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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10 10:51
[한국사] 윤내현 고조선연구. 감상과 요약
 글쓴이 : 엄근진
조회 : 1,135  

도서관에 신청한 윤내현 교수님의 책들이 들어와서 읽고 있습니다. 전에 LOTTO 님이 쓸데없는 책들 보다는 윤내현 책을 읽으라고 하셨던게 이해가 가네요. 이 책들은 한국/중국 사료에 기반하여 고조선 시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고고학 성과로 검증하고 있으니 바이블이라고 해야겠네요.

이 책 '고조선연구'는 2015년에 상권, 2016년에 하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199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동일한 제목의 책이 있는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출간하신 것으로 압니다. 20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쌓인 고고학적 성과와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내현+김상훈(일도안사 김상). 
이렇게 두 분의 책을 연결하면 고대사(bc 23c ~ ad 5c)를 전체적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정통 사료를 문구 그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가정이나 비약은 최소화 되어 있습니다.

제가 2달전에 이 게시판에 처음 질문을 올렸던 "진국의 정체"와 "기원전 북위 39도 이하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됐네요. 게시판 여러분 모두께 감사~~

저같은 초보자를 위해 아래에 핵심만 요약했으니 참고하시고, 근거 자료는 책을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
- '조선' 용어의 구분 :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낙랑군 조선현, 고조선 붕괴 후 묘향산 일대. 이 책에서 고조선은 단군조선을 의미함
- '조선' 단어의 유래 : '아침의 땅'을 뜻하는 '아사달'의 한자화된 단어. 도읍명이자 국명으로 됨
- 한민족의 정의 :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했던 토착인. 조선족. 예, 맥, 부여, 고죽, 고구려, 추, 진번, 낙랑, 임둔, 현도, 숙신, 청구, 양이, 양주, 발, 유, 옥저, 기자조선, 비류, 행인, 해두, 개마, 구다, 조나, 주나, 진, 한 등의 거수국 포함

- 연대 : 건국연대는 bc 2622, 2357, 2333, 2325, 2311, 2284 중 하나. 한반도 청동기 시작인 bc 25c를 고려하면 bc 24c 일 가능성이 높음. 붕괴연대는 bc 400년. 붕괴 이유는 철기보급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위만조선/서한과의 전쟁으로 인한 국력 소모. bc 4c~1c 에는 주왕실 같은 위상일 것으로 예상(대동강 유역 위치).
- 고조선의 서쪽 국경 : ~bc 6c 난하유역 서쪽, bc 5c~bc 2c 난하와 갈석산. 연 진개의 침략은 일시적이었으며 서부 영토는 바로 수복하고 연 영토의 일부 점령.
- 패수 : 일반명사. 요동군 번한현, 낙랑군 패수현, 낙랑군 누방현 등에 위치. 고조선의 패수는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로 북경 가까이에 있는 난하 또는 서쪽 강임.
- 고조선의 남북 영역 : 북쪽 경계는 bc 16c~14c 이후 흑룡강 & 아르군 강 유역, 남쪽 경계는 한반도 남해안. 단, 영역은 면이 아니 점과 선으로 구성.
- 중심지 변천 : 아사달(평양, 건국초) -> 평양성(요령성 본계시, ?~?) -> 백악산 아사달(난하 하류, ~bc 1122) -> 장당경(대릉하 동부, ~bc 107) -> 아사달(평양, ~붕괴)
- 기자조선/위만조선/낙랑군/현도군 위치 : 갈석산~대릉하&요하(요서지역).
- 창해군 : bc 128~126 설치, 창주지구 (현 발해만 서쪽 연안)

- 진국 : 요동&서북한. 단군의 직할국, 고조선 중심국가
- 한국 : 청천강 이남 한반도 전체가 영역. 고조선의 거수국. 휘하에 78개의 거수국을 거느림(마한,진한,변한)  

* 기자조선은 기씨가 아님. 성이 '자'씨임. 다만 '기자'는 '기' 지역의 '자' 라는 관직명을 의미함
* 김상훈 교수님은 준왕이 이동하여 '한국'을 건설했다고 했으나 잘못 아신 듯... 이미 있던 한국이고, 전체도 아니고 소국 중 하나를 차지했다가 곧 소멸한 듯.
* 말갈은 여전히 미스테리한 집단이네요.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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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팔이 21-07-10 11:00
   
조선이란 말은 서양의 로마와 대응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패권국들은 로마란 명칭을 차용했죠..
동로마, 신성로마와 같이 기자조선, 위만조선, 낙랑조선 이런식으로...
그리고 아사달은 한자식으로 변환하면 조양인데 실제로 요서 대릉하에 있지요..
요서는 조선의 발원지로 추정되니 가장 현실성 있을것 같네요..
     
엄근진 21-07-10 12:46
   
동감입니다.
     
위구르 21-07-10 18:51
   
우리나라의 단군, 조선이란 이름이 동양권에서 널리 쓰인 말이란 주장이 있는데 참고하시면 될듯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dr1QQ-12w
수구리 21-07-10 14:02
   
낙랑군 조선현은 위만조선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서지리지 낙랑군에서
응소가 기자조선현 처럼 표현했지만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기자 조선현이 아니라 위만 조선현입니다
     
수구리 21-07-10 14:04
   
朝鮮 조선현(朝鮮縣) 應劭曰武王封箕子於朝鮮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고 했다.
[출처] 낙랑군 樂浪郡(한서지리지-유주)
     
수구리 21-07-10 14:05
   
하지만 저는
위만을 한漢나라 조정의 외신(外臣)으로 삼은 것과 응초가  漢무제(武帝)를 周무왕(武王)으로 잘못 이해하여  일천 여년 전의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틀리게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위만조선 왕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이 기후(幾侯)에 봉해졌으니 왕험성이 (위만)조선군이되었다가 4군 편성시점에 낙랑군 조선현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엄근진 21-07-13 00:24
   
"응초가  漢무제(武帝)를 周무왕(武王)으로 잘못 이해하여"
>> 응초가 잘못 이해했다고 믿을 근거가 있을까요?
     
엄근진 21-07-10 15:14
   
기자조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시죠?

'위만을 한漢나라 조정의 외신(外臣)으로 삼은 것과 응초가  漢무제(武帝)를 周무왕(武王)으로 잘못 이해하여  일천 여년 전의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틀리게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 근거는 무엇인가요?
          
수구리 21-07-10 15:22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기준입니다
--> '마침 효혜(孝惠)황제와 고후(高后) 때에 이르러 천하가 비로소 안정을 찾자
요동 태수가 위만이 한나라 조정의 외신(外臣)이 될 것을 약속받고
요새 밖의 만이(蠻夷)를 보호하게 하고 변방을 노략질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만이의 군장들이 한나라로 들어와 천자를 알현하고자 하면 금지하지 못하게 했다.
이를 보고하니 황제가 허락했고, 이로써 위만은 그 땅의 군대의 위세와 재물을 얻어 부근의 작은 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출처] 115-1/2[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5.朝鮮列傳(조선열전) (1/2)|작성자 swings81
          
수구리 21-07-10 15:36
   
기자조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천 사기 기준으로 보면 어떤 형태로던 기자조선이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기원전 1000년 경에 망했는지.. 계속 존재하다가 어느 시점에 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럽지만...
삼국지와, 사마천 사기를 기준으로 보면..
기자조선이 중산국으로 보이며
(삼국지        :--> 연나라가 왕을 칭하니 기자조선도 왕이라 했다
 사마천 사기 :--> 연나라가 왕이라 칭하니 중산국도 왕이라 칭했다)

중산국이 기원전 약 400년경에 망하자 기자 후손이 요동방면으로 이동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위만 으로 인하여 한(마한)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가 사마천 사기와 후한서 내용상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엄근진 21-07-13 00:17
   
제가 댓글을 제대로 이해 못했네요. 죄송.

"낙랑군 조선현은 위만조선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 이게 무슨 뜻인가요? 위치에 대한 건가요, 정치체에 관한 건가요?
수구리 21-07-10 14:12
   
사기 평준서를 보면
예가 예맥조선으로 예의 임금이 한에 귀순하여 창해군을 설치했는데...
제나라(산동성)와 연나라(하북성) 사이라고 했으니

창해군은 천진시 남쪽의 창주시로 보여집니다
     
수구리 21-07-10 14:17
   
예가 하북성 창주시이니...  한(마한, 진한, 변한)은 산동성과 강소성이 되겠지요
그리고 왜국은 변한 남쪽이니 절강성과 대만일 수 있습니다

삼국지 왜전과 후한서 왜전에는 왜의 남자 모두는 문신 풍습이 있다고 했으며
동남아 지역과 오월지역에 문신 풍습이 있고 한반도나 일본은 문신 풍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구리 21-07-10 14:20
   
「한서」권6 무제기 창해군 설치

秋, 匈奴入遼西, 殺太守;入漁陽、雁門, 敗都尉, 殺略三千餘人. 遣將軍衛靑出雁門, 將軍李息出代, 獲首虜數千級. 東夷薉君南閭等[一]口二十八萬人降, 爲蒼海郡.
[一]服虔曰:「穢貊在辰韓之北, 高句麗沃沮之南, 東窮于大海.」 晉灼曰:「薉, 古穢字.」 師古曰:「南閭者, 薉君之名.」

(원삭元朔 원년인 B.C 128) 가을, 흉노가 요서를 침입해 태수를 죽였다. 어양, 안문을 침입해 도위를 패배시키고 3천여 명을 살략했다. 장군 위청(衛靑)을 보내 안문을 나가게 하고, 장군 이식(李息)은 대(代)를 나가게 하여 수천 급을 참획했다. ; 동이(東夷) 예군(薉君) 남려(南閭) 등 구(口) 28만 명이 항복하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했다.
[一] 복건 왈 [예(穢)는 예맥(穢貊)으로 진한(辰韓)의 북쪽, 고구려, 옥저의 남쪽에 있었고 동쪽으로 대해로 막혀있었다. 진작 왈, 薉는 옛날의 穢 자다. 안사고 왈, 남려(南閭)는 예군(薉君)의 이름이다.]
     
수구리 21-07-10 14:20
   
사기 권30 평준서 平準書

自是之後,嚴助﹑朱買臣等招來東甌,[一]事兩越,[二]江淮之閒蕭然煩費矣.唐蒙﹑司馬相如開路西南夷,鑿山通道千餘里,以廣巴蜀,巴蜀之民罷焉.彭吳[三]賈滅朝鮮,[四]置滄海之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及王恢設謀馬邑,匈奴絶和親,侵擾北邊,兵連而不解,天下苦其勞,而干戈日滋.
[一]正義烏侯反.今台州永寧是也.
[二]正義南越及閩越.南越,今廣州南海也.閩越,今建州建安也.
[三]索隱人姓名.
[四]索隱彭吳始開其道而滅之也.

이 이후로(한무제 즉위 이래 재정과 경제가 풍족해지고 사치풍조가 일어난 후) 엄조(嚴助), 주매신(朱買臣) 등이 동구(東甌,※)를 [1] 초래(招來,초무;끌어들임)하고 양월(兩越,남월과 동월)에서 일을 벌이니 [2] 강회(江淮,장강과 회수) 사이가 소란해지고 크게 비용이 소모되었다. 당몽(唐蒙),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서남이(西南夷)에 이르는 도로를 열어 천여 리에 걸쳐 산을 뚫고 길을 통하게 하니 파촉(巴蜀) 땅을 개척했으나 파촉 백성들은 피폐해졌다. 팽오(彭吳)는 [3] 조선(朝鮮)을 멸하고자 하여 [4]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燕), 제(齊) 사이가 바람에 휩쓸리듯 소란해졌다. 그러다 왕회(王恢)가 마읍(馬邑)에서의 모책을 꾸미자 흉노가 화친을 끊고 북변을 침요(侵擾)하여 전쟁이 연이어 풀리지 않으니, 천하가 그 노역에 괴로움을 당했으나 간과(干戈,전란)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수구리 21-07-10 14:22
   
한(漢) 무제(武帝)는 팽오(彭吳) 등에게 요동군(遼東郡)에서 창해군(蒼海郡)에 이르는 교통로를 닦게 하였지만 인력과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소모되어 공손홍(公孫弘, BC 200 ~ BC 121) 등의 건의를 받아 교통로 개척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BC 126년에 창해군(蒼海郡)도 폐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해군 [滄(蒼)海郡] (두산백과)
     
엄근진 21-07-10 15:15
   
네... 제가 쓴 글과 같은 내용이네요 ^^;
위구르 21-07-10 19:00
   
두예가 이르기를 '기자의 무덤은 량(梁)의 몽현(蒙懸)에 있다'라고 했는데 이 것이 기자조선이 실제하지 않은 근거중 하나이고 당시 만주의 단군조선 말고 상나라 내에 조선이라는 지명이 따로 있었는데 나라를 잃고 상심한 기자에게 일부러 상나라와 같은 동이족 나라인 조선의 이름이 붙은 그 지역을 봉해주면서 달랬다고 볼 수도 있죠
     
수구리 21-07-10 19:14
   
''기자의 무덤은 량(梁)의 몽현(蒙懸)에 있다'는 내용은 기자조선이 실제하지 않았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자의 무덤이 몽현(蒙懸; 현재 하남성 상구현)에 있다는 사실은
초기 기자조선(서기전 1040년경)이  하남성 근처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수구리 21-07-10 19:19
   
사마천 사기의 송세가에는
기자가 주나라 조례에 참석하기 위해 호경(서안)을 가는 길에
폐허가 된 은나라 도성인 조가(학벽시, 허비시)를 지나면서 울적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는 기록이 있으니
기자 조선의 위치는 학벽시 북쪽이고 고대도시인 업성鄴城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위구르 21-07-10 19:24
   
기자조선이 거기 있었다니 흥미롭군요. 그럼 뒤이은 위만조선의 위치도 그 쪽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수구리 21-07-10 19:29
   
제가 사마천 사기 기준으로 위만조선 위치를 고찰해 보니..
예(창주시) 서쪽이 요동이고요, 위만조선은 형수시 무강현으로 고찰되었습니다
                    
위구르 21-07-11 04:23
   
김종서 박사님이 쓴 '단군조선 領土 연구'의 내용이랑 비슷하네요
     
수구리 21-07-10 19:28
   
또한
1) 사마천 사기 『조趙세가』에는
기원전 323년에 ‘오국상왕(五國相王)'이라는 동맹을 맺고 서로 칭왕했는데 다섯나라 중에 중산국이 있다(연燕, 한韓, 조趙, 위魏, 중산국中山國) [출처] 43-12/2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12/23) <조 무령왕(趙 武靈王)>①
2)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 한韓에는
연나라가 왕이라 칭하니 조선후도 왕이라 칭했다
魏略: 옛 箕子의 후예인 朝鮮侯는 周나라가 쇠약해지자, 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王이라 칭하고 東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朝鮮侯도 역시 스스로 王號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燕나라를 逆擊하여 周 王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大夫 禮가 諫하므로 중지하였다. 그리하여 禮를 서쪽에 파견하여 燕나라를 설득하게 하니, 燕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朝鮮을] 침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삼국지 편찬자​는 사기의 오국상왕 내용을 확인했을 것이고 중산국이 조선후인 것을 확인 했으니 중산국이 아니라 중산국을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라고 했다고 봅니다
(이 조선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자조선입니다)

기자조선인 중산국이 조나라에 기원전 300년 경에 망하자 중산국 후손(기자조선 후손)이 동진하여 세운 나라가 삼국지에 나오는 조선후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엄근진 21-07-11 06:00
   
참고로... 두 달전 '진국의 정체는?'이란 제 질문에 아래와 같이 스스로 답을 달았습니다 ^^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2976&page=0&sca=&sfl=mb_id%2C1&stx=coolseok&spt=0&page=0&cwin=#c_193587
지누짱 21-07-11 12:03
   
고조선연구를 보셨으면 80년대 논총인 한국고대사신론으보시기 바랍니다.
     
엄근진 21-07-11 22:06
   
네. 찾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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