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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7 10:08
[한국사] 소위 진개전쟁(윤내현 설)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779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한후 후퇴했음은 당시 연국의 정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여진다.. "위략“의 기록을 ”사기 조선열전“과 연결시켜 보면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한 시기는 연국의 전성기 였음을 알게된다. 연국의 전성기는 召王(소왕) 때로서 기원전 311년부터 기원전 279년 사이였으니 진개의 고조선 침략은 이 기간에 있었을 것이다. 연국은 기원전 284년에 秦國(진국), 楚國(초국), 趙國(조국), 魏國(위국), 韓國(한국) 등과 연합하여 강국인 齊國(제국)을 치고 70여개의 성과 제국의 도읍인 臨淄(임치)까지 점령 하였었다. 이 시기에 진개가 箕子國(기자국)과 고조선을 친 것인데 당시의 연국의 국력으로 보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5년 후인 기원전 279년에는 연국의 소왕이 사망하고 혜왕이 즉위하였는데 혜왕은 용렬한 군주여서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래서 연군은 제군에게 크게 패하고 철수 하여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원전 273년에는 한국.위국.초국이 연합하여 연국을 정벌한 사태까지 일어났다 . 그후 연국은 멸망될 때까지 국력이 크게 쇠퇴되었다.

연국은 전성기를 맞은 것으로부터 불과 5년이 지난 후부터 국력이 크게 쇠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조선을 친 진개만이 그 지역을 계속해서 확보하고 있었을 것으로는 생각할수 없다. 진개도 어쩔수 없이 후퇴했었을 것이다. “위략”의 기록에 진개가 기자국과 고조선의 땅 2천여 리를 빼앗았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 국경을 만.번한으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번한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있었던 지명이었다. 즉 진개의 침략후에도 고조선과 연국의 국경은 그전과 크게 차이가 없이 지금의 나하 유역이었던 것이니, 이것은 진개가 후퇴 하였음을 입증하여 준다. 진개가 침략하였다는 2천여 리는 실제의 거리라기보다는 많은 땅을 침략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것이다. 어떻든 고조선은 진개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래지 않아서 영토는 거의 회복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것은 전국시대에 연국만 일방적으로 고조선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도 연국을 침공한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鹽鐵論(염철론)”“備胡(비호)”편을 보면 고조선이 요동에있던 연국의 傲(오)(국경초소)를 넘어 연국의 동부지역을 탈취한 일이 있음을 전하고 있다. 요동에 있었던 연국의 傲(오)는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외오를 지칭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동열전의 내용에 의하면 요동외오는 진개의 고조선 침략후에 설치되었다. 따라서 “염철론 비호”편의 기록은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한후에 고조선도 연국을 침공한 사실이 있음을 전하고 있다. 이로보아 고조선과 연국은 때때로 상호 침공이 있었으나 국경선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염철론”의 “伐功(벌공)”편에서는 “연국은 東胡(동호)를 물리치고 1천 리의 땅을 넓혔으며 요동을 지나 조선을 침공하였다. ”고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기 흉노열전”과 ‘위략“에 보이는 진개의 침략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만약 진개가 고조선의 영토를 침공하여 그것을 확보하고 있었다면 연국의 국경은 동쪽으로 크게 이동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철론 험고“편에서는 연국의 국경은 碣石(갈석). 邪谷(사곡), 요수ㅡ예기서 요수는 지금의 난하ㅡ였다 고 밝히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진개의 전쟁이 일시적인 침략행위에 불과했고 다시 후퇴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시대에 연국시대에 연국보다는 제국이 강대국이었는데 제국은 지금의 산동성지역이었다. 그런데 종래의 통설처럼 연국이 압록강을 고조선과의 국경으로 삼고있었다면 연국은 제국의 두 배 정도의 대국 이어야 한다. 이것은 전국시대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사기“에서 ”연국은 북쪽으로 蠻貊(만맥)의 압력을 받았고, 안으로는 제국. 진국과 국경을 함께하여 강국들 사이에 끼어 있던 변방의 가장 약하고 작은 나라로서 여러번 멸망할 위험을 겪었다“고 말하여 연국을 약소국으로만 표현하고 진개의 고조선 침략은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점도 참고되어야 한다.


출처 한국고대사신론

※한국고대사신론은 윤내현의 교수의 연구를 담은 논총집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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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1-07-27 10:20
   
진개전쟁관련 핵심은 최종적으로 만번한을 경계로 삼았다라고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윤교수에 따르면 만번한은 난하지류이고 찬찬히 읽어보면 근거가 맞다고 봅니다.
즉 진개침략후 연나라 사정으로 후퇴하여 예전보다 아조 조금 넓혀 난하지류를 경계선으로 삼았다고 보여집니다.
     
수구리 21-07-27 10:36
   
문제는 만변한인데
사마천 사기나, 서기 100년경에 편찬된 한서지리지에도 만변한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제 만변한이 나오는가
서기 300년경에 편찬한 삼국지에 만변한이 등장하는데.. 위서를 인용해서
위서 편찬시기는 빨라야 서기 250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BC300 경에 진개가 고조선을 침범했는데
만변한이 서기전 100경의 사마천 사기에 등장하지도 않고..
서기 100년경의 한서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서기 250년경의 위서에서 처음 나온 만변한을
한나라와 고조선의 경계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더욱이 만변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수도 없습니다(지역을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누짱 21-07-27 10:45
   
윤교수 논증에 따르면

“위략”에 의하면 진개의 고조선 침략전쟁이 있은 후에 연국은 고조선과의 국경을 滿.番汗(만.번한)까지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만.번한의 위치가 확인되면 국경선의 변화를 알수 있게 된다.. 만.번한의 위치는 “한서”“지리지”와 “수경주”의 기록을 통하여 입증할 수 있다. “한서 지리지 요동군조”에는 文.番汗(문.번한)의 두 縣名(현명)이 보인다. 이 문.번한은 “위략”에 보이는 만.번한 이라는데 이론이 없는데, 동한시대에 이르면 文縣(문현)은 汶縣(문현)으로 바뀐다. 文. 汶. 滿(문.문. 만)은 중국의 동남부 지역에서 통용되는 吳音(오음)으로는 동일한 음이 된다. 古音(고음)이 주로 변경지역에서 오래 보존되어 내려온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때 이 세 문자는 고대에 동일한 음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文縣(문현)과 番汗縣(번한현)이 항상 나란히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들은 연접되어 있었던 지역의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서 지리지 번한현”의 반고 주석에는 그곳에 패수가 있다고 하였으며 응소의 주석에는 汗水(한수)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경주 유수조”를 보면 유수의 지류로 汗水(한수)가 있다. 그런데 유수는 지금의 난하의 옛 명칭이므로 결국 패수와 한수는 난하의 지류였을 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만.번한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있었던 지명인 것이다.
               
수구리 21-07-27 10:49
   
그렇게 주장할수 있고 설득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만변한으로 지역을 특정할 수 없고 위치를 비정해야 하니 또다른 논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만변한 위치를 논란으로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누짱 21-07-27 10:55
   
그래서 다양한 연구로 다양한 설이 나오게 되죠. 확정짓지 못했지만 자신의 가설을 저렇게 확실하게 내놓는것이 중요하죠. 논리적으로나 근거상 별 무리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위략외엔 별다른 근거가 부족한 것은 위략이전엔 저지역에 대한 지나인들의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죠. 즉 지들 영토가 아니었다는 방증이 되는거죠
                    
감방친구 21-07-27 11:08
   
주류 학계가 만번한 위치 비정에 있어서
여러 설이 분분한 이유는

고고물질문화, 즉 고고학계의 연구성과가 계속 갱신됨에 따른 것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상고사를 연구하려면
고고학 경향, 물질문화의 분포, 변화상, 계통성 등을

기반에 깔고서 사서를 들여다 보셔야 합니다
                    
감방친구 21-07-27 11:12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상고사는
재야에 연구자들이 특히 많이 몰려있는 시대입니다

일반 역사관심자들도 이 시대에 많이 몰려있고요

그러니

만용을 부릴 수가 없는 연구 분야가 이 시대입니다

길게 내다보고 찬찬히 가세요

그리고
주장 성립의 기본은 지키세요
                         
수구리 21-07-27 11:31
   
논리적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시는 뜻은 이해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라고 한다면 도데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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