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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16 02:51
[기타] 중국사료에 나타난 동이 고조선의 충격적인 실체!
 글쓴이 : skeinlove
조회 : 7,016  

학술/ 중국사료에 나타난 동이 고조선의 실체

 

 

최초 확인 “한(漢)족이전에 한(韓)족”



● 우리의 조상 동이는 개벽이래 중국에 살았다.

●동이는 오랑캐가 아니라 동방민족의 뿌리, 동양문화의 주역이다

●강태공, 맹자, 묵자도 동이족.

●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九夷’가 바로 고조선

● 한R28;당 이전 중국의 동이와 한반도의 동이는 동일 민족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여러 ‘고기(古記)’ 등을 인용하고 있어 우리나라 고대국가에 관한 적지 않은 역사서적들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특히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조대기(朝代記)’ ‘삼성밀기(三聖密記)’ ‘삼성기(三聖記)’ 등과 같은 한국의 고대사와 관련한 여러 책들이 거명되고 있어,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외에 우리 상고사를 밝혀줄 기록들이 남아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임진왜란R28;병자호란과 같은 병란을 거치고 또 일제 36년 강점기를 경유하면서 이런 귀중한 자료들이 말살되고 인멸되어 오늘에 전하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동이는 고조선의 열쇠

이처럼 우리 상고사를 밝혀줄 문헌 자료가 극히 제한적인 현실에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국내자료만으로 고조선 역사를 위시한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날 잃어버린 상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남아있는 일부 문헌에 국한하지 않고 국내외 사료(史料)를 광범위하게 조사R28;연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그 동안 자료가 없다는 핑계로 고조선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필자는 우리 역사의 뿌리요 또 반만년 역사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고조선 역사의 복원이야말로 이 시대의 시대적 과제임을 통감하고 먼저 고조선 연구를 문헌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들을 국내외에서 널리 발굴, 조사, 수집, 정리하여 7권의 책을 펴낸 바 있다(‘조선세기’ ‘조선왕조실록 중의 단군사료’ ‘사고전서 중 단군사료’ 등).


이번에 다시 ‘사고전서(四庫全書)’ 경부(經部)R28;사부(史部)R28;자부(子部)R28;집부(集部) 중에서 동이사료(東夷史料)를 발췌하여 ‘사고전서 경부중의 동이사료’ 등 4 권의 책으로 묶고 여기에 주요 내용을 간추린 ‘사고전서중의 동이사료 해제’ 1권을 덧붙여 2500쪽에 달하는 총 5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앞으로 ‘사고전서’ 중에서 치우, 고조선, 복희 부분을 따로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사고전서’에서 이처럼 방대한 동이 사료를 발췌하여 편찬한 것은 고조선은 고대 동이가 세운 대표적 국가로 동이를 추적하면 고조선의 실체를 복원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고전서’는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叢書)로 무려 7만9000여권에 달한다.

 


선진(先秦)시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국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사료적 가치를 국내외가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다. ‘사고전서’ 중 동이 사료 안에는 한국역사R28;동양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에 해당하는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우리 사학계가 이 자료들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고조선사 복원의 길이 열리는 것은 물론, 단절된 부여R28;고구려R28;백제R28;신라의 뿌리를 찾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기대된다. 그러면 아래에서 ‘사고전서’ 동이사료 중에서 동이와 고조선의 실체를 밝혀준 새로운 내용 몇 가지를 골라 설명해 보기로 한다.

 



동이의 터전이었던 중국

동양 문헌에서 동이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서경(書經)’ 주서(周書) 주관편(周官篇)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성왕(成王)이 동이를 정벌(征伐)하자 숙신(肅愼)이 와서 하례했다.(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


성왕은 중국의 서방세력이 동방의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세운 서주(西周)의 제2대 왕으로 주무왕(周武王)의 아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주세력이 집권하면서부터 동방의 이민족(夷民族)을 서주세력과 구분하여 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동이라는 용어가 출현하게 된 배경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서주가 지배하기 이전에 이족이 먼저 지배했고, 따라서 서주의 건국은 동서남북 사방에 퍼져있는 이족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최후까지도 서주에 저항한 것이 바로 동이족이었다.
그렇다면 서주세력이 동이라는 호칭을 쓰기 이전에 동방민족의 본래 호칭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냥 ‘이(夷)’였다. 예컨대 ‘서경’에 등장하는 우이(嵎夷)R28;회이(淮夷)R28;도이(島夷)R28;내이(萊夷)등이 그것이다. 이자(夷字) 앞에 지역명칭을 덧붙여 회하(淮河) 부근에 살면 회이(淮夷), 내산(萊山) 밑에 살면 내이(萊夷)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夷)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여(黎) 즉 구려(九黎)가 이(夷)의 원형이었다고 본다.

 


그러면 이러한 이족(夷族)들은 언제부터 중국에 살게 됐을까. ‘사고전서’ 경부 ‘모시계고편(毛詩稽古編)’ 16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 ‘서경’의 우공편(禹貢篇)을 살펴보면 회이R28;우이R28;도이R28;내이R28;서융(西戎)이 다 구주(九州)의 경내(境內)에 살고 있었다. 이것은 시기적으로 우(虞)R28;하(夏)시대로서 중국 안에 융적(戎狄)이 존재한 것이 그 유래가 멀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리고 이 자료는 이어서 이들 이적(夷狄)들은 사실 멀리 당(唐)R28;우(虞)시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개벽(開闢)이래로부터 중국 땅에 살고 있던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또 이들은 어느 국한된 지역이 아닌 전 중국에 걸쳐 사방에 골고루 분포되어 살았으나 나중에 화하족(華夏族)이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동방에 사는 이(夷)를 동이, 서방에 사는 이를 서융, 남방에 사는 이를 남만, 북방에 사는 이를 북적이라 폄하하여 불렀던 것이다. 실제 삼대(三代)시대 특히 주(周)시대의 순수한 중국이란 9주(九州) 중 연주(兗州), 예주(豫州) 즉 오늘의 하동성과 하남성 정도가 고작이고 나머지는 순수한 중국인이 아닌 동이족들이 함께 사는 땅이었다는 이야기다.

 


동이가 중국의 토착민족이냐 아니면 외부의 침략세력이냐에 대해 고대 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견해가 존재했다. 하나는 동이족이 삼대(三代) 이전부터 중국에 토착민으로 살고 있었는데 진시황(秦始皇)이 이들을 축출했다는 것으로 한나라 때 학자 공안국(孔安國)이 대표적인 토착론자다. 다른 하나는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 융적(戎狄)이 중국에 침략해 들어와 살게 되었다는 것으로 왕숙(王肅)이 주장한 학설이다.


이 두 견해 가운데서 ‘모시계고편’의 저자는 공안국의 견해를 지지했다. 그가 왕숙보다 공안국의 견해를 지지한 이유는, 공안국이 시기적으로 진(秦)나라와 100년이 넘지 않은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가 전해들은 내용이 비교적 정확하리라는 것이 그가 내세운 이유였다. 위의 기록으로 볼 때 동이족은 본래 중국의 변방세력도 아니고, 침략세력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개벽 이래로부터 줄곧 중국 땅에 터전을 이루고 살아온 토착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랑캐가 아니라 동방의 뿌리

‘사고전서R28;사부’ ‘후한서(後漢書)’ 115권에는 “동방을 이(夷)라고 한다(東方曰夷)”는 ‘예기(禮記)’ 왕제편(王制篇)의 내용을 인용하고 나서 이(夷)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夷)란 것은 저(柢)이다(夷者柢也).”
여기서 이(夷)를 저(柢)와 동일한 의미로 풀이했는데 그렇다면 저(柢)란 과연 무엇인가. 저(柢)란 ‘노자(老子)’의 ‘심근고저(深根固柢)’란 말에서 보듯이 일반적으로 근저(根柢)R28;근본(根本)R28;근기(根基)R28;기초(基礎) 등의 의미 즉 뿌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후한서’는 저(柢)의 의미를 다시 저지(柢地) 즉 “모든 만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 태어나는 것(萬物柢地而出)”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땅에 그 뿌리를 두고서 움트고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근(根)R28;묘(苗)R28;화(花)R28;실(實)의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이 만물이 땅에 뿌리를 두고 생장하는 만물저지(萬物柢地)의 저(柢)와 동이의 이(夷)를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저(柢)와 이(夷)를 동일한 개념으로 본 이 고대 중국의 해석에서 동이의 이(夷)는 우리가 그 동안 알아 왔던 오랑캐 이(夷)가 아니라 뿌리 이자, 즉 동방의 뿌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숭고한 뜻을 지닌 동이의 이(夷)자가 어째서 오랑캐 이자로 변질했는지, 우리 스스로 비하하여 오랑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강태공R28;맹자R28;묵자도 동이족

‘사고전서R28;자부’ ‘유림(喩林)’ 27권에는 “대우(大禹)가 동이에서 태어났다(大禹生於東夷)”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태평어람(太平御覽)’ 780권에는 “기(杞)나라는 하(夏)의 후예국인데 동이로 되었다(杞夏餘也 而卽東夷)”라는 기록이 나온다. 기나라가 하의 후예라고 하는 것은 공자도 언급한 사실로, 그 내용이 ‘논어’에 보이는데 이런 기록들은 하우(夏禹)가 동이족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 해준다.

 


‘사고전서R28;자부’ ‘여씨춘추(呂氏春秋)’ 14권에는 “태공망(太公望)은 동이지사(東夷之士)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강태공(姜太公)은 문왕(文王)을 도와 은(殷)을 멸망시키고 서주(西周)왕조를 건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원래 동이지인(東夷之人)이었던 사실이 여기서 증명되고 있다.


‘사고전서R28;자부’ ‘명현씨족언행유편(名賢氏族言行類編)’ 52권에는 “전국(戰國)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묵자(墨子)’의 저자인 묵적(墨翟)이 본래 고죽군(孤竹君)의 후예라”는 내용이 나온다.


고죽국(孤竹國)은 은(殷)나라의 현자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살던 나라로 동이 국가였으며,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고구려가 본래는 고죽국이었다(高麗本孤竹國)”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겸상애(兼相愛)R28;교상이(交相利)를 제창한 위대한 사상가 묵자 또한 동이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고전서R28;경부’ ‘사서석지(四書釋地)’3, 속(續)권 하에는 “맹자(孟子)는 추(鄒)나라 사람인데 추나라는 춘추(春秋)시대에 주(邾)나라였고 주나라는 본래 동이국가였으니 그렇다면 맹자 또한 동이사람이 아니겠는가”라는 내용도 나온다. 주는 노(魯)나라 부근에 있던 동이 국가로 공자가 쓴 ‘춘추(春秋)’에 그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맹자가 본래 이 주나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대(宋代) 4대사서(四大史書) 중 하나인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요(堯)는 북적지인(北狄之人)”라 하였고 “순(舜)은 동이지인(東夷之人)”이라고 맹자가 말했다. 공자는 은(殷)의 후예인데 탕왕(湯王)에 의해 건립된 은은 동이의 선민(先民)이 세운 나라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뿐 아니라 하우(夏禹)R28;강태공R28;묵자R28;맹자까지도 모두 동이출신이었다고 한다면 중국의 화하족(華夏族) 가운데 문왕R28;주공 이외에 내세울만한 역사적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동양의 사상과 문화를 일군 핵심 인물은 거의가 동이에서 배출됐다는 이야기가 되고, 따라서 동양의 사상과 문화는 중화사상R28;중국문화가 아니라 동이족에 의해 형성된 동이사상R28;동이문화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인은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한 위대한 인물이 지닌 의미와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태공R28;묵자R28;맹자 등은 동양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 동안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중국인으로만 알아왔던 이 위대한 인물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으로 밝혀지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잃어버렸다 찾은 돈은 잃어버리지 않은 돈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듯 잃어버렸다 되찾은 조상은 잃어버리지 않은 다른 조상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書經’의 ‘우이’가 바로 고조선

‘사고전서R28;경부’ ‘우공추지(禹貢錐指)’ 4권에는 “동이 9족(族)을 우이(嵎夷)로 보고 우이를 고조선으로 본다”는 견해가 실려 있다. 우이라는 말은 ‘서경’ 요전(堯典)에 나온다(堯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우이는 바로 요(堯) 당시 존재했던 동양 고전의 기록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이’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 ‘우이’가 바로 고조선이라면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동이 9족의 뿌리요 원류라는 이야기가 된다. 단절된 고조선 역사를 복원하는데 이런 자료 한 장이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 100권의 가치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 ‘후한서’와 ‘두씨통전(杜氏通典)’에 다 동이 9종(九種)을 우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땅이 한(漢)의 낙랑(樂浪)R28;현도군(玄菟郡) 지역에 있었다. 그런데 ‘서경’ 우공(禹貢)에 청주(靑州)를 설명하면서 맨 먼저 우이를 언급한 것을 본다면 조선(朝鮮)R28;구려(句麗)등 여러 나라가 우(禹) 임금시대에 실제 다 청주지역에 있었다(朝鮮句麗諸國 禹時實皆在靑域)”.이것은 ‘경패(經稗)’ 3권에 나오는 기록이다.

 

이 자료는 구이(九夷)가 우이(嵎夷)이고, 우이가 바로 고조선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오례통고(五禮通考)’ 201권에는 “한무제(漢武帝)가 설치한 현도R28;낙낭 두 군(郡)이 다 옛 ‘우이’의 땅으로서 청주(靑州)지역에 있었다”는 것과 “연(燕)과 진(秦)이 경략(經略)했던 조선은 대체로 우공(禹貢)의 우이지역이었다”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에서 우리는 우이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현도R28;낙랑으로 변화된 고조선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또 연(燕)R28;진(秦)시대의 조선과 한무제가 설치한 현도R28;낙랑이 모두 오늘의 한반도가 아닌 옛 청주지역, 즉 산동성과 요녕성 하북성 일대에 위치해 있었던 사실을 이 자료는 밝혀주고 있다.


‘사고전서R28;사부’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 29권에는 “당(唐)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왕 김춘추(金春秋)를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에서 신라왕 김춘추를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삼았다는 것은 중국인들이 신라와 백제를 우이의 후예국가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서 우리 건국시조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단군 및 고조선의 역사가 묻혀버렸을 수도 있는 일로서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러나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밝힌 짧은 기록만 가지고는 고조선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다. 단 우이가 바로 고조선이라고 하는 이 기록은 고조선 2000여 년의 역사를 되찾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다. 마치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길 만한 참으로 중요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동양문헌상에서 우이를 추적하면 그 동안 잃어버린 채 살아온 고조선의 전모를 복원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사고전서R28;자부’ ‘명의고(名義考)’ 5권에 “구이(九夷)는 동이이고 동이는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서 공자가 가서 살고자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 ‘사고전서R28;경부’ ‘주례전경석원(周禮全經釋原)’ 8권에는 “동이 기자의 나라는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하던 곳이다(東夷箕子之國 孔子所欲居)”라고 했다. ‘논어’에는 “공자가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子欲居九夷)”는 기록만 있고 구이가 바로 기자조선이라는 말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자료는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했던 그 나라가 바로 기자조선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런 자료를 통해서 고조선이 여러 동이 국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문화적 수준이 높은 대표성을 띤 동이 국가로 공자가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나라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십일경문대(十一經問對)’ 1권에는 “‘논어’ 자한편(子罕篇)의 ‘자욕거구이 혹왈누 여지하 자왈 군자거지 하루지유(子欲居九夷 或曰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라는 대목을 논하여 여기서 말하는 군자는 기자를 가리킨 것이지, 공자가 자칭해서 군자라고 한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동안 우리는 ‘논어’의 이 부분을 주자의 해석에 따라 “군자거지(君子居之)면 하루지유(何陋之有)리요” 즉 “군자가 가서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여 그 군자가 공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 왔다.

그런데 이 자료는 “군자거지(君子居之)니 하루지유(何陋之有)리요” 즉 “구이에는 군자인 기자가 살았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공자는 평소 겸양의 미덕을 강조한 분으로 자칭 군자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적고,

또 ‘산해경(山海經)’에도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점을 통해서 본다면 공자가 가서 살고자 했던 구이를 기자조선으로 보고 “기자조선은 일찍이 군자인 기자가 도덕정치를 펼친 문화국가이니 가서 산들 무슨 누추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런 자료도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했던 구이가 바로 고조선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좋은 근거라 하겠다.

 



고구려R28;부여R28;삼한의 기원

‘사고전서R28;경부’ ‘상서주소(尙書注疏)’ 17권에는 “성왕(成王)이 동이를 정벌하자 숙신(肅愼)이 와서 축하했다(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라는 주관서(周官序)의 내용과 여기에 대한 공안국(孔安國)의 다음과 같은 전(傳)이 실려 있다 “해동(海東)의 제이(諸夷)인 구려(駒麗)R28;부여(扶餘)R28;한(馯=韓)R28;맥(貊)의 무리가 무왕이 상(商)나라를 이기자 다 길을 통하였는데 성왕이 즉위하자 배반하였으므로 성왕이 이들을 정벌하여 복종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의 소(疏)에는 ‘정의(正義)’의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여기 말한 동이는 비단 회수상(淮水上)의 동이만이 아니기에 해동의 제이(諸夷)라고 말한 것이다. 구려R28;부여R28;한R28;맥의 무리는 이들이 다 공안국의 시기에도 이런 명칭이 있었던 것이다.”
공안국의 말처럼 주무왕이 당시에 정벌했던 동이가 해동에 있던 여러 동이, 즉 구려R28;부여R28;한R28;맥의 무리였다고 한다면 구려R28;부여R28;한R28;맥은 한대(漢代) 훨씬 이전인 주(周)나라 시기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공안국은 한(漢)나라 때 유명한 학자로 그의 학설은 어느 누구의 주장보다도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이 자료는 한R28;당(漢唐) 이전 우리 고구려R28;부여R28;삼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삼국유사’는 신라가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갑자년(甲子年)(B.C57)에, 고구려가 전한 원제(元帝) 건소(建昭) 계미년(癸未年)(B.C38)에, 백제가 전한 성제(成帝) 영시(永始) 을사년(乙巳年)(B.C16)에 건국된 것으로 기술하여 고구려R28;백제R28;신라의 상한이 모두 중국 한(漢)나라 시대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우리 나라 고대사 연구에서 쌍벽을 이루는 자료지만 ‘삼국사기’는 우리 역사의 기술을 삼국시대로 국한시킨 한계가 있고, ‘삼국유사’는 단군 및 고조선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지만 고구려R28;백제R28;신라의 출발을 모두 중국 서한(西漢)시대로 한정시켰다.
그것은 일연이 승려의 신분으로 몇몇 제한된 자료에 의존하고 ‘사고전서’와 같은 방대한 중국의 사료를 널리 섭렵할 수 없다보니 어쩔 수 없는 역부족에서 온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고전서’와 같은 권위 있는 자료를 통해서 고구려R28;부여R28;삼한 등의 뿌리가 확인된 이상 잘못 된 국사교과서의 내용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입으로는 반만년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위주로 고대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니, 한R28;당시대에 존재했던 고구려R28;백제R28;신라가 우리 역사의 뿌리인양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

 



중국의 동이와 한반도의 동이

현재 한국의 강단 사학자들은 한R28;당 이전 중국의 동이와 한R28;당 이후 한반도의 동이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뚜렷한 학술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이 논리를 수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동이와 중국의 동이를 연결시킬 경우, 고구려R28;백제R28;신라의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시켜온 종래 주장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한R28;당 이전 중국의 동이와 한R28;당 이후 한민족의 동이가 동일한 동이이며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사고전서’의 여러 동이 사료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예컨대 “동이 9족이 우이고 우이가 바로 고조선이다라는 ‘우공추지’의 기록, “구이(九夷)는 현도R28;낙랑R28;고구려 등을 말한다”는 ‘사서혹문’의 기록,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왕 김춘추를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삼았다”는 ‘통감기사본말’ 등의 기록을 통해 볼 때 한R28;당 이전 중국의 동이와 고구려R28;백제R28;신라의 동이는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둘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신라는 조선의 유민에 의해 건립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조선이 동이라면 그 뒤를 계승한 신라가 고조선의 동이와 동일한 동이인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문학과 역사가 다른 점은 문학이 있을 수 있는 일을 쓰는 것이라면 역사는 있었던 일을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참이어야지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해서도 안되고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해서도 안되며 동일한 것을 다르다고 해서도 안되고 다른 것을 동일하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7만90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사고전서’에서 동이에 관련한 사료만 따로 추려 묶으니 우리의 눈을 놀라게 하고 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동이에 관한 새로운 기록을 4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이는 동양의 지류가 아닌 본류, 피지배자가 아닌 지배자, 아시아의 조역이 아닌 주역, 변방이 아닌 중심, 동양문화의 아류가 아닌 원류였다.

 


둘째, 문헌상 최초의 동이인 우이가 바로 고조선이었다.
셋째, 중국인으로만 알았던 요순과 공자, 백이, 숙제, 강태공, 맹자, 묵자 등이 모두 동이족 출신이었다.
넷째, 부여(夫餘)의 뿌리가 부유(鳧臾)이고 부유는 산동성 부산(鳧山)이 발원지이며, 고구려가 한나라 때 생긴 신생국가가 아니라 하우(夏禹)시대에도 존재했으며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내몽고 지역 적봉시(중국 요서지역 홍산문화유적지)가 고구려의 서쪽 영토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출발점이 없는 한국사

오늘날 중국에는 몽고족, 만족, 묘족, 회족, 장족 등 한족(漢族) 이외에 55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이 있지만 이들은 결국 동이족과 한족 양대민족으로부터 분파된 지류와 지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동양역사 발전의 양대 주역인 동이족과 한족, 두 민족 가운데 동방민족의 뿌리는 과연 누구인가. 다시 말해 어느 민족이 동양 역사의 여명을 열었으며 동양역사를 추동시킨 원동력인가. 바로 동이족이다.


한족의 시조는 황제헌원씨다. 사마천은 ‘사기’에 황제를 한족의 시조로 기술하였고, 오늘날 한족들은 자신들을 염R28;황(炎黃) 자손이라 말한다. 그런데 동이족의 시조는 황제보다 앞선 시기에 중국의 주인으로 군림한 태호 복희씨다. 공자는 ‘주역’ 계사(繫辭)에서 “복희시대를 지나 신농씨 시대가 도래하고 신농씨 시대가 지나 황제시대가 전개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R28;당 이후 중국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한족(漢族)이 본래 중국의 중심세력이었던 동이의 역사를 이민족(異民族)의 역사로 왜곡R28;말살하기 시작했다. 또 동이의 중심세력이었던 한민족(韓民族)이 신라 이후 국력이 크게 약화되고, 조선조에 접어들어 중국의 아류인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함으로써 동이의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집트R28;바빌로니아R28;인도R28;중국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반만년을 이어 온 우리 역사는 지금 뿌리가 없다. 고조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1권은 없이 2권부터 발행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42권이 뿌리 없는 한국사의 모습을 단적으로 반영한다고 하겠다.


한 나라에서 역사의 단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그 나라의 얼과 정신과 문화와 정기의 단절을 의미한다. 광복 후 6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씻는 것은 고사하고 다시 동서로 나뉘고 동서가 다시 보수니 진보니 두파 세파로 갈려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원인은, 역사의 단절 그리고 역사의 단절로 인한 민족 얼의 상실에 있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출발부터 기형이다. 왜냐하면 단군 조선 1000년은 역사가 아닌 신화로 취급하고, 기자조선은 ‘기자동래설’이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되어 침략자 신분인 연나라 사람(燕人) 위만(衛滿)의 위만조선으로부터 우리의 실제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뿌리가 잘려나간 이런 역사교육이 국민에게 민족적 긍지와 문화적 자신감을 심어줄 리 없다.


최근 일본 이시하라 도쿄도(東京) 지사가 “한일합방은 조선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고 망언(妄言)을 하고 중국에서는 한국의 고구려사가 자기들의 역사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허점투성이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광복이후 60~70년대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대적인 과제였고, 80~90년대는 민주화가 시대적 요청이었다면, 오늘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단절된 역사의 복원과 민족정체성의 확립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실증사학을 주장하는 강단사학계는 자료의 결핍을 이유로 고조선사의 연구와 복원에 적극성을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사고전서’와 같은 국내외가 인정하는 권위 있는 자료를 통해 고조선의 실체 및 고구려R28;백제R28;신라의 뿌리가 밝혀진 이상 이런 사료를 토대로 고조선 및 삼국사를 위시한 한국의 고대사를 다시 정립하여 국사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것이다.


앞으로 만일 동이 9족이 하나로 뭉쳐 대화합과 통일의 시대를 연 위대한 시대 고조선의 역사가 되살아난다면, 아직도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우리 민족이 분단의 장벽을 넘어 화합과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沈伯綱
1956년 경기 파주 출생
국립대만사대 및 중국연변대 대학원 역사학 박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연구직 전문위원R28;중국연변대 객원교수
월간 ‘한배달’ 편집인
저서: ‘사고전서중의 동이사료’ ‘조선왕조실록중의 단군사료’ ‘조선왕조실록중의 기자사료’ ‘이이 왕안석 경제개혁사상 비교연구’ 등

 

 

 

우공추지 문헌상 최초의 동이인 우이가 바로 고조선

대륙의 동이와 한반도의 동이가 전혀 다르다는 억지는 사라져야 합니다

구려라는 말에서 비롯된 고구리 즉 고구려를 달리 불렀던 이름이 있습니다

치우천황이 구이족을 이끌고 헌원을 패퇴시키고 항복을 받아낸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강단사학에서는 치우천황을 지나의 악신 신화의 인물 우리와 전혀 연관이 없는 악마의 신이라고까지 매도를 했지만

수많은 지나의 사서에서 구려는 곧 우리민족임을 밝히고있고 구이의 한갈래인 묘족이 엄연히

대륙의 한곳에 치우천황을 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항우와 결전을 펼칠때마다 치우천황에게 제를 드렸고 그때마다 붉은 기운이 하늘에 나타났고

항우를 꺾은 유방은 치우천황 사당을 성대히 모시고 제를 드리게됐습니다

 

 

추천 역사 홈페이지

하나가라 우리나라   http://blog.daum.net/nero1003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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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 11-07-16 08:33
   
이거  환빠들  모이라고  또 한군데  나오셨네...  저런  역사팔이들한테  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만 불쌍할뿐..
ㅋㅋㅋ 11-07-16 08:47
   
진짜 공자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역사 왜곡의 나라 한국이란말이 괞히 나온게 아니었어..

[ “동이 9족(族)을 우이(嵎夷)로 보고 우이를 고조선으로 본다”는 견해.]

어떤미친늠은 견해를 사실로 믿고싶어하고 그걸로 잘못된 역사를 만들어낸다.
ㅇㅇ 11-07-16 09:16
   
저런인간들때문에  진실로 고대사를 착실하게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욕먹이고  한국사람들 욕먹게하는  일등공신이죠...  중국환빠가  김치를  지들이  원조라고 하고  한국은 중국소수민족이고 그땅도 다 자기들거라고  하면  그냥  한국을  넘겨줄  논리인줄도  모르는 바보들...  하나가란지 뭔지  또  역사팔면서  블로그 카페 선전이나 하구있네...ㅋㅋ  판타지소설이라고 하면 차라리 정당하게  사서 읽기라도  하련만....
알고싶다 11-07-16 09:58
   
ㅋㅋㅋ ,ㄷㄷ ,ㅇㅇ 님들 무조건 환빠라고 몰지 말고 정확한 근거 자료를 들어 조목조목 지적을 하고 논쟁을 통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으셔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도 바른 역사를 알게 될 것이라 생각이 되는데요.
ㅉㅉㅉ 11-07-16 10:42
   
위에 애들 왠지 애써 부정하려는 느낌인데....난 환단고기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위에 애들이 말하는 진실된 고대사란 뭘까?
그냥 11-07-16 11:27
   
100분 토론에 이런주제로 전문가들 이야기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파드메 11-07-16 11:33
   
"진실로 고대사를 착실하게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욕먹이고 ~"

위의 말은 저에게 다음과 같이 들리니...
위안부의 상황은  매춘행위에 불과했는데 증거도 없으면서 저렇게 배상만 요구하니 착실하게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일제가 나서서 위안부를 착취를 했다는 증거가 없음을 밝힌 학자들까지 욕보이고 있죠. 조선인들은 항상 가난했기에 부자인 일본에게 지금에 와서 돈을 요구하는 것이죠.

교과서 이론을 충실하게만 주입해서 아님 기존의 식민사관을 토대로 하는 이론만 익혀 배운대로의 역사관이 진실이라 여긴다면 일본인들이 익힌 배운대로의 역사관도 나름대로 진실이 있지 않을까요?

제기 보기에는 한국의 역사학자들도 점점 변모되는 것 같더군요. 자신들이 보기에도 유물과 유적이 어디에서 돌출해 모든 기존의 이론을 전복시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야한 실증주의를 가장한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사관을 고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후일에 모순되고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되리라는 것을 스스로 양심에 비추어서 느끼는 것일테죠.

다시 일본의 경우를 들다면,
일본인들이  위안부는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에 비추어서 우리가 잘못한 것이었고 그 당시 일제 군국주의 사정에 놓고 보아도 그러한 비도덕적인 상황은 충분히 일어나고 남음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증거가 없다, 국가가 나서서 한 일이라는 증거는 적어도 없다. 더군다나 매춘행위 아닌가? 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실증 과학적이다라고 변명하면 참으로 진실에 부합하는 해결 방안이겠는지요. 

열도인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직까지도 식민주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흔적이 아니라 그 자신이기도 하고요.
newtype2090 11-07-16 12:45
   
공자 동이족설 같은 경우는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관심은 없지만 중국 학자들도 주장한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쨋든 공자의 뿌리가 설령 동이족이라고 해도 중국인으로 살아갔으니 중국인 이라고 인정 합니다.
하지만 동이족의 역사에 대해선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연구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110425005433&subctg1=&subctg2=
뚜벅뚜벅이 11-07-16 13:18
   
ㄷㄷ, ㅋㅋㅋ, ㅇㅇ//
이 세사람 무조건 환빠로 모는 걸로 봐서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정당한 반론을 제시하면 될걸..
공자 동이족설은 newtype2090님이 제시한 글 같이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학자도 있다는데
반론을 대세요. 그래야 나같은 무식도 눈대중, 귀동냥을 하는거니까.
     
흠.. 11-07-16 15:29
   
중국에서 인정한다는 학자는 연변  대련 조선족 자치구로써 고려발해 관련 대학교수들입니다.

역사스페셜등에 출연하는 중국교수들 발언을 보고하는말같은데 어느소속인지 이름나올때 밑에

소개 자막보세요

글구 반론제시하라고 하는데 반론제시하면서 시간이 흐른게 언 5년되갑니다.

그동안 중국 대만 일본엔 공자가 한국사람이라고 주장한다는 병싱같은 사실아닌 사실에

한국이미지 실추시킨지 오래에요.

글구 공자가 뭐가 대단하다고 지랄염병을 하는지 모르겠네..?
          
newtype2090 11-07-16 16:38
   
관련해서 언급되는 중국 사학자들중에 쩌우쥔멍(鄒君孟), 왕위저(王玉哲), 장원(張文), 쑨펑(孫鵬) 같은 사람들이 조선 자치구 고려발해관련 대학교수들 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동이족, 한자, 고조선, 발해 관련해서 몇가지 발언을 했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 린위탕(林語堂) 같은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죠. 물론 몇몇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가지고 역사를 판단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공자 같은 경우는 님의 말씀 처럼...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신경 안쓰죠. 어느 나라 사람이던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ㄷㄷ 11-07-17 13:48
   
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거가서  차분하게  피라미드사기질부터 한번 살펴보시지요... 정당한 반론?  환빠들이  반론이 없는겁니다. A주장에 정확하게-A를  제시하면 다시A에대한 추가논박을  내놓는게 아니라  엉뚱한  딴  근거를 들이대면서  반박도 아니면서 반박하는거지요.. 논리가 막히고 증거가 없으면  친일사학이니  식민사학이니  이런소리밖에 할 줄 몰라요...
.. 11-07-16 17:07
   
당시 중국의 동이족 개념은 고대 중국사에서 한족의 중심지역이고, 또한 황하문명의 중심지였던 황하강 중류지역을 중원이라고 칭하고, 그 중원에서 4방에 있는 각종 모든 민족들을 다 오랑캐라고 칭한 것 뿐임. 동쪽에 있는 넘들은 다 동이라고 한 것임.

그런데 당시 중원의 동이 지역은 황하강 하류 지역임. 한반도나 요동, 요서와는 별로 상관없음. 수천 Km나 떨어져있음...

몇 천년전 한족 애들이 그냥 자기 동쪽 애들은 다 동쪽 오랑캐란 뜻으로 동이라고 가리켰을 뿐인데, 그 동이족이 지금의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믿으면 곤란...
굿잡스 11-07-16 19:26
   
서토 내륙에 쳐 박혀 있던 하한족은

채색 토기 역시 우리처럼 독특한 토기양식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서아시아 이집트 이란 이라크 일대이 채색토기의

전파로 이루어진 결과물이고 동북방 발해문명이 고국의 형태를 나가고 있을때도 여전히 미개한

씨족 모계사회 였다는 점이죠.


그러면서  상나라 이전에도 워낙 북방과 동쪽에서 많이 두들겨 맞아서 기어 나오지 못하다 보니

주변 땅을 사해 즉 네개의 바다로 인식하고 동쪽에 산둥등 일대를 동이족 부르게 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산둥일대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 혹은 영향을 받아 나왔는지 까지 몰랐죠)


그런데


고조선과 밀접한 하가점 하층 문화는 요동도 아니고 요서에서 나옵니다. 당시에는 산악지대가 많은 요동보다

요서일대에 여러 잡곡류 재배나 활동이 좋았다고 하더군요.

요서 일대이니 당연히 하북이나 산둥일대로 문화의 교류나 전파가 이어질 공간적 거리죠.



짱국은 서토사를 하- 상- 주라고 아무렇지 않게 도식화 했는데

실제 하나라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냥 지들이 홯하문명이 높이 어쩌고 헛소리 하면서 그걸 출발로

이후 상나라가 건설되었니 했는데

상나라의 도성과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이게 다 깨져 버렸습니다.

즉 상나라의 문화는 서토내에서 황하문명에 영향받아 발전 과정을 거친게 아니고 이전부터 선진적 문화 집단이

내려와서 정복왕조로 세워진 이민족 국가였다는 것이죠.

이런 고도의 문명에 대해 북방 이민족걔통인지 아니면

발해만 일대의 고조선 문명권의 세력이냐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데 고조선 문명권과도 어느 정도 교류 흔적의 고고학적 정황이 나오는 상황임.



그리고 서토에서 불교 이상으로 토착화 민간 대중 신앙이 도교인데 진시황이 불로 장생을 구하기 위해

산둥 일대의 우사를 즉 도사를 찾아 갑니다. 이 우사의 술법은 다름 아닌 발해만 일대의 조선에서 흘러

들어 왔다는 산해경 기록이 나옵니다.

기타 발해만 일대는 새의 토템 신앙등이 매우 활발히 밀집되어 있고 이후 이런 풍습은 고구려 관모에도 들어나죠

관에 새 깃털을 장착한 형태등.

이런 동이족 신앙 뿐 아니라 산해경에는 봉황이니  심지어 현재 발굴된 바로는 용등의 상상속의 동물들이

다 이 고조선 문명권에서 발굴되고 있는 상황임.


이러니 짱국 학자도 난리 난거죠.


하-->상 -> 주> 도식이 아니라

발해문명에서 나온 고조선 문명 흘러 나온 문화들이 산둥이고 서토 내로 흘러들어 오고 심지어

상나라 역시도 선진 청동문화을 가진 이민족 정복사이니.

아직은 서토내의 동이족과 서토밖의 요하 일대의 고조선 문명권에 대한 교류나 영향력에 대해

더욱 연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이 선진 문화 세력이 하한족과는 별로 관계성이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신중하고또… 11-07-16 19:33
   
한가지 현제 사학자들중엔 발굴같은건 꿈도못꾸고  책상앞에 앉아서 자기식데로 해석하여 명성을 얻고자

추론할수있다..로 이목을 끄는 사학자들이 많습니다.

사실.. 학계에서 이름좀 내보겠다고 일단 목표부터 정해버리고 자기주장을 쌓아나가죠.

언뜻보면 그럴사하게 들립니다.

그런 잉여학자들의 잘못된 추론의 예로.. 고추가루는 일본에서 토요토미가 전쟁무기일환으로 한국에

가져와 전파됬다.이건데 지금은 이게 상식처럼 통용되고있죠..

이게 바로 일본 학자도아닌 한국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론입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고대문헌에 그전 200년전부터 한국엔 고추가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됩니다.

잉여학자들의 논리는 외곡된 사실을 진설로 만드는 재능이있습니다.

주변국과 트러블이 없을정도의 합의된 정설이 아니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믿으면안됩니다.
어차피과거… 11-07-16 21:40
   
한반도에 강력한 힘을 가진 동이족이 살고 있어서 그들과 차별되는 다른 아이텐티가 있어야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는데...가 발전되어 중화주의가 된 모양입니다.
이제는 그 동이족이 약해 보이니 우리는 같은 역사의 같은 형제야...그러면서 덮쳐 먹으려고 듭니다.

중국 동이는 결국 한반도 동이와 다를게 뭐가 있겠어요..두발 달린 짐승이 어디라도 못가겠어요.
하지만 다르다고 말하는건 속국민이 되기 싫다 이 뜻이겠지요....또한 동아시아 역사 주역은 우리라고
하면 그래...우린 같은 형제...이러면서 스리슬쩍 발 들여놓구 안나갈 수도 있겠죠...뭐 요즘같은 세상엔

외교적인 역량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까...동아시아 역사 주역은 동이족인 우리라고 말한다고 해도
뭐 별탈 없겠는데요...길길이 뛰는 중국인들 일본인들 보겠지만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구경하기로 하죠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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