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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12 11:27
[한국사] 그래 나는 니들이 말하는 진정한 환빠요, 국뽕이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158  




독립군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장군 두 사람의 자금지원으로 펴낸 책이 『환단고기(桓檀古記)』이다. 그런데 국내 식민사학 추종자들이 환빠니 국뽕이니 하면서 『환단고기』 책을 저주하는 것을 보면 외부의 적들보다는 오히려 내부의 적들이 더 무섭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들이 『환단고기』 책을 부정하는 이유는 친일청산에 실패한 이승만정권 이후 80여년 가까이 자신들이 닦아놓은 식민사학의 학문권력의 틀이 하루아침에 깨지기 때문이다.

변신의 귀재, 밀정들은 양의 탈을 쓰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군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환단고기』를  읽어가면서 그 극적 클라이막스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杏村 李灸,1297~1364) 선생이 쓴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이다.

단군세기 서문에 대해서도 위서론자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 강단사학의 태두들이 자리 잡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단군세기 서문을 보면 너무 근대사의 술어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만방이라는 말이 옛날에 쓰던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국유형(國猶形) 사유혼(史猶魂)”하니,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이게 박은식 선생의 한국 통사(韓國痛史)에 있는 얘기를 끌어다 썼다고 한다.

그런데 박은식 선생의 책 원본, 한자로 된 책을 보면 내가 옛사람의 글을 인용해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박은식 선생이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베낀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 한 구절을 빼고서 거꾸로 뒤집어가지고서 한국통사에 있는 그런 한 구절을 단군세기에다 끌어다 썼다고, 이유립이가 조작을 했다고, 그런 것을 보면 위서론자들의 심성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행촌 이암이 국록을 먹은 사람이 몽고니, 고려니 이런 말을 직설적으로 쓸 수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행촌 이암은 고려말 사람으로 여섯 명의 왕을 모신 사람이다.

지구촌의 3분의 1을 통일한 원나라 대제국이 고려를 쳐들어 왔을 때, 원나라의 시녀로 전락한 고려의 오잠吳潛, 유청신柳淸臣 같은 역적이 나와 가지고 고려란 나라 간판을 떼고서 전부 보따리 싸들고 원나라 조정으로 귀속해버리는 이런 역적들이 날뛸 때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행촌 이암이 어린 시절 자기 아버지의 명으로 열 살 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위에서 하늘에 맹세를 했다. 그 시詩에 제가 동방의 빛을 꼭 회복하겠나이다. 그런 젊은 날의 순정이 단군세기 서문에 보면 너무도 명쾌한 논리로 단군세기(檀君世紀)에 정리 돼 있다.

 

그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태도부터가 잘못되었다.

일단 부정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꼬투리를 잡다보니 ‘잠청배(潛淸輩)’를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 땅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일본이 ‘청과 몰래 내통한 무리’를 가리켜 한 말”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잠청배(潛淸輩)”는 원래 이암이 『단군세기』 서문에서 처음으로 쓴 말인데 원나라 간섭기 때 고려 인물로 정치적 문제를 일으켰던 오잠과 류청신의 이름을 빗대어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 같은 무리’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위서론자들은 이렇게 잠청배를 잘못 해석하여 『단군세기』 서문은 이암이 아닌 구한말 이후의 사람이 쓴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한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자가 역사 지식의 부족을 스스로 드러낸 주장이다.

 

그들은『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의 실제 사용연대가 저술 연대보다 훨씬 후대이므로 그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고탑이라는 지명과 잠청배라는 용어를 들어 단군세기나 북부여기가 청나라 이후에나 저술될 수밖에 없는 책이므로 고려시대에 저술된 책이 아니라 청나라 이후에 조작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지하고 억지스러운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고탑은 그들의 주장처럼 청나라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명대明代의 기록에 영고탑이라는 명칭이 나오고 있으므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그들은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각 역사서의 저자를 문제 삼는 것이다.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라는 『세조실록』의 기록은 보지 않고 그보다 70여 년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함安咸·원로元老·동중董仲’ 세 사람이 황해도 해주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삼성기』의 저자를 안함로, 원동중 두 사람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 주장한다.

얼핏 일리 있는 말로 들리지만 이 주장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다. 일반적으로 책을 인용할 때 앞서 나온 책을 인용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경우는 『세조실록』을 기록하는 사람이 70여 년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하였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몇 가지만 지적하더라도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비양심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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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12-12 11:47
   
정치인들이 하는 나쁜 짓중에 하나는
상대방 깍아내리기와 가쉽거리로 상대방을 인신공격하는 선동선전 책략입니다

1) 내용보다는 상대방을 공격함을써 본질을 흐리고 모르는 국민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2) 또한  장황하게 주장을 함으로써 본질을 흐리는 것입니다

바로 내로남불입니다(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룬)

이런 정치인들의 나쁜 짓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환빠와 국뽕 단어를 이야기하는 분중에 유독 내로남불하는 분을 많이 보았습니다

소위 대학교수라는 분들, 역사 전공자라는 분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고 지키기 위해
시장잡배들이나 할 수 있는
위서니 유사사학이니 하는 말장난등 치졸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환빠와 국뽕 단어를 사용하는 교수나 역사학도 역사선생 중에서
환단고기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반론을 하는 분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환빠와 국뽕 단어를 사용하는 분들 대부분은
일제 식민사학인 매국사학의 추종자이자 맹신도라고 생각합니다
     
스리랑 21-12-12 12:00
   
네, 반갑습니다.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자들을 잘 알고보면 민족 반역자, 밀정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외래종교에 물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리랑 21-12-12 12:18
   
식민사관에 대한 내용이 정리된 <다물(多勿)> 147∼152 쪽

박기자 : 임 선생님, 그런데 저희 세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해방된 지 80여년이나 되도록 그야말로 식민사학자들이 역사권력(史權)을 휘어잡고 독립된 대한민국 땅 안에서 그처럼 활개를 칠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박기자 :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성국 : 우선 첫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민족 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은 이미 일제의 탄압으로 타계한 뒤였고 그 뒤를 이은 역사학도들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처지였는데 이러한 독립 투사들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 역사학계에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하던 이병도나 일제가 정책적으로 식민사관의 나팔수 즉, 일제의 주구로 길러낸 친일 사학자들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족 사학자가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바로 중국 북경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정인보 선생이었습니다.

이병도 따위는 정인보 선생 앞에서는 인격에 눌려 제대로 氣도 못 펴고 쩔쩔매는 판이었습니다. 정인보 선생과 이병도씨는 말하자면 해방된 한국 역사학계의 양 거두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총독부의 조선사 날조에 적극 가담했던 친일 사학자요, 또 한 사람은 독립투사요 철두철미한 민족 사학자였으니 두 사람의 학설은 사사건건이 대립할 수 밖에 없었죠
               
스리랑 21-12-12 12:18
   
...
.
이 팽팽한 대립이 그대로 어느 정도 계속되었더라면 이병도가 서울대학에서 양성한 제자들과 정인보 선생이 연세대에서 길러낸 제자들이 거의 비등한 숫자로 막상막하의 대결을 할 수 있게 되었겠지만 불행히도 정인보 선생은 6·25때 괴뢰군에게 납북되어 가시는 바람에 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육당 최남선씨가 있었지만 그분은 일제 때 일본에 부역을 했기 때문에 반민특위에 걸려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였죠. 그러니까 대항할 만한 적수가 없어지자 이병도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서울대라는 명문 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내게 되었고 그 제자들로 구성된 학회의 회장과 한림원 원장까지 맡게 되자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카리스마적 독재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병도씨는 그 때까지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학계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그의 승락이 없이는 대학 교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전임 강사 자리 하나도 얻을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수구리 21-12-12 12:13
   
그럼 환빠와 국뽕 단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추종하고 맹신하는
일제 식민사학인 매국사학은 무엇일까요?

--> 핵심은 반도사관입니다
첫째) 고대에 북한은 한사군이라는 중국 식민지였고(이것이 중국동북 공정의 핵심내용입니다)
남한 남쪽 지방은 임나 일본부라는 일본 식민지였다는 엉터리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 한민족의 영토는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엉터리 반도 역사관입니다
셋째)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곰과 호랑이 단군 신화를 악의적 목적으로 퍼트리는 것입니다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은 곰족이 사람으로써 도리를 알게되어 사람다워졌다입니다)
넷째) 사실이라는 핑계나 이유로 선조들의 잘못을 찾아서 험담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식민사학이란
한사군 평양설이나 임나 일본부설를 주장하고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단군신화를 악의적 목적으로 퍼터리는 것이고
사실이라는 핑계나 이유로 선조들의 잘못을 찾아서 험담하는 것입니다

( 3천여기의 평양 고분을 발굴했는데 고조선 유물만 출토되었고
평양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 중국 고대문헌이 없기에...

일본인이나 중국인라면 식민사학을 주장하고 퍼트리는 것을 억지로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스리랑 21-12-12 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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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자 : 그럼, 식민사관의 정의부터 말씀해 주세요.

임성국 : 1981년 <다물>지 12월호에 최만주 선생이 손수 쓰신 '식민 사관이란 무엇인가'하는 권두 논문을 바탕으로 해서 정의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의 독립을 부정하고 한국을 일제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한국 역사를 위조했습니다. 그 위조한 역사를 한국민들에게 강제로 반복 교육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정책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여 한민족의 자주적인 민족성을 완전 거세하여 식민지 백성으로 길들어지도록 획책한 것이 바로 식민사관입니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성립시키는데는 꼭 필요한 구성요건이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상고사(上古史)와 국조(國祖)의 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이 중국 대륙과 만주를 지배했던 상고시대의 역사를 아예 쏙 빼버리고 국조인 단군과 그 윗대의 환웅과 환인 시대를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 역사의 시작을 '위만 조선'과 거짓으로 꾸며낸 '한사군'에 맞춤으로써 '고조선의 건국 이념'도 '국조'도 '장구한 역사'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소위 한사군 즉 중국 한족(漢族)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대에 역시 거짓으로 꾸며낸 일본 통치부(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상륙했던 것처럼 역사를 날조하는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한민족은 스스로 나라를 세운 일도 없었고, 고유문화도 없었고, 한반도는 주인없는 미개지였던 것처럼 조작하여 침략자의 한국 강점을 합리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동양사의 주체였던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압축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발해와 통일 신라가 양립했던 우리 민족의 남북조 시대를 대동강 이남으로만 줄여버리고, 대륙에서 흥망했던 고구려와 대진(大震,발해)의 국가적 활동을 우리 민족사에서 아예 없애 버리고, 고구려와 대진(발해)의 뒤를 이은 대금, 대청을 말갈 또는 여진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한 갈래가 아닌 것처럼 꾸며내어 대금, 대청과 그 국가적 활동을 우리 민족의 활동사에서 제거하려는 논리로, 우리 민족사를 대륙에 기반을 둔 강대국이 아닌 대동강 이남만의 반도내의 소국의 역사로 만들려는 음모입니다.


셋째로 우리 민족은 뿌리도 없는 유랑민[이병도의 전국유이민(戰國流移民)설]으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 분열을 일삼 는 망국 근성의 민족인 것처럼 자타가 공인하도록 역사를 날조했습니다.

예컨대 삼국사는 민족 분열, 동족 상잔의 역사이고, 고려사는 기강없는 음탕한 역사이고, 조선사는 탐관오리, 사색당쟁으로 일관한 망국의 역사로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첫째, 뿌리도 임자도 없었던 근본부터가 중국, 한(漢)의 식민지였던 나라,
둘째, 반도 안에 움추린 채 기를 못폈던 약소국,
셋째, 예로부터 피정복민인 무능하고, 부패하고, 분열하고, 민족 상잔의 망국 근성을 가진 민족으로서 스스로는 발전할 수 있는 추진력이 없는 정체된 사회 속에서 살아온 미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독립할 능력도 없는 한갓 고깃덩어리가 열강의 침략 야욕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평화를 파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동양 평화를 유지할 사명을 띤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거나 식민지로 통치하는 것이 합당할 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의 행복도 증진시킬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의 골자입니다.


일제의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은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사전에 면밀하게 준비되었는데,  그 첫단계로 역사 정복(식민사관),
둘째로 종교 정복(민족종교 탄압 신사참배 강요), 셋째로 국어와 한글 정복(일어를 강제로 사용케하고 한글을 못 쓰게 함),
넷째로 전통 정복(창씨 개명)을 총독부의 정책으로 강행했습니다. 대략 위와 같은 식민 통치 각본의 원전이 바로 다름아닌 식민사관으로 위조된 조선사입니다.


이 가짜 조선사는 모두 6편으로 되어 있는데 신라 통일 이전을 제1편으로 하고 신라통일 시대를 제2편, 고려 시대를 제3편,
조선 시대를 제4, 5, 6편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짜 역사의 역점이 안팎으로 교묘한 짜임새를 보여 주고 있는데에 우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즉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근세와 근대사의 중요성이라는 미명으로 조선 왕조사에 역점을 둔 것은 실상 반도 속에 움추려 기를 못 폈던 반도속방사관(半島屬邦史觀)을 주입시키려는 음모입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병도씨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로서 이러한 고대사 날조 작업의 주역으로 관여했던 사실은 우리 사학계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수수께끼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사학계 현역 교수들의 대부분이 그의 문하생들로 단단한 인맥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며 더구나 그 정예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일제의 식민 사관을 철저히 답습하였는데, 이병도의 진두 지휘하에 식민사관에 중독된 사람들을 하루 빨리 재교육시켜 진정한 민족 사학자로 재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최만주 선생의 한결같은 주장이었습니다.
Marauder 21-12-12 12:36
   
환단고기는 좋게 쳐주고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내용의 시비를 가리기 어렵습니다.
뭐 아예소용이 없다고는 못해도 들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죠.

감방친구님이나 저나 환단고기 제쳐두고 한사군과 삼국사를 연구했던 이유가 그거죠. 사람을 상대할때도 명치같은 급소를 때려야지 갈비뼈같이 단단한부분 때려봤자 소용도 없어요.
     
스리랑 21-12-12 13:19
   
네, 환단고기 어떤 내용의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어떤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입니까?

Marauder씨가 한사군과 삼국사를 연구해서 급소를 때렸던 내용이 무엇인가요?
          
Marauder 21-12-12 13:36
   
전 포기했고 연구야 감방친구님은 계속 진행중이고 급소도 단단해서 영향은 별로 없지만 다른 부분보다는 약하니까 급소라고 부르는겁니다. 저랑 감방친구님이 하지 않더라도 고려강역이나 왕검성위치, 평양위치 등등 무언가 이야기할만한 거리가 계속해서 나오니까 그부분을 때릴려고 발버둥치는데 상대방도 당연히 가드를 올리니까 쉽지 않죠. 하지만 분명한건 등부분을 때리는것보다는 더 쉬울거라는 점입니다.

환단고기는 진위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진서여도 상고사는 관련 자료가 없으니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운게 당연한것이죠. 시시비비를 가릴려면 일단 교차검증할 거리가 필요한데
그나마 삼국사부분은 중국 사서랑 교차검증하다보면 뭔가 거리가 나오는데 상고사 부분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환단고기를 진서라고 못박고 시작해도 그 내용이 다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진위서 논란에서 자유롭지까지 못하니 결국 굉장히 어려운것이죠.
               
스리랑 21-12-12 13:54
   
네, 지금까지 환단고기에 대한 논문이 120편 정도가 나왔는데 90%이상은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고, 10%정도는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속에 상고사 내용이 없다고 하신 말씀은 환단고기 책을 아직 못보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Marauder 21-12-12 14:07
   
환단고기 속에 상고사내용이 없다는게 아니라 환단고기 속의 상고사내용을 교차검증할 다른 책이 없다는 말입니다.
환단고기 논문을 보진 않았지만 사학자들은 애초에 연구거리로 생각조차 않으니 그럴 수 밖에 없는것 아닌가요.
                         
스리랑 21-12-12 14:10
   
위에 본문에도 얘기했지만 사학자들의 정신 상태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들이 애초에 연구거리로 생각조차 않는 이유는 환단고기 책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실력이 없어서 일 겁니다. 아니면 식민사학에 깊이 물든 사람이거나
                    
스리랑 21-12-12 14:08
   
『환단고기』에는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建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건흥 연호가 1915년 충북 충주 노온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光背名에서 나타납니다.

연남생(淵男生)은 고구려의 재상이자 영웅인 연개소문의 큰 아들인데 그의 묘비명이 1923년에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남생의 아버지 개금(蓋金), 할아버지 태조, 증조부 “자유(子遊)”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환단고기에서 밝힌 기록과 일치합니다.

환단고기에 남생의 고조부, 즉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을 “광(廣)”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또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환지 17세손’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광개토태왕은 추모鄒牟왕의 13세손’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다른데 이런 차이가 환단고기를 보면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환단고기』에는 고구려 제왕의 계보가 제1세 해모수(BCE 194년에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 건국)로부터 →제2세 고리국의 제후 고진(해모수의 둘째 아들)→제3세 고진의 아들→제4세 옥저후 불리지(고진의 손자)→제5세 고추모(고주몽, 고진의 증손자) … 제17세 광개토태왕(주몽의 13세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주몽의 선조는 해모수이며 그로부터 치면 광개토대왕은 17세가 됩니다. 삼국사기도 광개토대왕비도 모두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환단고기가 정확히 해명해준 것입니다.

이 외에도 환단고기가 진서임을 알려주는 여러 증거들이 환단고기 자체 내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문제는 그 증거들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왜 자세히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고 위서라고 낙인찍는가 하는 것입니다. 민족사학자이건, 역사학계의 주류 사학자이건 누구ㅁ라도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우선 환단고기에 담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열린 태도와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Marauder 21-12-12 14:25
   
환단고기 원본이 없는 이상 후에 필사된 환단고기 내용은 중간에 추가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를들어 환단고기에 쓰여진 근대 용어가, 단순히 옮기는 와중에 근대용어로 치환한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미 책의 내용을 한번 손댄것인데 10 20년대에 에 밝혀진 사실들을 70년대에 보고 추가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는것입니다.
10년도에 만들어진 원본이 나타나거나 환단고기 저술시 참고한 책에서 그 내용이 나오면 그때는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겠죠.

제가 환단고기에 대해 호의적으로 진서라고 가정하고 이야기해도 반박이 되는데 비관적으로 가정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봐라 위서다" 라고 이야기 하겠죠. 설득은 커녕 대화 성립조차도 안될겁니다.
                         
스리랑 21-12-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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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론자들은 또 자유, 평등, 인류, 세계, 원시국가, 문화,문명, 개화, 부권(父權), 헌법과 같은 어휘가 쓰인 것을 빌미로, 환단고기를 일제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꾸며낸 책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어휘들은 고문헌에서도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 자유는 ‘자기가 주인이 되다’라는 뜻으로, 평등은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어로서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자유와 평등도 그러한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나온 시선집인 옥대신영(玉臺新詠)에 수록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분함을 품고 있었는데, 네가 어찌 멋대로 할 수 있는가(吾意久懷忿  汝豈得自由)라고 하여 ‘자유’라는 어휘가 나옵니다.

인도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된 금강경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편에 이 법은 차별이 없어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  )라고 하여 ‘평등’이란 어휘가 사용되었습니다.


장자 지북유(知北遊)편에서 “생물은 이를 서러워하고, 사람은 이를 슬퍼한다(生物哀之 人類悲之)라 하여 ‘인류(人類)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나라 때 한문으로 번역 된 능엄경의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합니까(何名爲衆生世界)라는 구절에 ’세계‘라는 어휘가 사용 되었습니다.

주역 계사하(繫辭下)의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집안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라는 구절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된 ’국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문’과 ‘화’가 결합된 문화라는 말은 고대에 이미 사용 되었으며, 문으로써 가르쳐 변화시키다(以文敎化)를 뜻합니다.

전국시대의 역사서인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을 보면,“선행을 상주고 간악한 행위를 벌주는 것은 나라의 법이다(賞善罰姦 國之憲法也)하고 하여 ‘법’, ‘법전’을 뜻하는 ‘헌법’이 나옵니다.

Marauder님 당신의 주장은 식민사학자들이 앵무새같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주장입니다.

환단고기 책이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만들었으면 당신의 주장을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독립군 홍범도장군과 오동진장군 두분의 자금 지원으로 펴낸 책입니다. 그런 책을 그런 잣대로서 부정하려고만 하는 것은 밀정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잣대입니다.

성경,불경,사서삼경, 사마천의 사기 기타 여러 책들이 지금 원본이 남아 있습니까??
                         
Marauder 21-12-12 14:55
   
사서의 편찬시대에 따라서 주로 쓰는 단어가 있는데 과거에 쓰인 전적이 있다는 이유로 아니라고 할 수는 없죠. 뭐 애초에 논점과는 살짝 엇갈려있어서 더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수구리 21-12-12 13:47
   
좋은 지적이고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타 고대사료에 등장하는 단편적인 한민족 고대국가 내용을
구슬를 궤메는 실타례 역활을 환단고기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환국,배달국,단군조선, 북부여로 이어지는 
한민족 고대국가 정통흐름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이됩니다

하지만 지리지가 없기에
환단고기로 지리위치를 추정하거나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나기 21-12-12 13:59
   
왜구 다중이짓하다가 계삭당한 깜빵이랑 놀아나던 주제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구 다중이랑 맘이 잘통해서 부럽네
          
위구르 21-12-12 16:37
   
그분이 왜 친일파입니까
     
수구리 21-12-12 13:59
   
그럼 한민족 고대국가의 영토나 지리적인 내용을 어디서 파악하고 확인할 수 있을까요?

중국 고대사서나 문헌을 통해 지명위치를 파악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마천사기와 한서지리지를 주목하고 중점적으로 연구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마천 사기에는 지리지인 화식열전이 있고요
사마천 사기 내용에도 전쟁기록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사마천 사기의 전쟁기록을 통해
동이족(적, 산융, 선우국, 중산국, 흉노, 동호 등)의 지리정보를 상당부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조선 영토와 고조선의 지리적인 위치 파악을 위해서는
사마천 사기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사마천 사기 연구도 지리적인 관점의 연구여야 합니다

사마천 사기의 지리적인 관점의 연구없이
고조선 영토와 지명위치 확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고 제가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Marauder 21-12-12 14:15
   
참고정도로 볼 순 있어도 오직 환단고기에서만 나오는 지명가지고 정하는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인정받기도 어렵죠. 환단고기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1. 일단 기존의 학설을 깨고
2. 기존의 학설과 다른 부분이 알고보니 환단고기에도 나왔다
3. 그러니 다른 부분도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라는 식으로 인정을 받는방식이 가장 쉽죠. 기존 학설을 꺠는 도구로서 환단고기는 불가능합니다. 환단고기 자체가 진서라도, 진서중에도 문제있고 오류있는 책이 많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만주원류고도 책은 진서지만 찬밥취급 받고있는데 차라리 그걸 증명하는게 훨씬 쉽죠.
               
스리랑 21-12-12 14:25
   
환단고기 책이나 그동안 나왔던 환단고기 논문을 한편이라도 보았다면 1.2.3번을 다 만족 시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실 겁니다. Marauder님은 기존 학설을 꺠는 도구로서 환단고기는 불가능합니다. 환단고기 자체가 진서라도, 진서중에도 문제있고 오류있는 책이 많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주장만 내세우는군요.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도 동일한 주장입니다.
                    
스리랑 21-12-12 14:30
   
진서중에 오류가 많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세상에 나온 오랜 책들은 다 폐기처분 해야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도 그렇고 도덕경도 그렇고, 황제내경도 그렇고, 불경도,성경도,사서삼경도 다 원본은 없고 이사람 저사람들 말들을 첨가한 서적들 이기 때문에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주역(周易)은 태호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동양의학의 성서인 황제내경은 황제 헌원을 가탁하여 전국시대를 거쳐 한 대에 성립되었고, 불교의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이 수차례의 결집을 거쳐 후대에 합쳐진 것입니다.
                    
Marauder 21-12-12 14:35
   
동아게에 관련영상 몇번 올라왔길래 봤는데 몇번 봤는데 전혀 설득되진 않더군요.
애초에 1번이 깨졌다는것 자체가 의문이 드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깨졌으면 그 고생을 할 이유가 없죠. 진짜 깨졌는데 식민사학자들의 농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 국회의원이나 대중한테 달려가서 심판받으면 되는건데 안할 이유가 있나요?
                    
Marauder 21-12-12 14:47
   
일단 말씀하시는걸 보니 제가 어떤 이유로 어떤 말을 하고있는지조차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저의 생각을 표현한것보다는 기본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기준을 제시하고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걸 통과해도 문제인데 통과조차 못한다면 거론조차 힘들죠.
 말씀하시는 경전들의 경우 진위여부나 순서가 별필요없는 문제이고
다른 사서들의 경우 대부분 여러 권이 필사되어 그 여러권끼리의 교차검증을 위한 노력이 뒤따르고 특히 송판본을 제외한 다른 시대에는 최대한 원본을 남기기 위해 주석을 따로 적는 노력을 해왔으며 진위서 논란도 없고, 권위있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편찬해왔고,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사서도 아니죠.
환단고기란 책은 근대에 와서 오직 단한사람에 의해 정립되었고 환단고기 끼리의 교차검증조차 불가능한 책 아닙니까?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죠.

말해야할 범위를 너무 넓히셔서 일일이 말할 수는 없고 기회가 되면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중요한건 교차검증이 안되는게 핵심이죠.
                         
스리랑 21-12-12 14:59
   
환단고기 책은 시대를 달리하는 다섯분의 저자가 쓴 다섯권의 책을 합쳐서 한권으로 펴낸 책입니다. 환단고기 책이 근대에 와서 단 한사람에 의해 정립되었다고요??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단언하시네요. 이유립선생과 계연수선생, 그리고 이기선생, 백관묵,이형식선생들은 사람이 아닌가요??

교차검증이요? 위에 올린 본문과 댓글들 보고도 인식이 되지 않는가요?


Marauder말:  말씀하시는 경전들의 경우 진위여부나 순서가 별필요없는 문제이고
다른 사서들의 경우 대부분 여러 권이 필사되어 그 여러권끼리의 교차검증을 위한 노력이 뒤따르고

어떤 책들이 그렇게 여러권끼리 교차검증 되었는가요?


특히 송판본을 제외한 다른 시대에는 최대한 원본을 남기기 위해 주석을 따로 적는 노력을 해왔으며 진위서 논란도 없고, 권위있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편찬해왔고,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사서도 아니죠.

친일청산에 실패한 이후 지금까지 식민사학자들이 국민들 세금으로 책들을 많이 편찬을 하고 있지요. 앞전에는 미국 하버드대에 세금줘서 북한은 중국땅이었다는 책을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 History)' 책을 내려다 딱 걸리기도 했었지요. 또 얼마전에는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중국의 위나라가 충청지역까지 다스렸다고 그런걸 전시했다가 딱 걸렸었죠.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라는 『세조실록』의 기록은 근대에 와서 쓴 기록들인가요??
                         
Marauder 21-12-12 15:09
   
자꾸 논점이 흩어지는것 같은데 1910년대 판본은 없으니 증명할 방도가 없는 노릇이고 물론 환단고기라는 책을 썼다는 것 까지야 믿을수있지만(물론 이것도 못믿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 내용이 어떤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현재 판본은 1979년 이유립씨가 낸 책이 유일한것인데 그 책을 변조했거나 혹은 실수로 잘못 적었어도 교차검증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다른 바탕이 되는 책에서 교차검증이 된다면 그때는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위에 쓴거구요.

제가물어본건 좀더 확실한 논쟁을 하기 위해 계연수선생 판본 이야기 한게 아니라 이유립씨의 판본이 신뢰성이 있냐로 물어본것입니다. 언급하신 분들이 그 책을 보고 이야기하셨나요? 몇분은 그 전에 돌아가신걸로 아는데
                         
Marauder 21-12-12 15:10
   
제가시간이 없어서 오늘 논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중에 시간나면 다시 글을 쓸테니 기회가 되면 그때 계속 하죠.
                         
Marauder 21-12-12 15:13
   
안함로 원동중하니까 생각난건데 님이 영상 올리신건진 모르겠는데
가생이에 올라온 영상에서

안함, 로원, 동중 -> 이게 아니라 안함로, 원동중이 맞다라고 장황하게 설명하시던데 아무리 봐도 그냥 안함, 로원, 동중이 맞는것같은데 왜 맞다고 하시는건질 모르겠더군요.
                         
스리랑 21-12-12 15:22
   
모르겠으면 그냥 입닫고 있으면 됩니다. 어거지 부리지 말고

당신이 쓴 댓글들은 지금까지 국민들이 주는 세금을 먹으며 반역질을 하고 있는 식민사학자들 주장과 똑 같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이게 다 이승만정권에서 자기 민족의 피를 빨던 친일분자들을 정리하지 못한 후유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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