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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2-08 17:39
[기타] 동아시아사와 서양사 사이의 이질감
 글쓴이 : 하이시윤
조회 : 1,566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좀 과도한게 동아시아사는 마치 겨우 몇백년전 일처럼 느껴집니다. 아마도 삼국지연의와 초한지 등 역사소설때문에 친숙해서 그렇겠지요.
반면 서양사는 로마를 제외하곤 아직도 미궁인게 많습니다. 예를들어 메로빙거왕조라든지 켈트족 관련 사항은 아직도 신화와 사실이 섞여있죠. 몇천년된 이얘기로 느껴지죠.

한국고대사는 삼국사기가 있어서 중국수준의 자세함을 얻고 있고 그 결과 로마사 수준정도 정확성을 바라고 있는 분야로 보입니다만 삼국사기는 많은 부분을 삭제한(김상교수님설) 책이라 합리적 상상력이 많이 요구되는 책이죠.
즉 한국인 종특상(즉 졸라 가까운시대같은데 왜 부정확하냐?는 불만) 원하는 정밀성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선 표면적으로 확보안됩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와 결합해보면 삼국사기의 정확성은 담보가능합니다. 앞으로 이부분을 타커뮤니티글과 연계해 게시해볼 작정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친숙한 우리역사이기에 굉장히 자세한 사료가 많을 것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합리적상상력+고고학적증거+합리적논리 이 세가지가 결합되어야 해결될 수도 있는 욕망들이 너무 많은게 한국고대사라고 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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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22-02-08 17:49
   
로마사가 얼마나 정확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삼국사기는 분량이 적어서 정확성을 바라기 어렵지 않나요. 그리고 삼국사기 많은 부분을 삭제하였다는것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하이시윤 22-02-08 18:04
   
앞으로 글을 통해 써보렵니다
위구르 22-02-08 17:57
   
따지고 보면 우리 歷史가 서양의 대부분의 나라의 것보다 오래됐죠
     
하이시윤 22-02-08 18:04
   
그럼에도 드라마나 영화덕에 시차가 확 줄어들멌지요
          
위구르 22-02-08 18:25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식해서인지 정신이 썩어서인지 외국사를 찬양하면서 국사를 폄하하는 소리를 지껄여서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Marauder 22-02-08 18:27
   
사실 기록이 별로 없어서 그런게 크죠. 조선사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위구르 22-02-08 19:18
   
하필이면 나약하고 사대적인 조선 시대를 들추는 것도 문제입니다. 례를 들면 지폐에 면상을 내민 4명의 위인이란 자들이 모두 근세 조선 시대의 인물들인게 우리의 고대사를 말살하고 노예로 만들려는 미국이나 중공의 의도가 들어간 결과고 우리는 전혀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왜정기 때에도 정신이 지금처럼 썩었을지 의문입니다
비좀와라 22-02-08 19:08
   
스키타이에 관한 글에 많으면서도 이 스키타이의 재밌는 사실이 이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거죠.

그렇다고 이들이 문자에 관해서 몰랐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 이들은 슈메르인들의 후손이란거죠.

하여간 이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몽골도 몽골고원 때의 기록은 남기지 않았죠.

신라나 백제는 스키타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역시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간략히 남겼을 가능성이 있죠.
     
하이시윤 22-02-09 09:24
   
신라인은 습속이 비문자계승이라고 삼국지동이전에 나와있네요
비좀와라 22-02-08 19:21
   
밑에 평양에 관한 기록에 관해서 논쟁이 일어났는데...

우리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확실한 것이 바로 마한의 위치 입니다.

영산강 유역 이남은 아직까지도 왕궁터가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왕궁은 왕의 거처 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행사가 일어나는 장소 입니다. 왕궁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예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병도가 전라도에 마한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이병도 학파의 후손들이 이병도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역사가 사실과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죠.

이 마한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가 근초고왕이 마한의 잔존세력을 병합하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영산강 이남의 지역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왜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다시 말해서 근초고왕이 병합했던 지역은 전남지역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문제가 되는 것은 근초고왕이 대방군을 두고서 고국원왕을 평양에서 전사 시키죠.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이병도가 이상하게 마한을 전라도 위치비정을 해서 이병도는 대방군을 황해도로 남하 시키죠. 이런 이유는 위에서 설명 했죠? 마한을 전라도 지역으로 설정해서 라고요.

솔직히 마한의 위치비정도 잘못된 것인데 이 마한의 위치비정이 잘못되고 하면 이병도의 권위가 훼손되고 이 이병도의 권위에 의지해서 사학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이병도의 후손들이 이 논란을 막고 있는 것인데 이 것 때문에 백제의 위치 뿐만 아니라 평양의 위치/ 한사군의 위치 거기에 더불어서 임나일본부와 진한과 변한 특히 금관가야의 영역에서 완전히 뒤틀어 지는 거에요.
     
하이시윤 22-02-09 09:55
   
제가 생각하는 가설이 좀 있습니다. 마한의 정체에 대해서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삼국지동이전과 후한서와 광개토대왕비를 결합해서 생각을 해보면
1. 마한은 단군조선의 번국으로서 화려한 왕궁을 가질만한 정치체제는 아니었다.
2. 이후 마한의 지배자 기준은 위만에게 정권을 찬탈당한 후 한반도 평양으로 망명해 한왕을 자처했다가 이후 밀려든 이주민들로 인해 한강변으로 이동했다.
2-1 이.당시 단군조선은 해체되고 만주와 한반도는 이놈저놈이 들고일어선 열국시대로 진입했다.
3. 이후 한강유역으로 밀려난 마한세력은 풍납토성을 쌓으며 북쪽에서의 이주민군사칩단ㅡ일명 말갈ㅡ을 방어했다.
4. 이들은 서해안을 따라 한반도 중서남부일대에 다시 번국의 번국을 세워가며 만주에서의 방식을 그대로 이용해 국가를 만들었다.
5. 기원전후 연간에 비류온조세력은 한왕을 자처하는 마한세력을 타도하고 자신들이 마한왕이 되고 국명을 백제로 하였다.
6. 그러나 기존 번국의 번국체제는 유지하였다. 진수가 직접 보거나 들은 내용이 딱 이시기다. 즉 한반도 중서남부는 번국의 번국들이 난립해있는 상태였다.
7. 이후 백제수뇌부 중 일부(비류온조집단)가 금강유역에 별도로 정권을 세우고 백제를 국호로 하여 담로제(혼인동맹)를 도입하여 좀 더 결속력이 강한 진왕체제를 만들었다.
7-1. 이를 받아들이면 같은 식구가 되고 그렇지않으면 타도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의 충청도와 호남과 경남해안가일대를 장악해서 신라 및 가야세력의 타도만을 남겨두었다.
8. 이런 담로제체제를 고구려에서는 마한을 잔국이라고 비하했고(광개토대왕비) 신라는 "왜국"이라고 비하했다(구삼국사). 고구려와 신라는 전형적인 중앙집권국가였지만 백제는 지방분권국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와 한의 봉건제방식이 아닌 혼인동맹을 통한 봉건제방식이었다.
9. 비류온조세력의 일부는 국호를 십제로 하여 경기도와 황해도일부 즉 한강유역과 예성강유역을 지배하면서 마한(즉 백제)의 유력국가중 하나로 남아있다가 말갈족에게 정권을 찬탈당하였고 그 증거가 석촌동고분군이다.
10. 근초고왕은 말갈족에게 뺏긴 왕권을 되찾은 왕으로서  영토를 북쪽으로 넓혔지만 남쪽으로 넓힌 기록은 없다. 이유는 근초고왕은 당시 유력국가였던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고 백제왕인 진왕이 되었고 그러자 백제의 담로제체제로 황해도일대가 전부 넘어갈 위기에 처한 고구려가 선제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이를 격파하고 황해도 일대의 지배권을 굳힌 근초고왕은 수도를 서울북부로 옮겼기 때문이다. 즉 근초고왕은  기존 진왕가 세력인 금강유역세력과 마찰을 피하고 좀 더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1. 이후 광개토대왕의 침략으로 한강유역백제와 금강유역잔국 토벌되었고 기존 진왕가는 일본으로 도주했고 그나마 한강유역백제는 명맥을 유지하였다.
12. 그러나 장수왕의 침략으로 인해 한강유역백제의 진왕 혈통이 개로왕의 죽음으로 끊어졌다. 이에 신라에서 3만의 군사를 빌린 문주왕이 일본으로 도주했던 기존진왕가의 구원세력과 합하여 금강유역에 백제를 재건하였고 이후 광개토대왕에 맞서 싸웠던 영산강유역의 부여씨가 백제왕통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담덕 22-03-16 08:19
   
공감되는 가설이내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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