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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21 11:45
[한국사] 백제의 요서경략. 학자들의 충고
 글쓴이 : 나무나무통
조회 : 1,428  

책을 읽다 잘못된 판단으로
이상한 결론에 이르지 않으려면
연구하는 사학자들의 글을 기준 삼는게 최선일겁니다

사료가 빈약하고 아직 연구가 덜되분야일수록.
고대사 분야는 노태돈교수가 쓴 한국고대사
그리고 젊은 학자들이 쓴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이런 책을 보면 헛된길은 가지 않겠지 않나 해서 읽어보면

읽히지가 않는게 사료가 불충분해서 끊어져서 그런게 아니라
왜 자기들  예단을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때문에

백제가 요서에 있었다라는것을 왜 민족주의 타령하면서
여전히 비판하는지.
삼국유사봐도 마한이 바다를 건너 오고
중국사서에 백제가 바다를 건너 이동하고
그럼 민족주의나 팽창주의 따지기전에
그 당시 요서쪽에서 이동하고 지속적인 네트워크나
거기에 맞는 정치체재나 세력을 유지하고 교통하는.
유목민들도 있지만 해상세력을 갖춘 유목민일수도 있을텐데

끊임없이 일려들어오고 합쳐지고 만들어져가는
역동적인 사회들을  몇가지 문헌자료만 가지고
본인들이 고정된 시각으로만보면  그게 읽다가
도대체.

유튜브에 보니 언어학 전공한분이 반도 일본어라는 일본 언어학
가설을 소개하면서 학문일뿐 다른 민족적 감정은 배제하고
학문을 학문으로 받아들여야 하면서 얘기하는데
원론적으로 맞는 얘긴데
언어학 하는분이 그때 대규모 이동과 국가성립 망하고 흥하고
이해못하면 일본어가 한국어에 들어 왔다고 하는데
백제든 가야든 대규모 이민이 일본에 들어갔고
거기서 세력을 키웠을거고
그 세력을 키우면 다시 자기들 원래 지역으로도  돌아왔을수도
있고 그런세력이 버티다 일려 내려가면  그 변화된 언어집단이 전방후원분을 만들고
소멸되면서 언어를 일부 남길수도 있고

뭐가 맞는지는 학자들이 한다지만
이동이 있던 시절 이동에 대해서는 봉사같은 얘기들만 하면서
그 틈을 얘기하면 민족주의 타령을.

트로이 대규모전쟁이 신회같지만 기원전 10세기
해상 이동이 기원전 2세기 부터황해를 중심으로 대규모 이동과
변화가 있었다는게 받아들이기 힘든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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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21-06-21 14:23
   
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대한국제 학술문화제가 지금 이시간부터 4일동안 생방송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AN8x8jbqUA
     
나무나무통 21-06-21 15:03
   
환단고기는 예전 번역되어 나온때 읽었을 때는 충격적이었는데
중국역사 읽다보니
왜만한 유목민들이나 북쪽의 오랑캐라 불린 부족중에 중국을 점령 안한
부족은 없더라고요
중국의 일부냐 전체냐
전체는 몽골과 여진. 몽골은 그야말로 세계전체를.
옆에 몽골 여자분 인터뷰 동영상보니 어순이 같아 한국말 배우기도 쉽다고
오히려 환단고기얘기와 과거 영토 얘기하면 그냥그럴수도 있고
별 의미 없다고 생각된게
가장 가까운 역사에 청은 여진족이  몽골 다음 가장큰 영토와 서진을 지속적으로
했었는데  적은 인구를 가지고요
그런데 지금 역사외에 흔적도 없어졌는데
과거 우리조상부족이 넓은 영토 못가질이유도 없지만
남겨진 자료가 부실한거 보면 청나라 여진처럼 그냥 그 이후 소멸되어
흔적이 적어졌을수도 있고요

더 관심이 줄어든건
어제도 미국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8위로 발표되던데
지금 시점이 우리역사 최강인데 굳이 과거 영광에 메일이유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스리랑 21-06-21 16:28
   
네, 말씀 고맙습니다. 다음은 전 단국대 윤내현교수님의 말씀입니다.


"고대사는 우리 민족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중국이나 일본도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대사를 가장 먼저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바로 고대사 부분이다. 이런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대사에 접근하게 되었던 것 같다.


197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중 기자(箕子·우리나라에 처음 중국 문화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진 인물)에 관한 북한과 중국의 연구 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국내 학자들의 학설이 명확하게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상 왕조사의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기자는 조선에 봉해졌지만 상나라 조선현감에 봉해진 것이므로 고조선의 왕이 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국사학계에서 전혀 반응이 없어서 이 부분을 좀 더 연구하여 1982년에 한국사에 대한 첫 논문 '기자신고'(箕子新考)를 발표했다. 당시 국내학계에서는 기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선진문화를 전해주었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과 기자는 오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두 학설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논문 발표 후 큰 논란이 일고 주류 학자들의 비난도 거셌다고 하던데.

"이 학설이 당시의 두 가지 주장과 다르다 보니 고조선사에 기자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던 차에 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이었던 이현종 선생이 "내친김에 중국 고대문헌에 고조선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논문을 써보라"고 권해


1984년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됐다.



이병도(전 서울대 교수)의 제자로 광복 후 우리나라 고대 사학계를 주도하던 김모 교수가 발표 전에 "
오늘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안 된다"고 말했으나 농담인 줄 알고 준비한 대로 발표했다. 그런데 토론시간에 그분이 책상을 마구 치면서 "젊은 사람이 선배 교수에 대한 예의도 지킬 줄 모른다. 영토만 넓으면 좋은 줄 아느냐,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며 화를 냈다.


학자는 새로운 것을 밝혀내거나 잘못 전해온 것을 바로잡는 것이 본분인데 '선배 교수들에 대한 예의'를 더 중시하는구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일제가 조직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해 한국사를 왜곡한 책임이 있는 이병도의 식민사학에 예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니 일제의 학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고대사 연구를 접는 게 편하지 않았나.


"애초에는 기자에 대해서만 연구하고 한국사에서 손을 떼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물러서면 내 주장이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 같아 그 뒤로 중국사를 제쳐두고 한국 고대사 연구에 집중했다.


중국 고대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국경, 사회구조, 통치조직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 고조선 전체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발표하게 되었다."
               
스리랑 21-06-21 16:32
   
-선생님을 재야사학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제의 단군신화론이 한국 사학계의 정설이 되면서 고조선 연구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만주지역을 언급한 분은 신채호, 정인보, 장도빈 등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들뿐이었다. 광복 후 우리 사학계는 그분들의 연구를 인정하지 않고 독립운동 하던 분들이 애국심, 애족심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쯤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연구한 기자, 위만, 한사군 한반도설을 복창하던 이병도 등의 주장을 철저한 사료적 근거를 토대로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닌 허베이성 난하 근처에 있었다고 밝혔고, 그 내용이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비슷하니까 주류 학계에서는 나는 재야사학자로 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밀한 학문적인 사고와 방법을 사용하는 강단사학자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의 시각을 따르는 선배의 학설조차 비판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고대사 분야에 젊은 학자들이 없고, 있어도 선배의 연구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연구는 아예 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식민사학 이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국사학계에서 발을 붙일 수가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배 학자들의 잘못을 꼬집은 나는 강단학자가 아닌 셈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사학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는지.

"학자들이 진실을 깊이 연구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정부가 남북 분단과 이념대립 문제에만 관심을 쏟다보니 역사의 핵심을 놓친 점도 있다. 또 일제 때 호의호식했던 친일세력의 후손들이 공부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관계로 진출을 많이 했고,

그들이 정부 정책과 예산의 칼자루를 쥐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특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리랑 21-06-21 16:34
   
-어떻게 해야 우리 역사학계를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보면서 세계적 보편사와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런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도권 학자들에 휩쓸리지 말고 많은 연구자들이 토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 제도권 학자들도 선·후배 학자 간에 비판을 주고받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무나무통 21-06-21 16:50
   
윤내현 교수가 단대출판사에서 낸게 중국의 원시시대 인가 하는 책일겁니다.80년대
고민할 필요없이 국경선이 없던시절 연구하면 한국사 틀에 사로잡힌 분들보다 시야가
훨씬 넓고 일본애들 시각에 구애 안받았겠죠.
어떤식의 접근이냐에따나 달라지겠지만  지금 역사전공 아닌사람이 역사를 보면서 도움을 받을게 무언가 생각해보면
80년대는 윤내현교수처럼 새로운시각을 고고학과 문헌으로 고증하는데 도움을 받았죠

그럼 지금은
우리가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강대국에진입한 즈음에
삼국초기 역사보면 다양한 유입이 되고 거기서 인재들이 발탁되고  융합이되어가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나에 대한 답이 환단고기에 있는디
지금 현실의 문제에 추상적인 원칙외에 실제적인 도움되는 얘기들이 있는지
저 학회에서 어르신들 얘기하는게 뭔 의미가 있나는 의문은 가지고 있습니다

박혁거세가 다섯동강이가 나고
석탈해는 어디선가 왔는데 왕까지 되고
말갈 낙랑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받아들어지고
그런 과정들에 대해 읽을만한 뭔가가 있어야 역사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리랑 21-06-21 16:38
   
이희진박사는 자연과학을 전공하려 들어갔던 고려대학에서 인문학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제 발로 역사학을 전공하는 가시밭길로 뛰어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하필 역사학 중에서도 가장 험악한 고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 와중에 못 볼 꼴을 많이 보게 될 고대 한일관계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연구성과도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가야 정치사연구』부터 『가야와 임나』, 『거짓과 오만의 역사』등 그 분야에 집중되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고대사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미천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이러한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다.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의 저자 이희진박사는 청산해야 할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을 때, 역사가 어떻게 뒤틀린 길을 가는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고대사 학계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병도가 키운 제자들이 대한민국 학계를 장악하고 역사학을, 기득권을 수호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키운 결과가 바로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기득권 수호 투쟁이 어떻게 학계의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학자들을 패거리 집단으로 전락시키며,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짓을 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는 파렴치한이 되고 있는지를 저자는 처참한 내부 고발자의 심정에서 진술하고 있다.


이들에게 연구 기금과 학회지 발간 및 활동비를 지원하는 관료들이 결국 이들과 야합하게 되는 과정을 이 책에서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가 무사안일과 출세주위에 물든 관료들의 손을 통해 학계 기득권 세력에게 선심 쓰듯 뿌려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또 이러한 학계 기득권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언론이다.
     
나무나무통 21-06-21 17:03
   
제대로 볼려면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회고록에
왕따이상 서울대에서 강의할때 김원룡이 스에마스 강의 참관  얘기가 나오죠
그리고 외골수로 농업사 연구하시고
그런게 정리되려면 생물학적인 사망이 될때까지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우리가 못살때 고민하던게 지금은 훅 밧어난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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