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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1 11:57
[한국사] 연하도 문화(하북성 보정시)와 동대장자 유형 문화(당산시 요서지역)는 고조선 문화유적이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443  

※주) 춘추 전국 시대 연나라는 보정시에 존재한 적이 없는데..

       보정시의 고대 유적인 연하도 문화를 연나라 문화라고 역사학계가 잘못알고 있습니다


■ 연하도 문화(동호 문화)가 생긴 5세기 말과 4세기 초에

     한단시 근처의 고조선 세력이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1) 이시기에 조((趙) 나라 선조가 하남성 북부(학벽시, 안양시)와 하북성 남단인 한단시로 진출했습니다

     (2) 조((趙)나라가 중모(학벽서쪽 임주시)에 도읍한 후 한단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 한단에 있던 고조선 세력과 학벽시 안양시에 있던 은나라 유민이 북쪽으로 이동해서

           하북성 보정시를 중심으로 연하도 문화(동호문화) 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주)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 땅을 빼앗는 전쟁 이전 (지도 출처 : 숭실대 이후석 고고학 박사)

■ 4세기 말과 3세기 초에

    조 무령왕이 중산국을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연나라 진개가 동호를 침입하여 요동,요서,어양,우북평, 상곡을 차지했습니다

    --> 이때 동호세력이 당산시 동쪽 요서지역로 이동하여 동대장자 문화을 연하도 문화로 바꾸었다고 봅니다

    ※주)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 땅을 빼앗는 전쟁 이후(지도 출처 :숭실대 이후석 고고학 박사)

■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 연 5군인 상곡, 어양, 요서, 우북평, 요동의 위치는?

    1)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 연 5군의 위치는 산서성 진중시 동쪽 상곡시, 석가장시 남쪽, 형수시 안평현이다

    2) 근거 사료

      첫째) 한서지리지 연나라 '연나라는 동쪽으로 어양, 요서, 우북평, 요동이 있고

             서쪽에는 상곡, 대군, 안문이 있다'
            --> 동서를 나누는 기준이 태행 선맥으로 보이고 동쪽은 태행 산맥 동쪽인 하북성
                  서쪽은 태행산맥 서쪽인 산서성이다

       둘째) 진섭세가에'한漢나라 2세 원년(기원전 209년) 7월, 빈민가 백성들을 징발하여

               수자리를 보내 어양(漁陽)을 지키게 하여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게 되었다.'

               --> 어양군에 대택향이라는 고을이있고, 대택향은 대륙택 근처의 고을로 보이고

                    대륙택은 형수시 북부인 거록현과 융요현 서쪽과 북쪽지역이다

        세째) 제시한 사료 내용을 종합하면
               연 5군의 어양은 석가장시 남쪽이고(형수시 북쪽), 요서는 어양의 북동쪽, 

               우북평은 어양의 동쪽, 요동은 우북평의 북동쪽인 형수시 안평현으로 본다.   

               석가장시 남쪽에서 태행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고대도로인 정형이 있으니...
               상곡은 태행산맥 서쪽인 양천시다

               따라서 춘추전국 시대 연 5군 위치가 산서성 양천시와 하북성 석가장시, 형수시 안평현이니

               보정시 중심의 연하도 문하는 연나라 문화가 아니라 고조선인 동호 문화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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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21-07-21 12:13
   
자꾸 답답한 소리를 하십니다

물질문화의 형식내용과 주변 문화와의 관계상 및 그 문화의 분포상이라는 의미내용 양자를 모두 고려하여 면밀히 살펴야지

그럴 것이다 하는 식은 추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대한사람이면 누구든 내심 바라는 것일뿐으로

심증과 기대는 학문의 영역을 벗어난 것입니다
     
수구리 21-07-21 12:19
   
그래요 연이 보정시에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는지요?
중국의 엉터리 주장을 그냥 검증없이 전달하시는 것 같은데...

보정시에 연나라가 있었다는 사료를 제시해 주세요.. 말로만 하지 마시고...
     
수구리 21-07-21 12:22
   
그리고 연이 보정시에 없었다는  내용은
제가 사마천 사기를 통헤 검증한 내용을 하나하나 앞으로 제시하겠습니다

그러니 보정시에 연이 있어다는 사료로 빨리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방친구 21-07-21 12:28
   
답답한 소리하고 계시네
날도 더워 짜증나는데
               
수구리 21-07-21 12:38
   
근거나 사료도 없이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를 전달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연나라가 북경이나 보정시에 있었다는 사료나 근거는 없다라고...
감방친구 21-07-21 12:25
   
다만 실마리는

현 사학계에서는
동호의 위치를 기존에는 십이대영자문화 지역인 대릉하 유역으로 보았다가
다시 하가점상층문화 지역인 시라무룬허~로합하 일대로 수정하였고 이것이 기본설이 되었는데

기록 상으로 동호는
대택의 동쪽에 있었고
시가 상으로 산융 이후이므로
현 산성 최북부~장가구시~등지로 그 영역을 추정해볼 수 있는데
실제 연 5군 지역이라는 것이
장가구시~북경시~당산시 일대에 해당하므로

또한
고고학적 견해로는,
연하도문화 중심지인 보정시 일대와 그 주변 하북성 북부 문화가
중원계통적 특성을 띠는 것은 분명하나
모두 한 범주로 묶어 연하도문화라 하기에는 조심스럽다 하는 일부 견해가 관찰되는 바

전국연이
물질문화 상으로 보이는 것처럼
BC5세기에 일시에 하북을 석권한 것이 아니라
BC4세기 말에서야 드디어 이수와 영정하를 건너갔다고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추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수구리 21-07-21 12:31
   
고고학은 연이 북경에 있다는 역사학계의 엉터리 주장을 믿고...
( 연이 북경에 있었다는 주장은 근거나 사료가 없는 엉터리 주장입니다)

연이 북경에 있었다고 하니
고고학에서는 보정시를 포함한 하북성 문화를 연하도 문화고 한 것입니다

역사학계가 북경이 고조선 땅이라고 진실을 이야기 했다면
고고학계는 연하도 문화를 고조선 문화라고 오늘부터 진실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감방친구 21-07-21 12:47
   
저의 과정적 결론(추정)

1) 동호는 산융의 후신이거나 이칭이다

2) 시라무룬허-로합하 지역 문화(하가점상층)는 고조선의 것으로 발(맥)로 볼 수 있다

3) 산융-동호는 동시대 시라무룬허-로합하 지역 문화와 일부 공유소가 관찰되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4) 산융-동호의 활동지역을 포함한 산서성 지역은 전대 맥의 동향과 겹치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5) 부여와 선비는 하가점상층문화의 후예이다

6) BC4-3세기부터 BC2세기에 칠로도산 동쪽으로 확연히 나타나는 중국계 물질문화는 전국시대 및 진한 교체기의 유망민의 자취이자 위만조선의 문화이다
     
수구리 21-07-21 12:35
   
저는 설명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추정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북경과 보정시가 연나라였다는 중국 고대사서의 사료가 있느냐 ?
있다면 제시해 주세요 했습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보면 북경이나 보정시가 연나라 영토 였다는 고대 사서나 근거는 없다..
그냥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한다..

 역사학계의 통설이니 믿든가 말든가
하지만 연나라가 북경이나 보정시에 있었다는 사서나 사료에 대한 근거가 없다
          
감방친구 21-07-21 12:50
   
제 연구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만방자하게 굴지 마시고 정도를 지키세요
          
감방친구 21-07-21 12:55
   
사서를 들여다 보면 뻔히 나오는 거를
그런 내용 아무것도 없던데 있으면 제시해주세요
하는 사람한테 뭔 힘을 빼겠습니까

만용과 자만은 독입니다

저 포함해서 많은 연구자들이 돌대가리여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님 결론 다 내놓고 연구인생 회고전을 여기서 하십니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수구리 21-07-21 12:57
   
그럼 연구하신 내용을 사료 내용을 제시하고, 사료를 근거로 이야기 해주시면 됩니다
     
수구리 21-07-21 12:52
   
추가하여 말쓴드리면
'기록상으로  동호는 대택(대단히 큰 늪지대) 동쪽에 있었다"
고 말씀했으니(사서에서 본 적이 없지만..)

춘추전국 시대 대택은 2군데인데
산동성에 있는 거야택과 하북성의 대륙택입니다

따라서 동호는 하북성의 대택 동쪽이라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하북성의 대택은 대륙택이고 대륙택은 형수시 거록현과, 융효현 서쪽과 북쪽에 있습니다

그럼 동호는 석가장시 남쪽인
형수시 동쪽이라고 주장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연나라는 보정시와 북경에 없었다는 주장이십니다
          
감방친구 21-07-21 13:03
   
이 분 대택 얘기하는데 딴소리 하네
저 부끄러움을 어찌할꼬
     
수구리 21-07-21 13:25
   
제가 논쟁을 좀 과하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댓글에 논쟁이 되려면
사료를 근거로 사료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가 되어야
유익한 논쟁과 토론이 가능합니다
          
수구리 21-07-21 13:27
   
말씀하신
 '실제 연 5군 지역이라는 것이
장가구시~북경시~당산시 일대에 해당하므로...' 은

사료 제시가 없고 제시한 사료를 이렇게 보았서 이렇다는 내용이 없기에
제 3자가 논의나 토론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주장과 결론만 있는 것으로--> 당신 주장이 틀렸다는 결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강하게 댓글단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구리 21-07-21 13:37
   
저는 연 5군을 산서성 진중시 동쪽 상곡시, 석가장시 남쪽, 형수시 안평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사서내용에 '한시대 연나라는 동쪽으로  어양, 요서, 우북평, 요동이 있고 서쪽에는 상곡, 대군, 안문이 있다'
--> 저는 동서를 나누는 기준이 태행 선맥으로 보이고 동쪽은 태행 산맥 동쪽인 하북성
  서쪽은 태행산맥 서쪽인 산서성으로 봅니다
               
수구리 21-07-21 13:45
   
둘째) 진섭세가에'한漢나라 2세 원년(기원전 209년) 7월, 빈민가 백성들을 징발하여 수자리를 보내 어양(漁陽)을 지키게 하여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게 되었다.'
--> 어양군에 대택향이라는 고을이있고, 대택향은 대륙택 근처의 고을로 보이고 대륙택은
형수시 북부인 거록현과 융효현 서쪽과 북쪽지역이다

세째)....
네째)...
               
수구리 21-07-21 13:54
   
제시한 사료 내용을 종합하면
연 5군의 어양은 석가장시 남쪽이고(형수시 북쪽), 요서는 어양의 북동쪽, 우북평은 어양의 동쪽, 요동은 우북평의 북동쪽인 형수시 안평현으로 본다.

석가장시 남쪽에서 태행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고대도로인 정형이 있으니...
상곡은 태행산맥 서쪽인 양천시다

저는 이렇게 연 5군이 산서성 양천시와 하북성 석가장시, 형수시 안평현으로 추정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의문이나 반론이 있으면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영종햇살 21-07-21 16:31
   
상곡이 산서성에 있었다면 어양도 산서성에 있어야 합니다.

수경주에 나온 기록입니다.

고하는 어양군 호노현 북쪽을 흐르는 것으로 나옵니다.
南過漁陽狐奴縣北, 西南與濕餘水合為潞河.

또 포구수라는 강도 어양현 동쪽을 지나는 걸로 나옵니다.
鮑丘水從塞外來, 南過漁陽縣東.

포구수는 동쪽에서 고수로 흘러듭니다. 두 강은 만나서 산서성 로현을 지납니다.
                         
수구리 21-07-21 18:08
   
말씀하신 내용에서 어양이 산서성에 있으려면 로현이 산서성에 있어야 하는데
첫째) 한나라 시대, 춘추전국 시대에
 로현이 산서성에 있었는지, 고수가 로현을 지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수경주는 북위 시대 역도원이  515~524년경에 작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양이 산서성에 있으려면  수경주에서 말하는 로현의 춘추전국 시대의 위치가 산서성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춘추전국 시대 고수, 포구수가 로현을 지나는 것도 증명해야 합니다

서기 500년 경의 북위시대 역도원의 지리 설명으로 서기전 BC 300경의 어양의 위치(늦어도 한서지리지 작성시점인 서기 100년 경의 어양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거의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서기 200년 이전의 사료를 참고하고 서기 200년 이후의 사료나 지리지는 참고만 하라고 한 이유입니다)

단) 북위 역도원이 춘추전국 시대나.. 한나라 시대의 지리지를 그대로 옮겨서 수경주를 작성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수구리 21-07-21 18:16
   
둘째) 하지만 사마천 사기는 기원전 91년에 완성한 것이고
한사군 설치 당시에 사마천이 한사군과 요동,요서 어양 우북평, 상곡을 직접가 보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한사군과 요동, 요서, 우북평, 상곡은 한시대의 연나라로 춘추전국 시대의 연나라와 크게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양이 동쪽에 있다는 한서지리지 연나라 내용도 낙랑군이 있었던 서기 100년 경에 작성된 내용이기에 어양은 태행산맥 동쪽인 하북성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수구리 21-07-21 18:25
   
그리고 어양이 산서성에 있으려면 사마천 사기 진섭세가의
하북성 대륙택 근처에 어양이 있다는 내용도 사료를 근거로 부정해야 하는데 가능하겠는지요?
                         
수구리 21-07-21 18:36
   
그리고 고하가 산서성을 거쳐서 하북성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어양이 산서성에 있으려면 고하가 하북성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것도 증명해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양이 산서성에 있다고 주장하기가....
                         
수구리 21-07-21 19:32
   
제가 여러가지 반론을 제기 했지만..
저도 고수가 산서성으로 흘러서 석가장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포함하여 어양군 근처인 석가장시 남쪽의 강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하 후보로는 석가장시 남쪽 찬황현의 괴하(槐河)
  그리고 산서성 양천시에서 석가장시로 흐르는 다수의 강을 포함해서 유심히 보고 있지만.. 어느 강이 고하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우적공적도 유수 흐름과 석가장시 효하(洨河)가 가장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수구리 21-07-21 22:01
   
갈석, 안문, 호타하, 역수가 어디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보정시를 연나라라고 볼수도 있겠지요

보정시가 연나라라고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은 기록이 아니라 소전이 유세하는 말 속에 나오는데
소전이 연소왕에게 유세하는데..
'연나라의 동쪽에는 조선(朝鮮), 요동(遼東)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林胡), 누번(樓煩)이 있습니다. 또한 서쪽에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이 있으며 남쪽에는 호타(嘑沱)와 역수(易水)가 있습니다. 사방 2천리에 달하는 땅에 무장한 군사들은 수십 만에 달하고 6백 승의 병거에 6천기의 기병과 수년 치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갈석(碣石)8)과 응문(應門)9)의 비옥한 평야가 있고 북쪽에는 대추와 밤의 특산물로 나오는 이익으로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천혜의 부고(府庫)라고 부릅니다.'
라고 소전이 말했다고 나옵니다

조(趙) 세가를 보면
무령왕 26년 기원전 299년, 다시 중산을 공격했다. 이로써 그 때까지 빼앗은 땅이 북쪽으로는 연(燕)과 대(代), 서쪽으로는 운중(雲中)138)과 구원(九原)139)에 까지 이르렀다

소진이 연나라 북쪽에 운중과 구원이 있다고 말로 연소왕을 설득했는데.
사마천 사기 조세가에는 조나라 서쪽에 운중과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나라는 한단이고 한단 서쪽에 운중과 구원이 있으니
운중과 구원 남쪽이 연나라가 됩니다

그러면 연나라 위치는 보정시가 아니라 산서성 남쪽인 임분시나, 섬서성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소전의 말이 맞다면 조세가 기록이 틀린 것이 되고요
조세가 기록이 맞다고 한다면 소전의 말이 틀린 것이 됩니다

저는 소전의 말보다는 사기의 조세가가 맞다고 보아서
연나라 북쪽에 구원과 운중이 있다는 소전의 말은 뻥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구리 21-07-21 22:12
   
따라서 소전이 유세한 말로
보정시가 연나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첫째) 기록이 아니라 소전이 유세하는 말로 표현되었기에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운중과 구원의 위치가 이상하는 등 연나라 남쪽에 역수, 호타하등의 표현을 100%신뢰 할 수 없음)

둘째) 지금의 역수, 호타하가 춘추전국 시대 역수 호타하는 보장이 없습니다
한서지리지에 역수와 탁군은 보정시 근처가 아니라 형태시 근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국 역양현의 한나라 한학자인 응소의 주석입니다)

따라서 한나라 시대에 역수가 형태시 근처에 있었는데.. 후대에 보정시 근처의 강을 역수라 해서 우리가 지금은 보정시 근처의 강을 역수로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수구리 21-07-21 22:18
   
결론적으로 연나라 영토를 주장할 때 그리고 고대사 지명 위치를 주장할 때에
현재의 지명이나 강이름만으로
이름이 같으니 2천년 동안 이름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일 것이다라고 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름은 변경되거나 이름이 변했다고 보야야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도시나 강 이름이 2천년 동안 바뀌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는 중국에서 별로 없고 몇몇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수구리 21-07-21 22:51
   
제가 추정하고 있는 춘추전국 시대 호타하 위치는 형수시 북쪽의 강으로 보고(석가장시 남쪽)
  한서지리지 내용을 근거로 지금의 호타하는 한나라시대의 호지하로 봅니다
영종햇살 21-07-22 14:23
   
한서지리지
上谷郡,軍都, 溫餘水東至路南入沽.
상곡군 군도현, 온여수가 동쪽으로 흘러 (어양군) 로현 남쪽에 이르러 고하로 들어간다.
그냥 상곡군과 어양현은 붙어 있는 지역입니다.

漁陽, 沽水出塞外, 東南至泉州, 入海. 行七百五十里.
어양군 어양현, 고수가 새외에서 나와 동남으로 흘러 어양군 천주현에 도달하여 바다(큰강)로 들어간다.
750리를 흐른다.
고수는 어양군을 흐르는 강입니다.
     
수구리 21-07-22 15:36
   
상곡군과 어양군은 붙어 있다고 봅니다 옳은 지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붙어 있는데 태행산맥을 경계로 태행산 서쪽은 상곡, 태행산 동쪽은 어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상곡이라고 추정하는 양천시의 강들을 보면..
1) 양천시 북쪽에 온하(溫河)가 흐르고 . 양천시 남쪽인 석양현(昔陽縣)에 송계하(松溪河)가 있습니다
2) 온하(溫河)와 송계하(松溪河)가 태행산맥을 흘러서 하북성 석가장시 정형현에서 합쳐져서
    석가장시 북쪽의 평산현(平山縣)에서 호타하로 들어갑니다

산서성 양천시에서 하북성 석가장시로 흐르는 강입니다
          
영종햇살 21-07-22 16:01
   
상곡군도 어양군도 유주 소속인데...
유주가 너무 커지는데...
               
수구리 21-07-22 16:04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이 유주 소속입니다
연나라 5군이 있는 위치가 유주입니다
     
수구리 21-07-22 16:03
   
또한 석가장시 정형현으로 가는 길목인 양천시 동쪽을 운도관運都關으로 보는데
운도관의 자리가 군도(軍都) 일 수 있습니다

--> 구세의 위치 고찰 https://blog.daum.net/tnrnfle/22
참고하시고요
     
수구리 21-07-22 16:11
   
강의 흐름이나 파악한 주변 환경으로 고수를 주장할 수 있고,
심정적으로 저 강이 고수라고 개인적으로 확신 해도 되겠지만..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제 3자의 반론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3자의 반론에 대응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을 때에 해당 강이 고수라는 주장을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자료 를 준비해야 하고 제 3자의 반론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영종햇살 21-07-22 14:43
   
沽水又西南, 逕赤城東. 趙建武年, 并州刺史王霸, 為燕所敗, 退保此城.
고수는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적성(赤城)의 동쪽을 지난다. 후조(趙) 건무(建武) 년간에 병주자사(并州刺史) 왕패(王霸)가 전연(燕)에 패하여 물러나 이 성에서 지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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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9 [한국사] 한강 대학생 의문사와 역사연구 (20) 감방친구 07-24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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