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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17 14:59
[기타] 동이의 개념 역사(주류설)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565  

동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에 거주하는 이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이(四夷)'와 같이 이(夷)는 오랑캐 전체를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동서남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동이·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으로 불렀다.

동이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은(殷) 시대의 갑골문자로, 이(夷)에 해당하는 갑골문자는 尸(주검 시)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이(夷)의 어원을 '큰 활을 가진 사람'이라 해석하였으며, '이(夷)'라는 글자가 '대(大)'와 '궁(弓)'이 합쳐서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전통적인 관점이었으나, 갑골문자의 발굴 결과와 다르기 때문에 현재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은 시기 및 그 이전 시대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에서 등장하는 동이는 주로 산둥성, 허베이성, 장쑤성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종족으로, 중국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여러 제왕들을 비롯하여 은나라까지 동이 출신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당시의 동이를 9개의 종족으로 구분하여 구이(九夷)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후한서》〈동이전〉에서는 이들 구이를 견이(畎夷)·우이(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로 구분하고 있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구분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九라는 글자가 단순히 많다는 의미를 가져 구이는 동이의 수많은 종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용법이다.

주나라 이후 동이는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면 산둥반도의 래이(萊夷)나 장쑤성의 회이(淮夷) 등의 작은 세력으로 축소되었다. 이후의 동이는 만주·한반도·일본 열도의 종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이전의 동이와 문화적·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대체로 한민족의 기록은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이가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일본만 해도 중국 역대 정사서 열전에서 거의 반드시 동이 중 하나로 분류된 것처럼, 한민족은 동이에 포함되는 개념이지 동이가 한민족인 것은 아니다.



어원

흔히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夷를 大弓이라고 파자한 것을 가지고 # 영인본 동이는 활 잘 쏘는 민족을 가리키는 데서 비롯된 말이라는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후술하듯이 다른 설이 나왔지만 재밌게도 동이로 취급되기도 했던 북적 동호(선비, 오환, 거란, 몽골), 숙신(읍루, 말갈, 여진, 만주), 예맥, 그리고 삼한인, 왜인(일본인)들중 일본인을 제외하고 활을 잘 다루는 공통점들이 있긴 했다.

동이(東夷)란 동쪽에 사는 사람이다. 오직 동이(東夷) 만이 대의(大義)를 따르는 대인(大人)들이다. 동이(東夷)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사람은 장수하는 법이라 그 곳은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다. (有君子不死之國) 고로 공자도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인 구이(九夷)에 가고 싶다. 하고 뗏목을 타고 바다로 띄웠다 한다. 참으로 이유있는 일이로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문헌 고증 정도가 한계이던 시절의 정약용도 이런 해석상의 오류를 답습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각종 민족주의 계열의 책들, 심지어 한국 사학계를 주도하는 인물 중 하나인 한영우 서울대 명예 교수의 '다시 찾는 우리역사' 같은 책에도 이것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교과서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夷)라는 것은 큰 활(大弓)이다. 이의 습속은 큰 활을 사용하여 남들을 상처입히니, 고로 육서가에서 그 글자를 가차(假借)하여 상해를 입힌다는 뜻으로 삼은 것이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제2집 경집 제40권 주역 4전 제21괘

그러나 최근엔 갑골문과 금석문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夷는 大와 弓이 합쳐진 것이 아닌 人과 尸가 합쳐진 글자라는 설이 주류가 되었다. 상나라때 자신들보다 동쪽에 살던 지금의 산둥성과 안후이성 일대에 살던 이민족들을 인방, 대방, 시방(人方·大方·尸方)이라고 일컬었다. 尸는 제사에서 망자의 역할을 맡아 드러누운 사람의 모습을 본딴 글자로, 이 당시만 해도 '시체'라는 의미는 적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주검'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어, 의도적이든 아니든 夷라는 한자에도 부정적인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중원에서 이민족을 이르던 칭호에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의 부수자가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동이(東夷)에는 주검(尸),서융(西戎)에는 창(戈)과 갑옷(甲), 남만(南蠻)에는 벌레(虫),북적(北狄)에는 개(犬)와 같은 식이다. 호전적인 요소나, 해당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동물로 빗댄 비하의 의미가 눈에 띄는데, 옛 중국인들 역시 이를 어느 정도 인지한 채 의도적으로 계속 이런 호칭들을 사용해 왔다.

즉 본래 의미는 그냥 사람. 출처: 古文字與古史新論.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다소의 비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후한 시대의 원강(袁康)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인 《월절서(越絶書)》에 따르면 夷는 월나라의 언어로 '큰 강' 혹은 '바다'를 뜻했다고 한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일부 언어학자들은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의 언어와 해당 명칭을 연결짓고 있는데, 이 가설이 맞다면 夷는 크메르어로 '큰 강'을 뜻하는 ទន្លេ(dnle)와 동계어다. 더 나아가 해당 명칭을 '큰 강 혹은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과 연관지을수도 있다. 원래 중국어가 아닌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출신의 외래어의 소리를 차용하면서, 문자에는 중국식 해석을 담을 수 있기에, 이 가설은 이방인을 모욕하는 자원에서 夷가 나왔다는 설과 충돌하지 않는다.

夷는 후대로 갈수록 월족의 영향권인 산둥성, 안후이성의 민족만이 아닌 (자신들 기준에서) 동쪽의 이민족들을 칭하는 단어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으며, 위에서도 나오듯 후대엔 그 동이에 포함되었던 조선이나 일본도 자신들보다 야만스럽다고 생각한 대상을 동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용례로 우리나라의 오랑캐, 유럽의 타타르가 있는데, 둘다 몽골계 민족이던 우량카이족, 타타르족을 부르던 고유명사가 확장되어 유목민, 이민족을 뜻하는 보편 명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선진시대

은나라의 탕왕이 혁명을 일으키고 나서 이들을 정벌하여 평정하였는데, 중정(仲丁) 대에 이르러 남이(藍夷)가 침구하였다. 이로부터 혹은 복종하고 혹은 배반하길 삼백여 년이었는데, 무을(武乙) 대에 국세가 기울자 동이가 점차 강성해져 마침내 회하와 태산으로 나누어 옮겨오니 중토(中土)에 점차 살게 되었다.
『후한서』 동이열전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동이는 본래 인방(人方)이라 불리던 산동성과 안휘성 일대의 자생 소국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은 문헌상으로 하나라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20~15세기부터 중원의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와 구분되는 웨스 문화(岳石文化)를 독자적으로 영위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두 지방은 지속적으로 충돌과 갈등을 겪게 되었는데 죽서기년에는 하나라 시절부터 이미 중국이 회이(淮夷),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 등 수많은 동이 족속들과 접촉하면서 정벌과 교섭을 반복했음이 전해진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신화 상에도 반영되어 한족을 대표하는 황제와 그에 맞서는 염제, 형천, 치우 등의 투쟁에 모티브가 되었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하나라는 고고학으로는 부정적이며 삼황오제 후가 바로 상나라라고 추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황하 문명은 마야나 아즈텍처럼 밀림에서 형성된 문명권으로 씨족이나 부족, 성읍국가 단위로 자신들을 구별했다.

이후 보다 엄밀한 의미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상나라가 들어서면서 동이와 화하 사이의 갈등은 한층 격화되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갑골문을 보면 인방(人方·尸方)에 대한 정벌 기사가 무려 65번이나 나오는데, 실질적으로 갑골문이 출토된 시기가 은허에 도읍한 상나라 후기의 300년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빈도상으로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수준. 특히 그 중에서도 산동반도 남부에 있던 차(虘)가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갑골문 해석에 따라 동이의 개념은 상나라가 최초로 만든 것이 확인되었다. 즉 최초의 동이는 상나라 입장에서 동쪽의 이민족 전반을 자칭하는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싸우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회합이나 책봉과 사여와 같은 상당히 다채로운 외교 활동이 각국을 상대로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상나라의 아즈텍 제국스러운 인신공양과 식인 풍습을 생각할 때 근본적으로 사이좋게 지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민족들과 전쟁해서 엄청나게 잡아다 바치고 여차하면 자기들끼리도 무지 많이 바쳤다고 나오는데, 아즈텍 제국에게 인간목장 취급받던 틀락스칼텍을 비롯한 부족들이 불만을 품고 훗날 에르난 코르테스를 적극적으로 도와 아즈텍을 멸망시킨 걸 생각해보자.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제신이 대단히 적극적으로 동방 정책에 나섰는데, 위에서 말한 65건의 정벌 기사 가운데 반이 넘는 46번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이는 사서상으로도 남아서 그로부터 500여 년이나 지난 춘추전국시대에도 주왕이 동이를 정벌하다가 신세를 망쳤다며 경고하는 문장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갑골문을 연구한 학자들은 상주혁명의 실체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주왕과 달기가 폭정을 해서가 아니라, 상나라가 동이와의 전쟁에 매진하는 사이 서방에 있던 제후국 주나라가 강족 등의 이민족들을 모아 상나라를 기습하여 상이 멸망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오거(伍擧)가 "무릇 6왕과 2공의 사적은 모두 제후들에게 예법을 보여서 제후들이 그 명령을 받든 것입니다. 하나라 걸왕이 잉(仍)에서 회합할 때 유민(有緡)이 반란했고, 상나라 주왕이 여(黎)에서 사열할 때 동이(東夷)가 반란했고, 주나라 유왕이 대실(大室)에서 회맹할 때 융적(戎狄)이 반란했으니, 모두 제후들에게 교만을 보여서 제후들이 그 명령을 내버린 것입니다. 지금 임금님께서 교만하시니 성공하지 못할 듯합니다."라고 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춘추좌씨전』 소공 4년
숙향(叔向)이 대답하길 "이깁니다. …… 걸왕이 유민을 이겼으나 그 나라를 잃었고, 주왕이 동이를 이겼으나 그 신세를 망쳤습니다. 초나라는 그들보다 작고 낮은데도 걸왕과 주왕보다 더 난폭하니 재앙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착하지 않은 자를 거짓으로 도와주는 것은 복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그 흉악함을 더 쌓도록 해서 벌을 내리려는 것입니다."라 하였다.
『춘추좌씨전』 소공 11년

아무튼 이렇게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도 동이는 여전히 주나라에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고, 더욱이 상나라의 잔당과 연합하면서 더욱 큰 문젯거리가 되었다. 주나라는 제신의 아들 무경을 제후로 책봉하여 상나라의 사직을 보존시켜 주는 대신 그 주위의 관(管), 채(蔡), 곽(霍)에 친족들을 분봉하여 이를 감시하도록 했는데, 그로부터 2년 만에 주 무왕이 죽고 어린 주 성왕이 즉위하여 주공 단의 섭정을 받게 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관숙과 채숙이 오히려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버린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반란에 제법 작심해서 지금의 안후이 성 일대의 회이(淮夷)와 서융(徐戎)까지 끌어들였지만 주공은 3년 만에 가까스로 이들을 진압하고 동방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후로도 주나라와 동이 사이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주공은 다시 동이에 대한 정벌에 박차를 가하여 지금의 산둥 성에 있던 엄(奄)을 몰아낸 뒤 그 땅을 자신의 봉지인 노나라로 삼았고, 강태공 또한 이와 비슷하게 래(萊)를 몰아내고 그 땅을 자신의 봉지인 제나라로 삼았다. 이 나라가 춘추오패 중 하나이자 산둥 반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제나라다.

애당초 서주 시대 초기에 봉해진 제후들은 '이미 완전하게 영토로 확정된 곳'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가서 그 지방을 정복하고 살아라'라는 개념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서주 중기까지 동이의 판도는 계속해서 축소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집단은 회하 유역을 중심으로 건재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가장 강성했던 서(徐)나라는 아예 그 일대 동이의 우두머리로 왕을 자칭하면서 중원 한복판까지 침범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가 전개되면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확장을 개시함에 따라 동이라 불리는 소국들이 존속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더 좁아졌다. 단적으로 산동 반도에 있던 래(萊)는 기원전 567년에 제나라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초나라를 필두로 한 남방 국가들의 북진이었는데, 초나라는 회하를 따라 동진하면서 육(六)과 주래(州來)와 거(莒)와 같은 소국들을 합병하였고, 이어서 흥기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북진하면서 서(徐)와 담(郯) 같은 동이의 핵심 국가들을 멸망시키고 자신의 판도 안으로 편입하였다. 남방에서 밀고 올라온 초나라를 비롯한 남부 나라들은 본래 장강 문명권이라는 황하 문명과 별개의 문명 출신이라 이민족이었으며, 초나라는 묘족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남쪽 원숭이들로 멸시당해야 했다. 우스운 건 초한쟁패를 연 항우와 한나라를 건국하고 한족의 이데올로기를 최초로 형성시킨 유방은 모두 초 출신이다.

이후 이 지역들은 월나라가 망하고 초나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천하 통일 이후 통일 진 제국의 치하에서 전 중국에 일괄적인 군현제로 편성되었고, 이로 말이암아 새로운 의미의 중국 관념이 대두되면서 더 이상 이민족으로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이 방면이 원래 동이의 땅이었다는 인식은 신나라에서 이곳의 일부를 관할한 낭야군의 이름을 진이군(塡夷郡), 즉 '동이를 진압한 군'으로 바꾼 것에서 그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진(秦)이 6국을 병합하고 그 회수와 사수의 이족들을 모두 흩어서 민호로 만들었다.
『후한서』 동이열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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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진 21-07-23 20:33
   
1. 요약하면 '진한 시대 이전에 중국 사서에 나타난 동이족은 우리와 상관없다'로 보이는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는지요?
2. '주류설'이라면 학계의 주류설을 의미하는지요?
3. 전 이 주장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지누짱님 생각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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