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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02 23:49
[한국사] 조선시대 압록강 북쪽에도 영토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기록들 몇가지
 글쓴이 : 보리스진
조회 : 762  

압록강 바깥쪽에도 조선의 영토가 있었다. 이를 증빙해주는 조선시대의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꼽아보겠다.

1. 세종 1436년, 세종실록에는 파저강의 동쪽은 우리의 영토라는 기록이 있다.
여러 사료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파저강은 압록강 북쪽에 있는 강이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혼강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압록강 바깥쪽에도 조선의 영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연산군일기(1497년)에서는 압록강 바깥에 이산(理山)이라는 조선의 행정구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포 근처의 고산리, 황성평에서 머물다가 26일에 압록강을 건넜다. 60여리를 나아가니 이산군(理山郡)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산(理山)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라고 주석이 달려 있으므로, 압록강에서 북쪽으로 24km~30km정도 올라가면 이산군(理山郡)이 존재하는 것이다.

3. 중종 1523년, 만포 첨사 이성언이 국경지대의 여진족 실태와 사군(四郡)운영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진족이 파저강 동쪽으로 많이 와 거주했다.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거주지역을 확대시키고 있는 와중이었다. 점차 사군(四郡)이 위치한 곳까지 다가와 거주해 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야로강 남쪽 땅으로도 점차 들어와 살기 시작한다.
앞으로 삼수(三水)에서 의주(義州)에 이르기까지 여진족이 들어와 살지도 모른다.
국경 경계를 게을리하면 압록강 동쪽으로도 출입하게 될지 모른다.

이 기록으로 사군(四郡)이 압록강 바깥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파저강 동쪽에 여진족이 살고 있다. 점점 사군(四郡)이 위치한 곳까지 다가와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삼수, 의주, 압록강 동쪽에 여진족이 없기 때문이다.

사군(四郡)은 여연, 자성, 무창, 우예인데, 세종시기에 여진족을 정토하고 설치하였다.
삼수(三水)에서 의주(義州)까지 이어지는 행정구역 바깥에 사군(四郡)이 있었던 것이다.

4. 승정원일기(1734년)에는 건주위(建州衛)에서 폐사군(廢四郡)이 300리가 채 안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민환(1573~1649)의 건주견문록에는 흥경(興京)에서 창성까지 400여리, 흥경(興京)에서 만포까지 440여리라고 했다.

흥경(興京)은 후금의 수도이다. 만주 여진족들의 본거지이다. 건주위의 중심지는 흥경(興京)이다. 이 기록에서 말하는 건주위는 흥경(興京)으로 자연스럽게 판단해볼 수 있다.
창성과 만포는 현재 압록강 근처에 있는 군명(郡名)들이다. 
현재의 압록강에서 100~140리 북쪽에 폐사군(廢四郡)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당시 10리는 4.8km정도 된다. 현재는 10리를 4km로 본다. 40km~70km 북쪽에 있었던 것이다.

5. 승정원일기 영조 10년(1735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만포 상류에는 삼강구비강(三江仇非江)이 있는데, 이 강 가운데에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은 우리 땅과 더 가까워서 우리 영토라고 한다.
만포는 압록강변에 있는데, 만포 상류에 삼강구비강이라는 압록강 지류가 흐른다. 청나라와 우리나라 가운데 우리 쪽하고 더 가깝다고 했으니, 압록강 바깥쪽에 있는 영토이다.

다음에는 조선초기에서 조선중기에 압록강의 위치가 변화하는데, 그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1. 세종실록 73세종 18년 윤6월 19(1436)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806119_002

姿猪一江源出長白爲我國紀自江以東則爲我之境自江以西則爲彼之居自義州至閭延其間相距百餘里

 

2. 연산군일기 28연산 3년 10월 7일 (1497)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310007_002

二十五日臣乘舟夕宿高山里。 甫下土等越江宿皇城坪。 二十六日臣越江與甫下土等由滿車路行十餘里于羅山城 野人十一來迎。 又行五十里許至理山飛羅野宿。 【理山我國郡名。 胡語謂澗水爲飛羅】 二十七日贈于羅山城 野人十一各綿布一匹紙二卷遂偕行。 僅十餘里有地名曰三岐其東北有捷徑乃指建州衛路也。 其西有溪水卽理山飛羅上流也。 沿此溪有小徑乃指理山路也

 

3. 중종실록 49중종 18년 12월 11(1523)

http://db.itkc.or.kr/inLink?DCI=ITKC_JT_K0_A18_12A_11A_00020_2005_025_XML

婆猪以東虜居之盛近尤甚焉。 閭閻撲地耕種地窄漸至列居四郡。 也虜以南亦漸來居上自三水下至義州將爲夷虜之居不但此也。 我國力不能禁隔江相處備知虛實。 乘時動發則臣恐鴨綠以東又復有出入之勢

 

4. 승정원일기 801영조 11년 5월 26(1735)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U0_A11_05A_26A_00210_2020_232_XML

則江界廢四郡與淸人所謂建州衛相距不滿三百里之近

 

이민환(1573~1649) 紫巖集卷之六雜著建州聞見錄(간행 1741)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309A_0070_010_0010_2003_A082_XML

自昌城至奴城四百餘里其間拜東葛嶺牛毛嶺極高崚阻長自滿浦至奴城四百四十餘里

 

5. 승정원일기 774영조 10년 2월 29(1734)

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U0_A10_02A_29A_00240_2020_206_XML

喆輔曰滿浦上流三江仇非江中有一島與我地稍近故其島屬於我國而島中樹木茂盛故彼人結幕依接與玉洞民人等尋常來往多有潛商通貨之弊事極可駭矣此島旣是我地分付滿浦僉使斫盡其樹木俾不得止接似好矣上曰自備局分付可也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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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옹 21-08-03 05:55
   
1. 파저강 동쪽 = 압록강임 -_-.. 이런글쓸땐 기초라도 알고쓰길..
https://www.youtube.com/watch?v=ySk1XIqWQ1g&ab_channel=KBS%EC%97%AD%EC%82%AC%EC%A0%80%EB%84%90%EA%B7%B8%EB%82%A0

파저강유역 여진이 평안도까지 내려와 노략질해서 세종이 빡쳐서 토벌하구서 압록강유역에 4군설치할때 나온얘기

2.  이산 = 평안북도 초산 지역의 옛 지명
http://bs2.idomz.net/aj-intro/aj-koreadoc/sin-isan-gun.htm
평안북도 이산군
...북쪽은 압록강까지 12리이고... 명백히 압록강 남쪽 12리에 위치해있다고 나옴.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D%B4%EC%82%B0%EA%B5%B0&ridx=3&tot=3244
     
보리스진 21-08-03 09:10
   
그 기록대로라면 파저강 동쪽에서 압록강사이에 분명 영토가 존재해요.
파저강을 기준으로 동쪽이 영토라는 것인데, 그러면 압록강 서쪽도 영토가 되니까요.

그리고 세종의 파저강 정토에 관련된 기사들을 쭈욱 읽어봤고요.
대체 어떤 기준으로 파저강 동쪽에서 압록강 서쪽 사이에 영토가 없다는 것인지
자세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집에 있어서 많이 읽었습니다.
세종시기의 1400년대하고, 동국여지승람의 1500년대하고 압록강의 위치가 좀 바뀝니다.
그래서 그 이산이라는 기록이 1400년대의 기록이 아니에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0년대의 기록인데, 현재 전해내려오는 판본이 대략 1530~1600년대입니다.

파저강 정벌할 때의 세종실록(1400년대)의 기록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00년대)의 파저강에 대한 위치 기록이 전혀 달라요. 그래서 그 기록을 바탕으로 압록강이 현재의 혼강 유역에서 현재의 압록강 유역으로 후퇴했다고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건주위 옹촌이 압록강에서 하루거리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압록강 만포에서 건주위 옹촌까지 270리라고 했습니다.
대략 사행길을 갔을 때 평균 거리가 50~80리입니다.
분명히 1400년대하고 1500년대하고 지리의 위치가 많이 다릅니다. 현재의 압록강선으로 후퇴된 것입니다.

계속 피드백을 좀 달아주세요.
          
천추옹 21-08-03 23:58
   
국법에 압록강 넘지 못하게 금지했었는데.. 뭔 자세한 말이 필요하겠남여??
조선왕조실록에 수두룩 나오는 기록들인디여? ㅉㅉㅉ

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 윤3월 26일 신묘 1번째기사 / 헌부가 건의하여, 역적 강씨가 사사 물품으로 국경을 넘게 묵인한 당시 의주 부윤을 추고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의주(義州)에서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금하는 국법이 매우 엄한데도 연전에 이신검(李信儉)이, 역강(逆姜)이 보내는 물품을 가지고 사사로이 넘어가서는 오래도록 다른 나라의 경내에 머물러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그곳을 지키는 관원의 직무가 무슨 일인데 잘 금단시키지 못하고 마음대로 왕래하게 한단 말입니까. 그때의 부윤을 잡아다가 추고하소서."...

세종실록 57권, 세종 14년 9월 9일 갑자 3번째기사 / 병조에서 창성 이북에 거주하는 백성들에게 강변에 농사짓게 하기를 아뢰다
교지(敎旨)를 내려서 의주(義州)·창성(昌城)·벽동(碧潼)·이산(理山)·강계(江界)·여연(閭延) 등지에 거주하는 백성에게 압록강(鴨綠江) 저쪽 강변에서 농사짓는 것을 금지한 까닭으로, 생업(生業)이 매우 어렵게 되었으니, 10리(里)를 한정하여 금지하지 말게 하고, 그 조세(租稅 )를 거두는 것은 보통 법식의 반을 감하게 했는데, 지금엔 올량합(兀良哈)의 지휘(指揮)...

"그래서 그 이산이라는 기록이 1400년대의 기록이 아니에요. "
계속 헛소리하면 쳐 맞습니다.

1402년(태종 2)산양호(山羊湖)ㆍ도을한(都乙漢)ㆍ봉화대(烽火臺)ㆍ등이언(等伊彦) 지방을 합하여 이주(理州)라 하였다. 1413년(태종 13)이산군(理山郡)이라 개칭하고, 세종 때 군읍을 앙토리(央土里)로 옮겼으며,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경종 때이산부(理山府)로 승격하였으나, 1777년(정조 1)초산군(楚山郡)이라 개칭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산(理山))]

이산군으로 개칭한게 1413년임.. 그뒤로 쭉 이산군이었다가 경종때 이산부.. 그뒤 정조때 초산군으로 바뀐건데..
무슨 1500년대에 지리랑 위치가 다르단 개소리임?? ㅉㅉㅉ
제발 기초나좀 알고 나불댑시다
               
보리스진 21-08-04 15:19
   
1.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금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압록강 바깥쪽 땅을 개간하는 기록들도 많이 나옵니다.
압록강 바깥쪽 땅을 어떻게든 조선의 땅으로 하고자하는 기록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압록강 바깥쪽에 위치한 검동도, 위화도 등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도 나오구요.
치수작업을 해서 압록강을 검동도, 위화도 쪽으로 흐르게 만들어서 정확하게 영토로 획정해야한다는 기록들도 나옵니다.

2.
행정구역이 아닌데, 몰래 중간지대로 넘어가서 농사 짓는 것을 금하는 것과
행정구역안에 있는데, 농사를 못짓게하는 것은 구분해야합니다.
옛날에는 첨단 장비가 없어서, 적이 쳐들어오면 바로바로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접경 지역의 섬에 사람들을 육지쪽으로 옮겨살게 한다거나 하는 등의 조치도 위와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접경지역에 농사를 못짓게하는 것은 여차하면 접경지대에 서 납치해가거나 인명살상이 벌어지니까요.

3.
1497년 기록에는 압록강 바깥쪽에 이산군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1530년대 이후에 작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압록강 남쪽에 이산군이 있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그 30년 사이에 어떤 이유 때문에 영토 이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천추옹 21-08-04 17:41
   
1 검동도 위화도가 어떻게 압록강 바깥쪽인가여 -_- 제발 정신좀 차리길 ㅉㅉㅉ
위화, 검동, 어적 이렇게가 삼도라고해서 조선초부터 농민 이주시켜 경작하게 했었지만 세조때 건주여진 습격당한뒤부터는 경작 금지시켰었슴.
삼도에서 다시 경작 허가한게 순조때임.. 조또 기본 역사조차 모르는 ㅄ같은데 나대지말고 공부나 하길 ㅉㅉ

2. 접경지역에 농사 못짓게 하던게 아니라 아예 국법으로 압록강을 국경이라 정하고 건너가면 월경죄로 처벌한거라니깐 개소리네 ㅉㅉ 국경밖이 무슨 행정구역안이란 헛소리냐고 ㅉㅉㅉ

3. '1497년 기록에는 압록강 바깥쪽에 이산군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건 니생각이고..
동청례가 건주위가서 건주여진만날때 지형파악하면서 이쪽길로 내려가면 이산이 나온다고 방향얘기한거일뿐이여 ㅉㅉㅉ

"27일. 우라 산성(于羅山城)의 야인 11명에게 각각 면포(綿布) 1필과 종이 2권 씩을 주고 드디어 통행하여 겨우 10여 리를 가니 땅 이름이 삼기(三岐)라 하였습니다. 그 동북에 지름길이 있으니 바로 건주위(建州衛)로 가는 길이었고 그 서쪽에는 시냇물이 있으니 바로 이산 비라의 상류였습니다. 이 시냇물을 타고 내려 가면 작은 오솔길이 있으니 바로 이산(理山)을 가리키는 길이었습니다."
                         
보리스진 21-08-04 23:29
   
1. 검동도 위화도는 압록강 북쪽에 있다고 기록에 나와요.

『성종 19년 무신(1488) 6월 13일』
검동도(黔同島)와 같은 것은 거리가 의주성(義州城)으로부터 30여 리이고, 위화도(威化島)는 그 반이 더 떨어져 있는데다가 모두 난자강(蘭子江)ㆍ압록강(鴨綠江) 두 강의 밖에 있으니, 이는 곧 6, 70리의 노정(路程)으로서 왕래(往來)하는 데 거의 하루가 걸리는데, 또 어떻게 경작하기를 바라겠습니까?

2. 압록강 북쪽에 있었던 위화도를 명확한 우리영토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압록강을 월경하면 월경죄로 처벌한다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3.26일날 압록강 건너서 60리를 간다음에 이산 비라에 닿은 것이구요.
다음날 27일 이산 비라에 있던 강 상류에 닿았고, 그 강을 따라 내려가면 이산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연산군일기 28권, 연산 3년 10월 7일 을해』
 그 서쪽에는 시냇물이 있으니 바로 이산 비라의 상류였습니다. 이 시냇물을 타고 내려 가면 작은 오솔길이 있으니 바로 이산(理山)을 가리키는 길이었습니다.
                         
천추옹 21-08-05 07:38
   
1. 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지능이 떨어지는 분같네여..
압록강내에 위치한 섬들인데 무슨 압록강 북쪽에 있단 개소리인지 -_-..
검동도, 위화도.. 도자가 무슨뜻인지 모름???
지금도 존재하는 두 섬이니깐 가서 위치 확인부터하고 와서 개소리나 하길..

2. 이미 설명했듯이 삼도는 조선초부터 농민들 이주시켜 경작도 시켰던곳임. 근데 겨울되면 강이 얼어서 여진족애덜이 그냥 수시로 넘나들을수있던데라 수비하기 졸라 빡센데라서 경작금지시켰던거였고.. 나중에 계속 경작하게 허용해야한단 논의가 계속된곳들임.

"의주는 경작할 만한 땅이 원래 적어서 백성들이 모두 위화도(威化島)와 금음동도(今音同島) 및 어적도(於赤島)의 땅을 경작하여 먹고 살았는데, 이 세 섬에 경작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로부터 백성들의 생활이 곤란하오니, 청하옵건대, 그전대로 경작하게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다." 세종 27년 기록임 ㅉㅉㅉ 이런내용 수두룩하게 나옴 그뒤로도

3. 이산비라 = 산골짜기에 흐르는 냇물 이름임..  그 냇물따라 내려가면 이산 나온다는 얘기고..
이산 압록강 건너편에 이산쪽으로 흐르는 큰강인 혼강말고 산골짜기 냇물이 4개임..
그중 가장 동쪽에 있던게 상류가 기록에서 언급한지역까지 이어지고있고 ㅉㅉ

이런 개소리에 시간낭비할 이유가 없는게.. 그냥 역사 기초만 알아도 이런 개소리를 못해요 ㅉㅉㅉ
세종때만 하더라도 압록강 북부가 아니라 그냥 강계 북부는 이만주 여진족 지역이라 세종때 이색히 일가 쳐낸 기록만 한보따리다 ㅉㅉ 결국 이색히 압록강 이북으로 쫒아내고 세운게 4군인데.. 무슨 압록강 북부에 조선땅있었다 이런 초딩같은 개소리를 하나 ㅉㅉㅉ
기본적인 역사공부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헛소리할 수준도 아닌데 ㅉㅉ
                         
보리스진 21-08-05 16:54
   
1. 위화도는 의주성에서 45리가 떨어져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거리로 하면 약 20km입니다.
의주성은 압록강 근처에 있는 지역입니다.
압록강의 강폭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 약3km너비입니다.
애하와 압록강이 만나는 지점은 서로 강이 여러갈래로 흐르면서 그 전체 너비는 약5km정도 됩니다.
현재의 압록강 속에 있는 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종 19년 무신(1488) 6월 13일
검동도(黔同島)와 같은 것은 거리가 의주성(義州城)으로부터 30여 리이고, 위화도(威化島)는 그 반이 더 떨어져 있는데다가 모두 난자강(蘭子江)ㆍ압록강(鴨綠江) 두 강의 밖에 있으니, 이는 곧 6, 70리의 노정(路程)으로서 왕래(往來)하는 데 거의 하루가 걸리는데
 
2. 그러니까 압록강을 월경하면 월경죄로 처벌한다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달라진다니까요.

3. 님의 말씀처럼 이산으로 이어지는 강의 상류였다고 한다면,
애초에 압록강을 건넌 다음에 "이산비야 상류"에 닿았다고 기록에 남겼죠.
압록강을 건너고 이산비야 상류에 닿았는데, 그 강을 내려가면 이산에 닿는다 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실제 기록은 압록강 건너고 60리(24~30km)를 가서야 이산비라에 닿았고, 거기서 10리(4~5km)를 더가서 이산비야 상류에 닿았습니다. 상류를 따라 내려가면 이산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포상류에 삼강구비강이 있는데, 그 강 가운데 섬이 있고, 우리 땅하고 더 가까워서 우리영토라고 했습니다.
압록강 바깥에서 이어지는 강이라도 그 가운데 우리 땅이 존재한다는 것이거든요.
                         
천추옹 21-08-06 09:42
   
1. 위화도는 의주성에서 45리가 떨어져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거리로 하면 약 20km입니다.
의주성은 압록강 근처에 있는 지역입니다.

-> 이게 방구석 역사학도들이 잘 벌이는 개짓거리임.. 기록에 35 (14km)리 떨어져있다고 나오지만 고지도들하고 구글맵펴서 의주성하고 위화도 지형부터 살펴봐라.
의주성 앞은 압록강이 수심깊은데라 직선거리로 위화도 갈데가 못되고 얕은데로 위화도 갈려면 위화도 남쪽으로 들어가야하는데.. 그길은 의주성 동문으로 나와서 남산을 돌아가서 빙돌아가야해서 대충 저정도 거리 나온단다 ㅉㅉㅉ

2. 그러니깐 압록강 = 국경이란 얘기임.. 국경넘어 무슨 영토가 있단 개소리냐니깐 ㅉㅉ

3. 중종때 고지도들 여럿있으니깐 그 지도들이 공통적으로 위화도라 적힌곳이 어딘지부터 확인하면 이런 개소리에 시간낭비할 이유가 없단다.
해동지도, 여지도.. 위화도란곳 적혀있으니깐 확인하고 와서 지껄이던가.. ㅉㅉ

왜캐 캐무식한 ㅄ들이 나대냐 요즘은 ㅉㅉㅉ
                         
보리스진 21-08-06 10:31
   
1.위화도는 강 사이에 있는 섬이 아니에요.
의주 활동, 또는 구룡연에서 압록강이 두갈래로 나뉩니다.
그 한 줄기가 위화도와 검동도 사이를 흐르면서 강 사이를 갈라놓고, 적강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위화도 또는 삼도(三島)라고 지칭합니다.
그러나, 비가 적게 오면 압록강과 적강이 서로 이어지지 못하여, 그냥 맨땅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압록강과 적강이 서로 이어지는데, 압록강 지대가 낮아서 적강에서 압록강으로 흐릅니다.
비가 적게 오면 강이 아니고, 비가 많이 와야 두 개의 강이 이어지므로, 치수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압록강 하류에 있는 강속의 섬이 아닙니다.

세조실록 40권, 세조 12년 11월 11일 기묘 2번째기사
일찍이 물이 창일(漲溢)하면 압록강(鴨綠江) 구룡연(九龍淵)의 물이 넘어서 적강(狄江)에 합치게 되고, 물이 줄면 내[川]가 마르게 되니, 만약 그 높은 곳은 파서 물길을 통하여 적강(狄江)의 물이 깊게 된다면 삼도(三島)의 경작(耕作)은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고 하니, 경(卿)이 친히 의주 목사(義州牧使) 선형(宣炯)에게 말하여 물이 창일(漲溢)할 때를 인하여 그 지세(地勢)의 높고 낮음과 공역(功役)의 많고 적음을 살펴서 아뢰라.’고 하였으므로 신(臣)이 선형(宣炯)과 더불어 살펴보니 적강(狄江)의 북쪽은 지세(地勢)가 높고 압록강(鴨綠江)의 남쪽은 지세(地勢)가 낮으므로 적강(狄江)의 지류(支流)가 압록강(鴨綠江)으로 합치게 되니, 그 높은 곳을 파게 되면 적강(狄江)이 도리어 얕게 되어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또 서로의 거리가 요원하므로 공역(功役)도 어렵게 될 것입니다.

2. 그 당시 국경은 선이 아니라 면적입니다.
면적이기 때문에 중간지대 또는 봉금지대가 설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면서 여러번 이 국경지대의 면적이 변화합니다.
따라서 그걸 정밀하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유일하게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지도라고 추정됩니다.
이 외에는 1550년대 이후의 지도들만 있습니다.
조선 중후기로 가면서 위화도가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것으로 지도에 그려지긴 합니다.
허나 사료에 나오는 기록을 봤을 때, 지도에 나와있는 위화도는 오류로 판단됩니다.
조선초기의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위화도의 위치는 현재의 평안도 철산군 바다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섬으로 표기되어있네요.
현재의 압록강도 아니고, 의주도 아닙니다. 다른 섬을 위화도라고 지칭했습니다.
아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사본을 만들거나 지도의 그림을 보정하는 과정에서 원본하고 좀 달라진 것 같네요.
(1400년대 원본이 아니고, 더 뒤로 내려가는 것 같네요.)
그러므로 지도는 위화도가 어디였는지 알려주지 못하네요.
감방친구 21-08-03 09:35
   
저는 고려 전기 서북계와 동북계뿐만 아니라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북방 강역 연구 또한 매우 광범위하고도 심층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따라서 보리스진님이 어느 수준에서 연구를 하고 있고 어떠한 한계에 봉착하였는지 눈에 보입니다

보리스진님이 이곳 동아게뿐만 아니라 유튜브의 여러 채널과 영상에서 댓글로써 활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 시대 강역 문제에 있어서 동아게에서 전문가내지 본격적 연구자를 찾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제가 유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보인 교묘한 언행, 저에게 가한 조롱과 모욕 등으로 인하여 보리스진님의 인격과 태도에 불신을 굳게 가지게 되어서 님의 분석과 주장에 대해서 가타부타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하는 것입니다

연구는 고독한 투쟁입니다

아무쪼록, 건투를 빌며, 성과 역시 기대합니다
     
보리스진 21-08-03 09:58
   
학계에서 고려말 조선초 연구를 많이 하거든요.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쪽에서도 연구를 하는데요.
님도 거기에 참여해보실래요?
많이 아시니까, 오프라인에서 어떤 형태로든 활동해보면 학계에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엄근진 21-08-03 09:57
   
몰랐던 얘기들이네요. 언제 이 지역을 상실했는지에 대해서도 정리하신 내용이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넓은 강역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상실에 대한 역사는 정리 안하시는 것 같아 여쭙습니다.
     
보리스진 21-08-03 09:59
   
일단은 1500년대 전후로 보이는데요. 제가 지도를 첨부해서 요번주나 다음주내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엄근진 21-08-03 10:01
   
아... 감사합니다. 급한건 아니니 부담갖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
국산아몬드 21-08-03 20:02
   
거주하는 사람도 없는데 국경선 긋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함경도마저 완전한 영토로 삼기 위해 사민정책을 시행했는데 압록강 건너까지 누가 살러 갈까요
     
보리스진 21-08-03 20:14
   
기후가 수백년마다 상승했다가 하락했다가 합니다.
조선시대 1300년대부터는 기후가 많이 추워집니다.
소빙기라고 합니다.
기후가 추워지면 사람들이 점차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그 당시에 여진족이 남쪽으로 내려온 이유입니다.
조선시대 당시에 소빙기라고 해서 북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많이 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있던 영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온난화 시기에는 사람들이 북쪽에도 많이 살 수 있습니다.
나중에 만주지방의 영토선 획정을 하게될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기록들을 찾아내고 밝혀낼 필요가 있습니다.
     
위구르 21-08-04 00:52
   
그렇게 치면 고대 훈, 튀르크, 유연, 위구르 제국과 당대의 청나라의 令域의 상당부분도 의미가 없는데 왜 그건 안따지고 조선만을 폄하합니까? 이것도 그렇고 고구려, 대씨 고구려, 단군조선의 領土에 대해 좀만 얘기하면 춥다느니 인구 밀도가 낮다느니 하는 소리가 꼭 나오는데 무슨 심보인지 도무지 理解가 안됩니다.
Marauder 21-08-04 13:35
   
잘기억은 안나지만 감방친구님 글에 의하면 압록강과 봉황성 사이는 국경지대였으므로 누구의 땅도 아님. 근데 제생각에 이때는 명나라시대였으므로 청나라 이후는 의미없음

다만 두만강 이북은 연구할 필요가 있고 이는 주류쪽에서도 인정하는편.
재야는 6진을 두만강 이북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주류에서는 그렇게까지 보지않는다는정도

이렇게 요약이 가능했던걸로 기억합니다.
     
Marauder 21-08-04 13:39
   
반대로 이야기 해보면 우리가 gop나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을 들어가지 말라고 해서 그게 우리나라 영토가 아닌 근거가 될수는 없죠.
법으로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것도 금지죠.
문제는 그게 어느 케이스냐 하는것일뿐
     
보리스진 21-08-04 14:56
   
제가 하는 것은 그 국경지대 가운데서 조선의 영토를 가려내는 것이에요.
명나라와의 첫번째 국경선이 연산관 그 다음에 점점 남쪽으로 내려와서 봉황성, 탕참, 책문 등으로 현재 압록강 지대로 많이 내려옵니다.

아시다시피 국경지대가 현대처럼 선으로 된 경계선이 아니고 면적으로 되어있었는데요.
이 면적이 시대가 지나면서 변화합니다.
그 변화 가운데서 조선의 영토가 어디였냐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 국경지대를 몇가지 분류를 해봤습니다.
1. 실제 영토. 2.제한된 영토(제한된 목적으로만 사용. 참 설치, 개간지, 인삼채집 등)
3. 중간지대.(접근 금지지역)

예를 들어서 조선 초기에 중국의 실제영토 한계는 연산관이었다.  그 남쪽은 중간지대였다. 그런데 연산관 남쪽으로 참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 때 이 곳은 제한된 영토가 됩니다. 그러면서 참 설치 지역 남쪽에 중간지대가 되었다. (접근 금지 지역)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참이 설치된 지역에 사람들이 흘러 살게 되면서 제한된 영토가 실제 영토로 되면서 명나라와 조선의 국경지대가 더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물론 조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다만 국력의 차이에 의해서 강대국의 압박을 받아 주로 땅을 빼앗기는 양상이 나타납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지역들은 제한된 영토로 사용된다거나, 중간지대가 아닌, 실질적인 영토로 사용된 곳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제한된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던 지역들이 기록에 남아있습니다만,
제가 이런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조선이 공식적으로 영토라고 언급하거나, 행정구역이라고 언급한 것들을 꼽아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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