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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10 13:41
[한국사] 고대 동아시아 항해술 1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473  

고대 조선·항해 기술①-신라 시대


정 채 호(코리아나호 선장)


▲ 코리아나호
신라 실직주(悉直州) 군주(軍主) 이사부는 512년 음력 6월에 우산국(于山國 )을 점령하였다.

우리는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당시 어떻게 선단을 운영하여 해상진출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먼저 신라 시대의 항해와 조선술 해상교통에 대해 고찰해 본다.


삼국 중에서 해상교통과 무역이 가장 왕성하게 발달했던 나라가 신라였다. 삼국 중기까지는 백제가 발달했으나 신라는 6세기 들어 삼국을 통일하면서 당나라와 일본·신라를 연결하는 해상교통과 함께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장악한 해상왕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6세기 중엽부터 한반도의 삼한을 통일한 신라인들은 남해를 돌지 않고 서해의 직항로를 통해 중국과 무역은 물론 왕래를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
중국과의 활발한 해상교류는 항해술과 선박제조기술 발달의 밑바탕이 되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정식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제22대 지증왕 13년(521)부터다.

 이 해에 신라 조정에서는 처음으로 서해에 배를 띄워 당에 친교사신을 파견했고, 같은 해 울릉도를 병합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이를 보면 신라가 해상교통에 자신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6세기 중엽부터 신라인들의 배가 늘고 백성들의 해상교통이 왕성해지자 해상 운수를 통제하기 위한 선부(船府)가 제26대 진평왕 5년(583) 1월에 설치되었다. 신라와 당나라간의 해상교통이 가장 왕성했던 때는 당나라 무덕왕 4년(621)이었다. 이때 신라와 당은 두 개의 서해항로를 이용했다.

 

신라에서 당으로 갈 때에는 한강 하구나 남양만에서 산동반도로 직항하거나 전남 영암부근에서 흑산도를 거쳐 상해 아래 항주만을 통해 갔다고 <조선통사>에 기록되어 있다.

또 당에서 신라나 일본으로 갈 때는 산동반도 해안을 타고 북상해 발해만을 거쳐 여순→대련→압록강 입구를 지나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남양만이나 당진부근에서 육로를 따라 신라의 경주로 들어가거나, 남양만을 지나 남하해 완도의 청해진을 거쳐 부산→경주로 들어갔고, 일본항로는 부산을 출발해 남지나해로부터 북상하는 흑조(黑潮) 해류를 타고 대마도로 향해 규슈→일본으로 이어졌다고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당나라 이전의 중국과 신라의 해상교통은 어떤 루트로 이루어졌을까?

3세기후반 초기에는 요동반도 연안 항로를 개척해 왕래했다. 산동반도 북부해안의 봉래에서 요동반도의 남단 여순을 거쳐 요동반도 동해안으로 북상, 압록강 입구를 거쳐 한반도 서해안으로 오는 해로였다.

 

이때는 항해술과 배가 서해로 직항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는 주로 이 항로를 이용했는데 고구려와 백제의 방해가 많아 어려운 항로였고 이에 따라 중국과의 원활한 교역을 위해서도 신라는 삼국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6세기 이후 고구려가 요동반도 연안해로를 본격적으로 막아 서해를 횡단하는 직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는 고구려의 봉쇄도 있었지만 그만큼 항해술과 배가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한반도 서해의 남양만과 중국 산동반도를 직결하는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항해 시간과 경비를 절약했다.

서해 횡단항로는 4세기경 중국의 위나라가 개척해 사용했다. 원래는 육로를 통해 한반도 여러 나라들과 왕래했는데 4세기 초 요동반도를 공손씨 일파가 점령하고 세력을 키우면서 위와 한반도간의 육로를 막아서 할 수 없이 서해횡단 해로를 개척한 것이었고, 삼국시대에 와서는 고구려가 해로뿐만 아니라 당나라간의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신라는 위나라가 개척한 서해해로를 다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일본의 유명한 승려인 엔닌(圓仁, 794∼864)이 838년부터 847까지 9년 6개월 동안 당나라를 여행하고 쓴 여행기에 신라의 해상교통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겨 신라의 해상교류가 발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신라의 해상교통은 대개 세 시대로 나뉜다.

1) 신라건국부터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사신파견으로 중국과 국교를 맺고 세력을 강화하던 ‘견사 해운시대’가 처음이고,

2) 그 다음이 5세기 초부터 통일신라시대 동안 일본·중국과 무역이 왕성했던 ‘해상교역시대’다

3) 그리고 마지막이 신라 말기 해상왕 장보고가 동남아해상 교역을 장악하던 시기다.

결론적으로 이사부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할 시대는 신라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하여 대항해시대 일본.중국 등 해외교역 시작으로 통일신라의 해상왕장보고를 탄생케 하였다


신라가 극동의 해상권을 최대로 장악한 시기는 통일신라말기였다. 통일신라 후기에 접어들면서 신라 내 왕족과 귀족들의 권력다툼으로 정치적 혼란기가 찾아왔고,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타 개인 활동이 자유로워진 백성들이 마음대로 해상으로 진출해 대한해협과 서해·동지나해를 무대로 일본·중국과 해상무역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신라는 정치적으로 쇠퇴할 무렵이었지만 민간의 해상활동은 더욱 강해져 극동의 해상왕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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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1-08-10 13:44
   
별 큰 의미없는 글이지만
아랫글 댓글에서 나온 고대 항해술에 대한 논의를 보고
올립니다. 단순히 해류를 따라서 항해했다는게 주류학설이지만 우산국의 정벌을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보여집니다.
     
비좀와라 21-08-10 17:29
   
우산국은 단순히 울릉도로 비정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구과학적으로 우산국을 정벌 하였다는 시기는 소빙하기가 진행되던 시기라 지금의 울릉도의 크기가 아니였어요.

아주 조그만 섬 정도 였는데 신라가 넘쳐나는 힘을 어쩌지 못해서 거의 무인도나 가까운 섬을 정벌 하였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요.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가 아니라는 거죠.

김수로에 관한 기록을 보더라도 지금은 육지인 김해가 당시에는 바로 바다와 접한 항구 였고요. 불국사 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시기에요.

아랍의 기록을 보더라도 신라를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 했는데 지구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우리가 이해를 하지 못한거지 당시 신라는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맞은 해양국가 였다는 거죠.

유적에도 김해지역에서 용골을 사용한 통나무 배의 유물이 발견 된 것 처럼 신라와 금관가야는 기본적으로 해상국가 였고요. 반면에 백제는 아니고요.

신라는 일본 정청원에서 발견된 남미의 천산갑의 유물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사신이 조공했다는 기록과 신라에서 천산갑의 토용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일부가 남미까지 갔었을 가능성이 있죠.

그리고 이란의 민요집에 보면 이란의 일부 무리가 신라에 오고 신라의 공주와 결혼하고 신라왕이 이들이 이란으로 가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라수군을 보냈다는 것을 보면 신라의 해상활동은 최소한 이란까지 갔었을 거라 추정도 됩니다.

백제의 양자강 유역의 점령은 모르겠지만 신라의 월주 진출은 큰 무리가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서해(=황해)는 지금도 항해하기 어려운 바다고요. 옛날과 지금도 마찮가지만 낮은 바다라 곳곳에 사구와 암초가 있어서 정말로 조심해야 하는 바다에요. 단순히 육지가 가깝다고 항해하기 쉬운 바다가 아닙니다.

원나라 일본 정벌시에 원나라 군은 중국 남단에서 일본으로 갔고 고려군은 당연히 한반도에서 갔지만 원나라군은 남송의 배 즉 강에서 사용했던 조그만한 배를 타고간 반면에 고려군은 황해바다에 단련된 튼튼한 배를 갔고요.

강에서 타는 조그만 배나 조금 큰 배를 타도 중국 남단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은 바다가 잔잔해서 가능 하지만 서해 항해는 기본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그리고 양직공도를 보면 삼한의 모든 사신이 보입니다.
감방친구 21-08-10 14:09
   
1)

본문에서

"서해 횡단항로는 4세기경 중국의 위나라가 개척해 사용했다. 원래는 육로를 통해 한반도 여러 나라들과 왕래했는데 4세기 초 요동반도를 공손씨 일파가 점령하고 세력을 키우면서 위와 한반도간의 육로를 막아서 할 수 없이 서해횡단 해로를 개척한 것이었고"

ㅡ 위(조위)는 3세기
ㅡ 공손씨가 당시 요동지역에서 활동한 시기 3세기(더구나 238년에 위나라에 망하고 흡수됨)
ㅡ 4세기는 서진-동진, 석륵, 모용선비의 전연-후연 시기

2)

위나라와 서진이 준 인장들이 북한지역에서 다수 발견됨에 따라 삼국지/위략-후한서-진서 등이 기술한 바대로, 한반도 지역에 대한 일정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당시도 황해를 직도하는 원양항해가 아니라 연안과 묘도군도를 징검다리 삼는 연안항해

3)

황해는 험한 바다로,
설화적으로는
ㅡ 거타지설화, 의상대사설화, 심청전 배경설화 등이 있고
유적과 유물로는
ㅡ 한반도 서부해안과 섬들을 따라 난파선, 해신제를 지낸 사당과 유물 등이 산재

4)

5세기 말에 북위가 백제에 사신을 보내고자 했으나 가로막아서 뱃길로 사신선을 띄웠다가 난파된 바 있음

5세기 말 백제 역시 고구려가 뱃길을 막아서 몇 차례 사신선이 가지 못 한 일이 있고 이후 강남으로 통하는 원양항해 항로를 개척하여 남조와 외교한 바 있음

이 남양항로는 고려 역시 11세기 후반에 이용하는데 거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였음

그러나 이 뱃길은 험해서 송과 고려 양측이 모두 여러 차례 난파-조난을 당한 사실이 양측 사서에 기록돼 있음

완도 청해진을 중심한 장보고의 활동과 엔닌의 입당구법기, 신라의 교역 및 교역물품, 정창원 유물과 일본 측 사서 기록의 교역물품의 내용을 보면 남양항로를 이용한 국제 교역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음

고려시대 청자교역과 그 생산지 등을 통해서도 그 단면을 엿볼 수 있음

5)

예전 KBS 일요스페셜에서 신라 인면구슬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한반도와 남아시아 지역의 해양교류사를 탐구한 바 있는데

이미 3~4세기부터(정확한 시기 확인 필요) 중국 강남-베트남/필리핀-말레이반도/인도네시아-인도-중동 지역을 잇는 이른 바 해양실크로드가 있었음이 밝혀짐

조선시대 몇몇 표류기/기사와 민담을 보면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 사이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이어도, 류구, 필리핀, 심지어 베트남까지 도달하였다가 귀환한 사실이 빈번함

6)

원-명 시기 왜구의 활동지역, 근세 일본의 인도차이나 반도(베트남) 교역진출사 등을 살펴 보면

대체로 후한서 동이열전 왜전의 기사에 부합

즉 류쿠열도와 대만섬을 잇는 징검다리를 타고 작은 쾌속선으로 중국 강남과 동남아 출입이 가능
엄근진 21-08-10 14:25
   
합리적인 의견으로 보이는데,
그럼 1~4세기 양자강 하류를 주름잡던 석씨신라와 해양백제설은 무너지는 건가요?
     
지누짱 21-08-10 15:56
   
연안항해를 기본으로 하여 해류를 따라 운항하는 것도 있었다고 보여지네요
     
엄근진 21-08-10 16:44
   
당시 항해술로는 직항으로 가더라도 한달은 소요될텐데, 연안항해를 한다면 6개월 이상 소요되리라 봅니다. 그렇게 먼거리에 있는 영토는 실질적인 유용성이 없지 않을까요?

석씨신라(월주신라)와 해양백제 중 양자강 하류지역은 신뢰성이 낮아보이니, 추가적인 연구를 기다려야겠네요. ^^
          
감방친구 21-08-10 16:57
   
석씨신라와 양자강 하류의 해양백제설은 근거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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