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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1 17:14
[한국사] 고조선 영토변화(춘추전국 시대 하북성은 고조선 영토였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217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한국고대사를 풀 ◐열쇠◐가 숨어있다

※주) 낙랑군과 위만조선, 연나라 장성, 요동군, 요서군이 하북성 중부인 석가장시와 형수시에 있었다고 BC 91년 완성된 사마천 사기와 서기 90년 경에 완성된 한서지리지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춘추시대 연燕 제濟 진秦 등 제후국의 봉지는 100리(40km)를 넘지 않았고

고조선 땅을 빼앗기 전에는 100리(40km) 정도가 연燕나라 영토로 추정된다

1) 기원전 134년에 주부 언 (主父偃, ? ~ 기원전 125년?)이 황제(한漢무제)에게 권유하여 말했다.
“옛날(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은 봉지가 1백리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강약의 형세로 통제하기 수월했습니다"  
[출처] 112-6/7[史記列傳(사기열전)]권112.平津侯·主父列傳(평진후주보열전)(6/7)②主父偃(주보언)

2) 춘추시대 제 환공: 적인(狄人)이 〔제(齊)를〕 공격하였다. 환공(桓公)이 제후들에게 말하기를, “제를 도와 〔적을〕공격하기 바란다. 제후들이 허락한다면 큰 제후국은 전차 200승(乘)과 병사 2,000인을, 작은 제후국은 전차 100승(乘)과 병사 1,000인을 보내기 바란다.”고 하였다. 제후들이 모두 허락하였다. 제는 수레 1,000승을 〔내보내고〕 병졸은 먼저 연릉(緣陵)으로 보내었는데, 후고(後故)에서 전쟁하여 적을 패퇴시켰다. 〔전리품으로 얻은〕 전차·병기와 재화는 작은 제후국에 주었으며 〔제와〕 가까운 큰 제후국에는 현(縣)을 나누어 주되, 국읍에 들어와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출처] 『管子』 卷第七 大匡 第十八 內言 一 五年諸侯附. 狄人伐.

3) 2세 원년(기원전 209년) 7월, 빈민가 백성들을 징발하여 수자리로(변방으로) 보내
어양(漁陽)을 지키게 하여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게 되었다.
[출처] 48-01/06[史記(사기)세가(世家)] 권48.陳涉世家(진섭세가)(01)<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

※주) 영토는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에 나타나는 제후국들의 주 활동 무대를 중심으로 작성

  

■ 1. 춘추시대의 주周나라 영토[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425년 ]

1) 춘추 시대 주 제후국들은 북쪽으로 제하濟河(徒骇河), 안양시安陽市,임분시臨汾市 를 넘지 못했다
2) 연燕나라 계薊는 하남성 하수河水부근으로 추정된다
3) 조趙나라가 중모中牟(학벽鶴壁서쪽)에 처음 도읍한 년도를 영토관점에서 춘추시대 종료를 보았다

■ 2. 삼진三晉시대의 주周나라 영토[ 기원전 424년 ~ 기원전 296년 ]

1) 진(晉)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조(趙)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가 삼진三晉이다
2) 중산中山이 멸망한 년도를 영토관점에서 삼진三晉시대 종료로 보았다
3) 연燕나라 계薊가 서기전 697년에 하남성 하수河水부근에서 하북성 거록현으로 이동한 것이다
[출처] 「춘추좌전」 BC697 燕桓侯時被迫遷都臨易以躲避山戎的侵擾 연환후때 산융(山戎)의 침략을 우려하여 임역(臨易)으로 천도하였다.

(산융을 피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산서성 중부인 장치시와 진성시가 산용이다)

 

※주춘추전국 시대 하河는 황하를 나타내며 하내, 하서, 하동의 하河는 황하(하수河水)이고

                          산山은 태행산(태행산맥)으로 산서, 산동에서 산山이 태행산(태행산맥)이니
                          산융은 태행산의 융적중산은 태행산 가운데(중中)으로 추정할 수 있다

 

4) 보정시의 연하도 문화는 고조선 문화다 

조나라와 연나라가 하북성 남부로 진출하자 

한단시와 학벽시에 있었던 은나라 유민과 고조선 세력이 북상하여 보정시의 연하도 문화를 만들었다 


■ 3. 전국시대의 주周나라 영토[ 기원전 295년 ~ 기원전 221년 ]

1)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한 년도를 영토관점에서 전국시대 종료로 보았다
2) 삼진三晉시대 말에 연장성燕長城과 조장성燕長城을 쌓았고 장성長城이 고조선과 경계가 되었다

 

3) 고조선이 연燕나라 장수 진개에게 하북성 중부 땅을 빼앗겼고(석가장시와 호타하 남쪽 지역)

    연나라는 산서성 양천시에서 하북성 호타하 강물을 따라서 연장성을 쌓았다

 

    (가) 사기의 진섭세가에 '한漢나라 2세 원년(기원전 209년) 7월, 빈민가 백성들을 징발하여

    수자리를 보내 어양(漁陽)을 지키게 하여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게 되었다.'고 했으니

    어양군에 대택향이라는 고을이있고, 대택향은 대륙택 근처의 고을로 보이고,

    대륙택은 형수시 북부인 거록현과 융효현 서쪽과 북쪽지역이니 어양은 석가장시 남쪽이다

 

    (나) 한서지리지에  '연나라는 동쪽으로  어양, 요서, 우북평, 요동이 있고 서쪽에는 상곡, 대군, 

    안문이 있다'고 했으니 동서를 나누는 기준이 태행 선맥으로 보이고 동쪽은 태행 산맥 동쪽인

    하북성, 서쪽은 태행산맥 서쪽인 산서성으로 본다

 

    따라서 대군과 안문은 전국시대 조나라 땅이고, 전국시대 연나라 땅이 상곡인데..

    석가장시 근처의 고대도로 정형을 통해 어양과 왕래할 수 있는 태행산 서쪽은 상곡인 양천시다

 

    (다) 중국 문헌에 따르면 연燕장성 동쪽 시작점인 양평襄平 무수(武隧,武隧)로 이름이 바뀌었고,

    형수이시衡水市 우창현武強縣 북서 방향의 

    안평현安平縣이 연장성 진장성의 시작점인 요동의 양평襄平이다 

 

     따라서 연나라 5군의 동쪽인 요동은 하북성 중부인 형수시衡水市 안평현安平县 부근이다

 

4) 기원전 3세기 초의 당산시와 난하 동쪽 지역의 연하도 문화는 고조선 문화다 

    조나라에 의해 중산국이 멸망하고, 연나라가 고조선 땅 1천여리를 빼앗아감에 따라

    산서성 중산국 고조선 세력과 하북성 호타하 부근의 고조선 세력이

    당산시와 난하 동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연하도 문화를 만들었다

 

 ■ 4. 진시황의 진秦나라 영토[ 기원전 220년 ~ 기원전 108년 ]

 

1) 한漢 무제武濟가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년도를 영토관점에서 진시황의 진秦나라 종료로 보았다
2) 진시황의 진나라는 전국칠웅의 영토를 병합했다
3) 진秦나라의 만리장성을 고조선과 경계로 보았다
4) 진나라와 고조선과의 동쪽 경계는 제하濟河와 호타하滹沱河로 보았다

 

※주) 진시황본기에서 동쪽 경계는 동해와 조선에 접한다고 했으니...
섬서성 함양관점에서 제하濟河와 호타하滹沱河 북쪽도 동쪽이다

 

개인적으로는 진시황의 진나라 동쪽 경계는 

1) 조선은 하북성 창주시에 있었던 예맥조선이고,

2) 동해는 동쪽 바다로 고대 바다는 호수나 강이니  산동성 서쪽의 덕주시의 발해호수와  소양호를 동해로 본다

■ 5. 전한前漢의 영토[ 기원전 107년 ~ 기원후 8년 ]

 

1) 한漢 무제武濟가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년도를 영토관점에서 전한前漢의 시작으로 보았다
※주) 전한前漢은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8년까지다

2) 한漢나라는 진시황의 진秦나라 영토를 이어 받았다

3) 한무제 시기( 기원전 128년)에 예薉나라 임금인 남려가 항복해서 창해군을 설치했는데...
예薉가 예맥국穢貊國이며 창해군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창주시滄州市다. 


※주) 사기 평준서에 '예의 임금이 항복해서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燕), 제(齊) 사이가 바람에 휩쓸리듯 소란'했다고 했으니

하북성 연나라와 산동성 제나라 사이인 창주시가 창해군이며 예인 예맥조선이다
창해군 설치 2년만인 126년에 창해군이 폐지된 것은 예맥국이 한나라를 몰아낸 것으로 보인다

4) 한 무제(漢 武帝) 원삭(元朔) 2년(기원전 127년)에 황하를 따라 흉노와 방어선을 쳤다는 것은...
섬서성 북쪽을 방어한 것이고, 상곡군의 구불구불하고 외진 조양일대의 땅을 포기한 것
임분시臨汾市와 운성시運城市를 제외한 산서성 전부를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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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툴레 21-08-21 18:29
   
한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수구리님은 갈석산이 어디라고 보시는지요
     
감방친구 21-08-21 18:35
   
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더군요

"갈석碣石이 장석嶂石이니 하북성河北省 석가장시石家莊市 찬황현贊皇縣 장석암嶂石岩"
          
울티마툴레 21-08-21 18:57
   
ㅠ 이건 아닌데요. 조조가 갈석에 올라 지은 시가 있고 또 진 2세황제가 신하들과 갈석을 방문하여 서명한 비석이 진황도시에서 발굴되었는데....
               
감방친구 21-08-21 19:00
   
그 유물은 근데 사실 쫌 회의적입니다
                    
울티마툴레 21-08-21 19:20
   
중국에서 유물사관이 득세할때 발굴된 거죠.
유물사관 방법론이 곧 실증주의입니다.
그리고 윤내현교수는 중국고대사전공입니다.
치밀한 검토를 하였기에 맞다고 봅니다.
                         
감방친구 21-08-21 19:26
   
님 의견이나 윤내현 교수님 의견이 무조건 그르다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다르게 본다, 보려 한다는 것이죠
영종햇살 21-08-22 15:47
   
.武遂城 在府南。战国时韩邑。

무수성은 평양부 남쪽에 있다. 전국 시대에 한韓나라 읍이였다.
     
수구리 21-08-22 20:35
   
무수가 여러군데입니다
한나라 무수도 있고 연나라 무수도 있습니다 한자도 똑 같습니다

제가 거론한 무수는 연나라 무수입니다
영종햇살 21-08-23 08:41
   
어양군 위치 문제입니다.
님이 비정한 태행산맥 동쪽에 어양군을 가져다 놓으면.....
그 위치에는 고하라는 강줄기가 있을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님이 비정한 어양군 지역에는 산서성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흐르는 청장수같은 강이
지나갑니다.(서쪽에서 동쪽 또는 동북쪽으로 하북성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고하는 청장수같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에 물줄기가 끊기게 됩니다.
     
수구리 21-08-23 10:17
   
지금부터 2천년 전의 강이나 강의 흐름이 변했을 수 있기에
명확하게 확인된 강이 아니면 강이름이나 강의흐름으로 위치를 비정하면 않된다고 봅니다

비정된 위치를 검증하는 관점에서는 필요하지만
강의 흐름이 다르다고 비정된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명확한 근거는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드리면
청장수 상류는 진중시 유사현左權縣 에 있습니다 동남쪽  동쪽향으로 흐르다가
 한단시 부근에서 탁장수와 합류합니다

따라서 청장수는 양천시에 있는 강이 아닙니다
          
영종햇살 21-08-23 10:30
   
지금 상곡군 얘기가 아니고 어양군 얘기입니다.
한서지리지에 고하가 어양군을 흐른다고 나옵니다.

님이 태행산맥 동쪽에 어양군이 있다고 했으니 고하도 태행산맥 동쪽에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그렇게 흐르는 강이 없다는 겁니다.
               
수구리 21-08-23 10:33
   
고하가 어느강인지 모르는데 고하를 확정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흐름이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청장수 말씀하셨으니 청장수 설명을 드린거고요
영종햇살 21-08-23 09:23
   
한서지리지
漁陽, 沽水出塞外,
東南至泉州, 入海.
行七百五十里. 有鐵官.
莽曰得漁.
님의 주장에 의하면 태행산맥 동쪽에 로현이 있어야합니다.
태행산맥 동쪽에 로현이 있다는 역사 기록은 없습니다.
     
수구리 21-08-23 10:22
   
태행산맥 동쪽에 한나라 시대에 로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한나라 시대의 기록은 확인했는지요 제시해 주시면 제가 확인해 보시겠습니다

단 서기 200년 이후의 기록은 위치 이동 가능성이 많기에 저는 사료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단수히 참고용으로 만 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황 근거로만 활용합니다)
          
영종햇살 21-08-23 10:33
   
그러니까 로현이 태행산맥 동쪽에 있다는 기록을 제시해 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수구리 21-08-23 10:35
   
그러습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토론은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사료를 갖고 사료내용을 토론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어양 상곡 위치를 비정한 것은 모르는 강의 흐름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고요
사기 내용을 지리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비정했으며

고찰한 내용은 이미 게시글에서 제시했습니다
영종햇살 21-08-23 11:04
   
강 흐름을 알수있는 수경주라는 좋은 지리서가 있는데,
200년이후의 기록이라고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강흐름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황하 주변의 강흐름은 바귀었어도,
산서성을 흐르는 강들은 황하의 범람과는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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