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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09 21:11
[한국사] 왜의 기원과 정체에 대해 꽤나 설득력 있는 기사가 있어서 올려봅니다.
 글쓴이 : 밑져야본전
조회 : 769  

왜인은 중원에서 흘러온 유민이다



일본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한일관계가 꼬이고 갈등이 첨예해질 때마다 이런 의문이 증폭되곤 한다. 한국인과 가장 닮았다는 일본인. 언어마저 세계에서 가장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한일 양국의 사람들은 마치 상대가 ‘땅 사면 배가 아픈’ 사촌지간 같다. 일본인의 선조는 왜인이다. ‘왜인=고대 일본인’이라는 도식은 익숙하다.

하지만 적어도 1990년대 이후로 이 등식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유전자 인류학이 말하는 일본인과 고대 문헌이 말하는 왜인의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倭人(왜인)의 모습을 담은 토기 하니와 6세기
고대 일본열도에 왜(倭)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의 권위 있는 학자들, 예를 들어 일본 기마민족설로 유명한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와 일본문화 기원론의 고쿠부 나오이치(國分直一), 오키나와를 일본민족의 박물관론으로 구성한 도리고에 겐자부로 등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왜인의 기원은 일본 열도가 아니라, 진(秦)나라대에까지 양자강 유역과 산동반도 등에 흩어져 해상무역을 하던 집단이라는 점이다.

이런 왜인들은 후에 한(漢)나라의 남하정책에 따라 중국남부,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로 흩어지게 된다.

왜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중국 고대 인문지리서 <산해경>이 처음 언급하고 있다. 진한(秦漢)기에 걸쳐 저술된 <산해경>에는 “개국(蓋國)은 거연(鉅燕)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으며, 왜는 연에 속한다”라고 설명한다.

이제까지 ‘왜=일본열도의 고대인’이라고 간주했던 시각은 당연히 왜의 북쪽에 있다는 개국( 蓋國)을 BC 2~3세기경의 한반도 내 삼한 세력이라고 판단해 왔다.

하지만 다른 사서들이 말하는 왜인의 위치와 활동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진한시대 이전까지는 일본열도에 왜인이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에가미 나미오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한 근거로 에가미 교수는 <논형(論衡)>이라고 불리는 사서에 “주(周)대 때는 천하태평하며 월상(越裳)은 흰 꿩을 바치고 왜인은 ‘창초를 바쳤다”는 기술에 주목했다. 창초는 창포의 다른 말로서 주로 중국 양자강 이남 지역에 분포되고 있고, 일본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 에가미 교수의 주장이다.

아울러 중국의 사서들이 ‘왜인은 얼굴에 문신을 한다’고 언급한 풍습 역시 양자강 이남의 중국 남방 민족들에게 흔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에가미는 ‘왜가 연에 속했다’는 산해경의 기술은 화중·화남의 왜인들이 연나라에 무역을 하기 위해 들어갔던 것이라고 추정한다.

에가미는 원래 왜인이 중국 강남에 기원을 두고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양민족이었다가, 1세기 이후에는 일본에 정착된 무리만이 왜인으로 불리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에가미 교수의 논지에서 좀 더 폭넓게 왜인의 기원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바로 도리고에 겐자부로였다. 그는 왜족(倭族)이라는 공통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상정했는데, 그의 정의에 의하면 왜인이란 ‘벼농사를 수반해 일본열도에 도래한 왜인, 즉 야요이인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총칭한 개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본초학 연구서 <본초강목(本草綱目)>을 근거로 왜인의 본거지를 쓰촨성(四川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도리고에에 의하면 왜인은 양자강 유역에 여러 소규모 왕국을 건설하고 벼농사를 영위하고 있었지만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오·월 등에 흡수돼 갔으며 진한(秦漢)시대에 완전히 와해되면서 중국 남부의 오지와 한반도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왜인들은 예맥족과 혼합됐고 그 결과가 한족(韓族)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한(韓)에 통합되기를 거부한 이들이 한반도에서 왜(倭)로 불렸으며 이들이 다시 일본 열도로 이동해 사서(史書)에 야마토 정권을 수립한 왜(倭)로 등장한다는 것이 도리고에의 학설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중국 동남부 지역의 사람들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인들 간에 유전자 거리가 서로 밀접하다는 점이 뒷받침한다.


▲ 가야의 갑옷. 왜에 전파되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 삼한과 왜의 문화는 닮은꼴?

도리고에의 이론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왜 한민족과 일본 민족은 그렇게 닮았으며 삼한의 문화와 왜의 문화가 비슷한지, 그리고 임나일본부설이 치열한 논쟁을 겪으면서도 완벽한 해결을 보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도리고에의 학설을 일단 수용해 보면 고대 한반도의 삼한과 일본의 왜는 거의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문화적 양상이 비슷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아울러 왜가 백제와는 서로 연합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신라와는 적대적이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즉 백제는 한반도 내 존재했던 왜와 연합국가적 성격을 띠었던 반면, 신라는 왜와 연합하지 않고 독특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내세워 왜집단을 배척했을 거라는 점이다.

그런 점은 한반도 왜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했던 가야의 여러 나라들을 신라가 정복하는 과정에서도 크게 불거졌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야는 왜와 친연성이 높으면서도 백제와 신라에 비해 설명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고대국가였다.


장강에서 이동한 세력, 한(韓)과 왜(倭)로 갈려

왜의 기원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건국의 신 이자나기(伊邪那岐)와 이자나미(伊邪那美)의 명칭 구조가 가야의 두 건국자 뇌질주일(惱室朱日)과 뇌질청예(惱窒靑裔)의 명칭 구조와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대가야의 건국자 뇌질주일의 별칭은 이진아시였다. 바로 김수로왕이다. 일본의 건국 남신 이자나기와 가야 김수로의 이진아시의 음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의 기원도 가야로부터 탐색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5가야 가운데 하나인 비화가야(非火伽倻)의 옛 이름은 비사벌(比斯伐), 비자벌(比子伐)이었다. 경남 창녕지역이고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되는 곳이다.

창녕에는 가야왕족들의 고분이 유달리 많은 곳이다. 비사벌, 비자벌은 모두 비화(非火), 즉 ‘빛벌’의 음차다. 고대의 성읍은 ‘벌’, ‘부리’와 같은 말로 표현됐는데 신라의 서라벌과 백제의 소부리가 그렇다.

비화가야(非火伽倻)의 비화(非火)는 빛불=빛부리=비사벌이었다. 고대 일본어에서 일(日)의 음가는 ‘히’가 아니라 ‘피’였다. 그러므로 일본(日本)의 일(日)을 왜어(倭語) ‘pi’로 읽고 본(本)을 한어(韓語) ‘buri’로 각각 읽으면, 일본(日本)은 빛부리/빛벌과 유사한 음가의 ‘pi-buri/pi-bur’가 된다.

즉 비화(非火)=일본(日本)의 의역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리고에의 ‘한족(韓族), 왜(倭)-예맥(濊貊) 결합설’이 옳다면 말이다.

   
▲ 일본 고교 교사용 역사 자료
도리고에는 에가미나 고쿠부보다 훨씬 넓은 개념으로 왜인을 파악했다. 그는 자신의 학설을 설명하는 데 가설적인 개념으로 ‘왜족(倭族)’이란 용어를 제기했다.

이는 그의 정의에 의하면 ‘벼농사를 수반해 일본열도에 도래한 왜인, 즉 야요이인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총칭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왜족 개념을 통해서 왜인과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의 민족적·문화적 계통관계를 재조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도리고에도 역시 에가미와 마찬가지로 <논형>의 기사를 근거로 왜인의 거처를 중국 남부에서 찾았을 뿐만 아니라 본초학 연구서 <본초강목(本草綱目)>을 근거로 그 본거지를 쓰촨성(四川省)으로 특정했다.

또한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를 실마리로 장강 상류에 왜족의 옛 왕국들이 존재했으나 한(漢)족의 침입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다음과 같이 각지에서 흥망을 거듭했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전한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왕국은 멸망했으며 남은 왕국들도 삼국시대와 원(元)나라시대에 토멸돼 장강 상류지역의 왕국들은 전멸됐다.(1982:37-57). 망국의 백성이 된 왜족들은 강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일부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여러 왕국을 세웠다가 근대에 들어서 버마·태국·캄보디아·베트남 등을 건국했다.

한편 산악지대로 들어간 무리는 중국 서남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에 걸쳐 소수민족으로서 왜족의 맥을 이어갔다. 또한 장강 하류지역으로 이동한 무리는 하무도(河姆渡) 유적을 남기고, 그 일부는 산둥반도로 북상해 한(漢)족한테 동이(東夷)로 불렸다.

은(殷)나라는 그들이 세운 나라였으며 주대에는 서이(徐夷)·회이(淮夷)·담이·거이·엄이(奄夷)·래이(萊夷)라는 작은 나라들을 세웠으나 주나라와 제(齊)나라에게 멸망되거나 오나라에 흡수됐다.

그 오나라도 끝내 월(越)나라에 의해 멸망(BC 473년)됐으며 이때 많은 유이민이 발생했다. 그 유이민 중 일부는 한반도 중남부에 진출해 토착민족이었던 예맥(濊貊)과 혼합하면서 ‘한인(韓人)’이란 명칭으로 중국사서에 등장하게 됐다.


이에 대한 통합을 거부한 무리는 ‘왜인’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면서 한반도에서 정착했다. 한편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일본으로 간 무리도 있었는데, 그들이 일본의 왜가 됐다고 한다.

출처 : 미래한국 Weekly(http://www.futurekorea.co.kr)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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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져야본전 21-08-09 21:18
   
꽤 길지만 정독해보시길 추천합니다. 회원분들의 고견은 어떠한지 궁금하네요..
윈도우폰 21-08-09 22:04
   
죠몽시대의 왜인은 아이누족
야요이 시대 왜인은 한반도에서 넘어간 왜인...그러나 거주지는 큐슈 북단

아마도 현재의 왜놈들이 중국 쪽과 억지로 연결해 보려고 소설을 쓴 듯...

양자강에서 한반도 남부나 큐슈 쪽으로 왜인이 이동했다는 말은 근거가 없음
이 시기의 항해는 연안을 따라 이동하지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넘어가는 그런 경우는 없었음

우리 선조 들도 제주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추자군도를 징검다리 처럼 활용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음

지금의 지리 개념으로나 양자강이 우리 전라도와 가까운 것이지 해류가 한반도 쪽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우연으로도 건너오기 어려운 것임

동아시아에서 안 보이는 바다를 건너는 것(일종의 원양항해)은 기원 후 4~5세기 이후이고...8세기 이후에도 왜인들이 중국을 가려면 신라의 배 특히 장보고의 선단 도움을 받아야 건널 수 있었던 것임...엔린이 그 예

울릉도 역시 해류의 도움이 있어 갈 수 있었던 것임...그것도 남쪽에서 아니고 함경도 쪽에서 내려오는 한류를 타고 갔던 것...이사부는 역으로 난류를 타고 울릉도로 간 것이고...

그런데 그 전 시기에 해류 도움도 못받는 상황에서 왜인들의 조상이 보이지도 않는 땅을 찾아 바다(남지나해?)를 넘어 양자강에서 큐슈나 한반도 쪽으로 왔다 갔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임...가능하다면 타이완에서 류큐열도를 따라 큐슈 쪽으로 가는 정도나 가능한데...그렇다면 이들은 양자강 일대에 살던 족속이 아니게 됨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겠다고 서복을 보낼  때 고대 중국인 중 처음으로 안 보이는 바다를 건넌 경우에 해당 ... 그래서 전설이 될 정도인데...그 전후 시기에 원시 왜인들의 조상이 바다를 건넜다고???

그 정도로 항해술이 발달하기 전 시대에 바다를 넘어 해상무역하는 집단이 왜라고 하는 것은 지리적 상식이 없는 얼치기 역사학자의 관점에 불과한 것임
     
밑져야본전 21-08-09 22:30
   
그렇다면 일본 학자들이 내용에서 언급한 중국 기록에 나오는 양자강에 있었다는 왜는 한반도 왜와 관련이 없는 집단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름이 같은 '왜'이고 얼굴 문신이라는 공통된 습속이 있었음은 좀 의아합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왜는 어디에서 온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윈도우폰 21-08-10 01:10
   
황해가 바다가 된 것은 약 1만년 내지 1만1천년전...그 전에는 황해는 바다가 아닌 평야지대 였지요...아마도 바다로 분리되기 전 중원 쪽이랑 한반도 남쪽, 그리고 왜열도의 큐슈 쪽에는 같은 종족이 살 수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역사에 나오는 초기 왜는 바다로 분리된 후 수천년 지나기는 했지만...아마 습속(문신 등)은 수천년간 유지될 수도 있었으리라 보임(그냥 제 추측)

그리고 추측을 하나 더 한다면...가야가 북큐슈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반도 왜와 큐슈 왜가 같은 종족 내지...최소한 말이 통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봄...어쩌면 가야의 지배층은 부여나 선비계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기층종족은 왜인 내지 개량된(^^?) 왜인이었을 수도 있고요...
     
수구리 21-08-09 22:42
   
아니지요
지리적인 관점에서

고대에도 항해술이 어느정도 발달했다고 보지만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어도
양자강에서 일본열도로 고대에도 건너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양자강에서 주산군도 그리고 대만, 오키나와,규수로 어렵지 않게 건너갈 수 있습니다
          
윈도우폰 21-08-10 00:49
   
가본 듯 얘기하시네? 양자강 앞 바다는 황해난류가 흘러 발해만 쪽으로 올라감... 타이완에서는 쿠로시오 난류가 북쪽으로 흘러 제주도 앞 바다에서 갈라져 우리 나라 동해나 왜열도의 남해(난카이)로 흘러들어가는데...어디에 길이 있다고 말함? 중학교 지리부도라도 보시고 야그하시길

그리고...동아시아는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음. 우리나 중국인이나 모두 바다를 건널 이유가 없었기에...중국이나 우리 모두 배는 강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다가 육지가 보이는 연안 바다를 따라서 배를 몰았음. 우리는 조선시대까지도 그랬음. 우리 나라에는 평저선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그리고....우리나 중국이나 유럽처럼 무슨 노 저어 가는 갤리선을 몰았다고 생각하시남? 돛단배로 바다를 건너려면 해류랑 바람이 중요한데...뭐 노저어서 보이지도 않는 육지를 향해 바다를 건넜다고 생각하시나????

백제나 신라 모두 후대에 들어와 황해 바다를 건넜고...그 전에는 중국을 가려면 황해도와 평안도 해안을 따라 요동반도에서 산동반도 사이의 섬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갔음

연평도를 거쳐 산동반도 쪽으로 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항로는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서야 개척됨(백제는 남조인 양나라와 교류했던 것을 봐서는 신라보다는 훨씬 일찍 원양항로를 찾은 것 같기는 하지만...아마도 큐슈의 가고시마에서 류큐를 거쳐 대만쪽을 경유해 양나라에 가지 않았을까 추측...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안전한 연안항로 놔두고 무리해서 바다를 건너는 그런 뱃사람은 없었을 것이라 봄)

나침반도 없어던 시절에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너갈 수 있었다고 생각함? 우리 조상이나 중국 사람들이 바이킹 정도의 항해술을 가졌고 그 정도로 바다에 대해 모험적이었다고 생각하시남? 결국 수백년의 시행착오와 난파 과정을 거친 후  연평도를 통해 산동반도로 들어가는 해로를 찾은거임 (우리 조상이 먼저 찾았는지 중국인이 먼저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알지 못하면 그렇게 자신감있게 야그하시지 마시길...이건 역사 이전에 지리적 상식이 있느냐 없느냐 차원의 야그
               
수구리 21-08-10 02:02
   
첫째) 쿠로시오 난류 설명 틀렸습니다

고대해상 교역로 및 난류 흐름에서
큐로시오 난류는 대만에서 규슈 남쪽으로 흘러서 일본 남쪽해안으로 흐름니다
대만에서 오키나와로 류큐해류가 흐르고요

https://blog.naver.com/dnpdlem13/222050947484
설명하신 내용 틀렸다는 것 확인하시면 됩니다

고대라고 너무 우습게 보시는데..
그러면 삼국지나 후한서의
바다로  남쪽 천리에 뭐가 있고, 바다로 동쪽 천리에 뭐가 있다라는 내용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님의 말대로하면 바다로 백리도 갈수 없는데...
고대 해양기술을 너무 얍잡아 보시는 것 아닌가요?

10세기나 고대나 현대와 같은 조선기술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니..
10세기에 가능했다면 고대에도 가능했다고 봐야하지 않나요
                    
윈도우폰 21-08-10 09:55
   
황해난류아 대마해류 모두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 그래서 제주 아래에서 분리되어 본류가 왜열도 남해(난카이)로 흘러가는 것임...크게 보면 대만 쪽을 타고 올라오는 해류는 모두 쿠로시오 해류임...쓰시마해류? 뿌리도 없이 갑자기 생겨나는 그런 해류?

그리고...님이 올린 해상로는 10세기 이후...기원전후에는 그런 해상교역로가 없었음...

과거의 10세기 기간의 항해술 발전을 우습게 보시네^^ 장보고가 뛰어나서 바다를 지배한게 아님. 그만큼 중국인의 원양항해술이 약해서이고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정화의 원정대나 복건성이나 절강성 중국인들이 동남아로 진출하는 것은 아주 후대인 명나라 때 야그

억지 논리 주장하려고 괜한 추론하지마삼...

전한시대의 지리개념만 해도 우리 나라 동해도 몰랐고 북해니 뭐니 가공의 바다를 설정할 정도...창해이 뭐니 하며 동해를 얘기한 것도 지리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님...

당연히 남쪽에 바다가 있고 동
쪽에도 바다가 있으니 천리니 뭐니 했겠지요? 역사서가 탐험을 기반으로 하믄 무슨 지리서로 이해하시나 본데...초등학교란게 없어 초졸도 못되는 중국인 조상이 쓴 사서 같은 것만 믿지마시고 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더 높은 학력을 갖고 좀 더 뛰어난 지리지식을 갖고 있는 제 말을 믿으삼^^
                         
수구리 21-08-10 10:20
   
제가 무식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공부 많이 하셨다고 하고,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질문하니 반드시 답변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첫째)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예(창주시) 남쪽에 한(마한, 진한, 변진)이 있으니 산동성 강소성에 분명하게 한이 있었는데
한(마한, 진한, 변진)이 한반도라였다는 고대 사료나 근거는 무엇인가요?

둘째) 평양고분군 유물이나 중국사서 어디에도
북한 평양이 위만조선이거나 낙랑군이었다는 근거가 없는데...

북한 평양이 위만조선이었거나 낙랑군이었다는 명확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높은 학력과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는 님께서
저의 2가지 질문에  대해 제가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말씀해 보시지요

이 2가지에 명확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말만 번지런하게 하는 시기꾼으로 알겠습니다

♥♥♥♥♥♥♥♥♥
(사기꾼이란 지금의 님의 댓글은 거짓말이고
♥♥♥♥♥♥♥♥♥
학력도 개뿔이고, 뛰어난 지식은 커령 무식쟁이로 모두 알게되겠지요)
수구리 21-08-09 22:31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내용을 바르고 올바르게 해석했습니다
(사서를 정확히 해석했다고 봅니다)

후한서와 삼국지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한(마한,진한, 변진)이 산동성과 강소성에 있고,
 왜는 절강성과 주산군도. 대만, 오키나와, 필리핀, 파퓨아뉴기니아입니다

다만 중국 남동해와 대만등에 있는 왜는 가야제국의 속국이었고
변진이 임나가야였으며 가야제국의 속국이었는데..
(광개토왕대왕비의 장소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산동성과 강소성이 무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나라 강단 역사학계 학자들은
사료의 고증이나 근거도 없이
한(마한,진한, 변한)이 한반도라고 주장하고.. 왜는 대마도나 오끼나와라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수구리 21-08-09 22:36
   
일본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일본에 유리하게 주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마치 중국 동남부에 있었던  왜가 가야와, 백제와 대등한 관계로,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왜가 있었고 가야, 백제와 대등한 관계인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밑져야본전 21-08-09 22:49
   
마한 진한 변한이 다 중국에 있었으면 그 당시 한반도엔 아무것도 없었나요 ?
          
수구리 21-08-09 22:55
   
서기 1세기 초반에 이미 한반도에는 신라(서라벌)과 가락국(가야제국)이 이었습니다

중국에 있었던 진한은 신라가 아니라 신라의 속국정도로 보아야 하고요
중국에 있었던 변진은 임나가야로 가야의 속국으로 보아야 합니다
     
수구리 21-08-09 22:49
   
왜가 가야제국의 속국인 근거는
김수로왕의 선조는 강소성에 살았고요(소호금천씨의 나라 담국)
왕비인 허황후는 사천성 보주태후로 양자강을 주름잡던 우두머리 집단이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왜라고 주장하는 양자강 세력은
강소성의 소호 금천씨의 담국과 양자강 보주태후가 거느린 세력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가야와 왜는 서로 우호적일 수 밖에 없었고
가야의 우수한 절기 문명이 왜로 전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구리 21-08-10 07:08
   
이덕일 소장의 주장에 따르면..
투후 김일제의 증손이 왕망이고, 성한왕(김알지?)이고 김수로왕은 왕망의 후손이랍니다
투후 김일제가 한무제에게 받은 봉지가 산동성 하택시입니다

왕망의 신나라가 망하자 김수로왕이 황해를 건너 김해 가락국을 세웠다는 것 같고

보주태후인 허황후 세력은 후한을 거부하여 사천성에서 장강을 따라 이동하다가
 보주태후 허황후는 김해 김수로왕에게로 갔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고대 서기 1세기경에 장강을 장악한 세력이 허씨 세력으로 봅니다

이 허씨는 춘추 시대 하남성의 허許나라 후예로
허나라가 춘추시대 말경에 망하자 사천성으로 이동했고,
사천성을 중심으로 장강과 한수에서 세력을 키운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후한에 반발해 사천성을 떠나서
허씨 세력이 장강을 장악했고 ,허씨 세력이 삼국지, 후한서에 등장하는 왜로 보입니다

이 허나라는 제나라와 동족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동이족입니다)
          
수구리 21-08-10 07:16
   
경기신문 칼럼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왕망과 김일제의 후손은 한 집안
-->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20155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김수로왕은 흉노왕의 후손인가
-->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16472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2천 년 전 허황후와 수로왕의 국혼길
-->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23786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파사석탑과 가야 최초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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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08-09 23:00
   
중국 동해안에 있었던
한(마한, 진한, 변진)이 한국 조상들이고 한국조상의 영토였는데..

멍청한 후손으로 인해(주류 강단사학자인 매국사학자)

중국 동해안의 한국선조와 한국선조 영토가
이제는 왜의 선조와 왜의 선조 영토로 탈바꿈할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Marauder 21-08-10 01:19
   
검토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게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중국 오월, 초나라의 경우 중원과 민족이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구요? 이걸 주장한게 김정민박사라서 찝찝하긴 한데 김정민 박사의 경우 이사람들을 투르크계 신라사람이고 묘족과 친연성이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신라사람이라고 한것은 증거도 없고 확대해석인데 남한인과 조상을 공유하고있었다? 정도라면 그럴듯해보이네요.
     
비좀와라 21-08-10 07:26
   
장강 이남의 일부 종족은 중원의 종족과 다른 것이 아니라 동호이냐 아니냐의 차이점이에요.

손씨의 오나라 같은 경우 손권은 파란눈의 백인 이거든요.

장강이남은 일부 백인이 있었고 이들은 지배계급 이었는데 이들이 신라와 같고 이 신라는 동호로 백인 이었는데 이들이 또 선비와 같아요.

투르크은 선비의 파생종족 내지는 부용족이라 둘이 비슷한 점이 많고요.

동시에 이 둘은 고구려 즉 흉노에게 복속 되었던 지라 역시 고구려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죠.
Marauder 21-08-10 01:21
   
그리고 확실한건아닌데 전세계의 해류가 크게 한번 바뀐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이주가 용이했는데 해류가 바뀌고나서 이주가 어려워졌다는 내용인데... 이건 뇌피셜이라 다른분은 들은분 있나 궁금하네요.
엄근진 21-08-10 11:19
   
저도 '왜'라는 단어의 기원이 궁금하던 차여서, 김상훈 교수께 문의 해보니 아래와 같이 말씀하시네요.

"삼국지를 보면 3세기 일본열도와 필리핀열도를 왜라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바닷가에 사는 키 작은 사람들이란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점차 한국인들이 일본열도로 대거 이주하게 되자 한국사에서는 왜가 다르게 쓰였습니다.

백제본기와 광개토대왕비는 한반도의 백제인이 일본열도로 이동하면 왜라 적었습니다. 그리고 백제본기는 곤지(왜왕)를 비롯하여 목협만취(왜국 관료)와 조미걸취(큐슈지역 후왕)에서 보듯이, 일본 열도인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오면 그때는 다시 왜가 아니라 백제로 적었습니다. 결국 백제인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분국을 세웠기 때문에 왜라 부른 것입니다.

경주에서 김해바다를 항해하여 도착하면 임나(부산가야)고, 임나에서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하면 대마도고, 대마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하면 큐슈입니다. 신라본기는, 백제나 마찬가지로 임나가야인이 일본에 분국을 세웠기 때문에 이들을 왜라 호칭한 것입니다. 그리고, 김유신 가문의 예에서 보듯이, 왜인들이 신라에 들어오면 백제본기나 마찬가지로 다시 왜가 아니라 가야로 적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왜란 한국인이 일본열도에 분국을 세웠기 때문에 발생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분국의 주체가 가야와 백제였던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일본,대만,중국남부,필리핀 등의 해안지대에 살던 키 작은 인종을 중국인이 왜라 불렀고, 고구려와 신라는 그 단어를 "차용"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거나 그와 관계된 정치집단을 왜라 부른 것입니다.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비의 왜는 해안지대 인종과는 무관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왜는 결국 (삼)한인 셈이죠.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ㅜ
지누짱 21-08-10 13:33
   
제생각
倭ㅡ일본열도에 존재하던 나라들의 고대중국식 통칭으로서 실제로 야마대를 한자로 왜면토라 함.
倭ㅡ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 세워진 나라들을 고구려 신라 한성백제에서 부르던 통칭
矮ㅡ역사기록상 장강이남에 살던 족속을 장강이북인들이 낮춰 부르던 말.
     
엄근진 21-08-10 14:03
   
첫번째 왜의 용법 말인데, 야마대(왜면토)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기록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첫번째 용법이 두번째 용법에서 파생 된 것인지, 그 반대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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