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1-06-12 11:14
[한국사] 명상황후 사진의 진위와 건청궁 곤녕합 옥곤루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491  

※ 아래의, BTSv님의 게시글을 받아서 이 글을 올립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3104&sca=&sfl=&stx=&sst=&sod=&spt=0&page=0





■ 단서 : 옥호루(玉壺樓) 사진

이 사진은 촬영자와 촬영일시 정보가 불명확한데 위키백과의 사진 설명에는 "1898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이라고 돼 있다. 명성황후는 1895년 음력 8월에 시해됐는데, 이 해가 을미년이었던 까닭에 '을미년에 벌어진 참사'라 하여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고 한다.

경복궁의 후원에 있던 건청궁(乾淸宮)은 애초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 역대 조선 임금의 어진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처음의 목적과 달리, 을미사변(1895)으로 고종이 그 이듬해 아관파천(1896)을 하기 전까지 고종과 황후의 침전으로 쓰였다. 건청궁에 속한 건물로서, 고종의 침전은 장안당(長安堂), 황후의 침전은 곤녕합(坤寧閤)이었다.

옥호루(玉壺樓)는 황후의 침전인 곤녕합(坤寧閤)의 남쪽 누각이다.

즉 만약 이 사진이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전에 찍힌 사진이라 한다면, 황후의 침전인 곤녕합의 옥호루에 찍은 사진이요 사진의 구도 상 옥호루의 방 안에 있는 인물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해당 인물이 명성황후거나 적어도 명성황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황실의 중요 인물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명성황후는 옥호루에서 시해되었다.



■ 옥호루(玉壺樓)인가 옥곤루(玉壼樓)인가 

(이하는 하단에 명기한 조선펍의 기사를 발췌한 것이다)

현재 경기도 여주의 명성황후기념관에 명성황후의 필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玉壼(옥곤)’이라는 두 글자가 보인다. 얼핏 보면 ‘玉壺(옥호)’로 읽기 쉬우나 壺(호)와 ‘壼(곤)’은 분명 다른 글자다. 壼(곤)은 ‘궁궐 내의 길’이라는 뜻에서 내궁(內宮), 내실(內室)이라는 뜻으로 쓰이는가 하면 여기서 발전하여 중전이나 왕비의 뜻이 되어 곤전(壼殿)이나 곤위(壼位)와 같은 단어로 쓰였다. 이는 또 곤전(坤殿)이나 곤위(坤位)와 동의어로 곤(坤)과 곤(壼)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임을 알 수 있다.

명성황후의 '옥곤' 묵서의 ‘壼(곤)’자 아래에는 ‘모든 사물이 다 형통하도다.’라는 뜻의 品物咸亨(품물함형)과 ‘끝이 없이 덕과 부합한다.’는 뜻의 德合无疆(덕합무강)이라는 여덟 글자가 백문(白文)과 주문(朱文)으로 찍혀 있다. 모두 『주역』 「곤괘(坤卦)」에 나오는 글이다. 명성황후는 옥곤(玉壼) 두 글자를 쓰면서 「곤괘」를 의식하였음이 분명하다. 더불어 건청궁의 건물 명칭을 정할 때 명성황후도 직접 관여하거나 최소한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경복궁 건청궁은 고종의 거처이자 사랑채에 해당하는 장안당(長安堂)과 명성황후의 거처이자 안채에 해당하는 곤녕합(坤寧閤)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들이 채워져 있다. 건청궁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다시 함광문(含光門)을 거치게 되는데 ‘함광(含光)’도 『주역』 「곤괘」에 나오는 ‘含弘光大(함홍광대)를 줄인 것이다. 다시 함광문을 들어서면 비로소 곤녕합과 옥곤루 현판이 걸린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건물들은 모두 「곤괘」의 의미를 담은 중전의 공간이다. 그러니 곤(坤)과 의미가 통하는 곤(壼)을 써서 옥곤루(玉壼樓)라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주역(周易)』에서 곤(坤)은 여러 면에서 건(乾)과 대응되는데, 건의 성질이 강건(剛健)함에 비하여 곤은 유순(柔順)함을 뜻한다. 건(乾)이 남성성(男性性)을 대표한다면 곤(坤)은 여성성(女性性)을 대표한다. 건(乾)이 임금을 상징한다면 곤(坤)은 왕비를 상징한다. 그래서 곤녕합(坤寧閤)은 왕비가 편안하게 거처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어진 침전의 이름이다. 곤녕합에 이어서 2층 마루로 지어진 옥곤루는 그래서 호(壺)가 아닌 곤(壼)이어야 자연스럽다

김병헌(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조선펍 2017-10-27 기고 기사
http://pub.chosun.com/client/article/viw.asp?cate=C03&nNewsNumb=20171026611






■ 옥곤루 사진 속 인물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옥곤루 사진 속 인물은 명성황후의 것으로 추정되거나 주장돼 온 여러 사진의 인물과 매우 흡사한 용모를 지녔다.

명성황후는 1851년에 태어나 1895년에 돌아갔다. 

최초로 사진에 찍힌 조선인은 1863년 청나라를 방문한 사신단이었으며, 조선 영내에서 최초로 사진에 찍힌 조선인은 신미양요 당시 미 해군 측에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었고, 고종황제의 경우 1884년 퍼쉬벌 로웰이 최초로 사진을 찍었다.

만약 퍼쉬벌 로웰이 고종황제를 촬영할 당시에 명성황후 역시 촬영했다 한다면 명상황후는 우리 나이로 34살이고, 그 후 시해되기 전 어느 시기에 찍힌 사진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삼사십 대의 나이였을 것인데

사진 속 인물은 스무살이 안 돼 보이는 앳된 용모이다.

더구나 두루마기에 댕기머리를 한 도령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정리

1) 사진 속 공간은 옥호루(玉壺樓)가 아니라 옥곤루(玉壼樓)이다.

2) 옥곤루는 황후의 침전인 곤녕합 남쪽 누각으로서, 황후의 공간이다.

3) 사진 속 중심 인물의 용모는 명성황후로 추정되거나 주장돼 온 사진들의 인물과 매우 흡사하다.

4) 사진 속 중심 인물은 두루마기에 댕기머리의, 10대 도령(남자) 모습이다.



■ 결론의 몇 가지 안들

1) 댕기머리의 도령 차림을 한 명성황후일 것이다

2) 명성황후의 남자 형제일 것이다.



■ 자기 반론

황후의 침전, 즉 여성들의 공간인 곤녕합 옥곤루에 남자 세 사람이 있는 것과, 건물과 그 주변 모습이 깨끗이 정돈돼 있지 않은 모습에서 명성황후 사후에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찍은, 명성황후와 무관한 사람들일 것이다.



■ 필요한 정보

사진을 찍은 사람, 사진을 찍은 일자, 사진 속 좌우 인물 정보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감방친구 21-06-12 11:30
   
아래의 링크에 제시된 정보에는 해당 사진이 1920년에 찍힌 것으로 돼 있다.

The Imperial Teahouse or Okhoru Pavilion in the Geoncheonggung of Gyeongbokgung Palace, Seoul, South Korea, circa 1920. It was here that Empress Myeongseong (aka Queen Min) was assassinated in 1895. (Photo by Paul Popper/Popperfoto via Getty Images/Getty Images)

https://www.gettyimages.com/detail/news-photo/the-imperial-teahouse-or-okhoru-pavilion-in-the-news-photo/115583807
촐라롱콘 21-06-12 13:08
   
1920년 당시라면 옥호루가 포함된 건청궁 일대까지는 아니지만

광화문-흥화문-근정문 일대의 경복궁 남쪽에는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이 한창 진행중인 시기네요~~!!!

더구나 을미사변을 지나 다음해인 아관파천 이후 시기부터

고종은 러시아공사관과 경운궁(덕수궁)에서 쭈~욱~~

순종 또한 제위에 오른 이후부터는 창덕궁에서 쭈~욱~ 지내왔으니...

1920년은 고사하고 그보다 20여년 전인 1890년대 후반기부터

경복궁은 주인 없는 궁궐로 방치되다시피하여 하여 국권침탈 시기인 1910년 무렵 근정전에 일장기가 걸린

사진속 이미지에서도 관리가 안되어 곳곳에 잡초가 무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호랭이님 21-06-13 02:31
   
일단 역사를 논하기에 앞서 안경사로서의 시각으로는 저 사진속의 여인은 사시네요.  프리즘 처방이 필요해 보입니다
     
감방친구 21-06-13 08:45
   
여인이 아니라 소년(남자)으로 보이며
사시라기보다 죄측 하단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흑백의 어두운 사진을 컬러로 밝게 보정하면서 나타난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Total 5,04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826 [한국사] 민족반역자들이 설치는데도 찍소리 못하면서 뭘 잘… 스리랑 07-13 571
4825 [한국사] 한사군에 대해서 가장 압도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27) 감방친구 07-13 936
4824 [한국사]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역사를 탐구하는 곳에서 (9) 감방친구 07-13 517
4823 [한국사] 외국의 친한파 역사학자 중에 이상한 점 (7) 국산아몬드 07-12 1046
4822 [한국사] 사료개척에 입각한 주권사학의 변혁적 구상ㅣ임재해… (10) 스리랑 07-12 525
4821 [한국사] 『고조선과 21세기』저자: 김상태 -책을 추천해드립… (10) 보리스진 07-11 616
4820 [한국사] 연구자들이 논문을 공개하고 책을 펴내는 이유는 (4) 감방친구 07-11 503
4819 [한국사] 사람들이 책 자체를 잘 안 읽습니다 (16) 감방친구 07-11 516
4818 [한국사]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있네요 (25) 감방친구 07-11 540
4817 [한국사] 대안사학 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제안합니다. (37) 엄근진 07-11 502
4816 [한국사] 우리 고대사 공부를 위한 루트 (15) 감방친구 07-10 680
4815 [한국사] 윤내현 고조선연구. 감상과 요약 (27) 엄근진 07-10 766
4814 [한국사] 150여 년 전 경복궁 분뇨 정화조(ft.수세식 변소) (5) 감방친구 07-08 1357
4813 [한국사] 초중고 역사교과서의 선사와 고조선 서술문제검토 스리랑 07-08 478
4812 [한국사] 신라 황금보검과 동일 삼태극 문양의 류쿠국 국기 (1) 조지아나 07-07 1307
4811 [한국사]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나온 돌궐 영역 지도 (74) 감방친구 07-07 1271
4810 [한국사] 주주통신원, 고대사 논쟁에 뛰어들다 (1) 지누짱 07-07 662
4809 [한국사] [사견] 말갈박사의 말갈이야기 (10) 지누짱 07-06 794
4808 [한국사] 삼국사기 번역본 추천 부탁 드립니다. (10) 엄근진 07-05 672
4807 [한국사] 정조 전문가님들 이 여자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15) 제로니모 07-05 833
4806 [한국사] 난로회(煖爐會)는 조선 고유의 풍습인가? (13) 감방친구 07-03 1319
4805 [한국사] 친일청산을 실패한 대한민국의 현실 (5) 스리랑 07-02 1150
4804 [한국사] 중국과 한복 논쟁에서 아쉬운 점을 쓴 글!(필독) (9) mymiky 07-02 952
4803 [한국사] 소나무로 동북공정 타파 (2) 백운 07-01 1321
4802 [한국사] 단군조선사 왜곡의 실체 (6) 스리랑 06-30 1066
4801 [한국사] 삼한사의 재조명, 요약과 감상 (13) 엄근진 06-30 748
4800 [한국사] 조선현과 수성현의 위치 (5) 지누짱 06-30 487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