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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16 02:16
[기타] 금,청사 우리역사인가???그럼 일본사는???
 글쓴이 : toshake
조회 : 5,226  

아까 잡게에 이 글 올렸는데 동아시아 토론장이 더 낫겠다 싶어 다시 올리니, 양해부탁드리

며 보신분들은 뒤로가기해주세요.

일단 제가 이 질문글을 올리는 목적은 싸우고자 함이 아니라, 가생이분들과 의견을 교류하며

제 짧은 역사지식을 조금더 넓히고,배우고자  올리는 의도입니다.(사실 현실에서는 역사쪽에 종사하는것도 아니며 이런 토론을 쉽게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분명 우리민족은 만주족과 분명 많은부분 연관이 있는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인듯합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태조 이성계의 개국공신중 여진족 출신인 이지란(퉁두란)과 같은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지금와서 금,청사를 우리역사서에 넣자는것은 약간의 무리가 따르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금,청사가 우리 민족의 역사였으면 당연히 좋죠. 드넓은 대륙을 차지하고,한족들을

피지배계층으로 두고 다스렸으니...

그렇지만, 금,청사가 고구려,발해유민들을 규합해서 이룬 점과, 지배계층에 고구려계와 발해계가

많다는 점을 들어 우리 역사서에 포함시키자는논리는 일본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자는

논리와 같지 않나요? 일본은 더더욱이나 고대에 고구려계,부여계,가야계,신라계,백제계등 수많은

사람들이 열도로 넘어갔고, 지배계층또한 백제인들이지 않았나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역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왜 대륙의 역사는 우리역사로 편입시켜 자랑스러워 해야하는 반면, 열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역사를 안긴 민족의 나라라서 편입시키지 말아야하는건가요?

전 고구려나 발해가 중원이나 열도에 끼친 영향력을 자랑스러워하고 싶습니다. 서쪽으로는

대륙을 통치하는데 일조했던 수많은 고구려,발해인들,동쪽으로는 미개한 열도인들을 깨우쳐

나라라는 기틀을 만들어 준(사실 백제계지만 백제계가 곧 고구려계이니까요.) 그 영향력,파워

말입니다.

전 충분히 고구려,발해역사가 세계어느나라를 내놓아도 부끄럽지않고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얼마전 역사스페셜에서 발해황후의 묘비를 중국측에서 공개를 발굴후 6년이나 흐른 지금까지

거부하더군요. 그 이유가 발해의 유물이나 역사를 예전 고구려의 왕족무덤들을 유네스코에 등록

한것처럼, 발해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유네스코에 등록함으로써 자기네역사로 편입시키기위함

이라고 합니다.(거기나온 베이징대 역사교수 정말 때려죽이고 싶더군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언론은 물론 네티즌관심은 온통 딴곳이더군요....

말이 딴대로 샜군요...아무튼 제 짧은 역사지식으로는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긴글 봐주셔서

감사드리며,가생이분들의 맹목적인 비난이아닌,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일테니 많은 의견부탁드립니

다...꾸벅....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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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다다다 11-07-16 02:30
   
금,청사는 한국의 역사라고 하기에도 중국의 역사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죠.
중국이 골때리는게 자기네랑 아무 상관이 없었던 민족이고 국가라고 해도 중국에 흡수되면
다 자기네 역사로 취급한다는거에요. 한국사랑 중국사가 다르다면 다른게 한국사는 이어져내려오는
계열이 있지만 현재 중국사는 그런 부분도 있고 안 그런 부분도 있다고 해야겠죠.
금,청사를 신경쓰기보단 왜곡되고 잘못된 한국사를 바로잡는게 백배 나을겁니다. 일제가 장난친
부분이 좀 있거든요. 한사군이라던가, 고려의 북방경계라던가 뭐 그런거요.
     
toshake 11-07-16 02:36
   
동의합니다. 금,청사보단 고구려와 발해역사를 중국으로 부터 지키고나서

그다음에 논의해도 늦지않을듯싶네요.전 사실 금,청사를 공동으로 공유하는 역사까지

생각해봤지만

이것도 무리인듯싶고, 그냥 만주족의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하는게 나을듯싶은데

이것도 중국 국가정체성을 반하는 행위라 절대 이를 허용치 않겠죠?...씁슬하네요ㅠ
ㅋㅋ 11-07-16 02:37
   
그렇다면 북연은

어떻구요..광개토태왕시절 고구려유민이 세운 나라이고> ㅋㅋ

이분 장난 하시는지. ㅋㅋ 좀 알고 말합시다.

후연이 고구려에 털리며서 국력이 소진하다 풍발이 쿠데타를 이르키고 고구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게 고운이고 북연인데 무슨. 그런 북연은 고구려의 속국이라고 칭하지

우리 국가라고 칭하나요??? 우리 역사과 속국 개념정도는 이해하고 합시다. 그리고 북연의 고운이

어떤 위치 어떤 시기정도에서 활동했는지도.
     
toshake 11-07-16 02:42
   
아 그렇군요....

전 북연이 단순히 연나라를 이어져온 나라라고 생각했는데...아니군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북연은 아무리 고구려계가 막강하지만 연나라를

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련지요?
ㅋㅋ 11-07-16 02:44
   
금,청사가 고구려,발해유민들을 규합해서 이룬 점과, 지배계층에 고구려계와 발해계가
많다는 점을 들어 우리 역사서에 포함시키자는논리는 일본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자는
논리와 같지 않나요? >

삼국시대 가야 백제가 진출하면 열도에 아스카 도시문명을 연 시대는 열도는 백제의 분국이나  확장의

지배지 영토로 보는 건 무리가 없죠.  그러나 이후 백제가 멸망하고 비록 백제계가 나라 헤이안 시대를

열면서 우리와 나름의 교류를 하지만 헤이안 중기 즉 남북국 시대 이후의 혼란한 상황에 가면 묻을

걸어 잡궈 버립니다. 이후 미개한 사무라이들이 조정에 정치세력화 되면서 각지역의 영주와 쇼군이 득세하면서 친한파인 일왕의 존재는 점자 열도에서 상징적이고 사라지면서 백성들에게도 그 존재 자체가

점차 희미해졌고. 일왕의 존재가 백성들에게 그나마 들어났던게 바로 메이지 유신 이후임.

즉 그만큼 섬나라는 스스로 외부세계와 문을 닫고 지냈고 안에서 쳐 살면서 딱히 우리 역시도 이후

미개한 열도 문명에 대해  들어가서 생활할 상황이 매력도 없던 공간이었음. 물론 고려 중세 시기에

왜국이 고려 도자기니에 영주들이 위세품으로 하나라도 가지길 소원하긴 했지만.
ㅋㅋ 11-07-16 02:52
   
그런데 역사가 참 이게 무섭다는 거죠.

왜국이 지금 경제 대국이니 하니 고대 미개한 문명과 역사와 동아시아에 천황이니 개소리 씨도 안먹인

섬안에서 자기 자위용어인데 지금 세계에 먹히고 왜국이 미화하는 멋진 에도 시대가 실제 그럴거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려고 한다는 거죠.
그게 아닌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한 분단되어 섬 아닌 섬으로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니 마치 만주는

뭔 외계땅이고 따로 분리된 섬마냥 인식히지만 이건 대단히 잘못되었습니다.

현재 북한만 봐도 조선족 자치구고 다 활동하고 있고  북한 동포들이고 조선족이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미 1만년 신석기 시대 만주와 한반도는 나오는 토기의 양식이 빗살 무늬 토기로 거의 동일 생활권이에요.

요서에서 나오는 수암옥 옥기류등이 요동과 압록강 일대에서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그 양식이 한반도

남부에게까지 나오고 있고.  그러니 삼국시대 부여를 이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이 말이 통하는 거죠.

그만큼 일찍히 서로 사람이 왕래하고 거의 동일 문화 생활권이다 보니 우리 한국어의 고어인 고구려어계통으로 말들이 통했던 것입니다.


지금 고조선 하가점 하층문화는 초기 문화가 요동도 아니고 요서에서 나옵니다. 그런 예맥계통의 문화가

고구려에 선명이 이어지고 있고.

우리나라 일찍히 활동무대가 이렇게 넓어요. 도리어 하한족의 신석기 시대 생활 문화를 보면 우리에

비해 대단히 협소하고 영향력도 문명도 미개한 모계 씨족 사회였습니다.
ㅋㅋ 11-07-16 03:01
   
동북아 초고대문명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762&sca=&sfl=&stx=&spt=0&page=2

그리고 아셔야 하는게 고구려는 정확히 말해서 멸망한게 아닙니다 당나라 국력은 고구려세력을 멸망시킬

정도가 못되어서요. 3차시기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간의 내부 권력 쟁탈에서 쫓겨나 장남 연남생이

탈출하여 당나라에 귀순하자 군사 요충지를 꿰고 있는 연남생을 필두로 신라와 연합해서 그나마

일시에 겨우 점령한게 요동 일부와 고구려 평양성입니다.  이외의 상당수의 요동과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

성에는 고구려 세력이 견재했고 평양에서도 2여년이 안되어 당나라 군사들이 고구려 부흥세력에 도륙되면서

요동의 신성으로 밀려나버립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부흥세력부터 백제부흥세력 그리고 신라에 의해 극심한 군사력 소모에 거란족의 반란

그기에 토번이 이틈을 타서 성장해서는 당나라 수도를 아예 털어버립니다.

결국 이런 고구려 원정의 과오가 이후 당나라 국력을 급격히 소진시켜 버리는 계기가 되어 이후 중기에

가면 발해 무왕에 의해 산둥 해상시설이 초토화되고 요서로 밀려나며 끌고 가던 고구려 유민 중

산둥에 근거지를 털던 이정기는 아예 제나라라는 국호를 만들어 당나라 군주는 두번이나 도망가는등

거의 수십개의 세금도 내지않는 번국들이 활거하면서 조정이 유명무실해집니다.
ㅋㅋ 11-07-16 03:07
   
당나라가 고구려 세력에 직접적 통치를 못하면서 거세게 밀려 나자 이후

고구려 왕을 대리로 다스리게 하면서 무마하게되고 이후 대조영은 끌려갔던 고구려 유민과 군대 수만명을

데리고 탈출에 성공 이후 쫓아오던 당나라 대군을 천문령에서 대패를 시켜 버리면서 이후 발해라는

국호를 열게 됩니다.


< 발해의 대다수는 고구려인>

그리고 알아야 하는게 발해의 지배계층만 고구려인이라는 건 잘못된 오해입니다.

이건 왜국이 발해 초기  연해주 일대 즉 말갈들이 많은 초기 지역을 둘러보면서 이후 <유취국사>에

그렇게 기술한 것이지 알지만 발해는 요동에서 부터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서 이후 전성기 무왕시기를

거치면서 지금 한러 고고학 탐사를 보면 남시베리아와 맞닿은 아무르강 일대까지 지금 우리가 있는

영토보다 2배의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즉 발해는 기존 고구려가 가졌던 영토를 거의 다 수중에 넣게 되면서 이전의 고구려 문명과 인원을


거의 다 흡수하고 세워진 나라라는 것임. 이에 이후 신라 당을 견제 하기 위해 왜국과 나름 친선의 의미로

사절을 하면서 외교문서에 당당힌 고려 국왕이니 고려를 이었니라는 말을 한 것임.
ㅋㅋ 11-07-16 03:15
   
그리고 금나라의 여진족은

삼국시대 말갈족이라고 불리는데

말갈은 계통이 여러 족이지만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와 같은 생활문명권의 우리 민족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 한러 고고학 연구를 통해 고조선 말기는 단순히 위만 조선만이 아니라 북방의 강자

 부여부터  동예 옥저 삼한등 열국시대가 도래합니다.  즉 위만조선은 우리의 열국시대에 그냥 하나의

나라에 불과했서요.  여기서 옥저는 북옥저 남옥저등이 있는데 북옥저은 현재 연해주 일대에 까지

그 고고학적 분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화권이 연해주와 두만강 그리고 동해안을 따라 영동

그리고 한강 상류로 중도식 무문토기가 나오고 있고 이게 서울 송파구의 백제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에도 나오고 있는 토기임.

즉 이런 거의 동일 토기를 사용했다는 건 이들 세력들이 우리 문화와 세력의 한 근간이였다는 걸 의미합니다.
ㅋㅋ 11-07-16 03:30
   
<우리나라 시원 문명의 두 줄기>

지금 우리나라 고조선의 문화는 크게 두개의 줄기가 화학적 반응로 섞히면서 한민족의 문화와 의식구조

그리고 문명을 만들어 낸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삼국시대 이후로도 계속해서 융합 변화해 왔죠.

기본 발해만 일대의 발해 문명 일명 요하 혹은 홍산 문명의

신석기 문명이 이후 고조선 하가점 하층문화로 그리고 그 극동북아 연해주와 아무르강 일대의 토기와 철기 문화가 동해안을 따라 이후 한강과 영남 호남으로 ..


이런 말갈은 고구려 문명권속에 이미 고구려는 유리왕 초기 북옥저를 정벌하면서 복속되어 동해 루트를

확보했고 광개토 태왕시기는 북방의 말갈족은 거의 완전히 복속됩니다. 이후 이런 상황에서

당과의 대전에서 말갈은 고구려의 한 중심 축으로 싸웠고 이후 고구려 부흥 운동과 발해 건국에도 참여

했음.

물론 좀 반발하고 먼 지역이 아무라강 상류의 흑수말갈인데

이것도 이번 한러 고고학 탐사를 통해

발해 무왕 시기의 사서 기록이나 고고학 발굴에서 발해의 행정 치소와 고분 발해식 토기들이 계속해서

발굴되면서 이미 고구려계(발해)문화로 상당히 동화된 흔적이 뚜렷히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일상생활

문화를 알수 있는 토기의 사용에서 더욱 잘 드러 나는 상황.



2007년 발견 러 아무르강 발해 고분군-토기”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1080051


아무르 일대

http://anwjdrkdgh.blog.me/110022325402


강줄기 따라 수많은 문화·유적 분포… 중류 ‘평저 융기문 토기’ 한반도서도 출토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6049&pt=nv
ㅋㅋ 11-07-16 03:36
   
<금나라는 신라계적 색채가 강한 국호 계승이지만 그 내부는 고구려계 문화와 정치력>


금나라 황실과 조정 내의 막강한 고구려(발해)계 영향력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106493129

 

 

 금나라 황실과 조정내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나라가 기존에 우리가 추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알던

단순한 여진족의 나라가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그 속에는 고조선 토착세력의 기반으로 천년을

이어온 고구려 사직의 문명과 정치적 파워가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음이 새삼 선명히 확인됩니다.

 

 윗글에서도 나오지만 실제 4대 해릉왕의 옹립에 발해인이 관여했고 그의 몰락과 다시 5대 세종의 옹립에도 고구려계가 뒷받침 했으며 이후 8대 선종에까지 고구려계가 금나라 황실 계보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했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물론 초기 금나라 1대 아골타는 발해와 여진을 일가로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고구려계를 포섭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김광석씨의 논문내용처럼 발해라는 국호가 비록 멸망했지만 여전히 동단국으로 이름만 바뀐 채 거의 200여 만명의 발해인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이런 가운데 이들의 협력과 포섭은 아골타에게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현안이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금나라 건국의 중추 세력으로 이후 금나라 황실의 중심 외척 및 황위 옹립에 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정도였다는 점이죠.

 

 더 재미난 것은 7대 위소왕이 시해를 당하자  도단명이라는  여진관료까지 중심이 되어 고구려계 선종을 8대 금나라 황제로 올립시킨다는 사실입니다.(위소왕 당시 몽골의 침입에 금나라내의 거란 장수들이 반금세력으로 돌변하며 몽골에 붙어 금나라가  궁지에 몰림. 이런 과정을 보면 고구려계는 금나라 건국에 중추 세력이였고 금나라의 전성기와 위기시에도 중심세력으로 함께하면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국가관으로 금나라에서 생활하고 활동하며  운명을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금나라의 전성기라는 해릉, 세종 시기로 이어지는 기간 조정내의 고구려계의 활동은 더욱 두드려집니다.

 

"張浩字浩然,遼陽渤海人.本姓高,東明王之後.....

장호는 자가 호연이며, 요양발해인이다. 본성은 고로서, 동명왕의 후손이다..."

 

4대 해릉왕 시기 북경의 중도라는 수도건립의 최고 책임자가 다름 아닌 고구려계로 금사에 열전으로 따로 둘 만큼 중요 인물로 기록되어 있고 그외의 열전항목으로 독립해서 소개되는 발해의 후손들이 적지 않은데 예를 들어 보면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고 간, 행어사대부(行御史大夫)였던 고 정(高 楨), 호부상서(戶部尙書) 고덕기(高德基), 행대병부상서(行臺兵部尙書)와 추밀부사를 지낸 고 표(高 彪)가 있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국무총리를 지낸 장 호(張 浩)와 그의 아들 장여림(張汝霖), 장 호와 항렬이 같은 집안인 장현소(張玄素), 현소의 조카인 장여필(張汝弼)이 있었습니다. 군사적 면에서도 송을 정벌함에 발해인 대호나 곽약사의 활약도 두드러졌습니다.

 

즉 금나라 황실의 당당한 중심 외척 세력으로 활동했던게 고구려계(발해인)였고 조정의 행정이나 도시 문명, 군사 부분등 다방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며 금나라 황위 계승에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보였던 게 고구려계 입니다.

 

이외 아골타의 부계 역시도 단순히 흑수말갈 세력이 아니라 신라에서 고려로 국호가 바뀌자 북으로 올라간 신라인으로 이 세력을 단순히 한명으로 보는 것보다 일단의 신라계 무리로 여진족 부락을 통합했다고 보는 게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봅니다.

 

금나라 황실의 추이 변화를 보면 마치 고려 황실의 변화를 보는 듯합니다.

 

고구려 멸망 후 남북국 시대 신라가 백제와 한강 이북의 고구려 세력을 통합한 이후 경주 서라벌의 힘이 약화되자 50여년간의 후삼국 시대로 다시 각지역적 정치색으로 대립하다 고구려 정치색을 등에 업은 왕건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936년)하고 수도인 개경과 함께 북진 일환으로 평양의 서경과 서경파 역시 중요하게 대우합니다. 이후 고려 조정은  천여년을 이어오던 신라계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고려 황실을 장악해 가는 형태처럼 금나라는 부계가 신라계로 만주 원류고에서 보이듯 국호 역시 신라 김씨성의 계승의식을 이어 신라계적 색채로 세워졌지만 앞선 고조선과 고구려 천년의 뿌리를 이어받은 고구려계의 영향력이 금나라 황실을 장악해가는 형태와 흡사 크로스되는 느낌이군요.
     
ㅋㅋ 11-07-16 03:42
   
< 금나라는 계승 의식는 어디로 흘렸는가?>

<"형인 대여진금국황제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글을 부치노라
우리의 조상은 한 조각 땅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이 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하여 공손히 하였다..."
《금사》

여진발해동본일가(女眞渤海同本一家).

《고려사》예종 4년,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고려)로부터 나왔으니...이 오아속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청나라 국편 공식 역사서.

사서를 보니 신라왕실인 김씨가 수십세를 이어왔고

금이 신라로부터 온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금나라 국호 또한 김씨 성을 취한 것이다.
ㅋㅋ 11-07-16 03:39
   
<금나라의 상당수 구성원은 누구였던가?>


발해학자 김광석씨의 논문 내용을 보면 <동거란이 발해 계승 = 10세기초 발해는 귀족 권력투쟁과 국정 불안으로 사회모순이 커지면서 925년 거란의 야율 아보기(耶律 阿保機)의 침략을 초래한다.

1년만에 홀한성(忽汗城)이 함락되고 애왕(哀王)이 투항함으로써 발해는 229년만에 역사에 종언을 고했다. 고구려계인 고영창(高永昌) 등에 의한 발해 부흥운동이 세차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아보기는 그러나 곧바로 발해국 영토에 동단국(東丹國)을 세우고 태자를 인황왕(仁皇王)으로 앉히며 발해국 계승을 선언했다.

당시 발해 유민 300만명중 190만명은 동단국에서 거란의 직접 통치를 받았고 나머지 110만명은 사방으로 흩어 이중 10만여명은 고려로 넘어갔고 60만명은 여진으로 도피했으며 1만명은 일본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실제 요나라는 발해 일대를 유목민이 아닌 도시 행정 체계로 다스렸고 200여만이라는 상당수의 발해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임
ㅋㅋ 11-07-16 04:06
   
< 금과 송은 적대국>

윗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금나라와 송나라는 적대국관계에 급기야 금나라는 송을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당시 서토를 통일한 한족 송나라는 개봉을 수도로 하여 왕조를 내세우나 이후 거란이 세운 요나라에

털리면서 굴욕적 조공 신하 관계에서 사대를 하고 발해도 멸망시켜 버리죠. 그러고 그자리에

발해인 200만명을 그냥 동란국이라는 이름만 바꾸고 다스립니다.

이런 가운데 발해 부흥 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급기야 신라계 아골타가 요나라를 박살내면서 숨죽이고

있던 반요 사상의 발해인(고구려계)이 합심하여 금을 세우고 마침내 요나라를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후 송나라의 압박이 오자 고구려 곽약사의 가문(곽안국)등이 송나라를 정벌하는데

일등 공신으로 활약하며 앞서 고구려인에 의해 금나라 황제 옹립도 좌지됩니다.

그리고 송나라 두 황제를 만주로 압송해 버리죠. 이후 북경일대에 고구려인 장호(금나라 국무총리)가 중도라는 수도 건립등이 다 고구려인 손에서 만들어진 역사입니다. 행정도

이후에 밀려난 한족은 내려가서 세운게 남송이고 금나라는 북경에 수도를 옮기고는 남송마저 압박을

계속하죠.


몽골의 징기스칸이 거세게 일어나자 금나라 힘에 묶여 있던 요나라 장수들은 반금 세력으로 돌변해서

이후 몽골과 합심해서 금을 압박해 버립니다. 그러나 금나라의 고구려인들은 금나라 건국부터

황제 외척으로 이후 황제 옹립이나 금의 전성기 그리고 마지막 까지 함께하며 전혀 다른 나라가 아닌

고구려 발해처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주체적으로 이끈 역사임을 알기 바랍니다.
ㅋㅋ 11-07-16 04:26
   
倭國乃日本國也. 本名倭旣恥其名. 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 今則臣屬高麗也 - 郭若虛.『圖畵見聞志』 卷6. 高麗國
왜국은 일본국이다. 倭라는 원래 이름을 부끄러워했는데, 극동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일본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속국이다.


<왜국사>

첨언을 더 하자면

왜국사는 이렇게 이해하는게 합당하리라 봅니다.

삼국시대에는 가야 백제가 들어가셔먼 열도는 본격적으로 우리 백제의 담로 혹은 분국 영역에 포합됩니다.

이때는 벡제가 세운 아스카 도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미개한 열도를 개척하던 시기로

실제 고고학적 상황을 보면 열도는 그 흔한 도시문명도 나오지 않는 촌락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 굴립주식 형태의 산적 두목같은 목재 건축물로 계속해서 열도에 확장되고 여기 저기 생겨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백제는 가야 이후 백제가 세력을 잡으면서 서열동와 동열도로 확장하며 왜왕을 겸하게 됩니다.

이후 백제가 멸망하다 일부 귀족들이 열도로 들어가

소수의 극귀족 시대인 나라 헤이안 시대가 열리면서 이때 왕성이 등장하고 국호가 나옵니다.

남북국 시대에도 견발해 견신라등 왕래가 활발했고 그런 가운데 일왕은 친한파로 이를 통해

열도에서 선진 문화의 중심자로 역할을 유지합니다. 이후 막부시대가 되면서

일왕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지고 우리의 남북국시대가 끝나면서 문들 걸어 잠그면서 왜색적 색채가

강해지면서 독자화됩니다.


그러다 고려시대가 오면서 고려에 의해 왜국은 문호를 열고  속국으로 이후 조선시대 와서도 쇼군들이나

유우국은 조선을 황상으로 표현하며 신하의 예로서 교류하다 16세기 히데요시가 막부를 통일하면서 우리

와 적대적 관계로 임진왜란이 발생.
e 11-07-16 11:42
   
일본왕실중  모계한명이 백제계라는 것이 알려졌을  뿐,  일본왕실  자체가 백제계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사는  한국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금나라청나라는 그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입니다.  이는 설이 아니고 정사에 나와있는 역사입니다.  왜 조선이 한국사입니까?  고려인이던  이성계가 세워서이죠.  금청사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조선은 무슨근거로 한국사가되죠?

뿐만아니라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고구려유민대조영이 세워서 한국사인데,  금청사가 한국사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 발해가 한국사가 됩니까? 발해와 고구려의 구성민족인 고구려유민  말갈족은  금나라 청나라의 구성민족인  신라왕족과 발해유민  그리고 말갈로 똑같습니다.  이둘이 차이라곤 전혀 없는데 어떻게 해서 발해는 한국사고 금청사는 한국사가 아닙니까?

우리나라  근대최초의 국정교과서에서는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쳤습니다.  이제와서 편입한다  만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래의 우리역사를 되찾는 일입니다.

송막기문 - 중국인이 "여진족 지도자는 신라인"이라 기록: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247&page=4
오랜식민지배 끝에 중국인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바뀌어: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427&page=4
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사: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51&page=4
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쳐 :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455&page=4
금·청사 한국사 편입 주장 서길수 교수:
http://kr.blog.yahoo.com/straysheep931/81
금 청사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elc&articleno=2996071&categoryId=543508®dt=20070227183207#ajax_history_home
gagengi 11-07-16 12:48
   
만주어는 원래 고대  한민족들이 썼던 여러가지 방언중  하나가 갈라진 것입니다.  만주어나 지금의 한국어나 같은 알타이계이고,  만주족이나 한민족이나 둘다 씨름도 똑같고 집안에 온돌들여놓는 것도 똑같습니다.    게다가 만주족들이 원래 단군을 시조로 제사까지 지낸  것까지도 똑같습니다.  만주족의 역사가 금나라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금나라자체가 신라인  김함보무리가 시작한  것입니다. 한명이 아니라 그  사람을 따르는 무리가 함께 이동했고,  왕족은 신라계  왕비족은 발해계로 집권세력도 한민족입니다.  이들을 한민족과 다르다고 나누는건  엄청난  무리일 뿐아니라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이죠.

금나라가 단군에 제사를 지냈다는 금사의 기록입니다:

"冊長白山之神為開天弘聖帝" (금사  10장 (金史) )
"明昌四年十月 ... 行仗五百人,複冊為開天弘聖帝。" (금사  35장 (金史) )
     
; 11-07-16 13:11
   
그러니까 중요한건 글쓴이가 님의 논리를 일본에도 적용시킬수 있냐는건데
아키히토가 인정한거 말고도

무령왕 동생이 왜의 왕
http://blog.naver.com/myunggyu/60018480482
백제왕을 모시는 신사
http://myunggyu.blog.me/60020434062
일본어의 뿌리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505000014

이거 말고도 3.1절 스브스 스페셜보시면 8세기들어서 열도총인구중 도래인 비율이 90프로라고 합니다. 걔네들이 대놓고 인정하기 싫을뿐 지배층뿐만 아니라 이미 도래인 피가 조금씩이라도 다 흐르고 있다는 뜻....
          
굿잡스 11-07-16 16:28
   
ㅋㅋ 글을 이해 못하시네

삼국시대는 열도는 우리의 분국.

실제 일제 이전의 지도를 보면 오사카를 백제주로 표기.

이후 백제의 멸망이후 극소수 귀족이 열도로 가면서

왕성이 등장하면서 일본이라는 왜국이 들어서지만 이후에는 정확히 말해서

고려시대고 우리의 속국의 개념이지 우리나라로 보지도 왜국도 지들 노선으로 간거니

말할것도 없는 거죠. 그기다 친한파인 왜왕은 아예 막부시대가면 그 존재를

잊어버리면서 섬나라식 왜색으로 특화되어 버리는데


그러나 만주와 한반도는 지금도 조선족 자치구나 북한은 만주일데도 인적 물적 교류를

하며 생활권 마냥 왕래합니다. 물론 고대에는 지금처럼 휴전선의 선의 개념이

아니라 점의 개념이라서 더욱 교류와 활동에 그렇게 큰 구속이 없던 시기임.

대량의 군사이동에야 경계를 했겠지만.
               
굿잡스 11-07-16 16:33
   
그리고

왜국은 우리의 일부가 흘러들어가 지류이지 본체가 아니죠.


왜국이 그나마 우리역사와 문화에 영향력을 고작 미친건 일제 35여년의

기간뿐임.


청사는 혈통 위주라고 해도 금나라는 당시 발해인이 200여만명이 여전히

이름만 바꾼채 살고 있었고 요나라가 본인들이 직접 지배한게 아니라

그냥 발해계 왕족을 통해 간접 지배로 다스린 거임. 이가운데 신라계가

말갈 부락일대를 석권하면서 반요사상아래 연합전선으로 금나라를 건국.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요?

금사는 단순히 왜국처럼 그냥 우리민족의 일부가 지류처럼 흘러들어거 독자적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자기 섬안에서 놀던 것이고

우리는 발해 이후에도 끊임없는 발해 부흥 세력과 국호가 몇년 혹은 몇십년으로

5호 16국 시대처럼 이어오다 본격적 120여년을 간 금나라가 세워졌고 그

건국의 주체와 전성기 그리고 생사를 함께한 능동적인 국가관에서 이루어진

역사라는 것입니다.
                    
굿잡스 11-07-16 16:37
   
나아가 고려황실의 왕건이 여러 지역을 통합하기 위해 신라계니 백제계니

황후를 외척으로 둔것처럼 신라계 아골타는 고구려 계 말갈계를 황후로

두면서 통합하다 4대 해릉왕 이후부터는 고구려계 황제가 그리고 고구려계발해인)에 의해 황위 옹립이 거의 좌지된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고구려계가 금나라 조정의 국무총리부터 도시문명등의 행정과 군사

요직에 핵심으로 작용하다 보니 그 파워에 힘입은 영향력들인 것이죠.
을지문덕 11-07-19 15:34
   
역사는 승자의 편. 또 변화무쌍-오늘날의 중국영토를 거의개척하여 한족을비롯한 여러민족을 지배한 여진족이 오늘날은 멸절위기.요나라를세워 북중국을 거의다 주서먹은 거란족은 그 족적마저 찾기힘듬.돌궐족과 강성했던 흉노족도 마찬가지.서하족도 마찬가지.한때 당왕조를 압도한토번족(티벳족)도 초라한 소수민족,한때강성했던 위그르인도마찬가지,한때 인류역사상 최강의 제국을세웠던 몽골족도 외몽골인은중국인 내몽골인은 고립되어 명맥만유지하는 약소국.그외거론하지않은 장족,묘족등 수십개 소수민족이 과거에자신들만의 국가사가 없얼을 것인가?(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한때 시공을 점유했던 국가사는 오늘날 거의 중국사가 되버렸네!물론금사 청사의 왕족들이 신라인의 후손일 가능성은 높지만 국가사전체가 왕족을 기준으로만 파악될 수 없는일.짱께들은 왕건이 한족후손이라 하며 고려사도 은연중 지들 역사와의 연관성을 주장함(물론왕건이 한족후손일 수도 그렇지않은 수도 있지만). 만일 왕건이 한족후예라처도(물론 아닐가능성도 있지만)상식선에선 고려가 마땅히 오늘날의 한국사인것처럼(같은 논리로 짱께들은 불명확한 증거를 기준으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거의자국사로 우김.역시 고구려시조 고주몽도 같은 범주로 묶으려함-물론 근거는 희박함.은근슬적왕건의 고려도 자국사의 연장으로 보고싶어함.-그러나 우리나라의 반발을 의식해 정부차원에서 대놓고는 말을 못함.짱께들은 모든 것을 자기좋을 때로해석하여 - 예를 들어 조공관계는 중국한족중심의 조공관계만 상정한다. 한의 흉노에한 조공이나 당의 토번에한 조공이나 송의 금에대한조공 또는 요에한 조공이나 위진남북조,오호십육국,오대십국시대한족국가들의 북방유목민족에대한 조공등은 거의 모두무시되고 축소된다.-그래야만 한국과의 역사논리전쟁에서 유리해 지겠지만,짱께들은 주구장창 조공책봉관계를 내세워 한국사의 모든기간이-물론대한민국제외,자신들에대한 예속의기간으로 보고 우리의 모든 왕조사를 자신들의 속국사로 보려한다.-가증스런놈들이다),물론 금,청,이정기왕국같이 왕족계통은 우리와 연관되 있으나 중국여러민족의 국가사를 그들에게돌려 주고 이를 객관화하여 중국한족중심의 이기적인 중화사상과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그리고 이명확한 사실을 다른외국의 사학자들에게도 ,물론 아는사람도 많겠지만,확실히 각인 시켜야옳다.) 은왕조는 한족에서볼때 동이족의국가,연나라도 하화족과 다른민족의 국가,월나라도 월남과관련된 국가,중국삼국시대 위나라는북방유목민족중심의 국가,북위는 탁발선비족의 국가,후연도 선비족의 국가,오호십육국은 한족에서볼때오랑케중심의 국가,토번은 티벳족의 국가,당왕조도 선비족이세워 중원을 지배한 국가.요왕조는 거란족의 국가,금왕조는 선비족의 국가.원왕조는 몽골족이세워 세계제국을 건설한 국가,청왕조는 역시여진족이 중원을 지배해 연해주일부를 제외하고 오늘날의 중국영토를 개척한 국가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 인식이 되지 않겠는가? 중국은 한족중심의 국가다.모든것이 한족중심으로 돌아간다. 경제개발의 성과역시 한족중심으로 돌아가고 위구르나 티벳사태에서 보는것처럼 이들소수민족들은 자원과 삶의터전을 뺏앗기고 경제성과에 있어서도 찬밥신세다.중국이 다민족공통체를 강조하고,불과100여년전 까지만 해도 한족입장에서 오랑케였던 여러 소수민족들을 중화사상의 범주에 포함시켜 다민족구성통일국가의 일체성을 강조한(이전에는없었던 변형된)중화사상을 강화하는 것도 역시 한족중심의 지배체제를 공고히하려는데 제일의 목적이 있다(중국소수민족의 거주분포를 보면,7%남짓되는 소수민족이 중국전체면적의 60%를 차지하고 93%의 한족이 차지하는 거주면적은 중국전체면적의40%차지하는데_물론 일부 뒤썪여사는 경우도 있지만 이경우 티벳과 위구루에서 봤듯 많은 갈등을 야기하게 되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_ 이는 중국국적의 국민개인인구당 돌아가는 자원량에 있어 소수민족이 한족보다 훨씬 많다는 말도 된다.)
만일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북방사(고구려 발해 옥저 동예는 물론 심지어 고조선까지)를 도적질 하려 하지 않았다면 구지 중국을 적으로 돌릴 필요도, 중국인을 적대할 필요도 없었겠으나, 오늘날 한족중심의 중국은 뻔뻔스러운 끝없는 탐욕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국인 과의 진흙탕싸움(주로 역사문제에 관한 싸움)을 피하려 든다면 우리는 우리의 어쩌면 근원적 자긍심의 원천인 역사를 잃을 것이요,만일 역사를 잃으면 모든것을 잃게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때 격심했던 역사전쟁이 이 정부 들어선 잠잠하다. 짱께가 그동안 무순 수작을 부렸는지 외국인터넷 사이트에선 그전에 일방적으로 우리역사중심으로 기술되었던 고구려사가 슬슬 한,중간의 논쟁거리라는 인식이들게끔 중국의 의도가 반영되어 가는 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논쟁중에서 다음에는 중국측주장이 그 비중이 점점 늘어나서 급기야 한국사를 잘 모르는 외국인의 인식에(그 막대한 궤변적논리와 자본과 인터넷인구수에 현혹되어)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말이 트린말은 아니다.로 더나아가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다.로 더나아가 고구려는 중국사다.로 급기야 각 국가의 교과서에 고구려사는 중국사다.로 기록될 수도 있다,-참 소름끼친다.
국가차원의 대책은 시급하고,역사전쟁에 자원을 투입해야 마땅하지만도.............................
이 미덥지않은 정권은 그저 손까락만 빨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마땅히 싸워야할 적도 싸워야할 일도 많은데도 도무지 이 정권은 싸울의지도 의사도 아예그런 인식도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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