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후한시대(AD 25 ~ 220년)의 중국 역사책인 후한서에는 한이 예맥조선의 남쪽에 있다고 했으니
한(마한,진한, 변한)은 산동성과 강소성에 있었다
1) 신라와 가야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으나
2) 백제는 한(산동성, 강소성)의 소국 1백개를(일백개의 제濟 나라 소국)을 통합하여 번성했고
고구려 광개토대왕, 장수왕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수도를 한반도 남부인 웅진으로 옮겼다
3) 한(산동성, 강소성) 남쪽이 왜국이니 왜국은절강성과 대만에 있었다
■ 후한서에 나타난 왜국의 위치와 왜의 주변국들
왜(倭)가 주애[군](朱崖郡) [주] 및 담이[군](儋耳郡) [주] 과 서로 가깝다고 했으니 주애군과 담이군이 해남성이나 광동성이니 왜(倭)가일본이 아니라오(吳)와 월(越)지방 또는 대만일 수 있다
1) 왜의 여왕국(대만)의동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면, 다시 나라(오키나와)가 있는데, 모두 왜종
2)소인국[侏儒國,필리핀]이 그 남쪽에 있는데, [이 나라]사람들의 키는 3~4척(尺) [주] 이고,여왕국(女王國,대만)에서 4천여 리 떨어져 있다
3) 나국, 흑치국(파푸아뉴기니)이 소인국[侏儒國, 필리핀]의 동남쪽에 있다.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4) 사마천 사기의 남월열전에는 남월(광동성) 서쪽에 나국이 있다고 했다 육고가 남월에 도착하자 남월왕은 매우 두려워해 천자에게 사죄의 글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만이의 대군장(大君長)인 늙은 신하 조타는 ~~ 또한 남방은 지대가 낮고 습한 땅으며 만이(蠻夷) 사이에 있어 동쪽 변경의 민월은 백성이 겨우 1천명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왕(王)이라 칭하고, 서쪽의 구락(甌駱)과 나국(裸國) 역시 왕이라 칭합니다. ~~' [출처]113-1/3[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3.南越列傳(남월열전) (1/3)
■ 왜가 문신을 한다고 했으니 일본이 아니라 오(吳)와 월(越)지방 또는 대만일 수 있다
1)대만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 문신 풍습이 있는데.. 왜倭는 '남자는 어른과 아이 [구별이] 없이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文身)을 한다'고 했고,
2) 「사기의 노 애공편」 '고대에 오(吳)와 월(越)지방은 몸에 문신을 하고 단발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했다
3) 아시아 문신 풍습 :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삼의 여러 부족, 특히 다프라 ·아보르 ·미키르와 나가의 여러 종족,미얀마 남부의 친족(族)이나 카렌족(族), 그리고 타이완[臺灣]의 고산족(高山族), 필리핀의 북(北)루손이나 민다나오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문신의 풍습이 퍼져 있다. 인도네시아의 각 지방에서는 검은색 이외에 여러 가지 빛깔이 쓰여지고 있다. 특히 샨족(族)과 미얀마인들은 기하학적 무늬나 와상선, 틀에 박힌 동물이나 인간의 상, 성신(星辰) 등이 주된 모티프이며, 서로 다른 무늬가 씨족 ·부족뿐만 아니라 사회계층까지도 구별한다. 그 밖의 아시아 지역에는(동남아 이외 지역에서는)문신이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 [출처]동아시아 어렵민 문신[文身]
-夫餘·挹婁·高句麗·東沃沮·濊·三韓에 관한 기록이 왜전 앞에 있으나 국사편찬위원회, 『中國正史朝鮮傳譯註』 1, 신서원, 2004(1990 초판)에 이미 역주되었으므로 생략한다. - 왜(倭) [주] 는 한(韓 복건성) [주] 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고(대만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상해시 동남쪽 주산군도), [이들은]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무릇 100여 나라[國]이다. 무제(武帝) [주] 가 조선(朝鮮 위만조선 하북성 형수시)을 멸망시킨 [주] 후에 사역(使驛) [주] 을 이용하여 한(漢)과 통한 것이 30여 개 나라[國]이다. [주] [이] 나라들의 [수장(首長)]은 모두 왕(王)을 칭하였는데, 대대로 왕통(王統)이 이어졌다. 그 대왜왕(大倭王) [주] 은 야마대국(邪馬臺國 대만) [주] 에 있다. 낙랑군(樂浪郡 하북성 형수시) [주] 의 변경에서 그 나라는 만 2천 리 [주] 떨어져 있고, [주] 그 나라의 서북방 [주] 에 있는 구야한국(拘邪韓國 강소성 남부, 계동시啟東市) [주] 에서는 7천여 리 떨어져 있다. 그 땅은 대략 회계[군](會稽) [주] 동야[현](東冶縣 복건성)[주] 의 동쪽에 있고, [주] 주애[군](朱崖郡 광동성이나 해남성) [주] 및 담이[군](儋耳郡 광동성이나 해남성) [주] 과 서로 가깝다. 따라서 그들의 법속(法俗)은 같은 것이 많다.
땅은 벼, 모시[麻紵] [주] 그리고 양잠에 적합하며 [왜인들은] 천을 짜는 법과 실 잣는 법을 알아서 좋은 비단[縑] [주] 과 베를 만들었으며, [주] 백주(白珠) [주] 와 푸른 옥이 산출되고 [주] 산에는 붉은 흙[丹土] [주] 이 난다. 기후가 온난하여 겨울과 여름에 채소[菜茹]가 생산된다. [주] [그러나] 소, [주] 말,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 [주] 는 없다. [주] 무기로는 창, 방패, 나무로 된 활, 대나무로 된 화살이 있고, 뼈로 화살촉[鏃]을 만들기도 한다. [주]남자는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文身)을 하는데, 왼쪽과 오른쪽, 크고 작음에 따라서 존비(尊卑)의 차이를 구별한다. [주] 그들 남자의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다. 여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말아서 뒤로 묶었는데, 옷은 홑이불과 같고 [주] 머리를 넣어서 입는다. [주] 붉은 가루를 몸에 바르는데, 중국에서 분(粉) [주] 을 쓰는 것과 같다. [주] [이 나라에는] 성책(城柵) [주] 과 옥실(屋室) [주] 이 있다. [주] 부모와 형제는 거처하는 곳을 달리 하지만, 단 한 곳에 모일 때에는 남녀의 차별은 없다. [주] 마시고 먹을 때 맨손으로 하지만, [음식을 담는 것은] 대나무와 나무로 만든 그릇 [주] 을 이용한다. [주] 풍속은 모두 맨발로 다니고, 양 무릎은 꿇고 허리를 낮추는 것[蹲踞] [주] 으로 공경을 나타낸다. [이]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술을 즐긴다. 대부분이 장수(壽考)하여, 1백여 세가 된 자도 대단히 많다. [주] [이] 나라에는 여자가 많아서, 대인(大人) [주] 은 모두 4~5명의 처를 두고 있고, 그 나머지 남자들도 [처를] 2명 혹은 3명 두고 있다. [그러나] 여인들은 간음(姦淫)을 하지 않고 투기(妬忌)도 하지 않는다. [주] 또 풍속이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다투고 소송(訴訟)하는 일이 적다. 범법자는 그 처와 자식들을 몰수하고, [좌가] 무거운 자는 그 가문의 사람들이나 일족을 족멸(族滅)한다.
여왕국(女王國)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천여 리를 나아가면 구노국(拘奴國) [주] 에 이르는데, (이 나라의 사람들은) 비록 모두 왜종(倭種)이지만, 여왕에게 신속(臣屬)되지 않았다. [주] 여왕국에서 남쪽으로 4천여 리를 가면 주유국(朱儒國) [주] 에 이르는데, [이 나라] 사람들의 키는 3~4척(尺) [주] 이다. [주] 주유[국]에서 동남쪽으로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나국(裸國) [주] 과 흑치국(黑齒國) [주] 에 이르는데, 사역(使驛)이 전하는 곳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주]
중국의 정사인 25사를 근거로
고조선, 고구려, 백제(백제 초기인 산동백제)의 정확한 역사 복구가 중요합니다
정확한 역사 복구 후에 해석을 해야합니다(역사관)
중국 스스로 고대부터 현재까지 스스로 고조선인 단군조선, 고구려,백제를 오랑케라고 했으니..
중국인 일부가 보기에 따라
동이족이나 북방민족인 고조선 고구려 백제 후손일 일 수 있지만..
스스로 단군조선과 고구려, 백제의 자손임을 거부한 호로자식(胡奴子息)이 된지가 수천년 되었기에
중국은 단군조선과 고구려, 백제의 자손임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중국 스스로 수천년 동안 호로자식(胡奴子息)이라고 했는데
중국이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후손임을 주장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지요
문제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엉터리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역사학계와 국민이 문제입니다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후손임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는 역사를 잊어버려서, 찬란하고 웅대한 선조들의 역사를 스스로 한반도내로 좁이고..
만주까지 약간 확장한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교육에 따른 나쁜 영향)
찬란했던 선조들의 역사를
주류 한국 사학계가 연구하지도 주장하지도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스스로 좁게보는데...
중국이 일본이 한국을 위해... 찬란했던 단군조선,고구려, 백제 역사를 복구해주고 인정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오판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정확한 고대사를 주장해도
중국과 일본이 어떤 핑계와 구실을 대면서 거부할 것은 자명하고 분명합니다
중국이나 일본 눈치보지 말고 중국 25사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
우리 고대사를 정확히 복구해서 세계에 알리고 자랑하면 됩니다
1) 춘추시대에는 초작시 근처의 왕옥산, 태행산 이렇게 된 것이
2) 전국시대 초에는 조나라가 한단시로 이동하며서 북무당산인 상산(항산)이 태행산이 되었다가
3) 연나라가 석가장시 근처의 영토를 확보하자 전국시대 말에는 석가장시 근처에 태행산인 항산이 등장하고
4) 고구려가 망하자 항산이 중국 최북단으로 이동시켜서 지금은 대동시의 항산이 된 것입니다
중국이 고조선, 고구려 땅을 침범하여 하북성으로 영토가 확장됨으로써
지금은 북경에서 하남성 북부인 초작시까지를 태행산, 태행산맥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