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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13 08:51
[한국사] 한사군에 대해서 가장 압도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324  

뭔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사학계 학자들이 아니라
여기서 주로 눈팅하는,
예전에 나와 감정이 상한,
역사연구를 취미로 한다 한,
심바라는 분입니다

바로
왕검성 블로그의 단군님

이 사람이 뭔 어디 사학과 교수여? 박사여?

물론 이 분 연구에 비판의 여지가 많은데
그 비판의 여지가 보이면 공부와 연구를 많이 한 사람이고
논박이 된다 하면
최소한 이 분에 준하거나 더 치열하게 탐구해야겠죠

이런 게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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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07-13 10:36
   
한사군 연구 전문가나 강단사학계 민족사학계 학자들을 포함한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고대사 주장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요수, 요동, 요서, 한사군, 위만조선 위치 비정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내용이 전국시대 연나라 영토라고 생각하고요
그 중에서 연나라 수도라고 주장하는 계가 북경근처라는 주장입니다
(계가 연나라 수도라는 근거를 문헌에서 찾을 수도 없었지만..)

조나라가 하북성 남단 한단중심이었고, 제나라가 산동성 치박시 중심인데
하북성 북부인 북경과 한단의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정도의 거리로 1천리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북성은 부양하,호타하, 당하를 포함한 서에서 동으로 흐른 큰 강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마천 사기 기록으로 보면 연나라는 조나라 제나라와 전쟁을 포함한 소통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한단에서 북경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연나라 수도가 북경근처인 계현이라는 주장을 비판없이 어째서 받아들이는지?
중국이 주장하는 고고학적 몇개의 단서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상적인지?
저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연나라 수도는 절대로 북경이 될 수 없고 계가 북경이라는 주장은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어떠한 의견이신지 궁금합니다
     
감방친구 21-07-13 10:47
   
블로그를 잠시 구경하니 연구를 열심히 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너무 아래 쪽으로 잡고 계신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상나라 당시에서 주초면 몰라도 말이죠

연은 본래 하남성 근처에 있다가 일시에
현 북경시 방산구 유리하 지역에 진출하여
BC11세기 무렵의 물질문화를 남겼는데
후퇴하여
님이 말씀하신 지역과 근접한 호타하와 석가장시 일대에 쭉 있으면서 보정시를 북방한계로 하다가

BC 5세기 경에 북상하여 BC 4세기 경이면 하북성 북부를 제패합니다

그 근거는 이른 바 연하도문화의 진출과 산융-무종 문화의 퇴색입니다

또한 발해를 호수로 말씀하신 내용을 봤는데
애초에 발은 바닷물이 휘돌며 부침하는 꼴을 뜻한 것으로
발해는 본래 현 텐진시 남쪽 창저우시 일대였습니다
          
수구리 21-07-13 11:03
   
제는 임의적으로 비정하지 않았고요

사마천사기와 한서지지리를 해석하니 하북성 형수시가 위만조선이고
연나라 장성이 호타하인 것으로 파악되어 저도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도 창주시고, 마한도 한반도가 아니라 산동성, 강소성을 가르키고 있었고요

누구나 사료를 보고 몇가지 사실만 확인하면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보이는데..
또다른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을 보니
단단대령이 현 갈석산으로 보이고,
요서회량은 남북이 좁고, 동서가 천리정도이니 옥저와 비슷합니다

연나라가 북경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사료적인 근거가 없는 것 같고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의심하지 말고 계가 북경이니 믿으라는 것 같습니다

계의 수도 천도 내용은 춘추좌씨전에 임역(역수 근처로 추정, 지금의 역수 위치도 이동되었음)으로 천도 했다는 내용이 있으나 임역이 북경은 아닙니다
          
수구리 21-07-13 11:14
   
한사군 설치 당시의 발해가 현재의 발해라는 기록이나 문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발해는 고려시대 이후의 대조영의 발해 이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춘추전국 시대나 한나라 시대에 지금의 발해를 발해라고 부른 기록이 없습니다(사마천 사기, 춘추좌씨전, 한서)
               
감방친구 21-07-13 11:28
   
발해라는 명칭은 회남자에도 나오고 사기에도 나오며
전한 때 하간군과 분리된 발해군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지역을 봉지로 하는 발해군왕이라는 작위도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발해가 망한 후까지 존재했습니다

수구리님, 저는 엄밀성을 위해서 말을 아낄뿐 가능한 모든 사서를 다 분석하고 교차하며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수구리 21-07-13 11:32
   
발해라는 명칭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발해가 지금의 발해를 지칭하는 내용이 없습니다(그 발해가 지금의 발해가 아니라고 보고요)

한사군 발해군을 보면 발해가 (在) 내부에 있어서 발해군이라고 했습니다
                         
감방친구 21-07-13 11:38
   
제가 어디 지금의 발해를 가리킨다 하고 말했습니까?
               
감방친구 21-07-13 11:31
   
발해는 본래 고대 해안선이 지금의 천진시와 창저우시 등의 대부분을 파고든 위치였을 때에 그 근해를 가리키던 명칭이었습니다

그 발해를 아우르면서 현 진황도시와 산동성 사이의 바다를 요해라 했고

그 요해를 아우르면서 동일 범주, 또는 그보다 넓은 범주를 북해라 했습니다

요해와 북해는 뜻이 같습니다
                    
수구리 21-07-13 11:37
   
말씀하신 요해 발해, 북해주장은 서기 ㅈ천년경의 송나라 문헌 자장아니가요?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서기 천년경에 작성하고 자장한 문헌이 아닙니다
기원전 108년 경의 발해이고, 요수이고 요동이고 연나라 영토입니다

서기 천년경의 송나라의 새로운 주장이면
연나라 요동이나 발해가 요해나 북해가 아니고 그냥 소설정도( 뇌피셜)로 보아야 합니다
                         
감방친구 21-07-13 11:39
   
누구 뇌피셜이 아니라 제가 선진양한 시대 사서부터 수당시대 사서까지 쭉 교차분석하여 얻은

제 연구 결과입니다
          
수구리 21-07-13 11:26
   
서기 91년 사마천이 연나라 역사인 연세가를 집필완료하면서..
연나라는 제(산동성, 임치현)와 진(산서성 곡옥현) 사이의 작은 나라라고 했습니다

연나라가 하북성 전체를 차지하고, 난하 동쪽까지 차지했다면..
사마천이 연나라가 대국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연나라는 호타하를 넘을 수 없고요, 하북성 남부 땅을 겨우 차치한것을 사마천이 이야기 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연나라 영토나 연장성, 위만조선을 찾지 않았고요
사마천 사기와 한서지리지를 해석하면서
구글지도를 이용하여 산이나 강의 위치를 직접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에 대해서도
 추가로 필요한 자료 확인하고 교차 검증하면서 위치를 밝히고 글로써 표현한 것이지요
               
감방친구 21-07-13 11:37
   
저는 제가 임의로 산서성파와 하남성파로 부르는 분들의 주장을 아주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구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수구리님을 포함한 이들 연구자들의 주장에,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신빙성이 있다 하는 사적(史- ) 정황이 포착되는 까닭입니다

다만 제 생각은

상대의 연구와 연구자 본인의 연구 사이에 여지를 두어야지 너무 강하게 주장한다든가 상대의 주장을 아예 무시한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좋지 않다 하는 것입니다
                    
수구리 21-07-13 11:46
   
네.. 알겠습니다

저는 요동, 요수, 위만조선을 이야기 하는 글들을 보면 답답했습니다

기원전 108년, 또는 그이전의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를 이야기 하고 그시대의 위치를 비정해야 하는데..

많은 글들이 위만조선이 망하고, 한나라가 망하고, 고구려도 망한 뒤의 기록을 믿고,
1천년 이상의 후대의 기록을 의심도 없이 주장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잘 알았고요 수고하세요 그럼 ...
                         
감방친구 21-07-13 11:47
   
예, 감사합니다
연구하시는 그 노고를 제가 잘 압니다
                    
수구리 21-07-13 11:53
   
연나라 영토, 연나라 요동 요서, 위만조선, 한사군의 위치비정에서
1차 사료는 사마천 사기와 한서(한서지리지), 춘추좌씨전 정도로 봅니다
서기 200년 이후에 작성한 사료는 1차 사료로 가치가 없다고 보고요

사마천 사기, 한서등 서기 200년 이전의 사료만으로
연나라 영토, 연나라 요동 요서, 위만조선, 한사군의 위치를 비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감방친구 21-07-13 11:56
   
저는 산해경, 회남자, 예기, 좌씨전, 사기, 한서 등을 교차 분석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예전에 했는데 정리를 아직 못 했습니다
                         
감방친구 21-07-13 22:13
   
해당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東方之極,自碣石山過朝鮮,貫大人之國,東至日出之次,榑木之地,青土樹木之野,太皞、句芒之所司者,萬二千里。《淮南子 時則訓》

이 동일 내용은 《呂氏春秋 求人》에도 나옵니다

① 榑木之地는 판본이나 책에 따라 扶木之地로 나오거나 아예 木之地로 나오기도 하는데 해 뜨는 곳을 표현한 것이므로 榑木之地가 옳습니다. 榑木은 해 뜨는 곳에 있다 한 부상나무를 뜻합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일본열도를 가리킨다 하고, 한국의 경우 한국을 가리킨다 하는 견해와, 산동성 지역을 가리킨다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ㅡ 저는 이곳을 러시아 연해주의 흑룡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② 大人之國, 또는 大人國은 부여, 또는 부여가 있던 지역에 살던 우리 옛 조상의 어느 국가적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으며, 후대 사서의 부여에 대한 묘사와 비교적 일치하는 면이 있습니다

③ 기원전 2세기에 쓰여진 회남자의 이러한 내용들은 산해경, 시경, 이아, 예기, 사기, 여씨춘추, 좌씨전, 국어, 관자 등 先秦漢 및 秦漢 시대 여러 사서 및 문헌 등의 기술과 겹치거나 비슷하면서 상이하거나 다르거나 새로운 점이 있어서 이러한 모든 문헌 사료를 면밀히 교차분석하여 검토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지난 해에 유튜브에 '장백산과 압록수 연구' 이름으로 연재하려 했는데 지나치게 분량이 많고, 누가 볼까 싶기도 하고, 진력이 나서 그만 두었던 것입니다

# 댓글 쓰다가 노트북 다운 돼서 재부팅 한 뒤에 쓰는 거라는
     
감방친구 21-07-13 11:02
   
또한 요수를 비정하신 것을 봤는데
그것이 산해경의 요수라 하면 흥미로운 주장이십니다
저는 산해경의 요수를 영정하와 이수(역수) 사이의 지금은 알기 어려운 어떤 강으로 보는 것을 중심에 두고서
호타하, 또는 그보다 남쪽으로 보는 추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구리 21-07-13 11:08
   
지금의 역사학자(민족사학자)들이 주장하시는 위치는 거의 대부분
요나라 시기인 서기 1000년경의 자료로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그것도 송나라 시대의 지리지로 설명하지요

서기 천년경에 장강 남쪽의 남송에서  기원전 100년경의 한사군이나 요수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요?
수구리 21-07-13 12:50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면..
고대 갈석산을 석가장시 찬황현의  장석암으로 비정하면..
후대 중국 사서들의 갈석산 관련한 기록들을 대부분 설명가능합니다

※ 연나라는 발해와 갈석산 사이의 도회지다
(발해는 큰바다가 아니라 연나라를 지칭할 수 있는 물길로 보아야 합니다)

1) 갈석산이 바다에 위치했다고 했으니 거록현 북쪽이 대륙택이니 바다로 볼수 있고요
2) 거록현 옆의 융효현에 요산이 있으니 요수가 요산에서 발원한다고 볼 수 있고요
3) 요임금 후손을 계에 봉했으니 융효현이 요임금을 받든다는 의미이고,
  요산에서 고대 유물이 다량 발굴되었습니다
4) 연나라는 서쪽으로 갈석산이 막히고, 요수(부양하)에 둘려쌓였고 사구에 막혔다는 내용은
융효현이나 거록현의 지형과 같고요
4) 갈석산에서 진장성 연장성이 시작되었다는 내용과 비슷하고요
5) 요택을 대륙택으로 볼 수 있고요

....갈석산과 관련되 대분분의  사료 내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수구리 21-07-13 13:07
   
한서지리지 조군은 한단시 부근이니
탁군은 보정시가 될 수 없고 형태시 부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서지리지 조군(한단시 부근)에 역양현이 있는데..
  易陽(역양) 역양현(易陽縣)이 있다.
  [응소(應劭)가 말하기를, "역수(易水)는 탁군(涿郡)의 고안(故安)에서 나온다"고 했다.
  안사고(顔師古)는 말하기를, 역수(易水)의 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이 춘추전국 시대의 역수가 한단시 부근인 역양현에 있다는 내용으로 보이고
이 내용은 연나라가 수도가 융효현이나 거록현 이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줄 내용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사마천 사기에 연나라 남쪽에 역수와 호타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연나라 시대의 호타하도 지금의 호타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수구리 21-07-13 13:49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마한이 한무제 시대의 창해군의 예(창주시) 남쪽이니 마한은 산동성과 강소성이 됩니다
(후한이 호족들을 통제 하지 못하여 후한시대에는 호족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마한이 산동성 강소성이라면..
백제가 산동성 강소성의 제나라 소국(마한, 진한, 변한) 백개정도를 통합한
백개의 제나라인 백제가 되는 것이고, 백제의 요서진출이나 대륙백제가 설명됩니다

--> 백제가 제나라 소국을 통합하여 산동성 강소성에서 나라를 세웠고 발전하다가
    광개토대왕와 장수왕에게 밀려 한반도 웅진으로 천도했으나 대륙백제의 영향력을 어느정도 유지했다
--> 백제 초기의 말갈의 침입, 그리고 북제를 격파한 요서경략설등
 대륙백제와 관련된 내용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감방친구 21-07-13 20:07
   
악마판사 드라마가 뭐유?
역사연구의 등불을 밝혀서 앞장서며
"겨레여, 나서자. 통일의 한길로!" 해야 할 판에 한가하게 시시껄렁한 드라마나 보고 계슈?

단군님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joymug
               
감방친구 21-07-13 20:21
   
미국이나 유럽 사는 교포들도 일상이 그렇다고 합디다
재밌게 보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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