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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17 20:59
[한국사] 한서 28권으로 본 한사군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929  

한서 28권 하 

遼西郡,戶七萬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萬二千三百二十五。縣十四:且慮,海陽,新安平,柳城,令支,肥如,賓從,交黎,陽樂,狐蘇,徒河,文成,臨渝,絫。 

료서군은 호가 7,2654에 인구가 35,2325명이다. 현이 14개로 차려, 해양, 신안평, 류성, 령지, 비여, 빈종, 문려, 양락, 호소, 종하, 문성, 림유, 류다. 

ㅇ 비여는 지금 盧龍현에 있었으며 令支는 그 곳에 위치한 고죽국의 서쪽에 있었고 柳城은 현 북경 부근이니 그들의 이름이 있는 遼西군의 기준이 되는 遼水는 지금의 灤河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세 지역이 한나라 중앙으로부터 먼 순서대로 기재되었으니 羅列된 순서가 중요한 관점이 될 테다. 

遼東郡,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口二十七萬二千五百三十九。縣十八:襄平,新昌,無慮,望平,房,候城,遼隊,遼陽,險瀆,居就,高顯,安市,武次,平郭,西安平,文,番汗,沓氏。 

遼東군은 호가 5,5972에 인구가 27,2539명이다. 현은 18개로 양평, 신창, 무려, 망평, 방, 후성, 료대, 료양, 험독, 거취, 고현, 안시, 무차, 평곽, 서안평, 문, 번한, 답지다. 

ㅇ 遼陽은 遼水의 북쪽에 있다 하는데 灤河가 서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북쪽에 있다는 말은 곧 동쪽에 있다는 뜻이므로 더 확실해진다. 또 응소가 말하기를 험독은 창려에 있다 했는데 지금의 창려현은 역시 灤河의 동쪽이다. 여기서도 遼水에 가까웠을 遼陽의 바로 다음에 역시 遼水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험독이 거명되니 지명의 羅列 순서가 실제 위치와 상관이 있음이 확실하다. 

玄菟郡,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 현토군은 호가 4,5006에 인구가 22,1845명이다. 현이 세 개이니 고구려, 상은태, 서개마다. 

ㅇ 현토군은 遼東군의 직후에 거명되니 동접함을 알 수 있다. 또 고구려현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당시 고구려가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니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추모태왕이 일개 한나라 현의 이름으로 국호를 작명했다는 말인가? 상은태는 그 뜻을 풀어보면 '은태의 위'가 되지만 上의 다른 뜻에 따라 '옛 은태', '이전의 은태' 라고도 볼 수 있는 말인데 殷은 동이족이 중원에 세운 은나라고 台는 별이란 뜻 외에 돈대, 무대란 뜻이 있으니 곧 은나라 유민들이 망명해서 정착한 곳이란 뜻 아니겠는가. 그들의 상징 글자인 箕가 새겨진 유물이 료녕성 서부에서 발견되는 점에 부합한다. 고로 상은태의 뜻은 '옛 은나라 땅(정확히는 망명지)'일 것고 현토군은 료녕성 서부나 중부에 있었음이 뒤받침된다. 서개마는 지금의 개마고원이 아니고 개마라는 말 자체가 고유 명사로 곰, 검, 금, 가미와 어원이 같으니 곧 임금을 뜻하고 다른 말로 왕검이다. 그러니 이곳 저곳에 있었을 지명이다. 그 당시에는 만주 남서부에 있었을 것이다. 

樂浪郡,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縣二十五:朝鮮,俨邯,浿水,含資,黏蟬,遂成,增地,帶方,駟望,海冥,列口,長岑,屯有,昭明,鏤方,提奚,渾彌,吞列,東傥,不而,蠶台,華麗,邪頭昧,前莫,夫租。 

樂浪군은 호가 6,2812에 인구가 40,6748이다. 현은 25로 조선, 엄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렬구, 장잠, 둔유, 소명, 루방, 제해, 혼미, 탄렬, 동당, 불이, 잠태, 화려, 사두매, 전막, 부조다. 

ㅇ 遼東군 이동의 현토군에는 강 이름이 없다가 여기에 패수가 나온다. 지금의 대릉하일 것이다. 그 외에 수성은 나중의 수서에 창려현과 관련되니 지금의 灤河 부근이지만 교치된 이후일 것이고 이 때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또 탄렬과 列口는 洌水와 관련된듯 싶은데 洌水와 遼水가 어원이 같은나 여기서는 분명 다르다. 탄렬은 洌水를 삼킨다는 뜻이고 렬구는 洌水의 입구이니 둘은 다른 곳이고 탄렬은 아마 렬구와 정반대로 洌水의 끝이거나 강 중간에 물이 크게 고여서 삼키는듯 보이는 곳일 터이나 진실은 알 수 없다. 이 洌水는 당연히 대릉하 이동의 강들 중 첫 번째의 긴 강인 현 遼河일 것이며 그 강명에 포함된 료와 렬은 그 음이 비슷하다. 조선현은 위만조선의 수도가 있던 곳이라서 조선이라 이름 붙였을 것이다. 羅列된 순서가 첫 번째인데 그 중요도가 제일이라인지 실제로 군의 최서단에 있어서인지는 모른다. 이후 두번째로 나오는 패수가 대릉하이니 위치는 미궁에 빠진다. 灤河 이동의 遼東군의 동쪽에 접한 현토군의 이동에 있었고 지금의 遼河로 추정되는 洌水가 포함되므로 樂浪군은 지금의 遼東반도 북동 부근일 것이다. 

요약 
1. 상은태현의 위치로 추정하는 현토군의 위치는 遼寧省 서부 지역이다. 
2. 고대 遼水는 지금의 灤河이다. 
3. 왕검성은 지금의 遼東에 있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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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12-17 21:13
   
한서 지리지에서 한사군 위치를 알수 있거나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또한 글에서 ㅇ 로 설명되는 내용은 글 작성자가 추정한 것으로
그것도 근거없는 단지 추정한 것이니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서 지리지만으로 한사군 위치를 추정하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근거가 없는 추정에 불과한 내용으로 봅니다

추정한 근거도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중국 지명이 북쪽으로 천리이상 이동한 후의 문헌으로 지명 위치를 추정한 것이니
 한무제 당시의 한사군의 위치가 될 수는 없겠지요!!!
     
수구리 21-12-17 21:17
   
글자가 보이지 않습니다(저만 그런가요?)

마우스를 이상하게 조작해야만 글을 읽을 수 있네요
글자가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흰색입니다
          
위구르 21-12-17 21:49
   
평소에 검은 화면으로 봐가지고 실수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위구르 21-12-17 21:50
   
ㅇ으로 시작하는건 제가 주석 다는 셈으로 쓴 설명과 추측입니다. 그나저나 한서의 내용인데 그게 아니면 뭘로 초기 한사군 위치를 파악합니까?

추정한 근거도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중국 지명이 북쪽으로 천리이상 이동한 후의 문헌으로 지명 위치를 추정한 것이니 <- 이럴 가능성은 충분해서 살펴야 하지만 저는 그럴 수준이 안되어서 일단 사서 내용에 따라 추측했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다음에 계기가 또 있으면 새로 시작해야겠죠. 확실한건 저 사서 기록에 따른다 해도 한사군의 위치는 지금의 압록강 밖이라는 점입니다.
          
수구리 21-12-17 22:08
   
뭘로 초기 한사군 위치를 파악합니까? -->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주장한 내용 하나 보겠습니다
"비여는 지금 盧龍현에 있었으며" 이라는 내용은
--> "당나라 노룡현은 한나라 때의 비여현이다"는 두우의 통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두우의 통전이란 당나라의 재상 두우(杜佑:735∼812)가 편찬한 제도사. 200권. 766년에 착수하여 30여 년에 걸쳐 초고(初稿)가 완성되고, 그 후에도 많은 보필(補筆)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구르 21-12-17 22:12
   
그 통전의 기록이 믿을 수 없지는 않죠. 다만 이 지명에 관해 내일 다른 사서들의 기록을 찾아보겠습니다
          
수구리 21-12-17 22:16
   
따라서 두우의 통전은  고구려 명망 후에 작성된 문헌이니..
"비여는 지금 盧龍현에 있었으며" 이라는 내용은  당나라 비여현는 한나라 노룡현입니다

여기서 확인해야 하는 내용은
첫째) 두우가 살아 있을 때에 서기 766년의 비여현 위치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장하시는 위구르님이..)
둘째) 한나라 시기의 노룡현(서기 91년, 한서지리지 완성 년도)의 위치가
        서기 766년에 두우가 알고 있는 노룡현의 위치와 같아야 합니다
        (지명이 이동되었으면 이동되기 전의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700년 전의 노룡현 위치를 두우가 정확히 틀리지 않고 알고 있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구르 21-12-17 22:25
   
첫째) 두우가 살아 있을 때에 서기 766년의 비여현 위치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일단 盧龍縣이라 했으니 지금 지명 기준으로 보면 란하 바로 서쪽에 비정할 수 있거든요. 그가 盧龍縣에 비여현이 있다 했으니 비록 통전의 기록이라는 점은 몰랐지만 일단 따른 셈입니다.

둘째) 한나라 시기의 노룡현(서기 91년)의 위치가
        서기 766년에 두우가 알고 있는 노룡현의 위치와 같아야 합니다 <- 한나라 때 盧龍縣이 있었다는게 아니라 한나라 때의 비여현이 두우가 살아 있을 때의 盧龍縣이라는 말 아니었습니까?
                    
수구리 21-12-17 22:31
   
아 맞습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한나라의 비여현이고 당나라의 노룡현입니다

지금의 노룡현은 서기 2021년이 아닙니다 당나라 서기 700년의 노룡현 위치입니다
이유는 서기 700년 당나라 노룡현 위치가 고구려가 멸망되고,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면서 1300년 동안 변하지 않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구르 21-12-17 23:00
   
그 盧龍縣의 당시 위치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盧龍縣 보다는 서쪽이나 남쪽에 있었을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다만 지금의 위치를 기준으로 봐도 통설보다 더 서쪽으로 나아간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수구리 21-12-17 22:43
   
그래서 제가 고대 위치를 추정하는 방법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한사군 위만 조선 위치를 찾는 작업은
1) 위만조선, 한사군 설치 당대 기록인 사마천 사기를 이용하고요(당대 기록이니 고려할 사항이 거의 없습니다)
2) 낙랑군이 있었던 당대 기록인 한서지리지와 삼국지 내용을 사용하고요(주석은 참고용으로 활용합니다)
3) 낙랑군이 멸명한지 100여년 후에 편찬된 후한서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위만조선 한사군 위치 추정에 가능하면 사용/활용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을 경우에 서기 400년 이후의 중국 고대 문헌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요

따라서 역사적 사건의 당대기록은 매우 중요합니다
후대 기록은  무시하면 않되겠지만. 편찬자가 잘못 알 수가 있고 가감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구르 21-12-17 23:03
   
2) 낙랑군이 있었던 당대 기록인 한서지리지 <- 제가 근거로 든 저 기록이 한서 지리지의 것이죠. 사기는 그 전에 모든 내용을 보면서 遼水가 들어가는 기록을 찾았는데 잘 안나와서 한서 지리지로 넘어갔는데 내일 다시 볼 생각입니다. 사마천이 비록 위국휘치의 버릇을 못 버린 놈이지만 당대 기록이고 또 중간중간에 은유적 표현이나 직설적 표현을 약간 섞어서 당시의 진상을 파악할 거리를 남겨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수구리 21-12-17 23:48
   
요수는 중국 고대문헌(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에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대 요수를 기준으로 고대 요서와 고대 요동을 나누지 않았다고 저는 봅니다

따라서 현대 요수(고대 요수 아님)인 만주 요하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가 나누어진 시기는 고려말인 것 같습니다

만주에 있는 지금의 요하는 고대 요수가 아니며, 거란의 요나라 이후에 요하로 불리웠습니다
                         
위구르 21-12-18 09:36
   
사기를 찾아봐도 遼水가 거의 나오지를 않아서 遼東과 遼西를 찾아서 위치를 찾으려고 했는데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遼河가 아닌건 물론인데 고대의 遼水가 아니면 무엇을 기준으로 동서를 나눴다고 보시나요
                         
수구리 21-12-18 10:29
   
요동 요서를 나누는 기준은 사서에 보이지 않으니 이름없는 아주 작은 강으로
나누는 기준이 없다고 보야합니다
(5군이니 관리 목적상 지형을 이용하여 적절하게 군으로 나누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만 한서 지리지에
 서쪽에  상곡, 대군이 있고, 동쪽에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이 있다고 했으니

상곡 대군은 태행산맥 서쪽이고요(산서성)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은 태행 산맥 동쪽에 있습니다(하북성)
                    
수구리 21-12-17 23:22
   
■■■■■■■
그래서 저는 위만조선, 낙랑군 위치에 대해
■■■■■■■
1) 한반도 북한 평양설을 주장하는 강단 주류사학계의 주장이 근거 없는 뻥으로 보고 있고요
2)  이덕일 소장을 포함한 요서설( 난하설, 북경설)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틀렸다고 봅니다

요수 난하설이나 위만조선, 한사군의 지금의 요서설은
현대 지도나, 명나라 시대나 청나라 시대의 지도로 위만조선과 한사군 위치를 찾은 것이고요
(대명여지도 AD 1500년대 작성, 대청광여도 AD 1700년대 작성했고요,
중국 고지도는 모두 AD 1천년 이후의 작성된 지도입니다)
사용하는 문헌도 대부분 낙랑군이 멸먕한  500년~1000년 이후의 중국문헌을 사용하고 있으니

한나라 시대인 BC 108년의 위만조선과 낙랑군의 정확한 위치를 추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뻥을 주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위만조선 한사군 북한 평양설도 뻥이고요
위만조선 한사군 난하설(요서설, 북경설)을 포함한 요동설도 뻥으로 봅니다
                         
위구르 21-12-18 09:43
   
저는 위만조선의 전신인 불조선이 지금의 영정하까지 차지했다가 내외의 고난을 겪으며 지금의 대릉하까지 후퇴했고 위만조선이 되고나서 섭하를 쳐서 죽여서 란하까지 확장하고서 한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망하고는 그 동부지역인 지금의 료녕성 동부에서 서부에 한사군이 생겼다고 봅니다
                    
수구리 21-12-17 23:37
   
-------------------
패수 위치를 찾는 문헌으로
-------------------
수경주를 활용하는데 잘못된 것이고요 (낙랑군이 멸망한 후에 2백년 지나서 물어서 작성한 기록)
수경원문은 낙랑군이 있었던 패수의 당대 기록이니 이용해도 되겠지요
(패수는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에 처음 등장합니다)

수경주(水經注)는 5세기말부터 6세기 초에 활약한 북위(北魏)의 학자 역도원이, 3세기경에 쓰여진 수경(水經)이라는 문헌에 자세한 주석을 붙여서 쓴 책입니다
                         
위구르 21-12-18 09:44
   
아무리 신뢰성이 떨어져도 이것 저것 다 찾아서 위치를 찾아내야죠
                         
수구리 21-12-18 09:51
   
제가 수경주를 믿어서는 않되고 수경원문이 맞다라고 한 것은

수경주와 수경원문의 패수 흐름이 정 반대이기에
수경원문의 '패수는 동쪽으로 흐는다'가 맞다는 것입니다
(수경주는 '패수는 서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으니 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위구르 21-12-18 10:06
   
그건 몰랐군요. 그럼 패수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수구리 21-12-18 10:23
   
사기 조선열전에 보면 도적떼 위만이 동쪽으로 패수를 건넜다고 했고
수경은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패수는 남북(북남)으로 흐른 다음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봐야 합니다
1) 남북을 흘러서 요동과 위만 조선을 구분한 후에 동쪽으로 패수가 흐르니
패수에 의해 위만 조선의 영토가 상하 운장에 있는 것입니다
(위만 조선 영토는 진고공지: 진나라의 비어 있는 땅)

패수 남쪽는 하운장(하운장 남쪽에 다른 강이 있고요),
패수 북쪽은 상운장이었습니다(상운장 북쪽도 또 다른 강이 있습니다)
                         
위구르 21-12-18 10:47
   
패수는 남북(북남)으로 흐른 다음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봐야 <- 그럼 딱 대릉하군요. 지금은  ㄱ자로 흐르지만 고대에는 물줄기가 위로도 뻗었으니 ㅓ자로 흘렀으니 부합하고 더 확실해지는군요.
                         
수구리 21-12-18 11:08
   
글쎄요
 패수 흐름만으로 패수를 찾으면 수십개의 패수를 찾을 수 있겠지요

지구상에서 찾으면 수백개 수천개의 패수가 있겠네요
일본과 호주에도 패수가 있겠네요
                         
위구르 21-12-18 13:06
   
일본과 호주에도 패수가 있겠네요 <- 언제 제가 강의 흐름을 가지고 바로 결론을 내었습니까? 왜 또 딴지입니까;; 제가 대릉하가 패수라고 생각한 근거는 따로 있으니 북한의 리지린이란 박사가 쓴 고조선 연구 한 번 읽어보십시오. 거기다 제 글에 있듯이 한서의 군들의 산하 현의 이름을 가지고 유추해서 확신을 갖게 되었고 강의 흐름까지 알맞으니 부합한다고 했는데 선생은 매번 그러는데 갑자기 대화를 산으로 이끌고 가는 특기가 있어 보입니다
                         
수구리 21-12-19 08:03
   
대능하는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가니 강의 흐름으로는 패수가 될 수 없습니다
(수경원문의 패수는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 갑니다)

서기 3세기경에 쓰여진 수경(水經) 원문의 패수는
浿水出樂浪郡鏤方縣(패수출낙랑군루방현),東南過臨浿縣(동남과임패현),東入於海(동입어해).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서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위구르 21-12-19 10:24
   
방금 전에 김종서 박사님의 기자위만조선 연구라는 책을 보고 위만조선이 더 서쪽에 위치했을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됐으니 재고해야겠군요. 근데 저 당시에는 지금의 료동 반도 서쪽이 범금시를 포함해서 바다가였는데 그걸로 보면 대릉하가 충분히 동쪽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수구리 21-12-19 10:50
   
주장은 할 수 있지요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명학하게 증명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다만 김종서 박사가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장한다고 오해 받을 수도 있고요 의도적으로 주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종서 박사의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로 요동을 비정한 것은 굴곡지수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요
지리적인 관점 고대인들의 거리 개념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고요 사마천 사기의 지리적인 관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위구르 21-12-19 10:55
   
다만 김종서 박사가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 그분 주장에 의하면 위만조선 강역은 하북성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니 선생 주장이랑 차이가 크지 않은데도 합리화로 보입니까? 그분이 비정한 遼東은 지금의 영정하 이북, 이동 지역이니 강단 사학의 주장처럼 헛되거나 설득력 떨어지지는 않죠
                         
수구리 21-12-19 11:09
   
합리화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에 도달하기 까지의 과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장하는 근거나 논리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결과가 같더라도 합리화 시켰다는 말을 합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수학문제에서 정답을 냈더라도
푸는 방법이 틀렸다면, 엉터리 공식을 적용했다면 감점처리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위구르 21-12-19 12:14
   
엉터리 공식을 적용했다면 감점처리되는 것과 같다 <- 김종서 박사님의 주장이 선생 주장보다 정밀성이 떨어진다 해도 이런 말은 쉽게 할 수 없으니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대충 연구하고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까?
수구리 21-12-18 12:16
   
첨언하면
저도 한때에 고대요동이나 만변환(진번)을
북경부근이나 하북성 북서지역인 난하부근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대요동이나 만변환(진번)이 북경부근이나 하북성 북서지역인 난하부근일 경우에
사마천 사기 내용이 지리적인 관점에서 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여(제가 갖고 있는 선입관을 모두 버리고)
사마천 사기의 문헌 내용을 확대해석하지 않고 표현된 내용 그대로 이해하고
지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니...

사마천 사기에 표현된
고대요동, 위만조선, 낙랑군의 위치는
하북성 석가장시 인근의 형수시 부근이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사마천 사기 내용으로 제가 위치 비정한 내용인
문헌 기록 중심으로 본 고대 지명의 위치 비정 내용은
제 블로그나 가생이 동아게에 모두 글로써 게시되어 있습니다)
     
수구리 21-12-18 12:34
   
하북성 진황도시 서쪽의 지금의 노룡현 갈석산은 고대 갈석산이 아니라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나오는 개마대령, 단단 대령입니다
(지금의 노룡현 갈석산은 개마형태인 갑주를 입은 말의 형상으로 개마 형태입니다 )

또한 동옥저 위치는 지금의 요서지역 요서회랑으로 보입니다
(동옥저는 개마대령 단단대령 동쪽으로 남북은 좁고 동서는 1천리정도인데 바다가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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