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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30 13:41
[한국사] 조선현과 수성현의 위치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774  

1. 조선현의 위치

"한서 지리지 낙랑군조”를 보면 낙랑군에 속해있던 25개의 현 가운데 조선현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응소는 주석 하기를,

기자가 봉해졌던 곳이다.

라고 하였다. 서한시대의 낙랑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 한국 사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이지만 필자는 그곳이 난하 하류의 동부지역일 것으로 믿고있다. “위서 지형지 평주 북평군조”를 보면 북평군에는 조선과 신창 두 개의 현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현의 주석에는

서한.동한을 거쳐 진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낙랑군에 속해 있다가 그후 폐지 되었다. 북위의 연화 원년 (서기 432년)에 조선현의 거주민을 비려현으로 이주 시키고 다시 설치하여 북평군에 속하게 했다.

고 하였다. 따라서 조선현의 위치는 서한시대부터 진시대까지는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진서 지리지 평주 낙랑군조”를 보면 진시대의 낙랑군은 한시대에 설치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조선.둔유.혼미.수성.누방.*망 등 6개의 현이 있었는데 ,조선현은 기자가 봉해졌던 곳이고 수성현은 진제국의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고 주석 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진시대의 조선현은 기자가 봉해졌던 곳이라고 하였으므로 그 곳이 서한시대의 조선현과 동일한 지역이었음이 확인된다.


2. 고대 중국인이 생각한 "조선"의 유래

그런데 “사기집해”에 의하면 중국의 삼국시대 위국인인 장안은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열수.선수가 있는데 이 세강이 합하여 열수가 된다. 아마도 낙랑의 조선은 그 이름을 여기에서 취하였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조선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가부를 논하는 것을 보류 하기로 한다. 그런데 위 내용에서 확인되는 것은 삼국시대의 낙랑군 조선현 지역에 습수.열수.선수라는 세 지류가 있는 열수라는 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같이 낙랑군 조선현은 서한시대로부터 동한.삼국시대를 거쳐 진시대까지는 그 위치가 변화되지 않았었으므로 위의 세 지류가 있는 열수를 확인해 낸다면 그 지역이 낙랑군의 조선현으로 기자가 거주했던 곳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서 그러한 명칭의 세 지류를 가지고 있는 강은 지금의 중국의 동북부에 있는 난하밖에 없다. 지금의 난하는 류수라고도 불리어졌는데 “수경주 류수조”를 보면 류수에는 습여수.무열수.용선수의 세 지류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앞에서 인용된 장안이 말한 습수는 습여수, 열수는 무열수, 汕水(산수)는 용선수의 약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산수가 용선수의 약칭이었음은 “사기색은”에 조선의 명칭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鮮(선)의 음은 仙(선)인데 汕水(산수)가 있었으므로 취하였다.고 하였으니, 鮮(선)과 汕(산)은 통용되었으므로 용선수의 약칭이 汕水(산수)였을 것임을 알수 있다.

중국문헌에서 이와 같은 약칭이 사용된 예는 흔이 있는 것으로 淸漳水(청장수)를 漳水(장수), 鴨綠水(압록수)를 鴨水(압수)로 표기한 것도 그 한 예이다. 따라서 습수,열수,산수의 세 지류를 가지고 있던 열수는 지금의 난하 본류나 그 지류였음을 알 수 있으니 결국 서한시대부터 진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낙랑군 조선현 위치는 지금의 난하 유역이었다는 것이 된다.


3. 수성현의 위치

조선현의 위치가 지금의 난하 유역이었음은 수성현의 위치가 확인됨으로써 더욱 분명하여진다. 앞에서 인용된 바와 같이 “晉書(진서) “지리지”에는 진시대의 낙랑군에는 조선현.수성현 등 6개의 현이 있었는데 수성현은 秦(진)제국의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진제국의 장성은 진제국과 고조선의 국경선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그 동단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북부 난하 하류 동부연안에 있는 창려현 갈석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고증한 바 있다.


4. 갈석산의 위치

그러므로 서한시대로부터 진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수성현은 지금의 난하 하류 동부연안에 있는 창려현 갈석지역이었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필자의 견해를 “사기” “夏本紀(하본기)”에 주석으로 실린 “사기색은”과 두우에 의하여 편찬된 “通典(통전)”의 내용이 뒷받침하여 준다.

“史記索隱(사기색은)”에는 “태강지리지”를 인용하여

낙랑의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

라고 하였고, “通典(통전)”에는 당시의 용선현에 대해서 주석하면서,

한시대의 비려현 지역으로 갈석산이 있었는데 바닷가에 우뚝 솟아 서 있으므로 그러한 명칭을 얻었다. 晉(진)시대의 “태강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秦(진)장성의 축조가 시작된 곳이다.

라고 하였다. 갈석산이 지금의 난하 하류 동부연안 창려현에 있고, 한시대의 비여현 위치가 지금의 난하 하류 동부연안이었음은 이론이 없다. 결국 조선현과 수성현은 지금이 난하 하류 동부연안에 서로 근접하여 위치하였고 이두 현을 포괄한 난하 중류와 하류 동부연안지역이 한사군의 낙랑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성현에 속해 있었던 갈석산은 지금의 발해 연안에 있으므로 수성현은 발해와 접해 있었고 수성현의 북쪽에 조선현이 위치했었을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조선현은 난하의 중하류 동부연안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漢書(한서)” “嚴朱吾丘圭父徐嚴終王賈傳(엄주오구규부서엄종왕가전)” “賈捐傳(가연전)”에는 서한 무제의 업적을 말하면서

동쪽으로 갈석을 지나 玄菟(현토)와 낙랑으로써 군을 삼았다

고 했는데 이 기록은 매우 정확한 것으로 한사군(후에 현토,낙랑 두 군이 되었음)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면 중국의 하북성 동북부 난하 하류 동부유역에 있는 갈석을 기준으로 해서 그 위치를 말할 리가 없는 것이다.



출처. 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


1. 이상에서 보듯 고대중국인들은 조선이란 국명과 조선현을 구분했습니다. 조선현은 고대중국인들에겐 조선의 상징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거기에 있는 강이름으로 나름 합리화했던것.같습니다.
2. 강단주류사학계는 그를 지지하는 분들은 수성현의 위치와 갈석산의 위치를 논증해내야 합니다. 이병도의 황해도 수안현이란 주장은 웃음거리로 전락했습니다.
3. 중공이 동북공정을 하기 이전인70년대까지만 해도 철저한 실증주의와 유물사관으로 무장된 논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갈석산은 당시에 논란속에 현재의 갈석산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조조가 올랐던 바로 그 갈석산이 진한시대 조선과 진한사이의 국경애 있었던 갈석산입니다. 이병도의 황회도 구월산설은 웃음거리로 전락했습니다.
4. 선사시대와 달리 역사시대는 문헌이 있고 문헌연구를 통한 위치비정과 고고학적 발굴에 의한 입증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관련 문헌에 대한 연구로 위치비정을 제대로 해야하며 윤내현교수는.사소한 허물보다 연구업적이 비교불가능할 만큼 대단한 학자입니다. 함부러 폄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번호는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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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21-07-10 17:06
   
진장성의 시작점인 수성현의 위치를 고찰해 보면..
1)  전국시대 무수가 수성현이다

廣信軍治遂城縣 戰國時武遂縣地 秦築長城所起因名遂城 本朝建軍 東至安肅軍 二十里西至長城 광신군 치소는 수성현이다. 전국시기 무수(武遂)현의 땅이다.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라 하여 수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조(송나라)가 군을 세웠다. 동쪽에는 안숙(安肅)군이 있고, 군에서 20리 서쪽에 장성이 있다.
[출처 『무경총요武經總要』前集 권16 上
     
수구리 21-07-10 17:10
   
2) 전국시대 무수(수성현)는 한나라 하간국에 있다

河間國(하간국) 縣四(현사) 4개의 현(縣)이 있다.
武隧(무수) 莽曰桓隧(망왈환수) 무수현(武隧縣)은, 왕망(王莽) 때는 환수(桓隧)라고 불렀다.
[안사고(顔師古)는 말하기를, "수(隧)의 음(音)은 수(遂)이다"라고 했다
[출처] 하간국 河間國(한서지리지下)
     
수구리 21-07-10 17:12
   
3) 무수는 무강이다
『당나라 두우의 통전』 지명
○신도군, 기주 信都郡 冀州지저우 领县九:信都 남궁南宫 당양堂阳 무강武强(우창 漢무수武隧縣) 下博 枣强 형수衡水(헝수이) 阜城 武邑
[출처] 낙랑군 조선현 한현도 지리추적-2
     
수구리 21-07-10 17:16
   
4) 무수는 형수시 무강현 북서쪽에 있고
무강현 북서쪽은 안평현安平縣이다

하간국(河間國) : 전한시대 하간국 총 4현이다. 서울은 악성현이다
무수현武隧縣 :형수이시衡水市 우창현武強縣 북서
[출처]하간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수구리 21-07-1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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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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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장성 연장성이 시작된 요동군 양평은 형수시 안평현이다

진秦장성, 연燕장성 동쪽 시작점인 양평襄平(수성현)은
전국시대  연나라에서 무수(武隧,武隧)로 이름이 바뀌었고,
형수이시衡水市 우창현武強縣 북서 방향의 안평현安平縣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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