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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1 18:05
[기타] 깜빡했었는데 수구리님이 다루는 지명들이 한나라이래 중요한 곳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네요.
 글쓴이 : 울티마툴레
조회 : 886  

고조선시대 그러니까 서기전 25세기에서 서기전 2세기까지 제가 보는 고조선강토 서변의 변화를 이렇게 봅니다.

1. 동아시아만 살펴보면
기원전 10000년에서 8000년 사이 기후가 따뜻해졌고 신석기시대가 도래하였는바 기원전 5000년전은 지금보다 지구가 따뜻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홍산문화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러다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 사이 기후가 차가워지고 건조해져서 많은 부족들이 남하했는데 주경로가 세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부류는 현 길림성일대와 현 요동요서 및 한반도 북부입니다.

이들은 비슷한 족속들로서 같은 문화를 공유한 족속들로 보입니다. 이들이 남하하면서 곳곳애 에 읍(촌락보다는 규모가 훨씬 큰 도시)을 세웠고 이들이 연맹하여 고조선을 세웠으나 당시의 교통의 한계로 인해 곳곳에 자주적인 읍연맹체가 세워집니다. 따라서 고조선은 처음부터 청동기를 기반으로 하는 읍의 누층적 연맹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다른 부류는 현재 중국의 북경일대를 넘어 산동반도 그리고 현 중국의 태행산맥 동쪽일대에 자리잡습니다. 이들은 고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곳곳에 읍을 세우고 토착인들을 정복하여 마찬개로 누층적 읍연맹체인 상나라를 세웁니다. 상과 고조선사이에 거리가 멀고 교통수단이 낙후하여 제생각엔.상호간 교류가 적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태행산맥 동쪽으로  앞의 두부류와는 다른 족속이 남하합니다. 이 부류가 정착한 곳은 지금의 서안일대의 고원지대로서 고원지대이지만 농사가 가능한 곳입니다. 이들은 토착인들을 정복하여 정착하는데 이들이 주족 강족이라고 합니다.

상나라와 이들 사이에는 태행산맥이라는 해발고도평균 2000미터급의 고준산령이 가로막고 있었고 무수한 밀림이 가로막고 있었죠. 따라서 이들사이에는 전투가 벌어지곤 했는데 이게 갑골문자와 은청동기에 나오는 상나라의 주변국 토벌입니다. 상은 정기적으로 주족과 강족을 토벌했으며 이에 주족이 중심이 되어 거꾸로 상나라를 토벌하고 주를 세웁니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지는 여전히 태행산맥동쪽이었죠.

2. 그러다 철기시대에 들어와서 무기도 좋아지고 농기구도 발전하면서 농업생산력이 부강의 중요한 척도가 되자.비로소 강역의 개념이 분명해지고 농토쟁탈을 둘러싼 전쟁과 벌채가 이루어집니다. 도끼를 가지고 벌채를 하여 농토를 확장하고 주변국 농토를 빼았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죠.


시경에 나오는 한후에 대해 주나라왕이 한후에게 동북방면의 모든  족속에 대한 지배권을 주었다며 한후를 칭송합니다. 이 한후를 고조선의 임금으로 본다면 기원전 9세기 당시 주나라 사람들이 알던 동북방면 지금으로 보면 북경일대와 요서 일대의 모든 족속이 고조선의 영역이 되는 것이죠.

즉 중국측 역사자료로 나타나는 고조선의 첫번째 서변은 낙양을 기준으로 동부방면 즉 북경일대와 산서성남부와 발해를 잇는 선으로 보입니다.

3. 농토가 확장되고 비옥한 황하일대의 농업경제력은 확장되어 주나라를 둘러싼 주위보다 높게됩니다. 그결과는 주나라시대 인구폭발이고 최소한 전국시대초기 3천만명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같은 철기를 갖고 있었지만 농업생산력이 떨어지는 지역에 있었던 고조선을 넘어서는 국력을 가지게 되어 고조선의 서변은 점점 현재의 난하일대로 축소되었다고 생각댑니다.

즉 진한교체기때 고조선 서변은 현재의 난하일대로 정해졌고 이는 많은 문헌근거가 있습니다. 또한 만리장성이 고고학적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

4. 한무제의 위만침공이후 고조선의 서변은 더 현 요수쪽으로 후퇴었는바 이는 위만이 초기에 한의 원조를 받아 주변 읍들을 정복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현 요수나 대륙하까지 확장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현재도 요동과 서북한지역에 서한시대 유적은 하나도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유물은 있습니다만 이는 교류의 흔적이지 정복의 흔적은 아닙니다.

즉 한군현설치시 고조선의 서변은 현재의 요하로 추정됩니다.

5. 이후 고조선내에서 마치 주나라붕괴후 춘추전국시대가 등장한 것처럼 열국시대가 등장하는데 이는 간접적으로 중국문헌에 나타납니다. 춘추시대앤 단순히 종족으로 언급하다가 진한시대엔 나라로 언급하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왕실은 주왕실처럼 진짜 명맥만 유지하다가 고구려의 평양지역 완전 점령때 사라졌다고 봅니다.

즉 한군현이 설치된 이시기 누층적 읍연맹봉건국가인 고조선은 붕괴했고 이후 한군현과 부여 낙랑 숙신들이 경계를 맞대다가 강력한 한의 무력에 밀려 부여와 낙랑 예 옥저 들은 더 동쪽으로 이동하고 고구려와 백제가 창건되면서 한군현과 경계를 맞대다가 백제는 한반도 중부로 이전하고 고구려가 한군현과 경계를 맞대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시기에도 한군현은 요수를 넘지못하였습니다. 즉 서기전108년부터 고구려가 한군현을 멸한 시기까지 한은 결코 요수를 넘지 못하였습니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조조가 오환을 정벌하고 기념으로 갈석산을 올랐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갈석산은 현 진황도시입니다.공손씨는 현 요서일대에서 할거하였고 한때 요동남부 요동반도에서 위세를 떨쳤지만 그 중심지는 여전히 현요서였습니다. 다른말로 동한ㅡ위ㅡ진시기 요동은 여전히 지금의 요서였습니다. 즉 조조의 위나라(실제론 사마의)는 공손씨가 가까이 있었기에 업도에서 출정한 것입니다. 멀리있었다면 결코 출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생각의 출전은 거의 모두 윤내현 교수의 한국고대사신론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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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21-08-21 18:19
   
대체로 윤내현 교수님이 정립한 고조선사를 요약해주신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고조선사에 있어서는 윤내현 교수님을 대적할 자가 학계에 없고
이미 수년 전 상고사대토론회에서 드러났듯이 젊은 고고학자들도 기존설에서 점차 서쪽으로 만번한을 이동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덧붙이면

1) 하남성과 산동성 일대의 신석기 후기 문화인 용산문화의 경우 현 요동반도 끝 여순/대련 일대와 교류양상이 나타난다는 것

2) 상나라 족속이 서주가 성립한 후에 산서성과 하북성 남부의 경로를 거쳐서 현 하북성 일대에 정착하였고 비교적 수세기 그곳에서 존속한 것이 물질문화상으로 확인이 된다는 것

3) 한후(연나라 사람이 쌓은 한후의 성)의 경우
ⓐ 산서성 한성현에 있었다
ⓑ 하북성 방성현에 있었다
ⓒ 산서성에서 방성현, 즉 하북성 일대로 이주하였다

등이 병립하는데 대체로 세번째 견해가 고려되고 있다는 것
이 때에는 융족이 강성하였던 때이고, 그 다음 세기에 서주가 견융의 침입으로 망함
발/맥이 산서성과 하북성에서 나타나고, 예의 경우 수경주의 예수, 예읍 등을 고려했을 때에
방성현에 한후의 성이 있고, 이들이 맥과 퇴(추)를 지배한 것으로 보면 공간감각적으로 일치하고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나라가 BC 8세기 말이나 돼서야 문헌에 나타나는 것이 설명이 됨

이것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삼조선 설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관건

아무튼 저는 이것과 옥황묘문화를 동호로 보는 제 연구 가설을 연결시켜서
고조선사의 서계를 설명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울티마툴레 21-08-21 18:25
   
감방님의 연구가 완성되면 서기전10세기부터 서기전 1세기까지 고조선의 서변에 대해 비정이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그간 개발사업을 하며 엄청난 고고학적 발굴을 했기에 그들의 시각을 배제하고 살펴본다면 문헌과 유적이 일치하는 연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감방친구 21-08-21 18:30
   
사실 맥락적으로는 윤내현 교수님의 손바닥 위에서 놀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나와있는 주류, 비주류, 재야 연구자들의 연구들을 조율해서 봐도 가닥이 잡힐 거에요

저는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다른 기존 연구 참고 안 하고 사서만 가지고 하고 있어서 ;;
               
울티마툴레 21-08-21 18:45
   
기존학계의 연구는 기원후 5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우리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 역사는 손을 놓았죠.

윤내현교수님 연구는 기존학계의 이런 관성적 연구에 경종과 조종을 울리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 윤교수는 기원전25세기부터 기원전1세기까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 김상님 연구는 기원후1세기부터 5세기까지 요동과 한반도로 축소된 우리민족의 활동을 잘 보여준다고 봅니다.


만약 감방님의 연구가 결실을 맺어진다면 두분의 연구결과가 하나로 통합되고 기존학계의 5세기이후의 훌륭한 성과까지 통합되는 결과를 볼 것으로 생각합니다. 홧팅하셔요.
울티마툴레 21-08-21 18:21
   
간단히 말하자면 수구리님이 다루는 지역은 전국시대말기진초에 이미 고조선의 서변에서 없어져 당시 중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일어난 곳으로 보입니다. 이 당시 고조선의 서변은 이미.난하일대로 고착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한군현설치로 인해 사기가 작성된 시점에선 이미 완전히 서한의 땅으로 고착되었을 것이고 당시 고조선의 서변의 경계는 대륙하내지 요수였다고 보여집니다.
     
감방친구 21-08-21 18:29
   
하북성 남부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북성 북부까지는
BC 5~4 세기와 그 이전이라면 고려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수구리님은 BC 3세기부터 AD 1세기 초까지
하북성 전체에 고조선과 예맥조선이 동서로 양립해 있었고
그 남쪽인 산동성과 강소성에 삼한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BC 5~4세기의 경우
- 해당 시기의 것으로, 하북성 보정시 일대에서 세형동검이 발굴된 바 있음
- 연하도문화가 하북성 보정시에서 북경시 일대로 진출하는 시기

세형동검을 전쟁의 결과(전리품)로 본다면 연하도문화 세력이 하북성 북부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전투를 치룬 그 상대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죠
          
울티마툴레 21-08-21 18:39
   
전체적으로 보면 당시 생산력이 가장 높았던 황하유역을 선점한 세력이 북부에서 남하한 세력의 초기우세를 이겨내고 점점 북쪽으로 전진한게 동아시아의 기원전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산력이 근 2천년동안 2차산업혁명(전기의 발명과 발전)이전까지 중국지열 왕조들을 세계적 왕조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수구리님은 갈석산위치 비정에서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갈석산은 진황도시가 맞습니다. 그리고 진장성 동단도 거기 근처입니다. 문헌적으로는 만번한을 잘못 비정한 것 같습니다. 만번한을.경계로 고조선과 연이 경계했고 뒤이어 중국의 왕조교체기에 다시 난하로 이동했다가 위만조선 멸망후 현 요하까지 후퇴했다고 봅니다.

즉 고조선이 북경일대를 지배했으나 전국연의 성장으로 후퇴하여 난하일대에서 경계를 한게 진개전쟁의 결과라고 봅니다.
               
감방친구 21-08-21 18:56
   
저는 진시황과 한무제, 진과 전한의 갈석산이
현 진황도시 창려현 갈석이라는 데에 회의적입니다

사기와 한서 등의 관련 기록들을 보면
지금 창려 갈석으로 보기에는 뭔가 거리나 방위나 일정이 맞지 않습니다

당시 황하는 현 천진시에서 바다에 들어갔고
천진시와 창주시는 바다였으며
당산시의 만곡지대 역시 바다였으며
북송 때까지 북경과 천진 사이의 랑방시가
연안 늪이었던 것으로 보면
랑방시 역시 바다거나 늪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협우갈석을 지나칠 수가 없죠

조이(도이)가 갈옷을 가지고서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온다

하는 거

그래서 저는
현 창려 갈석은
황하의 입해처가 현 창주시 남쪽으로 바뀌는
후한 말ㅡ조위 시대에 비정된 갈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래의 갈석은
하북성 보정시 쪽으로 보는 기존 재야 주류설을 선택하였습니다

또한
염철론이었나 전국책에서
두 곳의 갈석
즉 연 동쪽 갈석, 연 남쪽 갈석
이렇게 두 곳이 언급되는 까닭에

현 형태시, 또는 한단시 어드메로 보는,
그러니까 수구리님(석가장시)과 비슷한 갈석 비정을
저 역시 보유하고 있습니다
                    
울티마툴레 21-08-21 19:18
   
진황도시 갈석산에서 진시황시대 비문이 출토되었습니다. 사실상 이미 1976년에 종결된 논쟁입니다.
                         
감방친구 21-08-21 19:23
   
그 사실상 종결된 논쟁을 50년 가까이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곡절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황도시 창려 갈석의 위치를 잘 보세요

난하 동쪽에 있죠?

고대에는 진황도시 해안선이 더 짧아서
거기서 바다가 보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난하가 요수라면서요?
고조선의 서변이고

그 지역을 상하장으로 본다해도
지나치게 멀고 변방인데
진시황과 진 이세가 과연?
                         
울티마툴레 21-08-21 21:28
   
예 그렇긴한데 난하를 둘러싸고 지속적인 격전이 벌어져 진개전쟁이후엔 대충 만번한을 경계로 했다고 봅니다. 즉 고조선의 요동이 저들 수중에 떨어진것이지요
                         
감방친구 21-08-21 21:43
   
그게 아니라
만번한이 현 진황도시 일대였을 가능성이 있고
연은 연소왕 사후 다시 약해졌고
조선은 잃었던 땅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죠

더구나 bc 200 년 전후의 위만조선은
더욱 영역과 세력을 확장했죠
                         
울티마툴레 21-08-21 22:16
   
“위략”에 의하면 진개의 고조선 침략전쟁이 있은 후에 연국은 고조선과의 국경을 滿.番汗(만.번한)까지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만.번한의 위치가 확인되면 국경선의 변화를 알수 있게 된다.. 만.번한의 위치는 “한서”“지리지”와 “수경주”의 기록을 통하여 입증할 수 있다. “한서 지리지 요동군조”에는 文.番汗(문.번한)의 두 縣名(현명)이 보인다. 이 문.번한은 “위략”에 보이는 만.번한 이라는데 이론이 없는데, 동한시대에 이르면 文縣(문현)은 汶縣(문현)으로 바뀐다. 文. 汶. 滿(문.문. 만)은 중국의 동남부 지역에서 통용되는 吳音(오음)으로는 동일한 음이 된다. 古音(고음)이 주로 변경지역에서 오래 보존되어 내려온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때 이 세 문자는 고대에 동일한 음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文縣(문현)과 番汗縣(번한현)이 항상 나란히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들은 연접되어 있었던 지역의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서 지리지 번한현”의 반고 주석에는 그곳에 패수가 있다고 하였으며 응소의 주석에는 汗水(한수)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경주 유수조”를 보면 유수의 지류로 汗水(한수)가 있다. 그런데 유수는 지금의 난하의 옛 명칭이므로 결국 패수와 한수는 난하의 지류였을 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만.번한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있었던 지명인 것이다.

만번한은 난하일대 지명이 맞다고 봅니다
                         
감방친구 21-08-21 22:37
   
그러니까
저 역시 몇 가지 사서 기록과 정황으로 미루어
만번한이 현 진황도시 일대에 있었다고 보고 있는데
윤내현 교수님 역시 그렇게 보고 있잖아요

아시다시피
진황도시 창려현 갈석산 서쪽에 난하가 흐르고요
이 난하는 고대 요수 중 하나고요

그러니 그 유물이 과연 진나라 당시의 유물이 맞느냐 의심이 드는 겁니다
                         
위구르 21-08-22 00:02
   
진개의 침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있었더라도 우리가 얼마 안 가 땅을 수복했을 것 같습니다
비좀와라 21-08-21 20:28
   
홍산문명의 특징이 청동기 유물이 적고 옥玉의 유물이 많아서 중국의 학자들은 홍산문명을 옥기 문명이라고 합니다.

홍산문명은 기본적으로 석기문명 시대의 문명 이에요.

동아시아 청동기 문명은 내몽골 지역에서 시작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 몽골지역은 동아시지역에서 가장 발달된 지역이라고요. 반면에 중원지역은 야만의 지역이고요.

제발 좀 중화주의식 사고방식 좀 버려요.

그리고 생산량이 많아 질려면 단단한 농기구가 필요 한 것은 당연 상식으로 철기 시대나 되어야 생산력이 발달 되는 것 이고요. 청동기는 워낙 비싼 금속이라 농기구로 사용 하지 못 합니다. 물러서 못 사용 한 것이 아니라고요.

청동이나 황동도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데 주석이 당시 황금보다 훨씬 비싼금속인데 어떻게 농기구에 사용 합니까? 지금에서야 영국 제국주의자가 말레아시아 에서 대량의 주석 광산을 개발해서 싼 거지 옛날에는 황금보다 서 너 배 비싼 금속이 주석 이었거든요.

그리고 동아시아 에서 주석이 나오는 지역이 연해주와 운남 지역인데 이 지역을 장악한 집단이 치우집단 이었고요. 당연히 동아시아에서 청동기 문명을 일으킨 집단은 치우집단이고 이거 기록에 나오거든요?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부를 가진 집단 역시 치우집단 이고요.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침공한것은 주석의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철이라 말하는데 철은 남쪽에도 많이 나와요. 그리고  당연히 구리의 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월남 북부를 한나라 시기에 공격하는 것 이고요.

삼국의 종을 보면 중국은 철종 한국은 동종 그리고 일본은 목종 입니다. 우리야 계속해서 연해주를 장악 했으니 주석을 얻을 수 있었던 반면에 중국과 일본은 불가능 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홍산문명에서 많은 옥기가 출토 되는데 이 옥기는 연옥이고 서안 쪽에서 출토 되는 흑피옥은 경옥으로 연옥이 오래되면 경옥이 되니 흑피옥 문명이 더 오래 된 것이고요.

이 둘의 옥기의 원산지는 에덴 즉 화전옥 이에요.

그리고 산해경에서 조선은 천독이라 하고 다른 기록에는 천독과 천축을 같다라고 나오죠. 그리고 티벳은 지리적으로 천축에 속해요. 타밀족과의 연관도 아마도 초장기 고조선이 티벳에 있었던 시기에 관련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요.

이 시기에 티벳에는토욕혼이란 기마민족이 있었던 시기로 이 토욕혼은 선비와 같은 종족 내지는 사촌간으로 위그루도 이와 같은 종족이죠.

마지막으로 북경의 옛 이름은 북평입니다. 그리고 북평이 연경이고요.

이 북경위로 만리장성이 있는데 동북쪽에서 중원으로 진출 할려면 산해관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지리적으로 그래요. 산해관이 뚫리면 방어선으로 삼을 자연지물이 전혀 없고요. 그 반대로 중원에서 동북으로 진출 할려면 산해관을 거쳐서 고구려 신성 등이 있는 지역을 거쳐야 합니다.

당연히 요동성은 산해관이나 그 근처 라고요.
     
울티마툴레 21-08-21 21:30
   
너무 많은 얘기를 하셔서 정리가 안되네요. 따로 발제글 올려주세요
     
위구르 21-08-22 01:00
   
유익한 내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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