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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9 12:59
[기타] 아주 오래전부터 경험하던 것들
 글쓴이 : Player
조회 : 933  


사진첨부 기능이 되는 건지 모르지만,

오래전 더 오래전 그 더 오래전 부터 역사 인류학 등 설명하는 글들 수 없이 써봤지만,
중요한건  먹으면 싸는게 똥이라, 나오는게 끝이 없음.

들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표절도 많이 당해보고, 불펌은 수없이 당해보고,
여기선 점잖빼고 오오~~~ 하던 사람이 다른쪽에선 개기고 인성도 다르고.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대부분 내글에선 굻직한 맥락짚기 위주에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쉐도우 편집한 상태로 타이핑, 그래서 누락이나 뭔가 있을 순 있지만,
맥락을 틀린적은 없음.

맥락 못읽어낸 사람들은 거기가 벽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음.

자기의 글엔 자기의 모든것을 읽혀질 각오를 하고 쓰세요.

솔직히 사서들 짜맞추기 키배틀 놀이는 답이 없는 솔루션이니 그렇게 아시고,
수백년 전부터 당신들 논의는 이미 청대 조선대 다 이뤄진 실마리들이 존재 해요.
조상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료불충분.
실전된 사서가 떡하니 나오기 전까지. 지금 방법으론 접근 못할것이고.

꾀 예전에 도달한 결론이니, 방법론 논리전개 자체를 재정립 하시길.
나는 내가 알고싶은 수준에 적정한 정도로 도달해서 멈췄지만 용들 쓰시길.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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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21-08-29 13:06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만주 청동기발생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세요?
     
Marauder 21-08-29 13:10
   
옛날에 세키노 타다시 건으로 느껴왔던게 tv에서 했을 정도면 유물 조작이 정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주류사학계에서 견고하게 버티고 있더라구요?
 동아게만 보던 부작용인지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능력이 퇴화되는게 느껴지더군요.
          
Player 21-08-29 14:02
   
마지막으로 하나만 이야기 할께요,
만주지역과 한반도 지역은 청동기 발원되기 힘든 지역일 뿐만 아니라,
기술을 안다고 해도 생산하기 힘든 조건의 지역입니다.

이유는 주석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주석이 연해주에 세계적으로 많은 생산량을 보유한 지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연도 산출되는 지역이고,

우리 청동기의 특징이 되는 광물이 연해주와 연관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철기도 그렇고, 알타이산맥 근처 아파나시예보 초기 청동기 문화가
아무르강과 연해주 야금술 전파 루트가 존재했거나,
다기원론 처럼 연해주 일대에서 발원했을 여지도 존재하지만,
청동기 유물이 가설을 지탱하지 못함.

즉 청동기 제작 기본 기법은 알타이산맥 부근에서 발원
이를 수용한 고조선 세력의 이동으로
만주 연해주 한반도에 청동기가 확장한 것으로 보는게 가장 타당함
유물이 너무 명백함.
               
Marauder 21-08-29 14:37
   
이걸 물어본 이유가 초원지대와 고조선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면 단순히 환국의 존재부정이었나요?
               
울티마툴레 21-08-29 16:12
   
졸라 비싸게구네
울티마툴레 21-08-29 13:21
   
폰에선 가독성 제로인 사진. 에휴.
울티마툴레 21-08-29 13:26
   
고고학적으로 말 사육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초원지대에서 확인된 보타이 (Botai)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35]. 이 유적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말 뼈 (치아)에서는 재갈을 물렸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중수소 (δD) 및 탄소(δ13C)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말 젖을 식용하였다는 증거 역시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 유적에서 발견된 말 뼈가 사육마라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35]. 따라서 보타이 유적을 중심으로 남부 시베리아에서 말의 가축화가 처음 이루어지고, 인류사 최초로 사육된 야생마가 점차적으로 전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다양한 지역 야생마들과 교배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사육마가 되었다고 보는 주장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6].
     
울티마툴레 21-08-29 13:30
   
그렇다면 삼국유사가 주장하는 건국년도인 서기전 2333년이면 약 8백년후라 충분히 말을 이용한 교통 전투 수행이 가능했슴.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기원전 2천년전부터는 정복활동이 가능했을 거임.더군다나 카자흐스탄지역과 만주는 초원길로 연결되어 있었슴
감방친구 21-08-29 14:27
   
1) 개인적으로, 문헌 정보의 한계를 절감하고 고조선 전사(前史)의 모색과 구성을 통한 고조선 시대로의 접근, 그리고 이미 해온 고려-고구려-한사군-위만조선-조선/부여 경로의, 역순 검토 방식의 고조선 시대로의 접근을 후에 통합하고자 하는 연구안을 수립하고 다양한 각도와 분야의 고고학적 사실들에 대한 탐구를 비지속적이면서도 계속적으로 해오고 있음

2) 동북아에서는 이미 최종빙기의 막바지인 기원전 1만 5천 년 전후부터 곡물순화의 전조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음

3) 최종빙기가 끝난 후 홀로세에 접어들면서, 대략 9천년 전~4천년 전 사이에는 기온이 급상승하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급상승하여 전체적 130미터 가량 상승하였고, 이로 인해서 사막과 초원, 밀림의 육지를 이루고 있던 현 황해가 바다에 잠기고, 현 요하지역의 경우 신민시 남쪽 인근까지 해수면이 차오름

4) 기온이 현재보다 2~3도 가량 높았는데 이 시기에 동북아 각지에서 곡물이 순화되기 시작

5) 현 내몽골과 서요하 유역, 심양 일대, 연해주 일대의 7천 년 전에서 6천 년 전에 이르는 신석기 유적에서는 부분적으로 조와 기장에 대한 원시적 재배와 저장의 흔적이 발견됨

6) 홀로세(현재도 홀로세에 해당)의 이 시기에 기온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고려하여 몽골과 만주 지역의 생태 여건을 모색해야 함

7) 다음을 고려할 때에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모종 집단의 이주를 염두할 수 있음

① 고조선 지역인 현 요서/요동 일대의 전차의 전래 추정 연대(기원전 15세기)

②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의 기원전 9~8세기 안테나식 동검이 시베리아와 중국 오르도스, 내몽골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까지 전파된 것, 그리고 특히 부여에서는 부여식 촉각식 동검으로 현지화하였고, 이것이 연해주 지역에서도 나타나는 것

③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인 기원전 15세기 전후, 또는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연해주 지역에서 철기문화가 나타나서 그것이 기원전 5세기에는 한반도 남부까지 전파된 것

8) 그러나 서쪽에서 온 이 모종 집단이 과연 지배적 권위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우리 역사의 상고대를 이끌고 일구었을까 하는 것은 다음의 이유로 회의적일 수 있음

① 적석총, 즉 돌무지무덤은 기원전 6천 년~5천 년 편년인 현 요서지역 흥륭와문화 단계에서 가장 먼저 출현

② 이러한 적석총은 기원전 6세기의 것으로 전남지역에도 존재

③ 스키타이 지역 적석총의 기원전 7세기~ 것으로 한반도 남부의 것과 거의 동시대이며 당연히 흥륭화문화의 것보다 훨씬 후대

④ 이른 바 홍산문화라는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초기 단계까지 현 내몽골 동부부터 현 요동지역까지, 적극성을 띠자면 남만주 지역까지,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8천년 전의 현 요동지역 신락문화~기원전 2천-1.5천년 시기의 내몽골 하가점하층문화까지 무려 6천 5백여 년 동안 동질성, 또는 관계성을 띠고 하나의 큰 권역이자 문화범주로서 존재하였음

⑤ 이미 하가점하층문화 단계의 인골에서, 특히 두개골에서 거란/선비 계통의 인골과 한국인 계통의 두개골이 구분되어 나타남 ㅡ 이는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홍산문화내지 하가점하층문화에 대한 우리의 계승성을 약화시켜 보거나 부정시하는 한 근거로 역할함

9) 따라서 외부자의 틈입과 문화전파는 충분히 수긍하여 고려하되 어디까지나 그 주체세력은 기존 내몽골-만주-한반도인들을 중심에 둬야 할 것임

10) 또한 청동기와 철기에 있어서 그 제조, 또는 합금방식에 대한 정밀 분석과 비교/대조를 통해서 그 계통성을 밝히고, 그 결과값을 토대로 더 전진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임
감방친구 21-08-29 14:30
   
내 댓글을 의도적으로 캡처하여 본문의 사진화된 자료를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감방친구 21-08-29 14:45
   
본문의 사진화된 문서 자료에서 '부여산'을 언급했는데
그러한 주장을 한 중국학자가 바로 김악.

김악은 손진기와 함께 동북공정의 바탕논리를 구축한 사람

김악은 현 길림합달령을 부여산으로 비정하였는데 그 배경은 아래와 같음

「발족은 신석기 시대 말기에 현 눈강과 조아하, 송화강 사이에서 활동하다가 춘추시대에 맥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 요하 동북쪽까지 세력을 넓혔는데 연나라(당시에 현 요동지역까지 연나라 영토였다는 것)에게 공격을 당해서 멸망(산해경)하고서 그 일부세력이 부여산으로 도주하여 웅거하였다가 다시 북쪽의 평원으로 이주하여 북부여를 세웠다. 부여산은 현 길림합달령이다. (즉 산해경에 나와있는 漢水를 현 요하로 보고 있는 것)」
Marauder 21-08-29 15:16
   
마지막 이유에는 공감하는게 제가 사업을 시작하게된 이유. 사실상 13년도에 글 보면서 해결하기 어렵다는걸 깨달음. 상식적으로 다른천재들이 못한데에는 이유가 있는법이라 나를 맹신하지 말고 다른사람들에게 신뢰를 가지면 금방 도달할 수 있음
     
감방친구 21-08-29 15:37
   
님은 참 알 수가 없는 게

제가 블로그 구독 안 했으면 구독하시라 한 것은

1) 구독을 안 했을 것이라 본 것이고
2) 앞으로 전문적 연구글은 되도록이면 블로그에 올릴 것이라서
3) 또한 일부 연구글은 이웃공개만 할 것이라서

구독을 하시라 한 것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님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
동질한 문제의식을 지닌 동료로 보이기도 하고
저를 상당히 적대시 하여 배척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뢰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Marauder 21-08-29 17:07
   
사실 제가 그동안 블로그를 가지않았던 이유는 감방친구님이 어차피 여기에 글을 올리실거라고 생각하셔서 가지않았던 이유가 가장 큰데 이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적대시여기는것은 아니고 기본적으로 그방법론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방친구님이 하시는 작업은 굉장히 감명깊게 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딱히 감방친구님을 저격해서 글을 쓰는것은 아니고 그외에도 기타 다른 분들의 글쓰는 작업들을 같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중에서는 감방친구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경우는 적은편이지만, 감방친구님이 가장 꾸준히 오래 글을 쓰시니까 지분이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Marauder 21-08-29 17:26
   
1. 위 말에 동의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를 배척할수는 없음. 다만 "그것만"가지고는 해결할수 없다는거에 동의하는것.
  최종적으로 유물을 포함한 기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하는데 사서는 그 중에 한 부분이고 제가 아는 중에서는 사서 분야에서는 감방친구님이 최고임.

2. 감방친구님의 방법론과 시행방식은 제가 아는 중에서는 가장 최상위급 중 하나이며 재야연구자중에서는 따를만한 사람이 없음. 위의 내용에서 감방친구님을 생각하고 글을 쓴게 아님. 감방친구님이 글만 쓰신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한계를 절감하셔서 이미 다른 작업도 계획중이라고 하셨기 때문(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한계는 있음. 단순히 역사를 찾는 부분만이 아니라 내용전달을 위시로 주류사학으로 저변을 넓히는 총체적 과정을 의미함.
  그래서 17년도부터 이 한계의 틀을 부수기 위해 노력중

-> 그 대안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이게 구상만 하고있을뿐 아직 현실로 나오지 않아서 답답함

뭐 대충 이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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