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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5 05:51
[한국사] 한韓은 산동성과 강소성이었다(후한서 동이열전 내용)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084  

■ 사마천 사기 평준서와 후한서에 따르면

    한(마한,진한, 변한)은 산동성과 강소성에 있었다(한을 통합한 것이 백제다)

    ※주) 산동성과 강소성은 원래부터 동이족 살던 곳이었고, 동이족이 세운 나라가 있었다


1) 사기 평준서에는 예맥조선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북경 동남쪽인 창주시라고 했고, 

2) 후한시대(AD 25 ~ 220년)의 중국 역사책인 후한서에는 한이 예맥조선의 남쪽에 있다고 했으니

   한(마한,진한, 변한)은 산동성과 강소성에 있었다


1) 신라와 가야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으나

2) 백제는 한(산동성, 강소성)의 소국 1백개를(일백개의 제濟 나라 소국)을 통합하여 번성했고

    고구려 광개토대왕, 장수왕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수도를 한반도 남부인 웅진으로 옮겼다

3) 한(산동성, 강소성) 남쪽이 왜국이니 왜국은 절강성과 대만에 있었다


■ 예맥국(예맥조선)은 하북성 창주시다  

       --> 고조선 영토(유방의 한漢나라와 ◐경계선◑은 호지하虖池河:現. 滹沱河)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글 참조

 

■ 한韓은 예맥국(穢貊國) 남쪽인 산동성과 강소성이다


※주) 1) 예濊는 예맥국,예맥조선으로 하북성 천진시 아래 창주시滄州市이니, 예濊 나 한韓을 한반도, 고구려를 만주라는 선입관을 버리고동쪽 바다를 동해가 아니라 중국동쪽 바다인 황해로 보고..

          ---> 고구려를 하북성 북부로, 예濊를 중국 동부인 하북성 창주시로, 한韓을 중국 동부나 산동성,강소성으로 상상하고 읽어보시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바다는 소양호와 덕주시인 발해호수, 대해는 황해)


       2) 동옥저는 高句驪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에 연접하였으며, 북쪽은 挹婁·夫餘와, 남쪽은 濊貊과 접하여 있다. 그 지형이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긴데,[면적은] 사방 천리의 절반 쯤 된다.

           --->개마대산(蓋馬大山)이 당산시와 진황도시 사이의 갈석산으로 보이니, 동옥저는 동서가 좁고 남북이 오백리 정도인 요서회랑(진황도시秦皇島市와 호로도시葫蘆島市 사이)이다



■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찬자평(撰者評)

○ 論한다.
옛날 箕子註 136가 쇠망하는 殷나라의 운수를 피하여 朝鮮 땅에 피난하였다. 처음엔 그 나라의 풍속이 알려진 바 없었으나, 八條의 法註 137을 시행하여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게 하니, 마침내 그 邑落에 음란한 행동과 도둑이 없어져서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았으며, 악하고 나쁜 풍습을 바꾸고 너그럽고 간략한 법을 이루어 수백년 동안 행하여졌다.
그러므로 東夷의 전체가 柔謹으로 風化되어 三方註 138의 풍속과는 다르게 되었으니, 진실로 政敎가 창달되면 道義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仲尼(공자)가 분연히 九夷에 가서 살으려 하였더니 어떤 이가 그곳은 더러운 곳이 아닌가 하므로, 孔子가 ‘君子가 살고 있으니 어찌 그곳이 더럽겠는가註 139 한 것도 특히 그런 까닭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 뒤 드디어 [중국과] 통상을 하게 되고 점차 上國과 교역하더니, 燕나라 사람 衛滿註 140이 그들의 풍속을 어지럽히자, 이에 [그들도] 따라서 나빠지게 되었다. 老子는 ‘法令이 불어날수록 도적이 많아진다’고 하였다. 箕子가 법조문을 간략하게 하고 信義로 다스린 따위는 聖賢의 法을 만든 근본취지를 얻었다 하겠다.

○ 贊한다.
옛날 堯임금이 羲仲을 嵎夷(산동성)에 살게 하니 곧 暘谷이라 한다. 山과 바다에 사는 것을 아홉 종족으로 구분지었다. 秦나라 말년에 정치가 혼란해지자 燕나라 사람들이 [이 땅에] 피난하여, 중국의 풍속을 어지럽히고 [東夷의] 풍속까지 나빠지게 하더니, 드디어 漢나라와 통하게 되었다. 아득하고 멀리서 통역하자니 복속도 하고 배반도 하는구나.

「王制」에 이르기를 ‘東方을 夷註 003라 한다’고 하였다.註 004 夷란 根本이다. [그 의미는] 夷가 어질어서 生命을 좋아하므로註 005 萬物이 땅에 근본하여 産出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夷는] 天性이 유순하여 道理로서 다스리기 쉽기 때문에 君子國(서국 추정)과 不死國(산동반도 청구국 추정)이 있기까지 하다.註 006 夷에는 아홉 종류가 있으니,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가 그것이다.註 007 그러므로 孔子도 九夷에 살고 싶어하였다.註 008

○ 옛날 堯임금이 羲仲을 嵎夷(산동성)에 살도록 命하면서 ‘暘谷’이라 하였으니註 009 그곳은 대체로 해가 돋는 곳이다. 夏后氏의 太康이 德을 잃자, 夷人들이 처음으로 叛하기 시작하였다.註 010 少康 이후부터는 대대로 王化에 감복되어 王室에 복종하고 그들의 음악과 춤을 바치게 되었다.註 011
桀이 포악해지니 諸夷가 內地에 侵入하여 왔는데, 殷의 湯王이 革命하고 [난 뒤] 이들을 정벌하여 평정하였다.註 012 仲丁 때에 이르러 藍夷가 침입하였다.註 013 이로부터 복종하고 배반하기를 3백여년간 계속하였다. 武乙에 이르러 [殷이] 衰弱해지자, 東夷가 점차 강성해져서 드디어 淮水(산동성과 강소성 경계, 안휘성과 하남성 경계)와 岱山(산동성 泰山)으로 나뉘어 옮겨오더니 점차 中土에까지 뻗어와 살게 되었다.註 014

○ [周] 武王이 [殷의] 紂를 멸망시킴에 이르러 肅愼이 와서 石砮와 楛矢를 바쳤다.註 015 管叔과 蔡叔이 周나라를 배반하고 夷狄을 招誘하였는데, 周公이 이들을 정벌함으로서 東夷가 드디어 평정되었다.註 016 康王 때에 肅愼이 다시 왔다.註 017
그 후에 徐夷(강소성 서주시 부근)가 참람되어 王號를 칭하며 九夷를 거느리고 宗周를 쳐서 서쪽으로 黃河의 上流에까지 이르렀다.註 018 穆王은 그 세력이 한창 떨침을 두려워하여 동방 諸侯를 분리시켜 徐偃王註 019에게 命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偃王은 潢池 동쪽에 살았는데 國土가 500리였으며, 仁義를 행하니 陸路로 와서 朝會하는 나라가 36國이나 되었다. 穆王이 後에 赤驥·騄耳 등의 말을 얻어서 造父로 하여금 그 말을 몰고 楚나라에 알려서 徐國을 치게 하니, [造父는] 하룻만에 [楚나라에] 도착하였다. 이에 楚文王이 大兵을 일으켜 徐國을 멸망시켰다.註 020 偃王이 어질기만 하고 權道가 없어서 차마 그 백성을 데리고 싸우지 못하였으므로 敗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리하여 북으로 彭城 武原縣 東山 아래로 달아났는데, 따라간 백성이 萬名이나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 산의 이름을 徐山이라고 하였다.(이하 생략)

 

○ 濊 註099

濊(하북성 중부 창주시)註 100는 북쪽으로는 高句驪·沃沮와, 남쪽(산동성)으로는 辰韓과 접해 있고, 동쪽은 大海(황해)에 닿으며, 서쪽은 樂浪에 이른다. 예 및 옥저·고구려는 본디 모두가 [옛] 朝鮮의 지역이다.
일찍이 [周] 武王이 箕子를 조선에 봉하니,註 101 기자는 [朝鮮 백성에게] 예의와 농사짓는 법과 양잠하는 법을 가르쳤다. 또 八條의 敎를 제정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서로 도둑질을 하지 않아 [밤에도] 문을 닫지 아니하고, 婦人들은 貞節을 지키며 음식은 籩豆를 사용하여 먹었다.註 102
그 뒤 40여世를 지나 朝鮮侯 準에 이르러 스스로 王이라 칭하였다. 漢初의 대혼란기註 103에 燕·齊·趙나라 사람으로서 그 지역으로 피난간 사람이 수만명이나 되었는데, 연나라 사람 衛滿은 準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스스로 朝鮮의 왕이 되어 나라가 손자 右渠에게까지 전하여졌다.

○ 元朔 원년(B.C.128) 에 濊君(창주시 예맥조선) 南閭註 104 등이 右渠를 배반하고 28萬口를 이끌고 遼東에 귀속하였으므로, 武帝는 그 지역으로 蒼海郡註 105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元封 3년(B.C.108)에 이르러서는 조선(형수시 무강현의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樂浪·臨屯·玄菟·眞番의 四郡을 두었다. 昭帝 始元 5년(B.C.82)에는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도에 합병하였다.註 106 현도는 다시 [高]句驪로 옮겼으며 單單大領의 동쪽의 沃沮와 濊貊은 모두 낙랑에 예속되었다. 뒤에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註 107 다시 [大]領의 동쪽 7縣을 떼어 낙랑군에 속한 東部都尉를 두었다. [濊가 漢에] 복속된 후부터註 108 풍속이 점점 나빠짐에 따라, 법령도 점차 늘어나 60여條나 되었다.註 109 [後漢] 建武 6년(A.D.30; 高句麗 大武神王 13)에 [東部]都尉의 관직을 폐지하고, [大]領 동쪽의 지역을 포기한 뒤, 그 지방의 우두머리(渠帥)들을 봉해 縣侯로 삼으니, 歲時마다 모두 와서 朝賀하였다.
(이하 생략)

○ 韓 註111

註 112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馬韓, 둘째는 辰韓, 셋째는 弁辰註 113이다.

馬韓은 서쪽
(산동성 서부)에 있는데, 54國註 114이 있으며, 그 북쪽은 樂浪註 115남쪽은 倭(오나라 월나라 대만)와 接하여 있다.註 116 진한은 동쪽(산동성 동쪽)에 있는데, 12國이 있으며, 그 북쪽은 濊貊(창주시의 예맥조선)과 接하여 있다. 弁辰은 辰韓의 남쪽(강소성)에 있는데, 역시 12國이 있으며, 그 남쪽은 倭(오나라 월나라 대만)와 接해 있다.

모두 78개 나라註 117 伯濟註 118(백제)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萬餘戶, 작은 나라는 數千家인데,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사방 4천여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동쪽바다는 황해, 서쪽 바다는 소양호)로 하니 모두 옛 辰國註 119이다. (이하생략)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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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경 21-07-25 08:54
   
소설을 써도 정도껏 씁시다.

그럼 한반도에는 무슨 세력이 있죠? 그냥 짱궈민족이 되고 싶은가 보죠?

1) 사기 평준서에는 예맥조선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북경 동남쪽인 창주시라고 했고
 
  ---  사기 평준서에는 예맥조선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있다고 적혀 있다라고 소설을 쓰시는데, 그런 거 없음. 사기 평준서에서 말하는건 조선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군비를 조달해야 하고, 결국 인근 연과 제 지역에서 군비를 충당할테니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임. 이는 이 기사의 앞에 언급하는 양월을 평정할려고 하니, 강수와 회수지역이 군비 때문에 파탄이 났고, 서남이지역까지 도로를 건설하려는게 결국 파촉 지방의 백성들까지 피곤하게 만든다고 언급하고 있을 뿐임. 문맥 해석을 아무리 오지게 해봐도 님 같은 소설은 나올 수 없음.

 2) 후한시대(AD 25 ~ 220년)의 중국 역사책인 후한서에는 한이 예맥조선의 남쪽에 있다고 했으니 한(마한,진한, 변한)은 산동성과 강소성에 있었다

  ---  후한서에는 한의 북쪽에 예맥이 있다고 했지만 예맥이 북경 남쪽 창주시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데요? 자 후한서의 예에 대해서 보죠. 예는 북쪽에 고구려 옥저가 있고 남쪽에는 진한이 있다고 합니다. 아니 후한서 동이열전 부분을 보면 누가봐도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지역을 설명합니다. 아무리 대가리 깨진 해석을 하더라도 님같은 해석은 불가능함.

 애당초 소설을 쓰는건 좋은데, 좀 원문을 다 읽어보고 글 싸지릅시다. 1번의 가정이 틀렸는데도 억지로 그걸 옳다고 주장하면서 2번을 들이대니 님처럼 개소리를 하게 되는 것임. 상식도 없는 개소리 수준이라 역겨울 정도임.
     
수구리 21-07-25 09:01
   
평준서 내용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燕), 제(齊) 사이가 바람에 휩쓸리듯 소란해졌다."

이 내용은 뭔가요?
          
광개토경 21-07-25 09:13
   
바본가?

설명해줘도 또 딴소리하네.

창해군 설치는 예군 남려와 관계된 거고, 결국 조선과의 마찰로 전쟁에 돌입할거라서 언급한것이고, 조선과의 전비조달은 연과 제 지역에서 충당할테니 소란스러워졌다는거라고 알려줘도 딴 소리네.

가서 사기 평준서 다 읽어봐라. 니가 말하는 논리가 나올수 있나.

조선을 침공할려면 육군은 연 지역을 지나야하고, 수군은 제 지역에서 출발하니 당연히 그 두 지역이 전비 충당해야 할거고, 소동이 생긴다는 건데 이해 못하니? 정말 수준이 너무 떨어지니 상종하기 힘드네.

그래 님 꼴리는데로 소설 쓰고 사세요. ㅋㅋㅋ
               
수구리 21-07-25 09:32
   
계속 소설을 쓰시면 됩니다(댓글 쓰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준서 내용은
" 置滄海之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燕), 제(齊) 사이가 바람에 휩쓸리듯 소란해졌다."
따라서 창해군은 연과 제  사이이니 예맥조선은 연과 제 사이인 지금의 창주시입니다
(예의 임금 남여가 항복해서 설치한 군이 창해군이며 몇년 후에 한나라가 쫒겨 났습니다)

--> 이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설명입니다(간단한 내용이니 쉽게 보면됩니다)

그리고 거짓말 하셨네요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있다고 적혀 있다라고 소설을 쓰시는데, 그런 거 없음.' 라고
숨겼는데 들통났고요

그리고 사료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료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례는
간단한 내용을 1) 어렵게 설명하고 2)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으면
거짓말과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구리 21-07-25 09:08
   
님이 말은 그냥 님이 생각하는 소설을 쓴 것입니다

님의 예에 대한 설명은
근거가 하나도  없고요, 님이 주장하고 싶은 것을 그냥 썰을 푼 것이니 이런 것을 뇌피셜이라고 합니다
광개토경 21-07-25 09:37
   
사기 평준서에서 조선이 언급된 부분은

嚴助、朱買臣等招來東甌, 事兩越, 江淮之閒蕭然煩費矣.
양월(남월과 민월)과의 전쟁으로 강수와 회수지역이 고통
唐蒙、司馬相如開路西南夷, 鑿山通道千餘里, 以廣巴蜀, 巴蜀之民罷焉.
서남이지역까지 도로를 개통할려니 그 도로건설 지역의 주민들이 고통
彭吳 賈滅朝鮮, 置滄海之郡, 則燕齊之閒靡然發動.
조선과의 전쟁으로 그 인근 연과 제지역이 동요

이런 맥락으로 사마천이 서술한거지. 니가 말하는데로 무슨 예맥이 연과 제 사이에 있다고 기술한게 아님. 바보가 아니라면 이해하겠지?
     
수구리 21-07-25 09:47
   
그리고 사서라는 것이
정벌 기록도 있고 정벌 장소도 있고
도로를 개통하다면 전비 조달도 있고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본인 관점에서
전비조달 주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했으니 다른 것은 다 헛소리다라고 주장하고 계시네요

따라서
정벌 기록도, 장소 위치도 모두 거짓이고 볼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역사에 대해 논쟁에 참여할 기본도 소질도 자격도 없어 보입니다

어느 나라 어떤 별의 사서 해석 방법인지 궁굼하네요(본인만의 엉터리 괴설이니 일기장에나 쓰시면 누가 뭐라 할 수 없겠지요)
     
수구리 21-07-25 09:49
   
그리고 평준서 내용인
" 置滄海之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燕), 제(齊) 사이가 바람에 휩쓸리듯 소란해졌다."
따라서 창해군은 연과 제  사이이니 예맥조선은 연과 제 사이인 지금의 창주시입니다
(예의 임금 남여가 항복해서 설치한 군이 창해군이며 몇년 후에 한나라가 쫒겨 났습니다)

--> 이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설명이다(간단한 내용이니 쉽게 보면됩니다)
이게 어떻게 전비 조달 내용인가요? 예맥조선 장소 이야기 입니다
광개토경 21-07-25 09:50
   
연과 제가 언급된 건 중국 왕조의 조선 고구려 침공에는 수륙 양동작전이 기본인데, 수군은 제 지역 육군은 연 지역을 기반으로 출정하니 그 두 지역이 군비 충당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란다. 진짜 바보가 아니라면 사기 평준서에서 사마천이 언급한 의도가 무언지를 알텐데, 이런 엉뚱한 개소리를 한다는거 보면 참 한심하다.

머 이런 멍청한 사람하고 시간낭비하는 내가 바보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동아게 수준이 이정도인가 싶지만, 어디 역사카페 같은데 가서 이런 멍청한 소리 하지 않길 바래
     
수구리 21-07-25 09:52
   
어디에 양동작전 한다는 이야기가 있나요
양동작전은 님의 머리속에나 있는 내용이지 사서내용이 아닙니다

양동작전 설명하려고 이 내용 저 내용 갖다 붙여서 뇌피셜  쓸지 모르지만
다 헛소리고 거짓말입니다
     
수구리 21-07-25 09:56
   
그리고 조상팔아 먹는 식민 사학자이고 매국노야..

매국노 짓하면 니 아들, 딸도 매국노 된다 이것 꼭 명심하거라..
인간이면 조상 역사 팔아먹는 매국노 짓하지 말고 인간답게 생각하고 글 쓰거라 매국노야!!!

혹시라면
중국인이라면 거짓말 하지 말거라 거짓말하면 중국 정부를 거짓말 정부 만드는 것이니
중국이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수구리 21-07-25 10:52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고 배운기준으로 보면...
그런데 후한서를 냉정하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한은 산동성이 됩니다

한이 산동성이라는 위치결정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위치를 확인할때 상대적인 위치를 보게 되는데..
상대적인 위치 설정의 기준점이 중요하지요

그럼 한의 위치 설정의 기준점은 예가 됩니다 예는 고구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기에 예의 위치 결정에 고구려 위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는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라는 평준서에서 구체적인 위치가 있습니다
예의 위치 결정은 상대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평준서 기준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예의 위치는 창주시입니다
따라서 창주시부터 한의 위치, 고구려의위치등 동이족 나라들의 위치는 창주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수학적인 관점에서는
예의 위치인 창주시는 상수이고요, 예, 고구려 등 위는 창주시(예) +- X(방향) 변수가 됩니다

따라서 위치 결정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에가 창주시와 같은 상수를 찾는 작업이 가장 주요합니다
상수를 잘못 결정하면 상수를 이용하여 상대적인 위치가 모두 다 엉뚱한 곳을 지정하게 됩니다

(예를 요동반도라고 하면 한은 발해 바다속이 되고요
예를 강릉이라고 한다면 마한, 진한은 한반도 동해안이 되고요
예를 산서성 임분시로 한다면 진한, 마한은 낙양이 되겠지요

따라서 예의 위치인 상수인 창주시가 주요한 이유입니다)
               
수구리 21-07-25 11:18
   
네 진한 변진도 당연히 산동성과 강소성이 됩니다
우리나라 고대 지도가 다 바뀌어야 하고요
요서 진평이군, 북위와 싸운 대륙백제도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수구리 21-07-25 11:55
   
삼국사기나 삼국 유사에 의하면
초기 신라는 진한과 관계없고
초기가야도 변진(변한)과 관계없습니다

진한이 신라와 관계있고
변한(변진) 가야와 관게 있다는 기록이 있는지요? 제가 알지 못하여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역사학자들이 마한을 강제적으로 한반도에 위치시켰으니 신라위치가 진한위치고 가야위치가 변진(변한)위치이니...

역사학자의 위치비정에 의해
진한이 신라고, 변진(변한)이 가야라는 심증으로 주장했다고 보는데..
기록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구리 21-07-25 12:24
   
삼국사기 박혁거세조에
' 조선(朝鮮)의 유민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누어 살면서 6촌(六村)을 이루고 있었는데...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으로, 이들이 바로 진한(辰韓)의 6부이다.'

후한서 동이전에
'지금도 [辰韓을] 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辰韓은] 처음에는 6國이던 것이 차츰 12國으로 나뉘어졌다.'

삼국사기 6촌--> 6부, 후한서 6국--> 12국으로 틀리고
삼국사기와 후한서에서 辰韓만 같습니다

삼국사기의 진한과 후한서의 진한이 같을 수도 있지만 명확하게 같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은 삼국사기의 진한과 후한서의 진한은 틀리게 보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풀어야 과제로 보고요

삼국사기의 진한이 후한서 진한이면
 신라는 산동성에 나라를 세웠다가  후대에 한반도 이동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유는
후한서나  심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진한은 산동성 동부가 분명합니다(불변입니다)
                         
수구리 21-07-25 12:35
   
이런 추정도 가능하겠지요

서라벌은 경주였는데..
박혁거세가 서라벌을 건국한 이후에 산동성의 진한사람 석탈해나 김알지가 무리를 이끌고 서라벌에 오니
이때부터 서라벌을 진한이라고 했고,,, 김부식이 삼국사기의 박혁거세조에 신라를 진한으로 기록했다
                         
수구리 21-07-25 14:14
   
평준서의 예맥은 한무제때인 기원전 100년경의 예맥입니다
후한서는 AD 25 ~ 220년의 예맥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한시대와 후한시대에 예맥을 달리 볼 수 있는 기록이 없고요
예맥을 달리 볼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고대에 이정도 년도 차이를 크게 시간 차이가 난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준서의 예맥이나 후한서 삼국지의 예맥은 동일하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평준서의 예맥과 후한서의 예맥을 달리볼 사건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수구리 21-07-25 15:25
   
확실한 예맥조선 위치 중국 25사 중에서 최고로 치는
사마천 사기 내용을 부정하고 후대 그것도 2천년 후의 한국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내용
아니면 오늘날 일부 역사학자의 주장을 더 믿겠다고 하면 저도 할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설명드린다면..
1) 거리는 정확하다고 무조건 믿지 마시고 참고용도로 사용하시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대인들이 현장 직접 답사하거나, 지금과 같은 정확한 지도를 보면서 거리를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고요, 전해들은 말을 본인이 판단하여 기록했을 가능성이 많으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정확하다고는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수구리 21-07-25 15:39
   
2) 예맥조선이 창주시이니, 위만조선, 한사군은 창주시 서쪽이고요
  요동, 요서, 우북평, 어양, 상곡은 창주시 서쪽의 한사군 서쪽지역입니다
3) 예맥조선이 창주시이니 고구려는 호타하 북쪽인 하북성 북부 전체이고요
  부여는 고구려 북쪽인 북경 북쪽이 되겠지요
  동옥저는 요서회랑, 북옥저는 요서회랑 북쪽입니다

이 내용은 중국 25사의 고대사인 사마천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가
공통적으로 가르키는 동이족의 나라 위치입니다

중국 25사의 내용이 엉터리고 거짓말 같아서 믿지 못하시겠다고 하신다면
저도 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수구리 21-07-25 16:17
   
제가 설명한 것보다 더 명쾌한 설명을 누가 할 수 있나요
저 보다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요

그리고 명쾌하게 설명해도 믿지 않는데 더 설명해야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고구려 초기 위치도 정확하게 밝혀도 믿지 않는데 다른 설명은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주요한 것은 한사군 위치와 마한 위치입니다

중국대륙에 한사군과 마한이 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된 후에 다른 것은 해야할 일입니다
                         
수구리 21-07-26 07:16
   
하나 더 말씀드리면
하북성 창주시는 예가 있었던 분명하고 명확한 장소입니다

위치가 불명확하고 분명하지 않은 고구려 위치를 추정하여
 고구려 위치 추정 결과로 고구려 남쪽으로
 창주시에 있었던 예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의 위치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정도로 고구려 위치를 비정했다면
고구려 위치비정을 잘못한 것으로 보고 고구려 위치 비정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구리 21-07-26 08:01
   
예맥조선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창주시라는 사실은
1) 양심있는 중국학자라면 누구도 문헌이나 사료를 이용하여 반론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2)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이나 한국 사학계의 약점을 이용하여 반론할 수 있겠지요
  - 예가 창주시면 낙랑군 한사군이 중국내륙인데 니들이 100년동안 한사군,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한국사학계가 100년동안 가짜 연구를 했다고 있정하겠다는 말이냐
  - 예가 창주시면 고구려가 하북성에 있게 되는데 한국사학계 통설은 고구려가 요동반도에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고구려가 하북성에 있게되는 예가 창주시에 있다는 주장할 수 있느냐

이렇게 중국학계가 문헌적인 반론이 아니라 정치적인 그리고 한국사학계의 약점을 공격하게 되겠지요
지누짱 21-07-25 10:26
   
광개토경 저사람이 무례한 사람이니 님이 화내는건 이해갑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다른 경우에도 매국노로 규정질하면 아무도 님과 대화를 나누지 않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견해차이와 무례를 구분하셔야겠습니다.
     
수구리 21-07-25 10:56
   
인터넷 댓글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합니다
광개토경의 경우에 역사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많은 분으로 보입니다
(역사지식 수준으로 보면 대학 교수 정도로 판단 됩니다)

몰라서 주장한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광개토경은
토론을 하기위해 댓글을 단 것이 아니라
실수하기를 바라고 실수하면 면박주고 망신주기 위해서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예가 창주시면 한반도 마한설이 붕괴되고요.. 한반도 위만조선, 낙랑군, 한사군설이 모두 거짓말이 됩니다

따라서 주류 강단사학계의 한반도 위만조선, 한사군, 낙랑군, 대방군 설을 유지하기 위해
거만하게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거짓 괴설을 주장한 것으로 저는 판단했습니다
엄근진 21-07-25 15:08
   
재미있는 해석인데요, 궁금한 점이...

1. 산동성과 강서성에 살던 한이 언제, 어떤 이유로 남한으로 옮겨 왔을까요?
2. 산동성과 강서성에 아직 한의 후예가 있을까요?
3. 한이 산동성과 강서성에 살던 시절, 남한엔 누가 살았을까요?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수구리 21-07-25 15:42
   
한반도에는 다문세문경 같은 당대 세계 최고의 청동기 기술을 갖고 있던 고조선인이 살았겠지요
한반도 고조선인의 당대 최고 청동기술은
  가야인에 의해 당대 세계최고 철기기술로 이어졌습니다
 
 고인돌, 비파형동검, 세형동검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구리 21-07-25 15:46
   
그리고 지금 궁금해 하시는 것은
역사학계가 중국 25사중에 최고인 사마천 사기내용인 예맥조선, 마한 왜가 중국 동해안인 산동성과 강소성이었다는 진실을 인정한다면 어렵지 않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조급해 하지 마시길...

그래도 궁금하시다면 직접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엄근진 21-07-25 16:03
   
별로 조급하진 않구요... ^^

님이 어떤 설을 정립할때 시간적 선후관계, 인과관계, 공간적 배치를 고려하시나 궁금해서요. 전체적으로 시나리오가 연계되지 않으면 이세계물이 되고 맙니다.

발제글의 시대는 bc 3c~1c로 추정되는데, 이 설에 따르면 전국시대 중국 국가들과 진의 영역도 다시 그려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그림일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한은 고조선인이 아니었군요. 이것도 새로운 설이네요.
               
수구리 21-07-25 16:04
   
한도 동이족이니 당연히 고조선인이고요 선조가 고조선인인 백제는 산동성에서 한반도로 이동했지요
                    
엄근진 21-07-26 10:17
   
산동성과 강소성에는 비파형 동검이나 세형동검이 안나오지 않나요?
니에루 21-07-26 09:59
   
말로만 듣던 환빠가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ㅋㅋ 그래요, 환단고기가 다 맞다 치면 지금 현실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중국이 땅을 떼주나요? 일본이 형님이라고 불러주나요? 전세계가 경악하고 찬사를 보내리라 생각하나요???

지금의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이 너무 어두워서 가상의 과거 대제국을 만들어 자존심을 채우려 하시는 거란 자각은 안 드십니까..? 다 맞다손 치더라도 현재 우리에게 풀어야할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1도 도움이 안됩니다. 과거사뽕은 적당히 혼자만의 뇌내망상으로 즐기시고 현재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힘을 쏟읍시다.
     
수구리 21-07-26 12:10
   
한단고기 내용이 아니라
중국 사서인 후한서 동이열전 내용과 사마천 사기 내용입니다

중국사서 그것도 중국 역사학자들이
성경이나 불경 수준으로 경외해서 보는 사마천 사기의 내용입니다

또한 사마천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는 중국 정사 25사 중에서
중국 고대사의 전부입니다 중국의 모든 역사는 여기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중국 정사 25사 내용을 부정하는 분은 중국역사를 토론해서도 않되며,댓글도 달
자격도 없고, 우리 고대사를 이야기할 기본도 없고 기본 자질도 없는 사람입니다
(역사 문제를 이야기 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역사하는 모든 사람이 중국 25사 내용을 부정하는 님을
정신나간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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