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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20 17:31
[한국사] [질문] 해방기 정국
 글쓴이 : Lopaet
조회 : 770  

Q : 이승만과 미군정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공산정부가 됐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진영간의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아닌, 진지한 탐구적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 일제가 물러나고 카 - 얄 - 포 - 미소공동회를 거치면서 독립정부의 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함께 항일,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좌우익 대립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은 아직도 선거철이 되면 뜨겁게 되살아 나곤 합니다.

누구는 이승만과 미국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공산주의가 됐을 거라며 제주-여순-서북청년단 활동 - 빨치산 갈등-보도연맹 학살등을 미화하기도 하고, 누구는 이승만과 미군정 때문에 좌우합작이 실패하고 반민특위를 해산 시키며 각자 정부가 되며, 분단과 전쟁이 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남한에서의 좌익 계열들은 우익계열들에 의해 철저하게 탄압을 당해 사라졌고, 북한에서의 우익 계열들 또한 김일성의 숙청작업으로 조만식 선생같은 분들을 포함해 우익들이 숙청당했죠.

저 질문을 반대로 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소련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자본주의가 됐을 것이라는 논리가 되는데, 정말 저렇게 극단적인 가정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라는 생각으로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Q : 이승만과 미군정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공산정부가 됐을게 틀림 없는 걸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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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경 21-07-20 21:51
   
이승만은 몰라도 미국이 관여 안했으면 백퍼 공산화됬죠.

일단 중국과 소련이 개입되는데 뭔 수로 공산화를 막음?

게다가 지금이야 공산주의가 허황된 망상이라는걸 알지만, 오랜 왕조시대와 일제 식민지시대를 보낸 대중들에게는 공산주의가 속삭이는 환상들은 매력적이었죠.

북한에서 조만식같은 명망있는 지도자나 연안파 출신의 공산주의자들이 김일성한테 밀린것도 김일성 뒤에 소련이 있었기 때문임.
쉿뜨 21-07-20 22:29
   
이승만은 상수가 아니어도…

미군은 상수죠.
러시아 국경 맞대고 있는 국가 중에 공산화 안된 국가가 극히 드뭅니다.

하물며 소련이 이미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뭘 더 어케 할 방안도 없죠.
하고 당대 독립국들 상당수가 공산주의 택할수 밖에 없었어요.

그들 괴롭히던게 입헌군주제의 영국과 민주 공화정의 프랑스 였으니까;
기존 체제를 박살내려면, 결국 공산이거나 자본주의,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독재로 밖엔 흐를 수 밖에 없던 역사적 필연도 있고요.
지누짱 21-07-20 22:31
   
당시 여운형이 주도하던 건준위가 미군방해로 좌절되지않고 또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온전히 인정했더라면 북한에서 김일성의 집권명분은 사라졌겠죠. 그리되었다면 미소의 신탁통치가 이뤄지면서 한반도 전체에서 총선거를 할 수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당시 세계적 분위기상 내전은 피하기 힘들엇을 겁니다. 미국이 소련진주를 요청한게 통탄스럽네요.

하지만 역사란게 가정하면 안됩니다. 그리되면 다 정치선동의 도구가 될 뿐이죠. 있는 팩트만 다뤄야죠.
     
Lopaet 21-07-21 01:37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소 동동위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사항인 임정 운영방안에 대한 것이었는데, 위폐 사건이랑 동아일보 오보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좌우익 갈등으로 프레임이 바뀐 게 지금까지 혼동을 주는 거 같아요.

임시정부 당시에도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이미 제정됐었고, 남한에서 채택한 헌법이 임정 헌법과 거의 내용이 같았다고 합니다. 그당시 주요 활동가들의 지역이 대부분 남한 지역 민족주의자들이 었다는 점도, 친일 지주들이 남한으로 이미 많이 이주했었던 점도 생각하면 공산화 100%라는 말은 지나친 견해 같은데, 반대로 그럼 어떻게 됐을까? 라는 가정에 대한 의견들이 별로 안 보이더군요

처음엔 소련도 김일성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구수도 남한이 두배는 많았구요~ 그당시 남북 통틀어 가장 인기있던 분이 여운형, 김규식이럿다고 합니다. 미군도 첨엔 그들을 밀어줬데요.

그런데 UN 결정이후 북한이 38선을 통제한 이유가 인구상 불리해서 그랬던거라고 가정을 한다면 , 윗분 의견도 일리는 있는거 같아요.
     
광개토경 21-07-21 09:37
   
이게 바로 좌파적인 망상이죠.

애당초 건준은 좌파 위주라서 대표성을 보장할 수 없는데다가 안재홍도 탈퇴함으로써 사실상 허울뿐인 단체였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당성이 없는 단체인데도 정부를 구성할려고 했음. 임시정부도 마찬가지고요.

즉 건준이나 임정 이 둘 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정당성 없는 단체일뿐임. 당연히 국민의 선거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 하는게 맞죠.

게다가 북한은 해방 이후 김일성 괴뢰정권이 사실상 만들어진 상태여서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는 애당초 생각도 없었음. 그리고 6.25전쟁이 무슨 갑자기 일어난게 아님. 북한의 남침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전격전으로 충분한 기간동안 전쟁 준비가 이뤄졌어야 가능한 것임.

독일이 일본보다 좀 더 버텨서 미국이 일본을 먼저 접수하지 못한게 가장 안타까운 일임. 그랬으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지역까지 공산화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수도 있음. 아니 최소 한반도의 공산화는 막으면서 통일정부가 만들어졌을 것임.

소련이 미군보다 먼저 한반도를 진주한 이상 남한만이라도 공화정이 이뤄질 수 있었던게 다행인게 현실임.

중국 국공내전과 이후 북한의 6.25남침까지 공산당 애들은 자신들의 1당화 아닌 이상 대화와 타협이란건 존재하지 않음. 단지 그들의 대화와 타협이란건 자신들이 불리할때나 하는 전술의 일환임.
          
지누짱 21-07-21 10:44
   
건준 일부 지역조직이 좌파화 한 것은 당시 시대상 사실이고 정상적 과정임.  사회개혁에 대해 당시 우파가 뭘했남? 여운형은 중도좌파였고 건준을 이끌었슴. 그야말로 내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었슴. 문제는 당시 친일파 제외하고 우파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뭉쳤어야 했는데 그 구심점을 걷어찬게 미군정이라는 거임. 그리곤 미군정은 이승만ㅡ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한 자ㅡ을 밀어줬는데 이승만은 임시정부요인들도 썻지만 무차별적으로 친일파들을 기용함.  결국 친일우파대 좌파 구도를 만든게 미군정과 이승만의 책임임. 즉 국제요인을 잘 활용해 집권한 이승만과 김일성이의 폭주를 막을 정치세력의 성장과 활동환경을 없앤게 바로 미군정의 실책임.

결론적으로
1. 미국이 북한지역에 소련의 진주를 요청한게 젤 큰 실책
2. 정치적 무능력한 하지는 그나마 북한을 김일성에 안넘기고 통일정부를 수립할 정치세력 제거하고 이승만과 친일우파들에게 권력을 넘겨줘 결국 김일성의 단독정부수립 명분을 줌
3. 김일성이는 그런 상황을 잘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고 무력을 키울 시간을 벌음.
광개토경 21-07-21 09:59
   
그냥 간단하게, 해방 후 미국의 입김이 없었으면 무조건 공산화됬다는게 팩트임.

애당초 공산주의자들은 유리하면 자신들의 1당 독재를 위해 상대방을 다 숙청. 불리할 경우는 대화와 타협을 가장한 채로 세력을 불려서 결국 상대방을 전복시키는게 그들의 방식임.
쉿뜨 21-07-21 10:49
   
이승만도 없고 미국도 없고

김일성도 없고 소련도 없다고 하더라도 공산화는 못피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소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 않더라도 공산화 피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보는데,

당대에 그러니까 1945년에는 코민테른이 망했지만, 이미 그 이전에 식민지국과 독립국의 이른 바 제3세계는 코민테른에 의한 공산 이데올로기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거든요.

공산주의가 확산되는데는 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대 환경에서 상당히 발전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부와 권력의 독점, 억압에서 가장 쉬운 이데올로기가 권력과 부의 재분배 였으니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적백내전 후 당대 소련의 대성공도 공산주의 인기를 올리는데 한몫했었고요. 당대 서유럽에도 기세가 좋았다 하니…


결국 미국의 지대한 영향을 부정할수는 없습니다.
지누짱 21-07-21 10:59
   
ㅡ해방후 국내정치세력ㅡ

일제시대 항일독립운동은 우파세력이 훨씬 많았으나 소련의 성립으로 인해 자연스레 좌파로 주도권이 넘어감. 자유시참변이후 독립운동내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강화되었고 우파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모이고 좌파는 중국공산당이나 소련쪽에서 세력을 형성함. 하지만 우파와 좌파가 대립만 한 건 아니고 의열단 등의 활동 처럼 같이 하기도 함.

암튼 해방직전에는 거의 십만에 달하는 인원이 중공이 주도한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는 등 좌파활동세력이 훨씬 컸슴. 따라서 해방정국에서 좌파와 우파간 세력비율은 좌파7/우파3 비율이었다고 봄. 이는 독립투쟁과정의 자연스런 산물임.

그러나 해외독립운동세력이 간과한 것은 바로 한반도 민중과 독립운동세력이었슴.  당시 국내독립운동세력도 좌우로 갈라져 있었으나 건준으로 모였고 민중의 상당한 지지를 얻었슴.

그래서 해외세력들이 선택한게 외세와의 결탁이었슴. 해외세력중 김일성은 만주의 마적단 수준이었으나 일제시대 막판에 소련으로 넘어가 재소련세력에서 신흥강자로 떠오르다 소련을 따라 국내로 진주함. 항일연군세력은 해방후에도 중국에 남아 국민당과 내전을 벌이다 승리후 한참뒤인  49년도에 북한으로 들어옴. 남한에선 이승만등 미국거주 세력이 귀국했고 장개석의 후원을 받던 김구의 임시정부세력은 아무런 뒷배도 없이 귀국함.

해외귀국세력 중 세계정세에 밝은 세력은 미국과 소련에 붙었는데 이승만은 미국과 김일성은 소련과 손잡음. 김구세력과 동북항일연군세력은 손잡을 당사자들이 내전을 겪느라 국내에서 힘이 없었슴. 이건 국내기반이 없어서 생긴 당연한 결과이자 임시정부가 국내진공해 무장투쟁을 못한 결과임. 제일 안타까운 것. 암튼 장개석과 손잡았던 임시정부세력은 힘이 없었고 동북항일연군은 여전히 만주에서 국민당과 싸우느라 국내에 들어오지 못함.

결국 해방시부터 신탁통치 결정시까지 국내에선 토착국내세력  이승만세력+미국 김구세력 김일성세력+소련 등이 서로 경쟁함
지누짱 21-07-21 11:22
   
신탁통치결정이후엔  이승만세력+미국 / 토착좌우파+임시정부세력 / 김일성세력+소련+토착공산세력 이렇게 삼등분됨. 그 누구도 적절한 무장세력은 없었는데 동북항일연군이 내전을 끝내고 귀국하여 김일성에 가담하여 공산세력이 급등하고 이에 맞대응해 집권한 이승만세력이 한편으론 친일파를 끌어당기고 한편으로 토착좌우파+임시정부세력을 암살 탄압함.

결국 625직전엔 이승만세력+친일파+일부토착좌우파+일부임정세력 vs 김일성세력+토착공산세력+동북항일연군 으로 재편되어 언제든 내전이 발발할  상황이 됨. 625 발발후 중공의 개입은 필연임. 중공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 개전 6개월만에 다 무너지자 한반도 개입장치가 없어지고 국경이 맞다을 위기가 오자 개입한 것임.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뒷배들인 미국 소련 중화민국 중공이 한반도에 개입하였기에 세력재편과 내전은 필연이었슴. 제일 아쉬운 건 미국이 소련진주를 요청한 것임. 그뒤론 뒷배가 확실한 세력은 권력을 잡고 뒷배가 없거나 약했던 세력은 다 몰락함. 그 결과는 분단되어야할 일본은 남고 한국이 대신 내전을 벌이고 분단됨.
     
지누짱 21-07-21 11:42
   
요약. 
1.미국의 결정적 실수로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주해서 이 모든 사단을 만들어 버림
2.이후에도 미국이 임시정부+국내세력+이승만으로 남한세력을 엮었다면 모든 명분을 미국이 쥐고 소련은 철수하고 김일성세력이나 토착공산세력도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텐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지 않아서 무정부상태로 만들어버림
3. 하지의 무능력이 한반도전체를 민주세력으로 만들 기회를 날림.
4. 미국과 소련이 제때 철수하고 장개석이 안망했다면 임시정부와 토착세력이 합작해서 정부세웠다면 한반도는 통일된 민주정부가 성립되었을 거임
5. 일제의 공산세력말살정책으로 국내에 공산주의자는 거의 없었고 자유시참변으로 독립운동세력도 나누어져 있었기에 일방적인 공산화는 불가능했다고 봄. 다만 내전은 필연이었다고 봄
촐라롱콘 21-07-21 11:43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당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는 건 거의 100퍼에 가까운 확률이었을 거구요~~!!!

설령 남한의 미국, 북한의 소련-중국 등 외세개입 일체없어 한반도 내 국내세력들간의 세력구도만으로
체제가 결정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우익-자본주의 세력보다는 좌익-공산주의 세력이 보다 세가 컸으므로
자본주의보다는 공산화될 확률이 더 컸을 겁니다.

해방 전후의 무장세력만 하더라도 우익계는 임시정부-광복군을 비롯한 몇몇 군소세력에 불과했던 반면
좌익은 소련군과 중국팔로군의 지휘와 영향하의 조선인 무장세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훨씬 규모가 컸습니다.

물론 광복군이 광복 직후에는 외견상으로는 수 천명 이상으로 병력규모가 확대되지만
이는 구 일본군 출신들이 경력세탁을 위해 광복군으로 소속을 바꾸려는 시도를 묵인한 결과일 뿐
광복 이전의 광복군 규모는 불과 800명 전후에 불과했습니다.
.
.
광복 전후 시기를 볼 것도 없이

국권침탈 시기 없이 1910년 이후에도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가정하더라도

1917년 일어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여파가 적어도 1920년대에는 아시아 상당지역에

파급되어 몽골이 아시아에서 첫 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된 것을 기화로 중국, 조선, 베트남 등 여러 지역에도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그나마 사회주의-공산주의 확산을 극히 경계하던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극한 탄압으로 인해 식민지가 대부분이던 해당 지역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세가 주춤해

졌기 때문에....

가정이기는 하지만 설령 대한제국이 존속했다 하더라도 1920년대를 전후하여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민중들의 봉기로 인해 붕괴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Lopaet 21-07-21 16:08
   
독립운동의 모티브 자체가 항일이 목적이었고, 소련과 팔로군이  조선 의용군을 도와준 측면이 있는 건 맞지만, 미국이 뒷짐지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것이죠. 김구의 임시정부는 반대로 자유 국민당의 장개석의 도움을 받았으니 항일 세력들이 모두 좌파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승만이 항일적 민족 염원을 무시하여 좌파쪽의 갈등을 심화 시켰지만, 촤파쪽에도 급진파와 온건파가 갈등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공산화 반대 전략도 있었지만, 미군의 공산화 반대전략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이승만이 공산화를 막았다는 주장은 좀 심한 미화가 아닌가 합니다.

미군은 광복군과 합동 침투작전을 준비해왔으면서 일방적으로 먼저 계획을 취소했고, 임시정부까지 부정 한 행동은 미국이 소련을 끌어드려 공산화의 빌미를 준 결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미군정은 공산화를 반대하는 척 하면서 결국 공산화를 조장한 건 아닌가라는 견해도 공존합니다.

미소공동위의 목적 자체가 통일정부 수립인데, 통일정부와 통일 헌법이 이미 있었잖아요. 공산당과 자유당이 공존하는 통일 정부를 예측 할 순 있어도 100% 공산화 됐을 것이라는 단정은 좀 심하지 않나요?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제주- 여수 - 순천 - 서북 청년단 행패 - 보도연맹 학살 - 신천학살 등 남북 분단 및 전쟁등 그 피해가 너무나 컸기에 냉정한 평가와 반성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커져만 갑니다.
토마스베델 21-07-21 11:59
   
질문 자체가 이미 그들에게 낚이신 것 같습니다.

"독립투사와 미국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다." 는 기본 팩트를 이용하여
"독립투사 → 이승만", "미국 → 미군정" 으로 키워드 아젠다 세팅 하여
토론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든지 상관없이 "Title" 만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부패하고 무능한 "이승만" 과 "미군정"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기능을 한 것 처럼 전달될 뿐이지요.

"이승만, 미군정 욕하면 빨갱이!" 라고 하는 분들이 자주 꺼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군사력" 덕분에 우리가 그때 독립 할수 있었고, 공산화를 막아낼 수 있었던건 역사이고 팩트입니다.
하지만 "이승만과 미군정" 덕분이고 그들이 없으면 큰일 났을 것이라는 건 웃기는 가정 입니다.

굳이 동일한 고찰이 필요한 보다 순수하고 적절한 질문을 생각해보자면
"초대 대통령 김구와 중립국 조선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역사의 가정은 설정판타지물 소재가 아닌 이상 답도 없고 비생산적인 일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반복해서 의제로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Marauder 21-07-21 13:34
   
뭐 단일선거 한다고 쳐도 김일성이 가만히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웃긴거죠.
애초에 유엔감시하 선거 거부한것 자체가 김일성이고 자기 당선되기 위해서는 이승만보다 더할사람이지 덜할 사람이 아니죠.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유엔감시가 필요한거고 설마 당선되도 문제는 마찬가지인게 6.25를 위해서 중공군과 소련의 지원까지 받아낸 사람인데 당선 안되면 뭐 자기 군사를 그대로 남한에 헌납할까요? 쿠데타 일으키겠죠. 쿠데타 일으키면 내전이니까 외부 개입 명분도 약해지고 그냥 백퍼 김일성 일당독재 공산화죠.
     
Lopaet 21-07-21 16:11
   
실제로 소련이 항일 운동가들의 무기를 해제화 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또 그런 소요사태를 막기 위해 미소 위원회가 신탁 및 지원을 주도했던 거고요
Lopaet 21-07-21 16:30
   
여러분들의 성의있는 의견을 읽다보니 질문 자체가 너무 이분법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소련과 미국의 이권 싸움의 틈에 통합 정부를 만드려는 우리민족의 갈등이 변수였던 상황에서, 미국을 이승만과 함께 포함시킨 질문 자체가 너무 무리였던 거 같습니다

이승만 하나만 넣었어야 정상적인 질문 같습니다.

최소한 이승만이 없었어도 우리가 공산화 될 일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또한 이승만이 없었다면 비극도 없었을 겁니다.
Lopaet 21-07-21 16:35
   
미국이 실수도 많이 했지만, 최소한 이승만 때문에 공산화를 막았다는 주장은 어불 성설 같습니다. 오히러 이승만 때문에 혼란만 가중됐고 민족간 비극적인 학살만 있었죠.

결과적으로 최소한 미국이 있었으니 남한만이라도 공산화를 막았던 건 사실이지만, 오보사건이나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이소공동회의 정상적인 진행으로 결과는 알 수 없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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