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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19 07:41
[한국사] 위만조선은 영토가 1백리 정도인 짝퉁 고조선이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738  

유방의 한나라 제후국인 연나라 사람 위만이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 상하장(요동외요, 진고공지)

에 세운 위만 조선은 영토는 1백리 정도였고 조선이라는 명칭을 도용한 짝퉁 고조선이다

 

■ 위만조선은 짝퉁 고조선이다

 

    유방의 한나라 제후국인 연나라 사람 위만이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 상하장(진고공지, 요동외요)에 세운 위만조선이기에 짝퉁 고조선이다

     ※주)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 = 진시황의 진나라 요동군 + 요동외요(요동군이 바깥을 순찰하는 지역)

                                            = 한나라 요동군 + 진고공지 상하장(위만조선)

     ☞  [출처] 115-1/2[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5.朝鮮列傳(조선열전)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 筑鄣塞.

        秦滅燕,屬遼東外徼. 漢興, 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 屬燕.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真番, 朝鮮蠻夷及故燕, 齊亡命者王之, 都王險.

         (위만)조선의 왕 위만은 옛 연(燕)나라 사람이다. 당초 전국시대 연나라의 전성기 때 진번조선을 공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고 변방에 성루를 쌓았다.

         (위만조선 위치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진나라 요동외요(요동군이 바깥을 순찰하는 지역)에 속해 있었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요동외요)가 멀어 지키기가 어려워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정하고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한나라 연왕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자 위만도 망명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만이의 옷을 입고는 동쪽으로 달아나 변경을 나와 패수를 건너

        진시황 진(秦)나라 영토였던 옛 비어 있는(진고공지) 상하장에 거주하면서,

         점차 진번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어 왕험을 도읍으로 정했다

         

 

■ 위만조선은 영토가 1백리 정도인 작은 나라였다

    1) 전국시대 연나라가 동호(진번조선)에게 빼앗은 땅은 천여리로 최대 1천 5백리정도이니

       직선 거리로 보면 약 9백리 정도가 된다

     ☞ [출처]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其後燕有賢將秦開, 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그 후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호(동호)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2) 동호에게 빼앗은 1천여리에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의 5군을 설치했고, 상곡, 요서, 요동은 전방에...

       어양, 우북평은 후방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기에, 개별 군은 대략 직선거리로 3백리 정도다(약 9백리 / 3군)

    ☞ [출처]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 漁陽, 右北平, 遼西, 遼東郡以拒胡.

        연나라 역시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에

        군을 설치하여 호(동호)를 방어했다.

 

    3) 약 3백리 정도의 전국시대 요동군을 패수를 기준으로 진한 시대 요동군과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로

        나누었으니,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 위만조선)는 직선거리는 약 1백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  [출처] 115-1/2[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5.朝鮮列傳(조선열전)

        秦滅燕,屬遼東外徼. 漢興, 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 屬燕.

        (위만조선 위치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진나라 요동외요(요동군이 바깥을 순찰하는 지역)

        에 속해 있었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요동외요)가 멀어 지키기가 어려워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정하고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4) 위만이 부근의 작은 읍들을 복속시키니, 진번, 임둔이 복속하였다고 했으니 진번, 임둔도 작은 읍일 것이니,

        위만조선 영토가 사방 수천리는 뻥이고 1백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  [출처] 115-1/2[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5.朝鮮列傳(조선열전)

         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 真番, 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이로써 위만은 그 땅의 군대의 위세와 재물을 얻어 부근의 작은 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이 모두 와서 복속하여 그 영토가 사방 수천 리가 되었다.(사방 수천리는 뻥이다)

 


■ 위만조선(진고공지, 요동외요, 상하장) 영토가 1백리인 지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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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22-01-19 13:35
   
이런신박한 논리는 살다살다 처음보네요. 역사학계의 아인슈타인이신듯
위구르 22-01-19 18:55
   
예전의 주장을 되풀이하시네요.

위만이 부근의 작은 읍들을 복속시키니, 진번, 임둔이 복속하였다고 했으니 진번, 임둔도 작은 읍일 것이니 <- 작은 부족들을 많이 병탄했으면 거대한 나라가 될 수 있는데 '작은' 읍들을 합쳤다고 위만조선도 작을 것이란 단정은 어떻게 짓습니까. 론리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또 진번 임둔을 그 작은 읍들과 달리 정확히 이름이 표기됐으니 차라리 그 두 나라가 읍들과 달리 규모가 작지 않았다고 봄이 더 타당합니다.

약 3백리 정도의 전국시대 요동군을 패수를 기준으로 진한 시대 요동군과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로 나누었으니,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 위만조선)는 직선거리는 약 1백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 이로써 위만조선의 범위가 백리라고 한다면 료동군 이내로 한정되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歷史적 사실은 그렇다고 보기 힘들죠
     
수구리 22-01-20 10:33
   
사마천사기에 나오는
1)  읍(邑)은 성곽이있는 마을/도성을 의미하는데..
    --> 우리로 치면 군소재지나 면소재지 정도로 보면될것 같고요
2) 소읍(小邑)은 작은 마을로 성밖의 마을로 보입니다
    우리로 치면 ~리(~~마을)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위만이 주변의 소읍인 작은 마을(시골 마을)을 여러개 침입하여 항복받았다는내용으로 보이고요
사마천사기의 지명에 소읍은 표현되지도 않았고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진번은 원래 진번조선이었는데..
전국시대 연나라 진개에게 영토 대부분을 빼앗겨서 이름만 존재하는 진번마을이 되었기에 ..

진번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진번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이고
위만에게 복속된 진번이 한사군의 진번군이 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사군의 개별 군의 규모는
지금 중국의  현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 향 정도의 규모로 보고 있습니다)
          
수구리 22-01-20 10:47
   
결론적으로 위만조선의 영토는
상하장에 있었던 진번, 임둔을 포함한 소읍인 시골마을 들을 여러개 병합하여 세운 나라로,
1) 조선이라는 이름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짝퉁고조선이고
2) 위만조선 영토 크기는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의 크기인 1백리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위만조선이 세워진 상하장은 상하운장이며 운장이란 강으로 둘러쌓인 땅을 의미합니다
--------------------------
추가하여 말씀드리면
--------------------------
 위만조선이 세워진 요동외요(진고공지, 상하장)이 1백리 정도이고요
지금의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도 1백리정도입니다
               
위구르 22-01-20 18:32
   
위만조선은 당연히 조선 렬국의 일부에 불과하니 조선의 적통이라 할 수 없죠. 근데 한나라가 수십만 대군을 들여서 1년이나 끌고 추태를 보이다가 간신히 이긴 위만조선의 규모가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 여전히 의문입니다. 아마도 립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구리 22-01-20 19:27
   
당대기록인 사마천 사기에는 5만병사와 7천 수군만 나오는데..
따라서 5만 +a(알파)가 한나라 병사수로 보아야 합니다

단) a(알파)는 5만의 10분의 1이나 5분의 1일 정도일 경우에
 5만 +a(알파)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 수십만 대군이 위만 조선을 공격했다는 문헌이나 사서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저는 한나라 병사수가 수십만이었다는 문헌이나 사서 기록을 보지 못했습니다..
환타지 소설에서 이야기 한 것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위구르 22-01-20 19:41
   
전에 대화한 것을 까먹으셨군요. 제가 설명했죠 문맥상, 정황상으로 수군이 5만인게 륙군이 5만인 것보다 타당하다고요
                         
수구리 22-01-20 19:47
   
명확한 병사수 5만과 수군 칠천이 조선열전에 있는데...

정황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적인 추정인
수십만을 개인이 주장하면 소설이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해석이나 주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위구르 22-01-20 23:35
   
호도하는 헛소리는 지긋지긋하니까 집어치우고 제가 썼던 댓글이나 보십시오. 진지하게 지적을 드렸는데 왜 그런 태도로 일관합니까?
                         
부르르르 22-01-21 16:25
   
근거를 제시하는 주장과 근거 없는 억지.
어는 쪽이 헛소리에 가까운지 딱 보이는데...

그리고 궁금한 거 하나...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은 두음에 'ㅇ' 대신 'ㄹ' 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 'ㄹ'을 사용하시는 지...
                         
Marauder 22-01-21 19:01
   
위구르님은 그게 맞다고 생각하셔서 일부러 사용하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글에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시다니 생각지도 못했네요.
                         
위구르 22-01-22 13:24
   
저는 우리말에 비합리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최근에 깨달아서 과거에 흐리멍텅하던 시절의 언어 사용을 반성하고 두음법칙, 사이시옷은 전혀 쓰지 않고 외래어는 반드시 우리말로 바꿔 씁니다. 또 두음법칙을 거부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그에 해당하는 단어는 거의 한자로 쓰곤 하는데 가끔 귀찮아서 한글로 쓸 때도 있습니다...
                         
위구르 22-01-22 13:33
   
전에 이에 관해 論爭을 했는데 거기서(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6093&sca=&sfl=wr_subject&stx=%ED%95%9C%EC%84%9C&sop=and) 결론에 제가 양복의 수군이 5만이라 봐야 하는 근거로 든 것이 아홉가지입니다.

1. '견루선장군양복종제부발해병오만인'을 '견루선장군양복, 종제부발해병오만인'으로 끊어 읽어서 '루선장군 양복을 파견했고 제를 따라 발해로 나아가니 병사가 오만 명이다'로 보는게 틀리지 않다.

2. 반대로 '병오만인'을 뒤에 붙여 '병오만인좌장군순체출료동'으로 보면 '병사 오만 명인 순체가 료동으로 나아갔다'라고 되는듯 하나 그럴려면 '병사 오만 명을 데리고'라고 해석할 수 있도록 與가 있거나 '병사 오만 명을 인솔하여'라고 알아듣게 率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3. 양복이 왕검성 해안에 도착한 것을 두고 '제나라 출신 병사 칠천 명이 도착했다'라고 묘사되는데 수군 모두가 제나라 출신이면 여기서 이리 쓸게 아니고 앞에서 진작에 '제나라 땅을 따라서 제나라 출신 병사들이 발해로 나아갔다'라고 써야 하므로 이는 제나라 출신 칠천 명 이외에 다른 지역 출신의 잔여 병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양복이 칠천 군사를 이끌고 왕검성을 급히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왕검성 측에서 적군의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해 먼저 쳐서 대파했다. 즉, 왕검성은 칠천 병사로 싸우기에는 턱도 없는 전투력을 가진 요새인데 그 칠천 명이 대파당하고 마땅히 소수의 패잔병이 전부여야 할 양복의 군대가 나중에 왕검성 남쪽을 포위했다고 하는데 칠천 명으로 싸웠다가 패한 적이 있는 왕검성의 부근에 칠천 명에 크게 못 미치고 사기도 떨어진 패잔병 무리로 주둔하는게 自殺행위에 다름 없다. 이는 칠천 명 외에 수많은 잔여 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5. 또한 이 대목에서 양복이 왕검성에 '먼저' 도착했다고 나온다. 이는 수군이 陸軍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뜻으로 쓰였을 수 있는 말이지만 본대 사만삼천 명을 뒤에 두고 칠천 명으로 따로 먼저 도착했다고도 볼 수 있다.

6. 칠천 명 밖에 안되는 군대로 싸워 대패하고 마땅히 거느린 병사가 소수에 불과할 양복이 나중에 순체와 쌍두 노릇을 하며 주전파 대 주화파 구도를 이루어 대등하게 맞서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발언권을 발휘하긴 커녕 조용히 틀어박혀 명령이나 따라야 할 처지인데 그리 한 것은 역시 칠천 명이 병력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7. 그리고 다음 대목에 '누선은 제(齊) 지방의 병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이미 여러 번 패하여 도망했었으니'라고 나오는데 양복의 군대가 패한 적이 한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초전에 칠천 군대가 박살이 났는데 무슨 수로 여러 번을 더 싸워 더 패배하는가. 전체 병력이 그 뿐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8. 양복이 위만 조선의 대신들을 꾀어 마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가 병사 몇 없는 그리 힘이 없는 인물이면 명색이 반역을 공모하는 일인데 조선의 대신들이 무슨 수로 믿고 따랐겠는가.

9. 전후 처분에 대해 '(양복이 병력을 크게 날려먹었기 때문에) 베어 죽임이 마땅하나 돈을 바쳐 속죄(贖罪)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라고 나오는데 초전에 잃은 수군 칠천 명(혹은 그 대부분)이 그의 휘하 군대 전부면 애초에 왕검성이 함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수군 칠천 명으로 부근에 주둔을 하고 충분히 스스로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그리 편제를 마련한건데 궤멸되었으니 이 역시 무제의 머리통의 뚜껑이 열리게 만들 실책이라 그 과실이 순체에 뒤지지가 않으므로 손잡고 함께 황천길을 걷게 됨이 마땅한데도 비록 속전을 내긴 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글에서 수구리님이 위만조선의 강역이 협소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한 줄로 설명하면 '위만조선은 범위가 300리인 전국시대 遼東郡의 절반에 해당하는 遼東외요에 해당하니 직선거리로 100리다'이니 위만조선의 강역이 료동군 안에 국한되었다는 황당한 전제로 한 주장이라서 비판했습니다. 어디를 봐서 論理적입니까
                         
수구리 22-01-22 14:55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를 해석하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1)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 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 땅에서 출발해 발해를 건너게 했다.  병사 5만의 좌장군 순체는 요동군을 나와 우거를 토벌하게 했다.
--> 총병사 수는 5만 칠천명 = 수군 7천명 + 육군 5만명으로 한국사 데이타베이스의 해석방법으로 정설입니다

2)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 兵五萬. 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 땅에서 출발해 발해를 건너게 했다. (총)병사는 오만이다.  좌장군 순체는 요동군을 나와 우거를 토벌하게 했다.
--> 상황상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이경우에 총 병사수는 5만명 = 수군 7천명 + 육군 4만3천명이 됩니다

3) 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兵五萬. 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해 제 땅에서 출발해 병사 5만명이 발해를 건너게 했다. 좌장군 순체는 요동군을 나와 우거를 토벌하게 했다.
총병사수는 5만 +a(알파) = 수군 5만명 + 육군(?, 모름 추정할 수 없음)
 
--> 한문 문장의 끊어 읽기로 보면 불가능한 해석이 아니겠지만
♥♥♥♥♥
위구르님의 해석은 상황을 무시한 엉터리 해석이 됩니다
♥♥♥♥♥
                         
수구리 22-01-22 15:10
   
3번의 해석방법인 누선장군 양복의 수군이 5만으로 보는 것이 상황을 무시한 엉터리 해석이 되는지 설명하면..

1) 설명전에..
양복의 수군이 5만이라고 주장한다면 순체의 대나라 연나라 병사수는 조선열전에 표현되지 않았으니 알수없게 됩니다
따라서 백번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위구르님의 한나라 군사가 수십만이라는 주장은 엉터리주장이 됩니다
-------
따라서
-------
수군이 5만명이고 순체의 육군 병사수는 알수 없다라고 했다면 ... 틀린 엉터리 주장의 오명은 피할 수 있습니다

2) 수군 병사수는 있는데.. 육군의 병사수나 한나라 총 병사수가 전쟁기록에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역사 기록 방법입니다

---------------
총 병사수가 중요한 이유는
---------------
전쟁을 준비하는 한무제 입장에서는 총 병사수를 반드시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조선열전에 병사수를 표현했습니다
전쟁 준비과장에서 병사수를 알아야 전쟁물자(식량, 무기)를 준비하고 전쟁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해서 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장수는 한무제가 지시한 병사수를 반드시 모집하여 채워야 합니다

환타지 역사 소설이라면
 전쟁물자 걱정없이 병사수를 수십만 수백만으로 마음대로 늘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축지법을 사용해서 하루에 수백리를 갔다고 해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이니..
여러가지 해석 가능한 방법중에서 ..그 시대 전쟁상황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위구르님처럼 정황이나 해석자 본인이 좋아하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수구리 22-01-22 15:23
   
그리고 저는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과.. 조선열전에 나온 내용으로
 '위만조선 강역은 100리' 를 주장한 것입니다
                         
위구르 22-01-24 01:44
   
총병사 수는 5만 칠천명 = 수군 7천명 + 육군 5만명으로 한국사 데이타베이스의 해석방법으로 정설입니다 <- 여러 선택지 중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그 쪽에서 구축한 '정설'을 그대로 믿는 사고를 가지고서 무슨 수로 식민사학을 타파한다고 연구를 그리 하십니까? 그리고 총 병사의 수가 5만이면 그런 식으로 기재하는게 정상입니까? '수군은 누가 지휘했다. (총 병력이) 5만명이다. 륙군은 누가 지휘했다' 이런 식의 문장을 보고 수륙군을 합친 수가 5만이라고 해석하는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방법입니다
                         
위구르 22-01-24 01:54
   
그리고 저는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과.. 조선열전에 나온 내용으로
 '위만조선 강역은 100리' 를 주장한 것입니다 <- 황당하기 짝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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