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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0-03 16:43
[한국사] 1900년 대한제국 1인당 GDP 815달러, 아시아 2위, 서유럽 변방국가 추월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616  

오랜 세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통계의 책임을 맡았던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매디슨 통계에 따르면 1911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815달러로 아시아 4위에 올랐다. 191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1048달러에 달해 미국 치하의 필리핀(875달러)과 네덜란드 치하의 인도네시아(866달러)도 뛰어넘어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나타났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1060~1062쪽)

독립국만 따지면 2위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170122#home

고종의 개혁 철학인 구본신참론(舊本新參論)에 의거한 근대화 개혁은 짧은 기간 내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당시의 근대화정책을 대한제국 연호인 ‘광무’를 붙여 ‘광무개혁’이라 부른다. 광무개혁의 성과 또한 항일 독립전쟁만큼이나 눈부신 것이었다

문화적 근대화와 학교 건립 확산
‘문화적 근대화’가 시작된 것도 대한제국 시기였다. 정부 공문서의 국문화 혹은 국한문화가 시행됐다. 
오늘 우리가 쓰는 한글의 기본 형태는 이 시기에 거의 완성됐다. 

근대적 관립·사립학교와 각종 외국어·실업교육기관이 붐을 이루며 신설됐다. 1909년 11월 현재 대한제국의 국공립과 사립학교는 모두 2236개였다.(대한매일신보 1909.11.11. ‘잡보:학교 총수’) 그러나 학교 설립은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급격히 줄었고, 그때부터 오히려 전근대적 서당이 늘었다. 대한제국 시기의 ‘교육 근대화’ 성과가 일제 강점기에 파괴됐던 것이다.

대한제국은 서울 도시개조사업을 강력히 추진했다. 주미 공사를 2년간 지냈던 한성부판윤 이채연이 ‘워싱턴DC’를 모델로 했다. 
이채연은 주요 도로의 폭을 50척으로 하는 도로계획 법령을 공포·시행했다.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변모해 갔다.

1887년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가 경복궁 내 건청궁에 가설한 
전등과 전화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것이었는데 1900년 4월 10일부터는 서울의 모든 대로에 전기 가로등까지 켜지기 시작했다. 
1896년 10월 2일에는 덕수궁~인천 사이에 시외 전화가 개통됐고, 서울시는 곧 100회선의 전화를 개설했다. 알렉산더 벨이 전화를 발명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서울의 전차 운행은 동경보다 2년 빨랐다. 1881년 독일 지멘스사가 전차를 상용화한 이래 1899년 서울의 전차 개통은 세계적 차원에서도 빠른 편에 속했다. 

1899년 9월엔 인천~노량진 간 철도가 개통됐다. 최초의 철도는 1825년 영국이다

1901년 독일 기자 지크프리트 겐테 박사가 본 서울은 광무개혁 7년 만에 서양인이 감탄할 정도의 ‘근대적 대도시’로 달라졌다.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서울은 본모습이 점점 부서져 내리는 북경이나 희석되어 특징이 없어진 동경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서울의 근대적 변모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농업용 저수지 건설과 황무지 개간, 농업·양잠업, 상공업 진흥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10년 당시 근대적 대기업(당시 종업원 100명 기준)은 도합 703개로 추산되고 있다. 비공식 부문의 무허가 중소기업들까지 합하면 기업이 거의 매일 생겨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외국자본의 침투로부터 국내 상업을 보호하면서 조세를 거둬 세수를 늘렸고 산업에 투자함으로써 ‘위로부터의 신속한 자본주의화’를 열어 가고자 했다.

대한제국의 경제 성장은 각종 통계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대한제국은 창건 9년 만에 예산이 약 4.6배나 늘었다. 

1990년대 수출의 증가 상황도 참고할 만하다. 1901년 1800만 엔을 상회했고, 1910년엔 6000만 엔에 육박했다.

오랜 세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통계의 책임을 맡았던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매디슨 통계에 따르면 1911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815달러로 아시아 4위에 올랐다. 191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1048달러에 달해 미국 치하의 필리핀(875달러)과 네덜란드 치하의 인도네시아(866달러)도 뛰어넘어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나타났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1060~1062쪽)

1906년 이후 일제 통감부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고도성장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일본 정부의 훈령에는 어떤 식산흥업정책이나 개발투자계획도 들어 있지 않았다.
즉 대한제국에서 조성된 경제 도약의 여파가 이어진 결과였다. 

1915년 1인당 국민소득 1048달러는 유럽과 비교해도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1915년 유럽의 1인당 GDP를 보면 영국 5288달러, 미국 4864달러, 프랑스 3248달러, 독일 2899달러, 오스트리아 2653달러, 이탈리아 2070달러, 스페인 2033달러, 1918년 포르투갈 1150달러,1917년 그리스 848달러였다. 
서유럽의 변방 국가들(포르투갈·그리스 등)과 대등하거나 앞섰다는 것이다(황태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1060~1065쪽)
이랫던 조선이 광복후 1인당 gdp65달러로 급락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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