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라 시기 오국부, 훗날 이름으로 오국성이 있던
흑룡강성 의란현에서
이란현
https://maps.app.goo.gl/kUuwuHAZchi6RCKKA
그 동북쪽으로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 변경주의
흑룡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흑룡강 하구 남안까지입니다
Konstantinovka
https://maps.app.goo.gl/MBgxhA5nZtu2emZLA
또한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북쪽의 항카호수 북쪽이
그 활동 영역의 남부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힝카호수 남쪽으로는
부여/옥저 계통의 정주문화가 BC 15세기 전후부터
형성돼 쭉 내려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면
숙신의 영역이 흑룡강 남쪽의 연해주 거의 다였는데
강국이 아니었냐 싶으실텐데요
이 지역
흑룡강부터 그 평야지대는 거의 다 늪과 습지였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촌락이 형성돼 있지 않습니다
또한 땅에 소금기가 있어요
숙신은 늦어도 BC 3세기부터 부여에 복속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AD 3세기에 반란을 일으켜서 독립합니다
이 당시의 이름은 읍루였습니다
부여는 읍루를 단순 복속시킨 게 아니라 세금을 징수했으므로 읍루, 즉 숙신 영역도 실상 부여의 강역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고구려에 들어와서 깝죽대다가 고구려한테
털려서 저 연해주 끝 흑룡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까지 찌그러져 살다가
백제의 사주를 받고서
현 하얼빈 일대에 물길국을 세웁니다
그런 후에 6세기 말 경이 되면
고구려에 완전복속돼서
흑수말갈, 호실말갈 등으로 그 이름이 바뀌어 등장합니다
고구려가 망한 다음에는 현 하얼빈과 의란현 일대에서
소흥안령~흑룡강 안팎에 있었는데
거란의 696년 반란으로 당나라가 칠로도산 동북쪽 지배력을 상실하고 동시에 발해가 건국이 되는데요
720년을 전후해서 거란에 친당세력이 집권하면서
당나라가 칠로도산 밖(쉽게 말해 장성 밖)으로 다시 진출한 때가 두어 차례 있었는데
이 때에 발해를 견제하고자 하는 흑수말갈과 당나라의 실익이 짝짝꿍이 맞아서 둘이 붙어버려요
이것이 결국 발해의 등주함락과 도산전투라는 당나라 대침공까지 야기하게 됩니다
물론 흑수말갈은 발해에 완전복속되고요
이들은 우리네 삼국시대까지 돌화살촉 쓰던 이들이고
요나라 당시에는 갑옷 만드는 기술도 없던 이들입니다
제가 이걸 어떻게 잘 아느냐 하면
관련 사서 가지고 이거 연구하는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