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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14 13:49
[한국사] 질문ㅡ삼국지 위지 동이열전 고구려조에 나오는 조선은 정체가 무엇일까요
 글쓴이 : 울티마툴레
조회 : 853  

고구려에 대한 기록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高句麗-06/01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남쪽에는 조선과 예맥이 있고, 동쪽에는 옥저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부여에 접해 있다.






동예에 대한 기록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濊-02/01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接, 東窮大海, 今<朝鮮>之東皆其地也.

예는 남쪽에 진한이 있고, 북쪽으로 고구려와 옥저와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와 닿아 있어, 지금 조선의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







여기 나오는 조선은 무엇일까요? 낙랑군 조선현이라면 분명 조선현이라고 했을텐데 단순히 조선이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구리님 덕분에 생각해보니 여기서 <금>조선은 현재의 조선이란 것인데 그럼 과거의 조선은 난하근방에 있었는데 서북한지역으로 옮겨와서 그리 표현한 건 아닐까 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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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툴레 21-08-14 13:59
   
참고로 윤내현은 춘추전국시대 주왕실처럼 명목만 남은 조선왕실이라고 하고 김상은 독립국 낙랑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원문해석을 읽어보면 마치 독립국이지만 아주 소국이어서 기술조차 제대로 안한 느낌이더군요. 위국인인 진수입장에선 당연한 것이지만요. 춘추전국시대 문헌중 당대에 살아남은 있던 주왕실을 아주 부실하게 기록하거나 아예 기록하지 않은 것처럼요.
수구리 21-08-14 14:06
   
1) 삼국지 위서동이전 예에...
"濊(예)는 남쪽으로는 辰韓과, 북쪽으로는 高句麗·沃沮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大海에 닿았으니"

고구려 남쪽에 있다는 예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예의 동쪽은 대해이니 고구려 남쪽인  예의 서쪽으로 추정되는 조선은 없네요
     
수구리 21-08-14 14:12
   
따라서 삼국지 완성후 100년 이후에 편찬한 후한서를 보면 조선을 찿을 수 있을까요?

1) 후한서 고구려에
고구려는 遼東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朝鮮과 濊貊​, 동쪽은 沃沮, 북쪽은 夫餘와 接境하여 있다.

삼국지의 고구려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네요

2) 그러면 후한서 예濊를 보겠습니다
濊(예)는 북쪽으로는 高句驪·沃沮와, 남쪽으로는 辰韓과 접해 있고, 동쪽은 大海에 닿으며, 서쪽은 樂浪에 이른다.

예濊의 서쪽에 낙랑이 있다는 삼국지에 없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수구리 21-08-14 14:15
   
후한서 자체적으로 보면
고구려의 남쪽에 있다는 조선은 낙랑군이고 옛날 위만조선으로 추정할 수 있고요

따라서 삼국지의
고구려 남쪽에 있다는 조선은
후한서 내용으로 보아서 낙랑군이고 옛날 위만조선으로 보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울티마툴레 21-08-14 14:20
   
용법을 보면 낙랑군은 낙랑군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닌거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현을 경계로 표현한 용법은 보지 못했습니다.
          
위구르 21-08-14 14:36
   
정말로 있었으면 조선 예맥이 아니라 락랑 대방이라 기록했어야 합니다
               
수구리 21-08-14 14:48
   
고대인 또는 다른사람의 표현 내용이나 표현 방식을
현대에 사는 우리기준 또는 개인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지금 현대인들도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을 해서 욕을 먹는 대선주자도 있지요)

문자 또는 문서에 나타나 표현이 모두 맞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는 개연성을 갖고  사서나 문헌 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구리 21-08-14 14:53
   
따라서
문제는 고대 사서를 읽어면서
동일한 내용을 정반대로 표현한 2개의 문헌이 있다면....

1) 지금 우리가 이해나 해석을 잘못한 것이 아닌지 최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고,
2) 이해나 해석을 정확히 했다는 확신이 든다면 2개중 1개는 잘못 서술한 내용이기에...
 옳은 문헌과 잘못 기술된 문헌을 구별할 수 있어야겠지요
          
감방친구 21-08-14 15:40
   
후한서 동이전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내용을 저본으로 하되

후한시대의 시기에 맞지 않거나 맥락상 이상한 것은 빼고
기술 상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은 추가하고
이상하다 싶은 것은 수정하기도 합니다

즉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예의 서쪽에 조선이 있다고 했는데
예전에서는 서쪽에 대한 기술이 빠져 있으니 후한서에서는 추가한 것입니다
스파게티 21-08-14 15:39
   
저때 요동이  지금 요동일까............ 이걸 확실히 가르치면 좋은데,. 쩝
     
감방친구 21-08-14 15:41
   
삼국지 고구려 전의 요동은 현 요양시로 봐도 말이 되고 현 진황도시 노룡현으로 봐도 말이 됩니다
     
수구리 21-08-14 15:49
   
요동이나 고구려 위치중에 명확한 것이 있으면 좋은데

요동이 어딘지 모르고, 고구려 위치도 어딘지 모르니..

그리고 고구려가 수천리인데..
고구려 수천리 중에서 어디를 기준으로 삼았을까요? (서기 300년 기준 고구려 수도? )
서쪽 끝, 동쪽 끝, 중앙, 수도 위치....
     
울티마툴레 21-08-14 18:11
   
문헌은 항상 용례를 살펴야 합니다. 고대 지식인들이 아마도 현대 일반인을 넘는 일관성을 가졌다고 보는게 맞지않나요
감방친구 21-08-14 16:28
   
삼국지의 성격을 우선 잘 살펴봐야 합니다.
삼국지를 쓴 진수는 촉한 사람이었으나 서진이 들어서자 발탁되어 서진에서 관리 생활을 하면서
삼국지를 씁니다.

이에 따라 삼국지는 조위를 정통으로 보고서 조위 통치자들은 본기로 엮은 반면에 촉과 오의 통치자들은 열전으로 분류하여 기술합니다

진수가 삼국지를 쓸 때의 서진의 형편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반영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맥락은,

조위 때에 영역으로 삼은 오한과 공손씨의 영역인 현 진황도시를 포함한 그 바깥 지역이
서진 때에 이르러서는 모두 단/우문/모용선비의 판도가 되어서
서진은 실질적 지배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모용선비(모용섭귀→모용외)의 활동이 극심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서진에서는 당빈이 갈석산까지 장성을 수축해서 이들을 방어하였으며
함녕 2년, 즉 서기 276년에는
창려, 요동, 현토, 대방, 낙랑 등의 군국(郡國) 5 개로 평주(平州)를 설치하면서
현 당산과 진황도시에 이들 군현을 교치하여 옵니다

여기에
사기색은 태강 지리지 인용문과 진서 지리지 수성현 설명의 곡절이 있다는 것이
제가 이곳 동아게서만 수년째 기회 있을 때마다 펼쳐온 주장의 골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아게 유저들 그 누구도 이러한 제 주장에 지난 수년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군요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하여

서진 시대에는 현 진황도시의 동북부로부터 그 바깥은 모용선비의 판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역의 상실은
위나라를 계승한 서진의 위신에 큰 흠결입니다

따라서

현 서북한을 낙랑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기술한 것입니다

낙랑은 이미 현 난하 지역으로 교치되면서
서진 소유의 낙랑과 대릉하 지역 모용선비 소유의 낙랑 두 곳이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현 서북한 지역을 낙랑이라 일컬을 수 없었습니다

낙랑이 아닌 조선이라는 표현은 훨씬 더 노골저기고 강한 표현입니다

낙랑은 조선의 일부 지역이지만 조선은 낙랑을 포괄하는 훨씬 광대한 개념이고 상위 개념인 까닭입니다

조위 시절에 비하여 크게 상실한 동북지역에 대한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리고자
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기존 낙랑 유민들이 있던 한반도까지 연고권을 주장한 것으로, 이는 서진의 삼국지판 동북공정입니다

이러한 연고권 주장으로서의 조선 사용은
후한서가 계승하였고,

당 태종 1차 고구려 원정 직전에 나온
한원(의 고려기)에서도 계승하였으며

또한
당 태종 1차 고구려 원정 직전에 나온
중국 최초의 관찬 정사인 진서에서는 동이전에서 '고구려전'을 수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승하였습니다

진서가 고구려전을 수록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에는 이미 고구려가 조선과 예, 옥저 등을 영역으로 삼고 있다(한원 고려기)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고구려전을 수록하지 않은 것은

그 고구려 땅 전체가
본래 중화의 땅이라는 연고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울티마툴레 21-08-14 18:17
   
설득력있는 논리입니다. 남은 질문은
1. 중화란 개념이 언제적부터 성립했는가 입니다. 당나라는 분명 우리가 알고있는 한족이 아니었는데 과연 중화란 개념이 있었을까요?
2. 과연 삼국시대 지식인들이 동북공정을 생각할 정도의 민족의식이 있었을까요? 자국중심주의는 있었다고 봅니다만 민족의식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감방친구 21-08-14 18:26
   
중화, 또는 화하 개념의 정립은 공자의 상서(서경)와 춘추가 쓰여진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로
관찰됩니다

당시 중국은 주나라 중심의 천하질서가 파괴되어 이른 바 워링 스테이트, 즉 전국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이었습니다

공자는 이 혼란은 다시 주나라를 중심한 질서 정립으로 바로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서뿐만 아니라 그 후대의 사서나 지리서, 사상서, 또한 춘추의 주소(주석)서 등이
본래 하상주 시대의 중국 영역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중국 영역을 투사하기 시작하였고

어느 경우에는 진나라와 전한 시대의 영토 성취를 반영하여 보기 시작합니다

이것의 완성이 사마천의 사기입니다

중국의 위촉오는 중원에 대한 정통성과 패권을 둔 다툼이었습니다
          
감방친구 21-08-14 18:32
   
//과연 삼국시대 지식인들이 동북공정을 생각할 정도의 민족의식이 있었을까요? 자국중심주의는 있었다고 봅니다만 민족의식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른 바 춘추필법은 공자시대부터의, 저들의 유구한 전통이자 수법입니다
우리는 이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고요

오날날과 같은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漢 정통론에 입각한 중화와 外夷의 분리 개념은 뿌리가 깊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날과 같은 민족주의적 개념으로서 동북공정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비유로서 동북공정을 언급한 것입니다

위의 댓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삼국지 조선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누구도
그 표현이 한원에도 있다는 것을 언급한 유저가 없습니다
또한
진서를 거론한 유저가 없습니다

오직 저만 이 둘을 언급하며 설명을 드렸는데
그 이유는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이들 사서와 주변 문헌을 이미 지난 해에 장백산과 압록수 연구, 그리고 고구려 서계와 평양 연구를 심도 있게 하면서 깊이 다룬 바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민하고도 신중하게 앞으로 다루어야 할 일은
예전에 제가 동아게도 발제한 바 있지만

후한-서진 시대 서북한에서 전개되는 중국계 문화에 대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입니다
               
울티마툴레 21-08-14 19:27
   
백퍼 동감은 아니지마는 이해는 갔습니다
                    
감방친구 21-08-14 20:14
   
그니까 님 견해는 본문 말미에 수구리님 거명하며
한 발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저 역시 애초부터 서북한 지역 낙랑을 조선유민으로 보고 이곳에서 수년째 논리를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제 말의 요지는 왜 갑자기 저곳을 서진 시대에 쓰여진 삼국지와 위략에서  '조선'이라고 지칭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분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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