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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05 09:13
[한국사] 정조 전문가님들 이 여자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글쓴이 : 제로니모
조회 : 1,094  

요약: 정조는 계몽개혁군주가 아니다. 오히려 왕권강화를 위해 성리학적 신분질서와 반개혁적 체제만을 더욱 강화시켰다. 등등.
매우 비상식적이고 일방적인 편향된 주장인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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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 21-07-05 09:14
   
mymiky 21-07-05 12:21
   
개혁 계몽군주상을  유럽  계몽군주들처럼 생각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이분들도 당시 관념을 다 버리진 않았습니다!)

정조는 조선의 왕이고
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정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당연히  유교의 틀안에서 배운 것입니다

유교에서 이상적인 군주란 요임금 순임금ㅡ 이런 분들 입니다

유교식 철인군주를 지향해서

본인 스스로가 공부도 빡세게 하고,  신하들보다 더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했습니다

단  이 방법은 ,  똑똑한 왕 1인체제에선  효과가 있으나

왕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ㅡ

원래 계획은  순조가 자라면 순조께 왕위를 물려주고
본인은  상왕이 되서, 수원으로  천도하려고 했는데

못 하시고 돌아가셨죠 ;;; 순조나이 고작 10세였습니다

정조 나이 48세이셨는데 (당시 기준에선 요절은 아닙니다)
근데 후계자를 너무 늦게 보신게 약점으로 작용한거죠

그렇다고 영조처럼 본인이 80대까지  장수하지도 못 했으니

갑작히  왕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의 공백이 생겨버린거고ㅡ

이후 조선에서 정조와 같은 왕은 나오기 힘들어 졌습니다;;;

순조는  어릴때 왕이되서  다른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편이였고

본인 스스로가 아버지처럼 카리스마로 제압하는
그런 성격이 못 되었습니다

그분의 성격 자체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였고;; 
(어린 나이때부터  시달리느라,  정치에 흥미를 잃은 것도 있습니다)

주변의 소수의  측근들에게 맡겨버리고
ㅡ  (결국 조선말기  세도정치로 발전하는데  큰 역활을 함)

대중들이 흔히  선조나 인조를 암군이라 하는데;;

이분들은 전쟁 이미지가 커서 오해를 받는 것이지;;
암군인건 아님

순조같은 왕이 암군임
하는거없이  자리보전만 잘 했던 왕이고ㅡ

순조가 왕이된  1800년대는
세계사적으로도  극적인 변화가 많은 시대였는데도

순조는
정말 한게 없음

호부견자의 사례랄까?

또한 순조 이후로 후계자들이 일찍 요절하는등
어린왕들이 줄줄히 오르게 된 것도

조선이 쇠퇴하는데 한몫함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한테 제왕학을 충분히 받고 자랐고
본인이 25세  성인으로 왕이 되었으나

그 이후 왕들은  (순조, 헌종,철종,고종)
그런 교육 받을 기회가 없이  왕이 된 사람들임

왕 자신이 군주로써 트레이닝 없이
덥썩 왕이되서

신하들을 제어하거나 조정의 힘을 분산시키거나
하는걸 잘하지 못 했음

이 시기를 세도정치기라고 부름
     
제로니모 21-07-05 12:46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정조가 신분질서에대해 정약용 등과 같은 기호남인 같은 초계문신들과 함께 개혁을 시도하고 토지개혁을 시도하려고 수없이 노력한 부분은 인정하지않고 정조가 오히려 더 성리학적 근본주의로 되돌아가고 개혁을 막았다하는 저 유튭 영상이 이해가 안되서 올린겁니다. ㅎ
mymiky 21-07-05 12:45
   
정조는 그 당시 동아시아 기준에선

나름 준수하고 유능했던 왕인데ㅡ

그걸 무리하게 서양식 계몽군주식으로  덧씌우려니까

안 맞는게 당연한거

거긴 거기고

조선은 동양국가이고
이 동네는  여기  풍습이 따로 있는 것임!

이점을 잊으면 안됨
     
제로니모 21-07-05 13:00
   
것두 그렇지만.. 실제로 정조가 죽기 3달전인 1800년 5월 말에 오회연교라고 끝까지 정조의 개혁(신분제철폐와 토지개혁)을 반대하던 노론세력들에 최후의 통첩을 했었고 그 후 석달을 못넘기구 의문사를 하죠.

그것만 봐도 정조가 개혁정치를 꺼꾸로 되돌리는 반동의 군주나 전형적 전제 절대군주라고만 강조하는건 아니라고보여요.

물론 왕의 권력을 포기하고 군주제를 뒤엎거나 아님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저항하는 당시 초기득세력인 노론벽파세력들을 완전 작살내고 돌파하려했던건 아닌거 같습니다만..
(왜냐면 탕평책을 계속 쓰며 주요 요직에 노론 벽파나 소론, 남인을 돌아가면 썼으며, 적어도 겉으론 심환지, 김종수 같은 노론벽파영수들과도 교류가 있었던건 분명하니깐요.)

하지만 분명한건, 정조의 많은 군호 중에 정조가 죽기 2년 전부터 '만천명월주인옹'을 쓰지않습니까? 이 내용을 보면 결국 땅의 신민(백성)을 빛추는건 오직 하늘(군주)이며 그 사이에 구름(신하, 정치권력가)이 이를 방해해선 안된다는 의미니...

이건 곧 정조가 평생을 방해하고 저항하는 노론 전체에대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정책적 방향을 엿볼수 있는거구요. 그게 바로 성리학적 신분질서를 뒤집을 신분제폐지와 토지개혁을 염두해둔게 아닐지..
mymiky 21-07-05 13:10
   
순조 원년에 관노비 폐지는  원래 정조가 하려 했던 일입니다

정조가 죽어서,  아들인 순조의 업적처럼 되었지만;;

관노비를 양인화 시켜서 , 차라리 세금을 더 거두어 들이는게

국고도 채울수 있고ㅡ 그걸로 여러 정책들을 해나가는데 자금이 되니까

더 유용하다 생각해서 정조가 하려고 했죠

사노비들이야 양반들의 반발이 클거니까

일단 국가에 소속된 공노비들은

왕인 자기가 풀어줄수 있으니까  그들부터 실행  한거구요

순조대  관노비 해방령을 시작으로

고종대는  사노비 세습폐지, 임금 지불(월급 받는 머슴이 이때 생김)

더 나아가
조선의 모든 신분제도 법적 폐지(갑오개혁)까지 이르게 되는 겁니다
     
제로니모 21-07-05 13:30
   
실제 사노비해방도 염두해뒀던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정조가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보구요.

사노비는 양반사대부들의 가장 큰 재산이었으니 엄청난 내부적 반발이 있었을터..

사실 토지개혁 보다 더한 반발이 바로 노비면천이 아니었을런지..
          
mymiky 21-07-05 13:40
   
링컨이 흑인들이 예뻐서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한게 아니듯

정조 또한 노비들이 예뻐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모두 양인화 시켜서 세금 받는게

국가에 이익이 되고,  그걸로 혜택을 본 자들은

또  왕실에  충성하게 될 것이고ㅡ

그런  점을 생각한거죠

워낙 갑작히  죽어서  독살설이 나오고

특히 이 떡밥을 제대로 문 남인들이 들고 일어나고 했지만;;;

지금은 정조 독살설은  별로  근거가 없고

생전에 정조는  워낙  골초에다,  불면증을 달고 살았던 분이라

지금 학계에선 과로사 또는  뇌출혈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옹정제나  조선의 정조 모두 일 중독자들임

둘다 성격이 꼼꼼하고 예민하고  화내면 불 같고

작은 일에도 다 자기 손을 일일리 거쳐서 확인해야 안심하고ㅡ

그런 성격인 사람들이  원래 스트레스가 많음
               
제로니모 21-07-05 15:27
   
전문가별로 독살설을 신뢰하는 분들도 꽤 많더군요.

갠적으론 독살설이 더 맞을거 같습니다.

질병사로는 뇌출혈이나 패혈증으로 보는데.. 암튼.

병이 발병하고 불과 두어달 만에 급사하는 그 과정이 매우 석연치않은 부분이 넘 많아요.

수은으로 연훈방치료라든지 부터..
                    
mymiky 21-07-05 16:25
   
연훈방  치료에 미량의 수은이 들어가긴하나

현대 한의학계는

당시 기록으로

그 정도  연훈방 치료한다고  죽을 정도로 치사량은 아니라함

그래서 요새 수은 중독설도 쏙 들어간지 오래됩니다;;;
안매운라면 21-07-05 22:25
   
졸라 어처구니없는 채널임.
온고이 지신 하자는 말이 온고에 방점이 찍힌다는 헛소리는 얘한테 처음 들음.
조선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애들은 진의가 의심스러움. 거기다 현정부를 조선에 등치시키기까지.

https://youtu.be/6fsZAK8pFNU?t=892

즉,
조선은 망해도 싸다
>> 일본이 병합할만 했다
>> 과거청산은 의미 없다
>> 과거를 잊지 않으려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과 닮았다.
이거임

닮긴 X발 어이가 없어서. 청산하지 말자던 새끼들의 세상이 얼마나 권위적이었는지 싹 감추고 이딴 소릴 하고 자빠졌는지.

조선을 깐다?
짜장이거나 토왜거나 의심부터 해봐야 함.
     
제로니모 21-07-06 12:58
   
네 제 생각과 거의 일치하네요.

이 여자 보니 다른 영상엔 이완용이 과연 매국노일까? 란 편에선...

말도안되는 논리로 이완용을 쉴드치는 듯한 말을하더군요.

교묘히 논점을 비틀고 자신의 논리에 맞는 부분만 채용하여 주장하는 견강부회나 곡학아세란 말이 딱 어울리는듯하네요.

이런게 혹세무민이지 달리 혹세무민이 아닌거.

전의 영상들을 대강 살펴보니 사이비 이단 개독이 베이스에다가 극우 식근론이나 시혜론 관점에서 역사공부를 한 인간 같음.
비좀와라 21-07-06 09:20
   
정조가 독재자 였는지 아님 나름 성군이었는지는 시대의 흐름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유럽 같은 경우 중세 봉건 시대에 각각의 영주들이 다스리는 수 많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보니 한 나라라는  인식이 희박 했지요.

이러다가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서 많은 영주들이 참전했고 죽었는데 이들의 영지를 왕과 교황청이 압수하는 상황이 일어났고 결국은 왕은 각국의 가장 강력하고 절대세력이 되었고 이들의 왕권을 강화하려다가 결국은 교황과 맞서게 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것 이거든요.

유럽의 많은 나라중에 절대왕권을 가장 먼저 확립한 국가 프랑스이고 루이 14세 때인데 루이 14세는 근대적인 의미의 삼각측량법을 이용한 지도를 만듬으로써 한 나라라는 인식을 확립하고 중앙은행을 만들어서 세금과 경제를 장악합니다.

이 때 부터 근대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현대적 의미의 민족주의가 탄생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알다시피 루이 14세는 독재자 였어요. 절대왕권을 만들다 보니 기존의 영주들이 반발하게 되는 것 이거든요. 그런데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루이 14세가 옳았단 말이죠.

똑 같은 의미로 당시 정조의 정책을 일종의 유교식 절대왕권을 확립할려고 하는 것이고 이에 기존의 사대부들이 반발하는 것 이에요.

정조는 일단 군사력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권을 확립 함으로써 민족주의 국가의 조선을 만듬과 동시에 근대화를 이루려고 했던 거죠. 이 게 정조가 일직 죽고 그의 후계자가 없다보니 무산된 거죠.

결국은 역사의 흐름적인 면에서 정조의 선택은 옳았다고 봐야 합니다.
구름위하늘 21-07-06 15:49
   
계몽은 중세 한참 뒤에 이후에 나온 서양의 개념이지요.
동양에서 계몽이 필요한 개념인지는 의문.

이건 서양의 보편적인 제도인 봉건제가  동양에서는 중국 초기(주나라)에서나 볼 수 있던 후진(?) 제도인데
그 이유는 중앙집권제가 훨씬 빨리 정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양은 중앙집권제에 가깝던 로마 이후로 오히려 봉건제가 대두.
계몽군주는 봉건제를 뚫고 중앙집권제를 겨우 달성한 군주 중에서
계몽주의를 위에서 부터 시작해서 비교적 민주(?)적인 통치를 했던 왕이라는 개념.

동양은 전제군주를 오래해왔지만 유교/불교의 비교적(?) 백성 중심의 통치를 해왔음.
서양 계몽군주가 꿈꾸던 모습은 이미 유교/불교의 정치사상(성인군자, 전륜법왕)에는 있던 모습입니다.
검군 21-07-07 18:08
   
노래는 한곡인데 해석은 제맘대로 각각 이게 세상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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