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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9 13:27
[한국사] 중국은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다는 명백한 기록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2,099  



초대 단군왕검 재위 50년째인 정사(丁巳,BCE 2284)년에 단군조선(고조선)에 큰 홍수가 발생했다. 고려 말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낸 행촌 이암(李嵓,1297~1364)선생의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재위 50년 정사(丁巳,BCE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단군왕검께서 풍백風伯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牛首州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碑가 남아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재위 51년 무오(戊午,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단군세기(檀君世紀)』



중국은 요堯임금 때에 9년 홍수(BCE 2288~ BCE 2267)가 발생하였다. 요임금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곤(鯀)이라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겼다. 그러나 9년이 지나도 홍수가 그치지 않아 요堯는 곤鯀을 대신해 다시 순舜에게 맡긴다.


단군왕검 재위 67년 갑술(甲戌, BCE 2267)년에 맏아들 태자 부루를 보내 순舜이 보낸 사공司空 우禹와 도산塗山에서 만나게 하셨다. 태자 부루께서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살펴 정사하니 유주
(幽州), 영주(榮州)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리실 때 순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조선 중종때 실록편찬이나 역사서를 다루는 찬수관을 역임했던 이맥(李陌,1455~1528)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虞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塗山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舜임금이 사공司空 우禹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監虞所(우순의 정치를 감독하는 곳)를 낭야성琅耶城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九黎分政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낭야성琅耶城: (가한성은 일명 낭야성인데, 부단군이 다스리던 번한의 2대 왕 낭야(치우천황의 후손)가 쌓았으므로 낭야성琅耶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부단군이 다스리던 번한의 제1대 왕이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 그 아들 번한의 2대왕 이름이 낭야琅耶다.



구려분정九黎分政: 배달倍達시대에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서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동부와 북부 지방을 점령한 후 회대(淮岱) 사이에 웅거(雄據)하였다. 그 뒤 단군왕검(王儉)이 배달국 지역에 단군조선(고조선)을 세운 후 지역을 3분하여 


만주중앙은 진한(辰韓)이, 연해주, 한반도, 대마도,구주 등 동쪽은 마한(馬韓)이, 중국 북부지방과 만주 남부지방 등․서․남쪽은 번한(番韓)이 각각 다스리고, 중국 동부에 있는 회대 지방에는 분조를 두고 다스렸는데, 이 분조를 구려분정(九黎分政)이라 불렀다. 구려분정의 치소는 산동성 제성현 동남쪽에 있는 "낭야성(琅耶城)"이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에서는, 태자 부루는 도산에 이르러 일들을 주관하였으며, 번한을 통하여 사공 우禹에게, "나는 북극수정자이니라"하는 말로 시작하여 천부왕인(天符王印), 신침(神針), 황구종(皇矩宗)이라는 치수에 필요한 3가지 보물을 주면서, "천제자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하였고, 이에 우禹가 "천제자의 명을 게으름 없이 행하겠다"  하면서 태자 부루로부터 금간옥첩을 받으니 치수의 요결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중국 문헌의 왜곡

사공 우禹가 금간옥첩을 받아간 것과 관련된 기록은 [오월춘추],[역대신선통감],[응제시주],[세종실록],[동국여지승람],[동사강목],[묵자] 등에서 확인된다. 

중국이 중화주의 사관으로 쓴 [오월춘추]에는 창수사자가 우의 꿈에 나타나 비법을 알려준 것으로 기록하여 우禹가 순전히 자신의 현몽으로 국난을 해결한 것으로 왜곡하였다.


▶禹乃東巡, 登衡嶽, 血白馬以祭, 不幸所求.... 因夢見赤繡衣男子, 自稱玄夷蒼水使者... 東顧謂禹曰 欲得我山神書者, 齋於黃帝巖嶽之下三月 ... 禹退又齋三月, 庚子登宛委山, 發金簡之書, 案金簡玉字, 得通水之理.   


9년 홍수를 다스리던 우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형산에 이르러 백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을 빌었다. 그랬더니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스스로 ‘현이의 창수사자’ 라 칭하면서 우에게 ​“신서가 있으니 재계하고 이를 내어 보라” 하므로 우가 그렇게 하여 금간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의 이치를 알았다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현이의 창수사자> 부분을 이렇게 말했다. 

현이(玄夷)는 당시 단군조선(고조선)의 동 ·남 ·서 ·북 ·중 오부를 남 (藍) ·적(未) ·백 (白) ·현 (玄: 黑 ) ·황 (黃 ) 으로 별칭했는데, 북부가 곧 현부(玄部) 이니 중국인들이 현부를 가리켜 현이(玄夷)라고 한 것이요, 창수(蒼水)는 곧 창수(擔水)이고, 주신 (州愼 ) ·숙신(肅愼 ) ·직신(稷愼 ) 혹은 식신(息愼 ) 으로 번역되었으니, 주신은 곧 단군조선(고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옛 기록의 부루는 오월춘추 (吳越春秋)의 창수사자이니, 이때 중국에 큰 홍수가 있었음은 여러가지 옛 역사 기록이 다 같이 증명하는 바인데, 단군왕검이 그 수재水災를 구제해주려고 아들 부루를 도산에 보내 하夏나라 우禹에게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法)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우(禹)는 왕이 되자 부루의 덕을 생각하여 삼신오제의 교의를 믿고 이를 중국에 퍼뜨렸으며, 정전井田과 율도량형律度量衡 또한 중국의 창작이 아니라 단군조선(고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꿈에 창수사자를 만났다. ’고 하였는가? 


중국의 기록인 <오월춘추>는 부루 태자를 ‘현이의 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 라고 바꾸어서 말할 뿐 나머지는 <단군세기> 내용과  다른 데가 없다. 우가 현이의 창수사자에게 오행통수의 이치를  전해받아서 치수에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꿈이라고 했지만 이정도의 변형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는데 있어서는 다행한 일이다. 물론 중국 문헌에는 이보다 더 추상적인 내용으로 바꾸어 놓은 기록이 많다.

▶송미자세가 홍범구주편에는, "우禹가 치수를 맡으니 하늘(天)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등을 내리어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箕子ㅣ 乃言曰 我聞호니 在昔鯀이 陻洪水하야 汨陳其五行한대 帝乃震怒하샤 不畀洪範九疇하시니 彛倫의 攸斁니라. 鯀則殛死ㅣ어늘 禹乃嗣興하신대 天乃錫禹洪範九疇하시니 彛倫의 攸叙ㅣ니라. 


기자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옛적에 곤(鯀,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아버지)이 홍수를 막으면서 五行을 어지러이 펼치니 帝가 진노하여 곤鯀에게 홍범구주를 주지 않으시니 이륜이 무너졌다. 곤鯀이 귀양가서 죽자 아들 우禹가 이어서 일어나시니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를 주시어 이륜이 펼쳐지게 되었느니라.


▶<서경(書經)>‘홍범’ 에서는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를 주셨다(天乃錫禹洪範九疇)” 라고 하여 부루 태자를 이번에는 ‘하늘(天)’로 바꿔 말하고 있다.

꿈 속 창수사자 이야기나 하늘로 표현한 것이나 모두 상국上國을 숨기려는 기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조선을  ‘하늘’ 같은 나라라고 여긴 것은 좋으나 고조선이나 단군왕검, 부루태자라고 명기되어 있지 않고 숨긴 의도는 명확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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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사대주의에 찌든 국내 문헌의 왜곡 : 사건의 주객 전도


조선시대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지리지]는 ‘우禹가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동할 때 태자 부루를 보내 조회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단군조선(고조선)이 오히려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게 기록하였다. 

▶『응제시주應製詩註』 
단군은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을 맞아 아들을 낳아 부루(夫婁)라 하였다. 그가 곧 동부여의 왕이다. 우(禹)임금이 도산(途山)에서 제후를 모아 맹세를 할 때, 단군은 아들 부루를 보내어 조회하였다.

▶고려 말 안향(安珦)이 지은 시詩 〈충선왕을 시종하여 연경에 가는 감회〉에도 부루가 도산에서 우禹 임금에게 옥을 폐백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갑술년(하우 18년) 아들 부루를 하夏나라에 보내 조회하게 했다. (이때 우禹가 제후들과 도산에서 회맹했는데 , 단군이 부루를 보내서 조회하게 했다 ) (홍만종,동국역대총목 단군조선)

▶9년 홍수를 당해서 팽오에게는 높은 산과 큰 강을 정하게 하고 우수에 이르러 백성들이 살 터전을 정했다. 단군은 수천년을 살다가 마쳤고 아들 부루가 섰는데 갑술년에 도산에서 하우씨와 회맹했다. 부루 이후에는 세계와 연보를 잃어서 전하지 않는다. (이종휘,수산집 동사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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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야성에 감우소 설치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지금도 낭야산(琅邪山), 낭야구 등 낭야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번한은 치두남이 세상을뜨자 아들 낭야가 즉위하였다. 이해 경인(BCE 2251)년 3월에 가한성을 개축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가한성은 일명 낭야성이라고 하는데 번한왕 낭야가 쌓아서 낭야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낭야성은 지금의 산동성 제성현 동남에 있다. 원명은 가한성. 번한의 2세 낭야왕이 개축하였다. 일찍이 오늘의 산동,안휘,강소,절강성 일대에 진출하여 살던 동이 조선족을 나누어 다스린 단군조선 분조의 수도였다 (최종 조선상고사 참조)





우임금 “나를 회계산에 묻어다오‘

우임금이 “내가 죽은 뒤에 나를 회계산에 묻어다오.”  吾百世之後에 葬我會稽之山하라.  (『오월춘추』「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

하夏나라의 창업자는 바로 회계산에서 단군조선의 부루태자로부터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아 치수에 성공한 사공 禹다. 9년 홍수를 해결한 덕에 인심을 얻어 夏나라를 연 우임금은 단군조선(고조선)의 은혜를 잊지 못해 죽을 때 회계산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현재 우임금의 왕릉은 회계산에 있다.

우(禹)임금의 대우릉(大禹陵)은 회계산에 있다.  대우릉 풍경구의 진입로 입구에 회계산이란 큰 표지석이 서 있다.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燑傳] 「신지비사(神誌祕詞)」는 한민족의 뿌리를 노래한 대서사시로 달문단군의 재위 35년 임자(壬子,BCE 2049)년에 여러 제후국 왕들을 상춘(常春, 지금의 만주 장춘長春 구월산九月山)에 모아 구월산에서 천제를 올릴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짓게 한 제천문이다. 



「신지비사(神誌祕詞)」를 보면 단군조선(고조선)이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로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류사학계는 삼한관경제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처음 만들어낸 이론으로 왜곡하고 있지만, 『고려사』를 보면 고려 고종 때(13세기) 김위제가 [신지비사]를 인용하며 단군조선의 삼경(세 수도)을 언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신지비사(神誌秘詞)」 소각 사건 

命史官金尙直(명사관김상직) 取忠州史庫書冊以進(취충주사고서책이진)
1412년(명 영락永樂 10년) 사관史官 김상직金尙直에게 명하여 충주忠州 사고史庫의 서적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는데

​且命曰(차명왈) 神秘集(신비집) 毋得披閱(무득피열) 而別封以進(이별봉이진)
「신비집神秘集」은 펴보지 못하게 하고 따로 봉하여 올리라.

​上覽其集曰(상람기집왈) 此書所載(차서소재) 皆怪誕不經之說(개괴탄불경지설)
임금이 그 책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것은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설說이다.” 하고,

​命代言柳思訥焚之(명대언유사눌분지) 其餘下春秋館藏之(기여하춘추관장지)
대언代言 유사눌柳思訥에게 명하여 이를 불사르게 하고, 그 나머지는 춘추관春秋館에 내려 간직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8월 7일(기미) 둘째 기사)


태종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다섯째 아들로 1400년부터 18년간 재위했지만 왕자의 난으로 아버지의 뜻을 저버려 정통성이 약했던 이방원은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차서소재此書所載 개괴탄불경지설皆怪誕不經之說’이라 하여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해 자신의 대권 장악을 용인해 준 상국 중국에 불경한 내용이자, 기이하게 현혹시키는 글이라는 것이다. 

동방 문명의 장자국인 단군조선은 독특한 문화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로 통치했다. 단군조선은 한민족 원형정신인 삼신관에 따라서 삼한관경제로 통치했다. 만주의 중앙은 진한의 대단군이 통치하고, 요서와 북경 주변의 번한과 한반도의 마한은 부단군이 통치한 것이다. 이것이 고유한 한민족의 국가 통치제도였다.

「신지비사」는 단군조선의 삼경三京제도가 균형을 이룰 때 임금의 덕에 힘입어 영원히 단군조선이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조항칠십국朝降七十國’이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삼경제도가 굳건했던 단군조선은 70여개 나라의 조공을 받은 대제국이었다.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연구』에서 ‘단군조선은 강역이 넓었기에 신하의 여러 나라들을 거수국渠帥國(제후국)으로 삼아 다스렸다’고 했고, 이덕일 교수는 『이덕일의 한국통사』에서 ‘고조선(단군조선)은 제후국과 같은 거수국을 거느린 황제국가였다’라고 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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