해 궁금했던 사항이었는데
압록강의 이동에 대해 덕분에 해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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