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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9-10 10:41
[한국사] 서기 49년 고구려 모본왕이 산서성(태원, 상곡)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688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중국 산서성 중부까지 고구려 영토를 확장했다고 나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권2

"모본왕 2년(서기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등을 습격하였다. 그런데 요동태수(遼東大守)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므로 다시 화친을 맺었다."

 

※주) 북평(우북평)과 어양은 하북성 중부인 석가장시 부근으로 추정되면

       상곡은 산서성 중부인 양천시, 태원은 산서성 중서부인 진중시로 추정됩니다

 

 

■ 고구려가 산서성 중부나 하북성을 공격할 수 있는가? 

     --> 한나라를 공격해서 고구려가 하북성 중부와 산서성 중부를 차지했다

 

   1) 인하대 박성용 국제 정치학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보병은 하루 삼십리(약 15KM), 기병은 하루 60리(30KM) 정도 진군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하대 박성용 교수는 안보, 군사전략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고구려가 하북성 중부나 산서성 중부 근처에 있어야

      하북성 중부인 북평과 어양과 산서성 중부인 상곡과 태원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2) 사마천 사기 평준서와 한서 무제기에 따르면 예는 하북성 창주시로 추정되며

       후한서와 삼국지의 동이열전에 예 북쪽이 고구려고 고구려 서쪽이 속민인 오환이 있다고 했으니

       고구려 위치는 하북성 보정시고, 오환의 위치는 산서성 흔주시가 됩니다

 

       따라서 고구려가 오환을 거느리고 하북성의 북평과 어양, 산서성의 상곡과 태원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고구려의 하북성 산서성 중부 침략은 중국측 사료에도 기록되어 있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조

      "후한 광무제 건무[建武] 25년(A.D.49; 고구려 모본왕高句麗 慕本王 2년) 봄에 구려句驪가 우북평右北平·어양漁陽·

       상곡上谷·태원太原을 침입하여 노략질하는 것을 요동태수遼東太守 채융祭肜이 은혜恩義와 신의信義로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 고구려는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왜 공격했는가? 

 

한나라가 고구려를 침범하여 낙랑을 다시 설치하였고 흉노가 오환이 점유하고 있던 산서성을 약탈했기에

한나라와 흉노의 잘못을 바로 잡은 것이다

첫째)
   1) AD 37년 고구려가 하북성 중부의 낙랑군을 멸망시키고 낙랑땅을 확보했는데..,
   2) AD 44년 후한 광무제가 하북성 중부의 낙랑땅을 공격하여 낙랑군을 다시 설치하고
      고구려와 하북성 중부 형수시 부근의 패수를 경계로 삼았고
   3) 동시에 AD 44년에 북흉노의 좌현왕이 산서성의 상당군과 상산군을 침범하였다


      (이때 산서성는 고구려 속민인 오환이 점유하고 있었다

      ※주) 후한서 오한(烏桓)조에 '烏桓者, 本東胡也. 오환(烏桓)은 본래 동호(東胡)이다.'  라고 했으니

       오한(烏桓)은 환웅(桓雄) 부족인 부여족의 후손으로 삼족오(三足烏)를 숭배하는 의미이니

       오환이 동호이고 동호가 북부여이니 오환은 북부여를 세운 부족이다)


둘째) 광무제가 낙랑땅을 빼았아 갔고, 북흉노 좌현왕이 산서성을 침범했기에
   1) AD 46 고구려가 남흉노 호한야 선우의 도움을 받아서
     오환을 시켜서 북흉노 좌현왕을 공격하게 하여 섬서성 동부의 북흉노 좌현왕을 수천리 밖으로 쫓아냈고
   2) AD 49년에 고구려가 하북성 중부의 우북평, 어양과 산서성의 상곡, 태원을 공격하여 확보하고
      오한족을 요동, 요서,우북평, 어양, 상곡에 위치시키고 선비족을 태원에 위치 시켯다고 봅니다

고구려 활동 내용을 요동태수가 한 것으로 역사를 왜곡 시켰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 관련 고대 지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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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09-10 13:07
   
단제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 상고사에 따르면

고조선은 삼조선 체계로 신조선(진조선), 발조선(번조선), 말조선(마조선)이고요
한반도는 말조선(마조선)입니다

삼국 초기인 1세기에 한반도에는 말조선의 후예로
1)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최씨 낙랑국
2)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씨조선(중마한)
3) 경상도 동해안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서라벌(신라)
4) 경상도 내륙 및 경상남도 및 전라도를 지역에는
  김해가야를 중심으로 한 가야제국이 있었습니다

※주) 가야제국은 일본 규슈, 일본열도, 중국 동해안(강소성 임나 가야 포함), 대만등
        수많은 소국을 거느린 가야 해상제국이었습니다
        또한 가야 해상제국은 서기 1세기경의 세계최고의 철기기술을 보유한 문명국가였고요
프란치스 21-09-10 13:28
   
동감합니다
수고하십니다 ㅎㅎ  열심히 연구해 주세요
위구르 21-09-10 17:10
   
아득바득 락랑군을 다시 설치해서 고구려에 도발을 하다가 서진이 무너질 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락랑군이 망했으니 한족 오랑캐들도 참 끈질겼죠
영종햇살 21-09-11 11:23
   
공격 루트를 보면 요동지나고 요서지나고 태원까지 가는데.....
왜 마지막에 요동태수가 나타나서 협상을 하는지....
요동군은 태원 어양 상곡 우북평의 남쪽이나 서쪽에 있어야 가능함.

또 고구려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르겠지만 ...
전쟁은 한달정도 이뤄졌습니다. 후한서 기록보면  3월과 그 전에 다른 일들이 일어남.
한달간 왕복 2천킬로되는 거리를 그냥 다녀오기도 힘든데 전쟁하면서 다녀오는건 불가능.
영종햇살 21-09-11 11:27
   
생각해보면 보병이 하루에 15킬로 가는데 한달이면 450킬로 갑니다.
450킬로 왕복이면 900킬로로 2달 걸린다.(싸우지 않았을 경우)

님이 지도상에 표시된 고구려와 태원까지 거리 계산해보면 불가능.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 태원 요동 어양 상곡등 모두 한군데 즉 산서성에 있어야 가능한 전쟁.
이래서 수경주를 읽어야 함.
영종햇살 21-09-11 12:03
   
하북성 형수시--->산서성 태원까지 구글 지도 직선거리 363킬로, 2배하면 726킬로, 왕복 1452킬로
하루에 15킬로 걸어가면  97일 걸림.

하북성 보정시---> 산서성 태원까지  구글 지도 350킬로 정도 2배하면 700킬로,  왕복 1400킬로
 93일 걸림. 싸우지 않고 가는 거리임.
영종햇살 21-09-11 12:08
   
二十五(AD 49년)春正月,遼東徼外貊人〈貊人,穢貊國人也。貊音陌。〉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遼東太守祭肜招降之。烏桓大人來朝。〈大人謂渠帥也。〉

南單于遣使詣闕貢獻,奉蕃稱臣;又遣其左賢王擊破北匈奴,却地千餘里。三月,南單于遣子入侍。

춘정월에 고구려와 싸움. 춘정월은 음력 2월.

삼국사기 기록은 2월에 정쟁.
3월에는 폭풍우가 불고 4월에는 서리 우박 내림.

고구려 전쟁은 1개월내에 끝난 것으로 볼수있다.
그래서 요동군이 수구리님이 비정한 위치에 있으면 안되고,
태원군 서쪽이나 남쪽에 있어야 함.
     
수구리 21-09-11 12:29
   
전체적인 관점
 특히 역사나 사료에서 핵심적인 관점에서 위치를 비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가지 관점에서 보아도 모두 이치에 맞는 결과가 볼 수 있습니다

단편이거나, 한가지 관점에서 위치를 비정하면
다른관점에서 보면 말이 않되는 내용이 되기에 이치에 맞지 않게 됩니다

고구려는 보정시가 중심이고요 보정시만이 고구려는 아닙니다
고구려는 2천리나 되는 영토를 갖고 있습니다(동이열전 내용이며 지도 참조)
그리고 오환이 고구려 속민이니 산서성에 있는 오환(말갈)도 고구려입니다
          
영종햇살 21-09-11 15:00
   
글 뜻을 이해 못하는군요.
님이 비정한 태원에서 요동까지가 지금 직선 거리로 왕복 700킬로입니다.

후한서 49년 춘정월에 오환이 조공했다는 위에 기록있습니다.
烏桓大人來朝。
무슨 오환이 후한을 침략하나요.
  조공도하고 침략도하고 그것도 같은 시기 춘정월에....
               
수구리 21-09-11 15:26
   
사마천이 사기에서 동호를 멸망했다고 지운 것도 춘추 필법이고요
후한서와 삼국지는 사마천 사기의 춘추필법을 그대로 인정하고
또다시 새로운 춘추필법으로 작성된 사료입니다

수천리영토를 보유한 동호가 흉노에게 한번 패했다고 망할 리가 없고요..
묵돌 침입 후 상황을 보면
1) 동호인 오한과
2)  동호의 일부인 선비가  추후 중국의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중국 사서를 중국 사서 작성자의 춘추필법의 의도를 파악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중국 고대 사서를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않되겠지요
               
수구리 21-09-11 16:04
   
춘춘 필법 추적해 보겠습니다

1)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
묵돌이 군사를 이끌고 습격해 동호의 군사를 대파하고 그 왕을 죽였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고 가축과 재산을 빼앗았다.

2) 한서 흉노열전
묵특이 군대를 이끌고 [동호 땅에] 도착해 공격하니 동호의 왕이 크게 패해 망했고 [묵특은] 그 백성[民衆]과 가축 등을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3) 후한서
오한 : 오환(烏桓)은  본래 동호(東胡)이다. 한(漢)나라 초기에 흉노(匈奴)의 묵특(冒頓) [선우(單于)] 가 동호를 멸망시키자

선비 : 한나라 초기에 [선비도 오환처럼] 역시 [흉노의] 묵특[선우]에게 격파되어 멀리 요동의 새외로 달아나 숨어 있었는데
                    
수구리 21-09-11 16:11
   
1) 사마천 사기에서 흉노가 동호의 백성을 포로로 잡고 철수 했다고 했는데..
2) 한서에서는 동호가 망했다고 부풀리더니
3) 후한서에서는 동호인 오환을 멸망시켰고 선비도 격파했다고 추가로 더 부풀렸습니다

이것이 중국의 춘추 필법입니다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동호인 북부여가 흉노에게 패했을 수 있지만.. 동호인 북부여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한번 전쟁에서 패했다고 수천리 영토를 갖고 있는 동호인 북부여가 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서는 동호가 망했다고 했고, 후한서는 선비까지 격파했다고 소설을 쓴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춘추필법을 걷어내지 않고
중국 사서를 문자 그대로만 이해한다면
중국의 춘추필법에 이용당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고대 중국인이 가보지도 않은 수천리 영토의 동호 사정을 알수도 없었고요
일부 전해 들은 이야기로 사서를 작성했겠지만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나 영토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축소 시킨 것이 춘추 필법입니다

따라서 춘추필법을 걷어내는 안목과 지혜를 길려야 하겠지요
               
수구리 21-09-11 17:06
   
오환이 한나라에 조공했다는 것에 큰 의미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환의 대인이 한두명이 아닙니다 여러명입니다)
선비도 마찬가지이고요
고대 조공은 지금으로 보면 나라간의 무역행위였습니다

고구려는 왕들이 많이 있었기에
고구려 왕은 왕중에 왕인 태왕이었습니다
영종햇살 21-09-11 15:11
   
수구리님, 님이 위 지도에 비정한 태원에서 우북평까지 거리를 계산해보세요.
그러면 싸우면서 이동하는 기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님이 비정한 위치가 잘못되었거나
후한서와 삼국사기 기록이 잘못되었거나 둘중에 하나겠지요.
     
수구리 21-09-11 15:31
   
아니지요

제 비정이 틀리고, 삼국지 후한서 기록이 맞다거나
삼국지 후한서 기록이 틀리고, 제 비정이 맞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후한서와 삼국지 기록을 그대로 인정하고 제가 위치 비정했으니
맞다면 둘다 맞다고 보아야 합니다
     
수구리 21-09-11 16:33
   
춘추 필법 사례 하나 더 보겠습니다

1) 한서지리지 한지 韓地(한서지리지下) - 연(燕)나라 지역
현토군(玄菟郡)과 낙랑군(樂浪郡)은, 한 무제 때 설치했는데,
  모두 조선(朝鮮)과 예맥(濊貉)과 구려(句驪)등 오랑캐의 땅이었다.
  은(殷)나라에서 도(道)가 쇠퇴하자, 기자(箕子)가 조선(朝鮮)으로 가서, 
  그 백성들을 예의로써 교화시키고, 농사와 양잠과 직물 짜기를 가르쳤다.   

  낙랑(樂浪)의 조선(朝鮮) 백성들에게는 범해서는 안 될 8가지의 금법(禁法)이 있었다.

2) 후한서 동이열전
옛날 箕子가 쇠망하는 殷나라의 운수를 피하여 朝鮮 땅에 피난하였다. 처음엔 그 나라의 풍속이 알려진 바 없었으나, 八條의 法을 시행하여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게 하니,

-. 사마천 사기에는 기자를 조선 후에 봉했다고 했는데
-. 한서지리지에서 기자가 조선으로 갔는데 조선에는 기자가 오기전에 이미 팔조법금이 있었다

-. 그런데 후한서에는 기자가 조선 땅에 피난하여 팔조법금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역사를 점진적으로 조작한 것이 중국의 춘추 필법입니다
     
수구리 21-09-11 16:45
   
춘추필법 하나 더 보겠습니다

1)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에
연나라의 명장 진개(秦開)가 흉노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2)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연燕은 장군 진개秦開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변한滿番汗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 사마전 사기에 진개가 고조선 땅 1천여리를 빼앗았다고 했는데..
-.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진개가 고조선땅 2천여리를 빼앗았다고 부풀렸습니다

이것이 춘추필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식민 사학자인 매국사학자들은
동호 땅 1천여리 조선땅 2천여리 합하여 진개가 고조선 땅 3천여리를 빼앗았다고 주장하니
이것이 매국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요?
     
수구리 21-09-11 16:50
   
중국 고대사서들은
고조선을 없애고 고구려를 최대한 줄였고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축소 왜곡한 춘추 필법을 철저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춘추필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 사서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고조선이나 고구려 역사를 주장한다면

중국의 춘추 필법에 이용 당하는
중국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습니다
수구리 21-09-11 18:24
   
영종햇살님이
무슨 오환이 후한을 침략하나요. 하셨는데요..

오한이 한나라와 후한을 침공한 사료 많이 있습니다
     
수구리 21-09-11 18:27
   
1) BC 80년 한나라가 흉노에게 오환이 갓 패전한 [상황을] 틈타서 앞으로 나아가 오환을 격파하여 오환군의 머리 6천여 급을 참하고, 세 명의 오환 왕(王)의 수급을 얻은 후에 돌아왔다. 이때부터 오환은 다시 유주(幽州)를 침입하여 노략질하였으나,...

2) AD 25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초에 오환과 흉노는 연합하여 [군대를 보내]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니, 대군 동쪽은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3) AD 45년 건무(建武) 21년(45)에 한나라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에게 3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오환을 불시에 습격하도록 하였다. 오환은 미리 이 사실을 알고 모두 무리를 이끌고 도망갔는데,.... 오환은 군대를 되돌려서 마원 군대의 후진(後陣)을 공격하니, 마원은....새내(塞內)로 들어갈 즈음에 죽은 말이 천여 필(匹)이었다.

4) AD 46년 [건무] 22년(46)에 흉노의 국내가 어지러워지자 오환은 [흉노가]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흉노를 공격하여 격파하자 흉노는 북쪽으로 수천 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고, 막남(漠南)의 땅은 비게 되었다

5) AD 109년 안제(安帝) 영초(永初) 3년(109)에 어양오환(漁陽烏桓)과 우북평호(右北平胡) 천여 [기(騎)]가 대군과 상곡[군]을 침입하여 노략질하였다. 가을에 안문오환(鴈門烏桓)의 솔중왕(率衆王) 무하(無何)가 선비의 대인 구륜(丘倫) 등, 남흉노(南匈奴) 골도후(骨都侯)와 함께 모두 합하여 7천 기를 이끌고 오원[군](五原郡)을 침입하여 약탈하였으며, [오원]태수(五原太守)와 구원[현](九原縣)의 고거곡(高渠谷)에서 싸웠다. 한나라 병사들이 크게 패하였고 무하는 군의 장리(長吏)들을 살해하였다.

6) AD 135년 순제(順帝) 양가(陽嘉) 4년(135) 겨울에 오환이 운중[군](雲中郡)을 침입하여...

7) AD 140년 영화(永和) 5년(140)에 오환의 대인 아견(阿堅)과 강거(羌渠) 등이 남흉노(南匈奴) 좌부(左部)의 구룡[왕](句龍王)오사(吾斯)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8) AD 155년 환제(桓帝)영수(永壽)년간(155~157)에 삭방오환(朔方烏桓)과 휴저도각(休著屠各)이 반란을 일으키자...

9) AD 166년 연희(延熹) 9년(166) 여름에 오환은 다시 선비 및 남흉노와 함께 변방의 9개 군을 침입하여...

10) AD 170년 경 영제(靈帝) 초기에 상곡[군]에 있던 오환대인(烏桓大人) 난루(難樓)라는 자가 무리 9천여 락(落)을 거느렸고, 요서[군]에는 구력거(丘力居)라는 자가 무리 5천여 락을 이끌었는데, [두 사람] 모두 왕(王)이라고 자칭하였다. 또, 요동[군]에 있던 소복연(蘇僕延)은 무리 1천여 락을 거느리고 스스로 초왕(峭王)이라 칭하였다. 우북평[군]에 있던 오연(烏延)은 무리 8백여 락을 이끌면서 한노왕(汗魯王)이라 자칭하였다. 

11) AD 187년 중평(中平) 4년(187)에 전직 중산 태수(中山太守) 장순(張純)이 배반하여 구력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 칭하며 마침내 여러 군에 있던 오환 무리들의 우두머리[元帥]가 되었고, 청[주](靑州), 서[주](徐州), 유[주], 기[주](冀州) 4주(州)를 침입하여 노략질하였다.
     
수구리 21-09-11 18:28
   
오한이 말갈이며 저는 고구려로 보고 있습니다
(후한서에 오환이 동호라고 했으니
동호가 북부여이니 오환은 북부여를 세운 부족이고 고구려는 북부여 후손이 세운나라고
오환은 고구려 속민이니 오환의 한나라 침공은 고구려가 한나라를 침공한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에 우리가 아는 고구려 왕
고구려 태왕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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