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1-12-09 19:46
[기타] 야요이인의 기원
 글쓴이 : 밑져야본전
조회 : 1,499  

야요이인(弥生人, Yayoi people)은 야요이시대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조선반도에서 도래해 죠몬인(縄文人)과의 교류를 통해 신문화를 형성한 사람들(도래계 야요이인), 죠몬인 중 신문화를 받아들여 야요이인이 된 사람들(죠몬계 야요이인), 그리고 양자의 혼혈으로 태어난 사람들 및 그 자손들(혼혈계 야요이인)이 해당된다. 옛 자료에서는 도래계 야요이인만을 야요이인으로 써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개요

죠몬 인골의 얼굴형이나 체형은 일정하여 그다지 큰 시기차나 지역차가 없으나 야요이 인골은 비교적 제각각이며 지역차나 시기차가 크다. 종류로는 죠몬인의 모습 그대로인 야요이인이나 죠몬인과 닮은 야요이인(죠몬계 야요이인), 대륙 측(중국 지린吉林성 근방)에 있던 사람들과 신체적 특징이 닮은 야요이인(도래계 야요이인), 죠몬계와 도래계가 혼합된 것 같은 야요이인(혼혈계 야요이인), 코분(古墳)시대의 분묘에서 발굴된 야요이인(신야요이인), 그리고 남큐슈(九州)에서 발견된 류큐(琉球)제도의 패총인(貝塚人)과 닮은 야요이인(남큐슈 야요이인)이 있다.

최근의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이나 Y염색체 하플로그룹 연구에 따르면 일본인과 중국인·조선인의 Y염색체에는 차이가 있다. 도래인이 유입은 단층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야요이인은 선주의 죠몬인과 항상 대립한 것이 아니라 점차 융화, 혼혈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본열도에는 죠몬시대 이전부터 각 방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야요이인 또한 단일계통이 아닌 복수계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

야요이시대는 일반적으로 2400년 전 쯤에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이전의 야요이시대란 야요이 토기가 사용되었던 시대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수도농경기술(水稲農耕技術)이 안정적으로 수용된 단계 이후를 의미하게 되었다. 2003년,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연구그룹은 탄소동위대비를 사용한 연대측정법(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활용한 일련의 연구성과에 근거해 야요이시대의 개시기(開始期)를 대폭 앞당겨야 한다는 설을 제시했다. 이에 의하면 조기(早期)의 시작이 약 600년을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1000년 쯤부터, 전기의 시작이 약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600년 쯤부터, 중기의 시작이 약 2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약 기원전 400년 쯤부터, 후기의 시작이 기원전 50년 쯤부터가 되어 코분시대로의 이행은 대략 종래대로인 3세기 중반이 된다. 수도(水稲)의 경우 조선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직접 일본에 도래하였다는 설과 산둥(山東)반도에서 조선반도 중남부를 경유해 일본에 도래했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야요이인은 중국에서 조선반도를 지나 수도재배(水稲栽培)를 일본에 가져온 집단으로 생각되고 있다. 사키타니 미츠루(崎谷 満)에 의하면 일본에 수도재배(水稲栽培)를 가져온 사람들은 Y염색체 하플로그룹 O1b2에 속한 집단이다. O1b2 계통은 오스트로아시아어족(Austroasiatic languages)의 민족에서 고빈도로 보이는 O1b1 계통의 자매계통으로 만주나 조선반도 등의 동아시아 동북부에 크게 분포하고 있다. 사키타니는 O1b 계통(O1b1/O1b2)은 원래 장강(長江)문명의 건설자였으며 장강문명의 쇠퇴에 따라 O1b1 및 일부의 O1b2가 남하해 백월(百越)로 불렸고 남아있던 O1b2는 서방 혹은 북방으로 향해 산둥성, 조선반도, 일본열도에 건너갔다고 주장했다. 『한원(翰苑)』의 『위략(魏略)』 일문(逸文) 등에선 왜인(倭人)은 강남 지방에 있던 오(呉)의 태백(太伯, 문왕의 백부, 기원전 12세기 쯤의 사람이다)의 후예를 칭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강유역이나 강남(江南)지방 등의 화난(華南)지역에서는 O1b1 계통의 분포가 거의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요이인의 선조가 장강문명의 건설자라는 설을 의문시하는 견해 혹은 상기의 설은 옳으나 아득히 조기에 북상했다는 견해가 있다.

도이가하마(土井ヶ浜) 유적의 야요이인이 북부 몽골로이드의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나 일본인에게서 보이는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 혹은 Gm유전자가 북방형인 것 등에 따라 야요이인의 기원지를 연해주 남부로 비정하려는 견해도 있다. 오카 마사오(岡 正雄)의 일본인 기원설인 「부계적, 「하라」 씨족적(퉁구스 계통의 씨족 문화), 전작(畑作)=수렵민족화(동북아시아, 퉁구스 방면)」, 토리이 류조(鳥居 龍蔵)의 설인 「고유일본인(조선반도를 경유해 혹은 연해주에서 온 북방계 민족)」이 이러한 견해에 해당된다. 동아시아 동북부에서는 하플로그룹 O1b2가 비교적 고빈도로 확인되는 것과 야요이시대에 흔하게 발견되는 각목돌대문토기(刻目突帯文土器)와 닮은 타입의 토기가 연해주 남서부의 시니가이(Siny Gai) 문화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최근에는 이쪽의 설을 미는 목소리도 많아졌다.

또한 일본인의 약 20%에서 보이는 O2 계통도 야요이인에 포함되어 있다고 상정했었으나 O1b2와 O2는 루트가 다른 것으로 추정돼, 그 도래 시기, 루트 등의 상세는 아직도 불명확한 점이 많다. O2는 후의 야마토왕권(ヤマト王権)의 성립에 전후(前後)한 도래인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이외에도 야요이인은 단일이 아닌 복수계통의 민족의 도래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설 또한 여전히 주류이다.

특징

두개골의 계측치에서 도래계 야요이인에 가장 가까운 건 신석기시대의 허난(河南)성의 사람들과 청동기시대의 장쑤(江蘇) 동주·전한인(東周·前漢人)과 산둥(山東) 린쯔(臨淄) 전한인(前漢人)이다(즉 장쑤성 일대의 동주~전한시대 사람들과 산둥성의 도시 중 하나인 린쯔의 전한시대 사람들).

또한 안와(眼窩)는 코와 닿는 부분이 편평하여 상하로 길고 둥그스름한 느낌을 띄고 있어 넓적하게 생겼다. 그리고 이의 사이즈도 죠몬인보다 크다. 평균 신장은 162~163센티 정도로 죠몬인보다 크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골 자료의 대부분은 북부 큐슈. 야마구치·시마네(山口·島根)현의 일본해 연안에 걸친 유적에서 발굴한 것에 따른 것이다. 남큐슈에서 홋카이도까지의 다른 지방에서도 비슷한 특징을 가진 야요이시대의 인골이 발견되고 있긴 하지만 그 수가 인종 간의 형태 차이와 그 발생빈도까지 확정해주는 것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후쿠오카(福岡)현 이토시마(糸島)반도 신마치(新町) 유적의 대륙묘제 지석묘(支石墓)에서 발견된 인골은 죠몬적 습속인 발치(抜歯)가 행하여져 있었다. 나가사키현 오토모(大友) 유적의 지석묘군(支石墓群)에서는 다수의 죠몬적인 인골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세토우치(瀬戸内) 지방 코베(神戸)시 신포(新方)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도 죠몬 형질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후쿠오카시의 사사이(雀居) 유적이나 나라(奈良)분지의 카라코·카기(唐古·鍵) 유적의 전기 야요이인은 도래계의 인골이라 판정되었다. 즉 도래계가 최초로 퍼졌다고 여겨지는 북부 큐슈나 세토우치, 킨키(近畿)지방의 야요이시대 초기 유적에서 도래계 사람이라 판정된 인골의 출토수는 죠몬계라 여겨지는 인골의 출토수보다 적었다. 이에 의하면 수전도작(水田稲作)의 선진지대(先進地帯)에서도 죠몬인이 수도경작(水稲耕作)을 행하였다는 것으로, 일본열도에서 농경사회로의 이행은 절대 다수의 죠몬인과 소수의 대륙계 도래인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한편 1960년대에는 카나세키 타케오(金関 丈夫)가 야마구치현 도이가하마(土井ヶ浜) 유적, 사가(佐賀)현 미츠나가타(三津永田) 유적 등의 후쿠오카평야의 전·중기 야요이 인골 연구를 통해 야요이시대 사람은 신장이 크고 머리의 길이나 얼굴의 넓이 등이 중국대륙의 인골에 가까워 죠몬시대 사람과는 큰 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죠몬인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조선반도를 경유해 일본열도에 들어왔으며 이들과 죠몬인의 혼혈에 의해 야요이인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의 조사에서 전술(前述)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산둥성의 유적에서 발굴된 인골과 야요이시대 인골의 유사성이 지적되었다. 또한 하니와라 카즈로(埴原 和郎)는 아시아 남부에서 유래한 죠몬인이 살고 있는 일본열도에 중국 동북부에 있던 퉁구스계 사람들이 유입되어 야요이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이중구조모델」을 1991년에 제창했다. 그리고 하니와라는 인구학 추계에 의하면 야요이시대에서 코분시대에 걸쳐 일반적인 농경사회의 인구증가율로는 설명되지 않는 급격한 인구증가가 일어났었다는 것에 근거해 그 시기에 걸쳐 100만 인 규모의 도래인 유입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대량도래설 또한 제창했다.

사하라 마코토(佐原 真)는 후쿠오카평야, 사가평야 등의 북규슈 일부에서 죠몬인과 야요이인의 혼혈이 이루어진 결과 야요이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이들이 동쪽으로 점차 진출하며 혼혈이 이루어진 결과 나고야와 단고(丹後)반도를 잇는 선까지 수도경작(水稲耕作)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게코(下戸)

야요이인과 관련된 체질로 게코(下戸)가 존재한다. 게코 유전자는 중국 중남부에서 탄생했다고 여겨진다.[출저 필요]

출처: https://ja.wikipedia.org/wiki/弥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윈도우폰 21-12-09 22:10
   
왜놈 들이 만들어낸 어설픈 개념인 도래인, 야요인인... 그냥 한반도와의 연결을 피하려는 것에 불과한 것
도대체 죠몽인이니 야요인이니 하며 DNA를 분석했다고는 하지만....그게 무슨 설득력이 있나?

막말로 김씨 DNA랑 최씨 DNA 구분이 되나? 그 많은 김, 이, 박씨도 DNA상 구분을 못하는데...코딱지보다 적은 양의 샘플로 분석하여 소위 야요인의 출신지를 구분한다?

야요인이...그런 것 없음. 그냥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 들이 새 땅 찾아 왜열도로 넘어간 것일 뿐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왜열도에 들어갔다? 글쎄 몇 년에 걸쳐서? 만약 천년에 걸쳐 넘어갔다면 그건 경유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이 넘어간 것이지... 뭐 그래서 도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렇다 쳐도...야요인이 뭐냐고? 왜 열도에 살던 고대인이 뭐 그린 대단하다고 거창하게 "~인"이라고 타이틀을 붙여 주는 것을 옹호하냐고!

그리고 ... 돛도 없는 통나무배를 타고 다니던 원시인 들이 중국 남부 지역에서 왜 열도에 들어갔다고? 해류가 동서로 흐르나?

어떻게 왜인 들 조상이 중국 남부 쪽에서 왜열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하여간 억지 논리를 만들려다 보니 기초적인 지리 개념도, 생물개념도 없는 무식한 왜놈학자 들의 궤변...그리고 그 궤변에 놀아나는 수 많은 얼치기들
     
밑져야본전 21-12-10 00:14
   
흠.. 님께선 죠몬인과 야요인을 dna적으로 분석하는게 현재의 김씨 최씨 같은.. 성씨 별로 dna를 구분하는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시나 보군요... 그리고 야요이인 그런거 없다.. 이 말 부터가 어불성설이라 봅니다. 어차피 그런 개념이나 명칭은 학자들이 붙이는거고 그들 입장에서 도래인에 그런 명칭을 붙인다면 그건 그 자체로 야요이인이 되는거죠. 이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윈도우폰 21-12-10 01:02
   
어떻게 염기서열로 인종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나 모르겠네여... 야요이인니 뭐니 하는게 김씨,최씨 구분하는 것 보다는 좀더 깊이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강아지 중 말티즈종이랑 치와와종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보시남?

아시아 지역에 소수민족이 얼마나 많은데...야요인이라는게 혈통이든 염기서열이든...문화든 무슨 특징적 차이가 있었음?  사회문화적 특징이 뭐 규명된게 있나? 골상학적으로는?

야요이인이란게 그냥 야요이 지역에서 토기가 발견되었으니 그걸 쓴 사람을 야요이인이라 부르자? 그리고 그 이전 줄무늬 토기를 썼던 사람은 죠몽인으로 부르자 정도인데...이게 무슨 인종 수준? 종족 수준도 안 되는데...

왜인이 자기네 지역에서 몇 개 뼈다귀를 찾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단한거라고... 왜인 학자가 뭐라 명칭을 붙이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그걸 왜 우리가 받아들여 줘야 함? 그리고 왜 이를 기준으로 우리와 연결시키는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자 하는지 ...

어쨌든 말의 의미를 잘 이해 못하는 듯 한데 ... 인종적 수준에서든 종족 수준에서든... 야요이인은 그냥 학술적 편의상 붙인 명칭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만약 한반도에서 선사시대 때 무문토기를 썼던 사람은 뭐라고 부름? 빗살무늬 내지 햇살무늬를 썼던 한반도 고대인은 그럼 뭐임?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그런 명칭을 붙인게 없으니 그 나마 명칭을 붙인 왜의 죠몽인을 기준으로 얘기하자는 거임??? ...그리고 그 근거로 염기서열이 상당히 비슷하니 한반도 남부 사람도 죠몽인이라고 부르자?

참 어이가 없는 발상과 논리...그걸 말하는 건데...
     
밑져야본전 21-12-10 01:29
   
어떻게 저 글이 염기서열로 인종적 특성을 파악하는 글로 이해가 되죠? 답글을 읽다 보면 글이 앞서나간 나머지 좀 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Total 19,96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115
19912 [한국사] [ FACT ] 고구려제국 vs 백제 vs 신라 (1) 아비바스 03-03 415
19911 [한국사] [ FACT ] 고구려제국 vs 당제국 대전쟁 (1) 아비바스 03-03 519
19910 [한국사] [ FACT ] 고구려제국 vs 수제국 대전쟁 (1) 아비바스 03-03 443
19909 [한국사] [ FACT ] 역사 교사 <안정준> 전투 민족 고구려가 … (2) 아비바스 03-03 435
19908 [한국사] [ FACT ]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 후 영토를 현재까지 … (1) 아비바스 03-03 508
19907 [한국사] [ FACT ] 역사학자 <임용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 (1) 아비바스 03-03 1030
19906 [한국사]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아비바스 03-03 333
19905 [한국사] 《 양규.김숙흥 장군님의 전투경로와 전사하신 곳 》 에피소드 03-02 337
19904 [한국사] 《날조된 흥화진》과《진정한 흥화진》의 위치.. (1) 에피소드 03-02 943
19903 [한국사] 《 고려 현종의 몽진 경로와 이동내용 》 에피소드 03-02 302
19902 [한국사] 《 고려 현종의 몽진이 날조된, 결정적인 증거 》 (1) 에피소드 03-02 427
19901 [한국사] 《고려 남경(南京)의 위치와, 남경황궁의 모습》 (1) 에피소드 03-02 464
19900 [한국사] 《한국 최대규모의 사찰, 고려 흥왕사(興王寺)》 에피소드 03-02 254
19899 [한국사] 《안타깝게도 경북 경주는,신라 경주가 아닙니다》 에피소드 03-02 197
19898 [한국사] 《첨성대,황룡사,불국사,문무대왕릉의 실제 위치》 (1) 에피소드 03-02 560
19897 [한국사] 고려도경 원문에 기록된, 고려수도 중국베이징 하늘하늘섬 03-02 217
19896 [한국사] 기후변화와 인류의 이동 (3) 하이시윤 02-29 483
19895 [한국사] 만주 동북평원(요하평원,송눈평원,삼강평원) (2) 하이시윤 02-25 635
19894 [한국사] 만주 3대평원ㅡ송눈평원 (4) 하이시윤 02-25 547
19893 [한국사] 글림킴이 올린 고구려 지도 재조명 되고 있다? 요즘 … (5) 아비바스 02-24 619
19892 [한국사] 조선 초기 북방 영토 분석: 신호수 지역 보리스진 02-15 1194
19891 [중국] 지나족 족보 세탁 - 지나 한족의 시작은 1930년 중화민… Korisent 02-09 1433
19890 [한국사] [ KBS ] 고려거란전쟁 양규장군 전쟁씬 모음 아비바스 02-09 891
19889 [기타] [K-문화] 세계인들을 열광시킨 케이팝 GODS 아비바스 02-09 755
19888 [한국사] 고려의 영토 분석: 개주, 선성을 중심으로 (지도 첨부 보리스진 02-06 1002
19887 [기타] 동아시아 19세기 복장 Korisent 02-04 1395
19886 [한국사] 고려말의 파사부 행정구역 분석 보리스진 02-02 94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