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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06 11:50
[한국사] 3세기 한국고대사의 3대문제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815  

글쓴이.  김상

3세기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3세기 한국고대사의 3대 문제는 아래와 같다.




<< 고고학 >>


가. 3세기 초반(200~229)에 한강유역에 등장하는 초기 고구려식 고분군의 기원


나. 3세기 후반(270~299)에 낙동강유역에 등장하는 북방 유목민족 문화의 기원




<< 문헌사학 >>


다. 3세기 중반(230~269)의 삼국사기와 삼국지 한전의 차이 (삼국지 한전의 배경은 260년대로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 3가지 문제에 관하여 10여년 전에 최초로 답을 했는데,
혹시 틀린 곳이 있거든 지적을 바랍니다.)




가. 3세기 초반(200~229)에 한강유역에 등장하는 초기 고구려식 고분군의 기원




1. 3세기 이전 요동반도의 초기 고구려식 묘제다.

- 비류와 온조의 백제건국보다 3백년 늦으므로 이들과는 관계가 없다.




2. 3세기 초에 나타나고, 4세기 후반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을 시작할 무렵에 사라진다.

- 근초고왕대에 축조가 중단된다. 따라서 이들 고분군에 근초고왕이 묻혔을 가능성은 없다.




3. 3세기 후반 서진 시대 도자기 조각이 발굴되었다.

- 3세기 후반에 마한과 서진 사이에 여러차례 교역이 있었다.




4. 한반도에는 오로지 한강유역에만 있다.

- 북한에는 없다. 요동반도에서 출발하여 한반도 북부인 압록강-청천강-대동강을 건너 뛰고 한강유역에 나타났는데, 당시 한반도 북부는 고구려와 낙랑 등 강력한 권력체가 있었다. 같은 백제권이라도 금강유역이나 영산강유역에는 안 나오는데, 웅진천도의 약 백년 전에 축조가 중단되는 것을 보아, 이들은 웅진천도시 백제의 주도세력이 아니었다.




5. 이전에 있었던 묘들을 파괴하여 쓸어버리고 그 위에 다시 축조되었다.

- 정복자의 특징이다. 3세기 초에 한강유역에 정복이 있었다.




6. 한강유역에 고구려식 고분군이 출현하는 시기에 맞추어 풍납토성의 축조가 중단된다.

- 풍남토성의 토기조각이 대부분 축조가 중단된 3세기 중반 이후 것들인데 이는 이때 풍납토성의 거주민이 교체되었다는 뜻이다.




7.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고이왕의 출현시점과 일치한다.

- 고이왕대는 백제에 고구려 귀족성들이 대거 출현하고, 모든 제도가 고구려식으로 바뀌고, 외교는 고구려를 돕고 말갈과 친해진다. 동명조를 제사지내는 것은 당연하다.




8. 이들은 고구려계이므로 고구려를 통과해도 별 다른 마찰은 없었을 것이다.







나. 3세기 후반(270~299)에 낙동강유역에 등장하는 북방 유목민족 문화의 기원




1. 3세기 후반에 낙동강유역, 특히 하류인 변한지역에 집중적으로 출현한다. 김해 대성동, 부산 복천동 등이다.

- 가야 건국보다 2백년이 늦으므로 가야건국자인 수로왕과 무관하다.




2. 흑룡강성 유물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부여지역에서도 일부 남하하였다.

- 280년대 모용씨에게 멸망한 부여보다 먼저 출현하므로 그들과는 무관하다.




3. 문화적으로 고구려와는 무관하고 고구려보다 북방의 몽골초원 유목민족 문화다.

- 등자를 비롯한 마구가 출토되는 등 유목민족 문화다. 유목민족이 고구려를 건너 뛰었는데 배를 타고 건너뛴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건너뛰었다.




4. 3세기 후반에 고분군이 바뀌는 것으로 보아 3세기 중반에 남하하였다.

- 이주민이 유물을 남기는데는 통상 한 세대(20년)가 걸린다. 3세기 중반에 유목민족 기마군단이 고구려를 뚫고 동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5. 본래 있었던 묘들을 파괴하여 쓸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 고분을 축조하였다.

- 정복자의 특징이다. 3세기 중후반에 낙동강유역에 정복이 있었다.  이들은 비고구려계이므로 고구려를 통과했다면 전쟁 같은 큰 마찰이 발생했을 것이다.




6. 순장이 나타난다.

- 순장은 유목민족 문화다. 가야와 신라에서 6세기에 사라진다.




7.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최초 김씨왕인 미추왕의 출현과 일치한다.

- 미추이사금시절에는 신라의 가장 큰 적이던 왜로부터 공격이 없다. 대신 왜는 미추왕의 가장 큰 정치적 라이벌이던 석우로를 제거해준다. 3세기 초중반에 백제에 밀리던 신라가 3세기 후반에 백제와 대등하게 싸운다.




8. 3세기 후반의 변한지역은 삼한 중 고고학적으로 가장 첨단기술로 무장되어있다.

-  후한서와 삼국지 한전의 차이가 보인다. 후한서는 진왕이 삼한을 보두 통치하는데, 삼국지는 진왕이 마한과 진한만 통치한다고 하여 낙동강하류에 정치적 변동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당시 삼한 중 변한만 당시 중국을 통일한 서진과 교류하지 않는다.




9. 낙동강유역이 북방 유목민족에게 점령됨에 따라, 낙동강하류의 변진한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구주지역으로 이주하고, 이 연쇄반응으로서 구주인들은 다시 기내지역으로 이주함에 따라, 4세기에 일본에 야요이 시대가 끝나고 고분시대가 시작된다.







다. 3세기 중반(230~269)의 삼국사기와 삼국지 한전의 차이




1. 260년 경 한반도 남부에 무엇이 있었는가?

- 삼국사기를 보면 3세기 중반에 한강유역 이남의 한반도 남부에 백제와 신라와 '신라본기의 왜' 3국이 존재한다. (참고로 4말5초에만 나타나는 백제본기의 왜는 신라본기의 왜와 전혀 다른 존재다.) 그 3국 뿐이다. 반면에 삼국지를 보면 한반도 남부에는 80여개 소국이 존재한다. 백제와 신라라는 국명은 없고 그 대신 伯濟國과 사로국이 존재한다.




2. 삼국사기의 기록 공백지대에 누가 있었는가?


- 삼국지를 보면 한반도 남부는 80여개 소국들로 빈틈 없이 꽉 차있다. 심지어 울릉도(우유국)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한반도 남부가 텅 비어있다. 당시 대단한 유물이 출토되는 금강유역과 영산강유역은 백제 건국후 5백년이 지난 5세기 후반에야 최초로 출현한다.




3. 진왕은 누구인가?


- 당시 한반도 남부의 유일한 통치자로 보이는 존재는 진왕인데 진왕은 누구인가? 삼국지는 진왕은 스스로는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왕이 되는가? 후한서는 진왕은 공립(추대)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공립되는가?




4. 진왕의 통치지역은 어디인가?

- 진왕은 목지국만 통치하는가? 아니면 삼한 전체를 통치하는가?




5. 삼국사기는 왜 공백인가?

- 3세기의 삼국사기는 90% 이상이 1달도 안 틀리는 정확한 기록들이다. 그런데 왜 기록들이 없고 한반도 남부 지역은 텅 비었는가? 기록의 망실이나 누락인가? 아니면 고의인가? 고의라면 누가 왜 그랬는가?




6. 삼국사기와 삼국지에 모두 가야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삼국사기에는 가야가 3세기 초에 사라지고 없다. 그러다 5세기 후반에 다시 출현한다. 그 공백기를 기록한 것이 삼국지다.




7.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가?

- 가야인들의 자체 기록인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10명의 왕이 있는데 앞의 5명과 뒤의 5명의 통치제도가 전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왜 뒤의 5명은 합리적 재위기간을 가지는데, 앞의 5명은 재위기간이 비합리적(평균치보다 3배나 오래 재위)인가?





8. 소국체제가 오래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 삼한 소국체제는 2~4세기 후한서-삼국지-진서를 거치며 2~3백년이나 지속된다. 만일 소국들이 서로 다른 나라들이면 후삼국시대처럼 서로 싸우다 300년이 아니라 30년이내에 대부분 통합된다. 왜 소국들이 통합되지 않고 오래 존재하는가? 이 소국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9. 삼한 소국체제는 언제 사라졌는가?

- 80여 소국으로 이루어진 한반도 남부의 소국들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가? 참고로 삼국사기에 근초고왕이나 내물왕이 주변 소국을 정복한 기록은 없다. 중국 사서에도 삼한 소국들이 통합된 과정에 대한 기록은 없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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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08-06 12:48
   
가. 3세기 초반(200~229)에 한강유역에 등장하는 초기 고구려식 고분군의 기원
제 가설입니다

고국천왕 시절인 191년 좌가려가 연나부를 규합하여 반란했으나 실패하여
연나부 세력이 한반도 중부인 한강유역으로 이주 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근거 1) 좌가려는 관직은 평자(評者)였다. 중외대부(中畏大夫) 패자(沛者) 어비류(於卑留)와 더불어 왕비의 친척됨을 믿고 권력을 휘둘렀으며, 그 자제들도 그 세력을 믿고 교만, 사치하여 남의 자녀와 토지 및 집을 마구 빼앗으므로 사람들의 원망이 높았다.

이에 고국천왕이 크게 노하여 죽이려 하자 190년(고국천왕 12)에 연나부(椽那部 : 왕비의 출신부족인 듯)의 일부 세력과 함께 모반하였다. 191년 4월 왕도를 공격하였으나 결국 진압되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좌가려 [左可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근거 2) 『삼국사기』에 의하면 2세기 후반에서 3세기에 걸쳐 연나부 출신 귀족이 계루부(桂婁部) 왕실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고구려전에서 전하는 계루부 왕실과 여러 대에 걸친 혼인관계를 맺어 왔다는 절노부(絶奴部)가 이 연나부와 같은 실체로 여겨진다.연나부의 장이 전(前) 왕실인 소노부(消奴部)의 장과 함께 고추가(古鄒加)라고 칭하는 등, 당시 연나부는 오부 중에서 유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계루부 왕실이 연나부의 귀족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은 연나부 세력과 연합하여 오부내의 여타 세력들을 억제하고 중앙집권력과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연나부와 왕실과의 혼인관계는 3세기 말 이후는 확인되어지지 않는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연나부(椽那部))]
감방친구 21-08-06 13:06
   
■ 김상의 전제 1)

가. 3세기 초반(200~229)에 한강유역에 등장하는 초기 고구려식 고분군의 기원

□ 비판

ㅡ 남한 지역에서 고구려계 무덤이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

ㅡ 현 압록강 변에서 고구려계 무덤이 출현하는 시기는, 무기단식은 기원전 3세기~, 기단식은 기원전후

ㅡ 남한 지역의 고구려계 고분, 즉 백제 고분의 분포지는 남한강과 북한강, 한강 본류 등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기는 하나 전체적 분포 양상은 황해도~경기도/서울~강원도~충청도

■ 김상의 전제 2)

나. 3세기 후반(270~299)에 낙동강유역에 등장하는 북방 유목민족 문화의 기원

□ 비판

ㅡ 가야 지역에 비교적 강력한 지배력이 등장한 때는 기마문화의 출현 시기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가야지역에 기마문화가 출현한 시기는 4세기(300년대) 전반

ㅡ 가야지역의 '선비계 유물'이라는 부정확한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고고학계에서 쓰이는 용어는 '삼연ㆍ고구려계', 또는 '삼연ㆍ(부여를 비롯한 )고구려계'

ㅡ 그 까닭은 삼연(모용선비의 전연ㆍ후연ㆍ북연)과 고구려의 문화가 매우 유사한 데에 있으며, 또한 가야 유물에서 삼연계통으로 보이는 것과 고구려계로 보이는 유물이 혼재된 양상을 띠는 데에 있음

ㅡ 가야의 기마 및 무구/군장류 유물은 처음의 중심지는 4세기 이후는 금관가야, 5세기 이후는 대가야이며

ㅡ 삼연ㆍ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왜계 등이 나타남

ㅡ 선비족과의 유사성만 주목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서 물질문화를 바라볼 필요가 있음

ㅡ 관모, 신발, 갑옷, 마갑, 투구 등

ㅡ 이렇게 보면 가야의 지배적 문화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등과 특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ㅡ 이 때에 보이는 선비족 계통의 속성은 이미 학계에서 '삼연ㆍ고구려계'로 묶어서 보는 바 그 해석에 매우 엄밀할 필요가 있음

ㅡ  400 년 광개토대왕 남정 이후 나타나는 마구, 마갑, 갑옷 등은 확연히 고구려 계통
수구리 21-08-06 13:12
   
1. 260년 경 한반도 남부에 무엇이 있었는가?
제 가설입니다

가)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열전에 따르면 한은 산동성, 강소성에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보면 후한시대와 삼국시대 산동성 강소성 한은 백제 였습니다
(산동반도 동쪽 끝의 진한에는 후에 김씨 신라왕이 되는 백제 속국인 신라 선조가 있었습니다
  강소성의 변진은 임나였고 가야의 분국이었고요)

나) 한반도 남부에는 가야 해상 대제국이 있었다고 봅니다
    일본열도와 강소성의 변진인 임나, 왜(절강성, 대만, 필리핀, 파푸아뉴기니아)를 분국으로 거느린
동부 아시아 해상 대제국이 가야였다고 판단됩니다

다) 고구려 장수왕에게 산동성 한성이 함략되어 한반도 웅진으로 천도한 웅진백제가
    가야 해상 세력을 모두 흡수하여 22담로를 거느린 해상 대제국이 되었다고 봅니다
    (한반도 남쪽 가야 영토는 신라가 흡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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