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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04 18:54
[한국사] 연燕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급습했고, 중산국이 멸망했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214  

■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인 동호를 습격해 1천여리의 땅을 빼앗았다

 

1)연나라 진개가 고조선을 습격한 시기

  흉노열전에 조 무열왕이 장성을 쌓고,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을 습격했다고 하니

  진개가 고조선을 습격한 시기는 조 무령왕(BC 307년)과 연 소왕(BC 284년) 사이로 본다

 

2) 상곡, 어양, 우북평, 요동, 요서 위치

   (1) 조 무령왕이 조나라 동쪽에 동호가 있다고 했고,

       전국시대 말의 조나라 장수 이목이 산서성의 안문에서 동호와 전투했으니

       연 5군은 조나라 안문 동쪽에서 조나라 동쪽인 하북성 남부 동해안 근처까지다

   (2) 연나라 계가 북경이라는 엉터리 주장이라도

       북경 서북쪽 거용관에서 최대 2천리(약 600km)로 보아도 요동은 진황도시(산해관) 서쪽이 된다.

 

       하지만 요동이 진황도시이면 조나라 동쪽이 아니니 요동은 진황도시(산해관) 서쪽이 될 수 없다

 

 

■ 진개가 고조선을 습격한 시기는 조 무령왕(BC 307년)과 연 소왕(BC 284년) 사이로 본다

※주) BC 307년은 조 무령왕이 등극한 시기이고, BC 284년은 연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한 해이다

 

[출처] 34-05[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5/06)<연 소왕(燕 昭王)>

 

제나라 왕은 장자(章子)에게 5도(五都)의 군사와 북방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연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연나라의 병사들은 싸우지 않고 성문을 닫지도 않아, 연나라의 군주 쾌는 죽고 제나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연나라의 자지가 죽은 지 2년(기원전 312년)에 연나라 사람들이 태자 평을 옹립하니 그가 연나라 소왕(昭王)이다.

 

연 소왕(燕 昭王)은 연나라가 제나라에게 격파된 후 즉위하여 몸을 낮추고 후한 폐백으로 현자를 초빙했다.

 

소왕은 곽외를 위해 궁을 짓고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나라에서 오고, 극신(劇辛)이 조(趙)나라에서 오는 등 인재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왔다.

연 소왕은 죽은 사람에게는 조의를 표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문하는 등 백관들과 동고동락했다.

 

연 소왕 28년(기원전 284년), 연나라는 부유해지고 병사들은 기꺼이 전투에 나가려 했다.

이에 마침내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진(秦)나라와 초나라, 삼진(三晉)과 함께 제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제나라의 군대는 패했고 제 민왕(齊 湣王)은 도성 밖으로 도망쳤다.

연나라의 군대만 추격하여 임치에 진입해서는 제나라의 보물을 취하고 궁실과 종묘를 불태웠다.

함락되지 않는 제나라의 성으로는 요(聊), 거(莒), 즉묵(卽墨)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연나라의 차지가 되어 6년 동안 지속되었다.

 

 

■ 전국시대 진秦나라, 조趙나라, 연燕나라 북쪽에 장성을 쌓고 고조선을 방어했다

※주) 춘추전국 시대, 진시황 시대까지 고조선인 동호가 가장 강성했으니 임호, 누번, 흉노는 고조선의 거수국으로

        임호가 진시황 시대의 두만 선우 부터 흉노라고 불리웠다

 

[출처] 110-2/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2/15)

 

진(秦)나라 소왕(昭王) 때 의거의 융왕(戎王)이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와 사통해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선태후는 의거의 융왕을 속여 감천궁(甘泉宮)으로 유인하여 그를 죽이고, 이어 군사를 일으켜 의거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그래서 진나라는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거기에 장성을 쌓아 융적의 침입을 막았다.

 

한편 조(趙)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은 조나라의 풍속을 개혁해 군사들에게 호복을 입고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연습시켜 북쪽의 임호(林胡)와 누번(樓煩)을 무찔렀다. 장성을 쌓고 대(代)에서부터 음산(陰山)산맥 기슭을 따라 고궐(高闕)에 이르는 지역을 요새로 만들었다. 조나라는 그 땅에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代) 등 군(郡)을 설치했다.

 

그 후에 연나라의 명장 진개(秦開)가 흉노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형가(荊軻)와 함께 진왕 영정을 암살하려던 진무양(秦舞陽)은 진개의 손자다.

연나라 역시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 등에 군을 설치하여 북방 융적을 방어했다.

 

당시에는 문명과 예의와 풍속이 발달한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있었는데 그 중 세 나라가 흉노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그 후 조나라 장군 이목(李牧)이 있는 동안은 흉노가 감히 조나라 국경을 침범하지 못했다.

그 뒤에 진(秦)나라가 6국을 멸망시키고, 시황제(始皇帝)는 몽염(蒙恬)에게 10만 명의 군사를 주어 북쪽의 흉노를 공격하여 황하 이남의 땅을 모두 진나라의 영토로 수복하였다.

또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드는 한편, 황하의 강변을 따라 44곳에 현성(縣城)을 축조하고,

죄를 짓고 변방을 지키는 병사를 옮겨와 현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직도(直道)를 만들어 구원(九原)에서 운양(雲陽)에 이르게 하였으며,

또한 산의 주변을 이용하여 험준한 구릉과 계곡에 치수(治水)하여 성의 해자를 만들고

임조(臨洮)를 기점으로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달하는 장성을 쌓았다.

또 황하를 건너가 양산(陽山)과 북가(北假) 일대를 점거했다.

 

당시(진시황)는 동호(東胡)의 세력이 강하고 월지(月氏)도 번창했다.

흉노의 선우(單于)는 두만(頭曼)이라 하였으며. 두만은 진(秦)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겨 갔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몽염(蒙恬)이 죽고 제후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중원은 혼란상태가 되고 진나라가 죄를 짓고 변경을 지키려고 보냈던 수비병들이 모두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흉노는 느슨해진 기회를 타 다시 점차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중원(中原)의 옛 요새에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 사마천 사기 염파.임상여 열전에는 조 도양왕때( 기원전 244년 ~ 236년) 

조나라 장수 이목이 산서성 안문에서 동호를 무찌려고 임호를 항복시켰다.

※주) 춘추전국 시대에는 흉노는 없었다, 따라서 흉노가 아니라 고조선인 동호다

        임호가 진시황 시대부터 흉노로 불리기 시작했다

 

[출처] 81-5/5[史記列傳(사기열전)] 권81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5/5)

 

이목(李牧)은 조나라의 북쪽 변방의 훌륭한 장수다.

늘 대(代) 땅의 안문(岸門)에 주둔하면서 흉노에 침입에 대비했다

 

이목이 변경에 돌아와 전과 같은 군령을 내렸다. 흉노는 몇 년 동안 소득이 없었다.

끝내는 이목을 겁쟁이라고 여겼다.

변방의 병사들은 날마다 상을 받으면서 쓰이지 않자 모두 한 번 싸우기를 바랐다.

이목은 전차 1,300대를 골라서 갖추고

말 1만 3천 필을 골라서 백금의 상을 받을 만한 용사 5만 명과

활을 잘 쏘는 병사 10만 명을 뽑아 모두 전투를 익히게 했다.

많은 가축을 들에서 기르니 백성이 들판에 가득했다.

 

적은 수의 흉노가 쳐들어오자 거짓으로 패하며 달아나며 수천 명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선우(單于)가 이를 듣고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목은 많은 기이한 진법을 보여 좌우의 날개를 펴서 치니

흉노 10여만 기병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다.

담람(襜襤)을 멸하고 동호(東胡)를 무찌르고 임호(林胡)를 항복시키자 선우가 달아났다.

그 후 10년 동안 흉노는 감히 조나라 변방의 성 근처로 오지 못했다.

 

 

■ 사마천 사기 조세가에 조趙 무령왕이 중산국을 멸망시켰다

※주)조나라 동쪽에 동호가 있고

       조나라가 중산국을 멸망시키고 서쪽으로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에까지 이르는 땅을 탈취했다.

 

 

 [출처] 43-13/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3/23) <조 무령왕(趙 武靈王)>②

 

무령왕 19년(기원전 307년) 봄 정월에 신궁(信宮)에서 조회를 성대히 거행하였다.

비의(肥義)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의했는데 5일 만에 끝났다.

무령왕은 북쪽으로 중산국과의 경계를 순시하여 방자현(房子縣)에 이르러 대 땅에 까지 갔으며, 

북쪽으로 무궁(無窮)에까지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황하에 이르러 황화산(黃華山) 정상에 올랐다

 

그후 누완(樓緩)을 불러 상의하며 말했다.

“나의 선왕께서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남쪽 속국(屬國)의 땅을 넓히고,

장수(漳水)와 부수(滏水)의 험난한 지세를 연결하여 장성을 쌓으셨으며,

또 인(藺)과 곽랑(郭狼)을 탈취하고 임(荏)에서 임호(林胡)를 무찌르셨으나 그 공업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금 중산은 우리 뱃속 한가운데에 있고, 북쪽으로는 연나라가 있고, 동쪽으로는 동호(東胡)가 있으며,

서쪽은 임호(林胡), 누번(樓煩), 진나라, 한나라의 변경이니, 강한 병력의 지원이 없으면

사직이 망하게 생겼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세상에 뛰어난 명성을 가지면 반드시 세속의 비난이 있기 마련이니, 내가 호복(胡服)을 입고자 한다.”

누완이 “좋습니다.”라고 했으나 신하들은 모두 원치 않았다.

 

무령왕 20년(기원전 306년)에 왕은 중산의 땅을 순시하며 영가(寧葭)에 이르렀다.

서쪽으로는 호(胡) 땅을 순시하여 유중(楡中)에까지 이르렀다.

임호(林胡)의 왕이 말을 바쳤다.

돌아와 누완(樓緩)을 진나라에, 구액(仇液)을 한나라에, 왕분(王賁)을 초나라에, 부정(富丁)을 위(魏)나라에, 조작(趙爵)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대(代)나라의 상(相) 조고(趙固)가 호(胡) 땅을 관할하면서 호 땅의 병사를 모집했다.

 

무령왕 21년(기원전 305년)에 중산국을 공격했다.

조소(趙袑)가 우군을, 허균(許鈞)이 좌군을, 공자 장(章)이 중군을 거느렸고, 무령왕이 삼군을 통솔했다.

우전(牛翦)은 전차와 기병을 지휘하고, 조희(趙希)는 호(胡)와 대(代)의 병사를 거느렸다.

조희는 군대를 이끌고 골짜기를 통과하여 곡양(曲陽)에서 군을 합류시켜 단구(丹丘), 화양(華陽), 치(鴟)의 요새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왕의 군대는 호(鄗), 석읍(石邑), 봉룡(封龍), 동원(東垣)을 탈취했다.

중산국이 4개의 읍을 바치며 강화를 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무령왕 23년(기원전 303년)에 중산을 공격했다.

 

무령왕 26년(기원전 300년)에 다시 중산을 공격하여 북쪽으로 연나라와 대나라까지, 

서쪽으로 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에까지 이르는 땅을 탈취했다.

 

혜문왕 2년(기원전 297년)에 주부(무령왕)가 새로 점령한 땅을 순행하다가 대(代) 땅을 나와

서쪽 서하(西河)에서 누번왕(樓煩王)을 만나 그의 군사를 징발했다.

 

혜문왕 3년(기원전 296년)에 중산을 멸망시키고 그 왕을 부시현(膚施縣)으로 옮겼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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