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공식적으로 처음 인구센서스를 실시합니다.
제국,,아니 국가단위론 세계최초일거구, 약 200년후 로마가 제국내 인구조사를 하게되죠
당시
진나라위수지역 인구는 약 2200만이었구, 200년후
로마는 기록이 소실되어 일부기록을 바탕으로 추정시 800~900만이라 학자들의 동의합니다.
진나라 자체가 지배층은 서융즉 서쪽 오랑캐들이지만. 오랜세월동안 한화되었구,,
북서(현 위구르), 남서(현티벳), 북(현북중국,흉노,거란,), 동북(한국,만주,몽골)이 비한족 민족인데
이중 북서, 북, 동북 이 고조선시대 유목기동력을 활용해 할발한 교류.가 있었던 북방계열
들입니다. 이들 북방계들은 사실상 중국보다 더 광활한 지역에 퍼져있었지만. 척박한 기후와
약육강식의 지역이다 보니 다합쳐도 인구가 한족의 1/10도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10배많은 한족들은 항상 북방계들에게 치이구,밟히구, 여러번 왕조 까지 뺏기면 지배를
당하죠. 몽골은 1/300숫자로 8천만 대륙을 삼키구 지배자가 되었었구,,
만주인들도 1/200 인구로 중국을 정복했으며,, 고구려는 그들인구보다 많을지도 모를
300만 대군을 막아내구 이중 100만을 죽였으니.. 한족들이 북방계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과
경계심은 당연한겁니다..
체력은 국력..신체차이가 국력을 갈랐다
그럼 왜 북방계들은 한족들에비해 전투력이 뛰어났을까요? 이는 단순한 헝그리정신, 깡정신
만은 아닙니다..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체격차이..
집단매장무덤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영양상태가 비슷한 조건에서 북방계들은
항상 남방 한족들보다 평균 5~7cm 큰 신장을 가졌으며,, 북방계장수들 중엔 180cm가 넘은
장골장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190cm, 2m넘는 당시로선 엄청난 크기의 장수,무장
들도 북방계 고분에선 발견되지만.. 한족들은 장수라 해도 170cm넘는게 일반적이구,,
보병들은 북방계보다 신체규모가 떨어졌다는걸 보여줍니다.
신체적 격차에 같은 고민을 한 로마
세계를 제패하던 로마가 유일하게 굴욕을 당한게 바로 게르만족입니다. 웃긴건 당시 게르만은
국가도 아닌 부족들로 쪼가리되어있었는데도 로마는 스페인,프랑스지역을 제외하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쪽엔 발을 들여놓지도 못합니다..
가장큰 이유가 로마의 막강한 조직력이 숲에서는 백병전이 되어 신체적으로 8~10cm이상큰
게르만족들에게 도저히 상대가 될수없었죠..
물론 숲이 아닌 평지에선 로마의 막강한 조직력과,, 무기기술이 발휘되어 체격만믿구 덤비는
게르만 전사들이 몰살당하는 식이다보니..숲이많은 북쪽과 개발이 진행된 남쪽을 가르는
라인강이 자연스런 로마-게르만 경계선이 되었던겁니다.
이후 로마는 로마인들만 군인이 될수있다는 법을 바꿔 체격좋은 게르만을 용병으로 쓰고
일정복무이후 로마시민권을 주게되죠..
두려움 ,열등감에 쇄국을 선택한 일본
백제 멸망시 당시 왜는 전국력을 기울여 10만을 모집합니다.이는 당시 왜에겐 국가운명을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읍니다..그만큼 왜가 백제에대해가지는 충성심은 사실 엄청난 거였죠
10만이면 당시 신라보다도 많은수(약 5만)였기에...이정도면 백제군과 함께 방어는 할수있을
거라 여겼죠.
그러나,, 이엄청난 대군은 나당 연합군,,특히 신라군에게 밥이되고맙니다.. 사실 거의 일방적
학살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전략,전술은 백제덕에 어케 균형을 맞췄다지만. 실제 각개전투에
서 10cm이상 차이나는 신라군에게 도저히 상대가 될수없었던거죠..
사실상 국가단위를 전쟁을 처음접하구, 북방계의 엄청남에 놀란 왜는 자신들이 얼마나 힘이없
는 존재인지를 깨닫구 이후, 일본내에서만 문을 잠그고 지들끼리의 갈라파고스화를 걷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