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2-01-11 14:16
[한국사] 흉노영토와 북부여 영토(북부여의 다른이름인 동호를 없앴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2,073  

■ 전한시대의 흉노영토와 북부여 영토(북부여의 다른이름 동호를 없앴다)

    구레나룻 수염이 있는 동이족의 나라인 고조선인 북부여를 중국인들은 동호(東胡)라 했다

   --> '동호東胡는고조선인 북부여로 구레나룻 수염이 있는 동이족의 나라다'

             https://blog.daum.net/tnrnfle/4

 

 고조선인 동호(북부여)와 흉노의 경계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

    ※주) 유목민족인 흉노입장에서는 황하를 건너야 하는 산서성 영토는 필요치 않았다

           (유목민족의 목축업에서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는 큰 장애물이다)

 몽염(蒙恬)이 죽고 제후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중원은 혼란상태가 되고

진나라가 죄를 짓고 변경을 지키려고 보냈던 수비병들이 모두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흉노는 느슨해진 기회를

타 다시 점차 황하를 건너 남쪽(섬서성 북부)으로 내려와 중원(中原)의 옛 요새에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출처]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2/15)|작성자 swings81

 당시 동호와 흉노 사이에는 버려진 땅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곳이 천 여리가 있어,

각각 자기들의 변경에 수비초소를 두고 살고 있었다.』

[출처] 110-3/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3/15)|작성자 swings81

 흉노 선우의 궁정 대군(代郡)과 운중군(雲中郡)을 마주 보고 있었다.

좌방과 우방의 왕들과 장수들은 각기 나누어준 땅이 있었고 물과 풀을 따라 옮겨 살았다.』

[출처] 110-4/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4/15)|작성자 swings81

『 흉노의 좌방(左方)의 왕들과 장수들은 동쪽에 거주하고 상곡군(上谷郡)의 동쪽에 이르며,

동쪽으로 예맥조선(穢貉朝鮮)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우방(右方)의 왕들과 장수들은 서쪽에 거주하고, 상군(上郡)의 서쪽에 이르며,

월지와 저(氐), 강(羌) 등의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출처] 110-4/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4/15)|작성자 swings81



■ 구레나룻 수염이 있는 동이족의 나라인 고조선을 중국인들은 동호(東胡)라 했다

흉노에 의해 동호(북부여)는 멸망하지 않았으며, 후한서와 삼국지의 오환과 선비는 고구려의 일부

 

※주) 고조선인 동호에 오한과 선비가 있었다(후한서와 삼국지 오한선비전의 내용)

고구려의 선비족 단석괴가 서기 155년경에 섬서성 중부와 서북부 흉노땅을 모두 차지했다

 

1) 사마천 사기의 본기와 세가에서 진시황 시대에 섬서성 서북쪽의 흉노가 처음으로 등장(BC 214년)하는데

"섬서성 북쪽의 임호를 몰아내고서북쪽의 흉노를 쫓아냈다"가 처음으로 흉노가 사기에 나타난 기록이다

 

 진시황은 (...생략...) 시황은 이에 장군 몽염(蒙恬)에게 군사 30만 명을 이끌고 출병해 북방의 호(胡, 임호)를 공격하게 하여 하남 땅을 빼앗았다진 시황 33년(기원전 214년), (...생략...) 서북쪽의 흉노를 물리쳐 쫓아냈다.

[출처] 06-07[史記(사기) 本紀(본기)] 권06.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07/20) <秦始皇帝(진시황제)>⑦

 

 2) 사마천이 흉노열전과 전국시대 열전에서 본격적으로 고조선인 동호를 없애기 시작했다

 

-. 조 도양왕때( 기원전 244년 ~ 236년) 이목(李牧)이 늘 대(代) 땅의 안문(岸門)에 주둔하면서 흉노에 침입에 대비했고,

흉노 10여만 기병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고, 동호(東胡)를 무찌르고 임호(林胡)를 항복시켰다고 한다

기원전 214년에는 섬서성 서북쪽에 흉노가 있었는데, 흉노열전에서는 임호를 흉노의 두만 선우로 바꾸었다

 

 연나라의 명장 진개(秦開)가 호(동호)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생략...)

진시황 당시에는 문명과 예의와 풍속이 발달한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있었는데 그 중 세 나라가 흉노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그 후 조나라 장군 이목(李牧)이 있는 동안은 흉노가 감히 조나라 국경을 침범하지 못했다.

그 뒤에 진(秦)나라가 6국을 멸망시키고, 시황제(始皇帝)는 몽염(蒙恬)에게 10만 명의 군사를 주어 북쪽의 흉노를 공격하여 황하 이남의 땅을 모두 진나라의 영토로 수복하였다. (... 생략...) 당시는 동호(東胡)의 세력이 강하고 월지(月氏)도 번창했다흉노의 선우(單于)는 두만(頭曼)이라 하였으며두만은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겨 갔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몽염(蒙恬)이 죽고 제후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중원은 혼란상태가 되고 진나라가 죄를 짓고 변경을 지키려고 보냈던 수비병들이 모두 돌아가 버렸다그리하여 흉노는 느슨해진 기회를 타 다시 점차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중원(中原)의 옛 요새에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출처]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2/15)

 

-. 진시황이 죽고난 후에 흉노가 고조선인 동호를 급습해서  왕을 죽였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고 가축과 재산을 빼앗았서 돌아 갔는데, 산서성을 지나 하북성 동쪽까지 수천리 동호 영토를 흉노 영토로 바꿔 치기 했다

 

  흉노는 좌방(左方)의 왕들과 장수들은 동쪽에 거주하고 상곡군(上谷郡)의 동쪽에 이르며, 동쪽으로 예맥(穢貉)과 조선(朝鮮)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출처] 110-4/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4/15)

 

3) 유방의 한나라 부터 동호를 흉노로 표현해서 본격적으로 역사를 왜곡시켰다

 

  흉노 묵특(冒頓)이 대규모로 한신을 포위하자, 한신은 여러 차례 오랑캐에게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했다.

한(漢)나라가 군대를 보내어 구원하려 했지만 한신이 자주 흉노에게 몰래 사자를 보낸 것을

두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의심해 사람을 보내 한신을 책임을 따져 꾸짖었다.

한신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흉노와 함께 한(漢)나라를 공격하기로 약속하고,

한나라를 배반하고 마읍(馬邑)을 오랑캐에 내주어 항복한 뒤 태원(太原)을 공격했다.

[출처] 93-1/4[史記列傳(사기열전)] 권93 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 ①-1 韓王 韓信(한신) (1/4)

 

☞ 노관은 마침내 무리들을 거느리고 도망쳐 흉노 땅으로 갔으며, 흉노는 그를 동호(東胡)의 노왕(盧王)으로 삼았다.

노관은 남쪽 오랑캐에게 침략과 약탈을 당하자 다시 돌아갈 생각을 했다. 1년 남짓 지내다가 흉노 땅에서 죽었다.

고후(高后) 때 노관의 아내와 자식이 흉노에서 도망하여 한나라에 항복했다.

마침 고후가 병이 나 만날 수가 없었는데, 연왕의 관저에서 연회를 베풀어 만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조가 마침내 세상을 뜨자 만날 수가 없었다. 노관의 아내도 역시 병들어 죽었다. 효경제(孝景帝) 6년에 노관의 손자 동호왕(東胡王) 타지(他之)가 항복하니, 한나라는 그를 아곡후(亞谷侯)로 봉했다.

[출처] 93-3/4[史記列傳(사기열전)] 권93 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 ②盧綰(노관) (3/4)

 

 

■ 전국시대 연燕나라와 동호의 경계를 이해해야 한사군 설치 당시의 고조선의 경계를 알수 있다

 

1) 전국시대 연나라 영토를 진시황의 진나라가 물려 받았고, 진시황의 진나라 영토를 유방의 한나라가 물려 받았다

2) 진시황의 진나라가 섬서성 북쪽 황하 밖으로 흉노를 몰아 내었고,

   진나라 말에 섬서성 북쪽 황하를 흉노가 건너와 섬서성 중부 진나라 장성 근처까지 진출하였다

 

 

■ 전국 시대 연나라 남쪽은 조趙나라였고 연나라 동쪽, 북쪽, 서쪽에는 동호(북부여)가 있었다

 

1) 사마천 사기 조세가 무령왕 조에 따르면

   조나라 북쪽은 연나라, 조나라 동쪽에는 동호가 있었다

 

☞ 조趙 무령왕 19년(기원전 307년) 누완(樓緩)을 불러 상의하며 말했다.

“... (생략)...

지금 중산은 우리 뱃속 한가운데에 있고, 북쪽으로는 연나라가 있고, 동쪽으로는 동호(東胡)가 있으며,

서쪽은 임호(林胡), 누번(樓煩), 진나라, 한나라의 변경이니, 강한 병력의 지원이 없으면

사직이 망하게 생겼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 (생략)..."

[출처] 43-13/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3/23) <조 무령왕(趙 武靈王)>②

 

2) 사마천 사기 염파,임상여 열전의 이목 장군이

    산서성 안문에서 동호와 전투했으니 조나라 서북쪽에 동호가 있었다

 

☞ 조 도양왕때( 기원전 244년 ~ 236년) 이목(李牧)은 조나라의 북쪽 변방의 훌륭한 장수다.

늘 대(代) 땅의 안문(岸門)에 주둔하면서 흉노에 침입에 대비했다

... (생략)...

적은 수의 흉노가 쳐들어오자 거짓으로 패하며 달아나며 수천 명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선우(單于)가 이를 듣고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수구리 22-01-11 15:23
   
< 글이 짤려서 댓글에서 계속 이어갑니다>
     
수구리 22-01-11 15:24
   
2) 사마천 사기 염파,임상여 열전의 이목 장군이
    산서성 안문에서 동호와 전투했으니 조나라 서북쪽에 동호가 있었다

☞ 조 도양왕때( 기원전 244년 ~ 236년) 이목(李牧)은 조나라의 북쪽 변방의 훌륭한 장수다.
늘 대(代) 땅의 안문(岸門)에 주둔하면서 흉노에 침입에 대비했다
... (생략)...
적은 수의 흉노가 쳐들어오자 거짓으로 패하며 달아나며 수천 명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선우(單于)가 이를 듣고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목은 많은 기이한 진법을 보여 좌우의 날개를 펴서 치니, 흉노 10여만 기병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다.
담람(襜襤)을 멸하고 동호(東胡)를 무찌르고 임호(林胡)를 항복시키자 선우가 달아났다.
그 후 10년 동안 흉노는 감히 조나라 변방의 성 근처로 오지 못했다.
[출처] 81-5/5[史記列傳(사기열전)] 권81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5/5)   

3) 사마천이 연나라에 대해 평가한 내용은
연나라는 안으로는 제나라와 조나라에 끼어 있다고 했고, 밖으로는 만맥에 가깝다고 했고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에
연나라 동쪽과 북쪽은 호(胡, 동호)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고 했으니, 연나라 북쪽에 만맥인 동호가 있다는 말이다

☞ 태사공(太史公)의 평론 : 연나라는 밖으로는 만맥(蠻貉)과 가깝고 안으로는 제나라와 진(晉)나라와 끼어 있어, 험하고 강한 나라 사이에서 가장 약소한 나라로서 거의 몇 번이나 망할 뻔했다.
[출처] 34-06[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6/06)<연나라의 멸망>

☞ 연나라 남쪽으로는제(齊)와 조(趙)에 통하고, 동쪽과 북쪽은 호(胡, 동호)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출처] 129-5/9[史記列傳(사기열전)] 권129 貨殖列傳(화식열전) (5/9)

(결론적으로)
조나라 서북쪽과 동쪽에 동호가 있었고, 조나라 북쪽이 연나라고 연나라 북쪽이 동호이니
전국 시대 연나라 동쪽, 북쪽, 서쪽에는 동호가 있었다


■ 흉노는 유목민족으로 섬서성  북부 초원 지대와 섬서성 서북부에 있었다

1) 진시황이 섬서성 북쪽 황하 이남의 임호 땅을 빼앗았고, 섬서성 서북쪽의 흉노를 물리쳤다
☞ 진시황은 북쪽 변방을 순시하면서 상군을 거쳐 함양으로 돌아왔다. 연나라 사람 노생(盧生)이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귀신에 관한 일이라고 하며, 예언서인 녹도서(錄圖書)를 바치면서 말하기를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胡)입니다.’라고 하였다. 시황은 이에 장군 몽염(蒙恬)에게 군사 30만 명을 이끌고 출병해 북방의 호(胡, 임호)를 공격하게 하여 하남 땅을 빼앗았다.
진 시황 33년(기원전 214년), 예전에 도망간 범인들과 데릴사위가 된 자, 장사꾼들을 징발하여 육량(陸梁) 지역을 공격하게 하여 계림군(桂林郡), 상군(象郡), 남해(南海郡)을 설치하고 그들을 유배시켜 지키도록 했다. 서북쪽의 흉노를 물리쳐 쫓아냈다. 유중(楡中)에서 황하를 따라 동쪽 음산(陰山)에 이르기까지 44개의 현을 설치하고, 황하 가를 따라 장성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또 몽염(蒙恬)으로 하여금 황하를 건너 고궐(高闕), 양산(陽山), 북가(北假) 일대를 빼앗고 요새를 쌓아서 융인(戎人)들을 몰아내게 했다.
[출처] 06-07[史記(사기) 本紀(본기)] 권06.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07/20) <秦始皇帝(진시황제)>⑦

2) 진시황 사후에 섬서성 북쪽 황하를 건너온 흉노는 섬서성 중부 진나라 장성까지 내려왔다
☞ 진시황 당시는 동호(東胡)의 세력이 강하고 월지(月氏)도 번창했다.
흉노의 선우(單于)는 두만(頭曼)이라 하였으며. 두만은 진(秦)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겨 갔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몽염(蒙恬)이 죽고 제후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중원은 혼란상태가 되고 진나라가 죄를 짓고 변경을 지키려고 보냈던 수비병들이 모두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흉노는 느슨해진 기회를 타 다시 점차 (섬서성 북쪽)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중원(中原)의 옛 요새에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출처]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2/15)


■ 흉노에 의해 동호는 멸망하지 않았으나, 한서에서 고조선인 동호(북부여)를 지웠으며, 후한서,삼국지 동이열전에서 고구려를 축소시켰고, 마한, 진한, 변진 등을 미개한 나라로 서술하여 역사를 왜곡시켰다

1) 흉노 묵돌이 동호를 급습하여 왕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서 돌아갔으나 동호는 멸망한 것이 아니다

  사마천 사기에서 전쟁에 져서,왕이 죽었다고 나라가 멸망한 경우는 없다 나라가 멸망했을 경우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나라가 멸망했다고 표현했다 따라서 동호가 멸망했다고 표현하지 않았기에 동호는 멸망하지 않았다

☞ 동호는 처음부터 묵돌을 얕잡아보고 있어서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묵돌이 군사를 이끌고 습격해 동호의 군사를 대파하고 그 왕을 죽였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고 가축과 재산을 빼앗았다. 본국으로 돌아온 묵돌은 서쪽의 월지국을 공격하여 격파시키고, 남쪽으로 누번왕, 백양하남왕(白羊河南王) 등의 영토를 병탄했다.
[출처] 110-3/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3/15)

2) 흉노는 유목민족이기에 섬서성 북부와 서북부의 초원지대가 흉노 영토였다.
  황하를 경계로 섬서성과 산서성이 구분되는데, 산서성 서쪽은 여량 산맥이 있고 대부분이 산악지대다
  따라서 산악지대인 산서성은 유목민족인 흉노의 영토로 적합하지 않다(식량 부족에 따른 약탈 장소로는 가능하다)

☞ 흉노(匈奴)의 선조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예로 순유(淳維)라고 한다. (... 생략...) (섬서성)북쪽의 미개척지 들에서 가축을 기르며 옮겨 다녔다. 그들의 가축은 주로 말, 소, 양이었는데 기이한 가축으로는 낙타, 나귀, 노새, 명마인 결제, 준마인 도도, 야생마인 탄혜 등이 있었다.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도 없고 농사를 짓지 않았으나 각 부족은 경계가 분명했다. 문자와 서적이 없었으므로 말로써 서로 약속을 했다. 어린아이도 능히 양을 타고 다니며 활로 새나 쥐를 쏘고, 조금 더 자라면 여우나 토끼 사냥을 해서 식량으로 하였다. 장정들의 힘은 자유자재로 활을 당길 수 있어 모두 무장 기병(융戎 : 창과 갑옷의 의미인 병장기)이 되었다.
[출처] 110-1/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1/15)

3) 한서, 후한서, 삼국지 동이열전에 고조선과 고구려를 축소시켰고
  마한, 진한, 변진 등의 나라를 미개한 나라로 표현해서 역사를 왜곡시켰다

-. 유방의 한나라 시대에 흉노의 변경 침입과 약탈로 인해 흉노 정벌이 중요해 졌고
사마천 사기 한나라 시대의 전쟁기록에 흉노가 많이 등장하고(흉노열전), 동호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 사마천 사기에서 한나라와 동호가 전투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니
 중국 역사가들이 한서와 후한서, 삼국지에 동호가 흉노에 의해 멸망했고 나라를 빼앗겼다고 역사를 왜곡시켰다
 -. 춘추전국시대 연나라 주변에  고조선인 동호의 거수국들이 있었고, 홍산과 하가점의 우수한 문명이 있었음에도 후한시대나 삼국 시대에 동이족을 미개한 나라로, 고구려를 현정도의(고구려현) 아주작은 나라로 표현했다


■ 연나라 주변의 전국시대 고조선인 동호의 거수국들
연(燕) 역시 발해(渤海)와 갈석산(碣石山)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남쪽으로는 제(齊)와 조(趙)에 통하고, 동쪽과 북쪽은 호(胡, 동호)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상곡(上谷)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는 지역은 아득히 멀어 인구가 적고 자주 침략을 당했으며,
조(趙)와 대(代) 지역의 풍속과 대체로 비슷하나, 백성들은 독수리처럼 사납지만 생각이 부족하고, 물고기·소금·대추·밤이 많이 생산된다.
북쪽으로는 오환(烏桓)과 부여(夫餘)와 이웃해 있고, 동쪽으로는 예맥조선(穢貉朝鮮), 진번(眞番)이 집결되어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출처] 129-5/9[史記列傳(사기열전)] 권129 貨殖列傳(화식열전) (5/9)
 
 
Total 5,26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214 [한국사] 고려말의 파사부 행정구역 분석 보리스진 02-02 925
5213 [한국사] 과거를 용서하되 잊지는 맙시다.. (4) dtan 01-30 1051
5212 [한국사] 한국사의 대상범위 하이시윤 01-28 999
5211 [한국사] 압록강과 태자하의 어원 비교 분석 (2) 보리스진 12-22 1943
5210 [한국사] 국제정치학과 유튜버 - "국뽕" (1) 아비바스 12-15 1400
5209 [한국사] 역사학자 임용한, 정형돈 - 전쟁사의 모든 것 아비바스 12-15 1061
5208 [한국사] 역사학자 임용한, 정형돈 꿀잼 전쟁 이야기 아비바스 12-15 811
5207 [한국사] 서울의 봄 실존인물 + 실제 역사 파스크란 12-14 1231
5206 [한국사] 고려의 대륙 동부 영토 - 화북, 산동,강소 (23) 파스크란 12-13 1626
5205 [한국사] [FACT] 황현필 -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은 거란의 1차 … 아비바스 12-02 1454
5204 [한국사] [FACT] KBS 호평일색 "고려거란전쟁" ‘역사고증에 첨단… 아비바스 12-01 1651
5203 [한국사] [FACT] 역사유튜버 글림킴, 규원사화 원문 번역문 아비바스 11-29 1334
5202 [한국사] 고려영토 논란 종결. 지도, 고려사<고려거란전쟁?>… (9) 하늘하늘섬 11-27 2592
5201 [한국사] 우리가 몰랐던 사실 탐라와 임나가라. "왜국은 대방… (1) 하늘하늘섬 11-27 1242
5200 [한국사] 놀라운 사실! 대륙백제! 요서백제. 최초백제는 북경… 하늘하늘섬 11-27 1411
5199 [한국사] 100년 전 지도에 표기된 고려 지명 (1) 하늘하늘섬 11-27 1279
5198 [한국사] 거란군을 궤멸시킨 귀주대첩, 그 역사의 현장은 어디… (1) 하늘하늘섬 11-26 1247
5197 [한국사] [FACT] 역사학자 임용한, 침착맨 "전쟁사에 대한 오해… 아비바스 11-26 738
5196 [한국사] [FACT] 캘리포니아 석사 썬킴, 정형돈 - 해병대는 왜 귀… 아비바스 11-26 612
5195 [한국사] [FACT] 역사학자 김재원, 정형돈 - 한국사 희대 매국노,… 아비바스 11-26 583
5194 [한국사] [FACT] 역사학자 임용한, 정형돈 한국사 훑어보기 아비바스 11-26 501
5193 [한국사] 번조선의 반역자 5명이 받았던 봉지封地는 어디인가 (1) 하늘하늘섬 11-25 433
5192 [한국사] 새로운 광개토대왕비 탁본, 프랑스서 발견 Korisent 11-25 608
5191 [한국사] [FACT] 우리나라 사극에서 병력 고증 불가능한 이유 (1) 아비바스 11-24 473
5190 [한국사] [FACT] 고조선 중기 군사력 (2) 아비바스 11-23 473
5189 [한국사] [FACT] 군사전문가 이세환 - 한국과 북한의 실제 군사… (4) 아비바스 11-22 540
5188 [한국사] [FACT] 군사전문가 이세환 - 전쟁나면 밝혀지는 실제 … (2) 아비바스 11-22 407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