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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29 14:10
[한국사] 낙랑 문제에 대해서 제가 발제를 했는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834  

그 발제 핵심을 모르고서 헛다리 짚는 게시글과 댓글이 일부 유저의 도발로 여럿 달리는군요

어지간한 정보와 논의는
동아게에서 검색을 해보면 다 나옵니다
동아게에서 지난 수년 동안 많이 다뤘습니다

제 발제의 핵심은

전한과 후한-조위(-서진)을 구분해서
서북한 문제를 봐야 한다

서북한의 중국계 물질문화는
지배적이지 않을뿐더러
후한-조위(-서진) 시대의 것이 대부분이다

전한은 그 말기에 장성 밖 수비를 오환 등에게 맡겼는데
신(왕망)을 거쳐 후한 초기가 되면
오환이 지금의 산서성과 하북성 일대까지 차지하고 설쳤다

후한 말기 조조의 오환 답돈 정벌 기사를 보면
장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 이미 수백 년 유실된 상태로 방치된 정황 기사가 나온다

고구려 대무신왕 대인 서기 1세기
후한의 낙랑 접수는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하는 서북한 집단의 자구적 노력으로
후한에 정치ㆍ군사ㆍ경제적으로 스스로 의탁한 사실의 반영으로 봐야 하며

서북한 지역은 오늘날 조차지와 비슷한 성격으로서
후한-조위(-서진)과 중개무역을 하며
이득을 취했고

고구려는 이를 실리적 추구로 방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위략-삼국지-후한서 등은 이를 과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왜냐 하면

만약 그곳이 낙랑군이었다면
낙랑군으로서의 거명과 거론이 있어야 하는데 극히 적고
지배적이었다 하는데 그 적은 기술도 추상적이며
당시 한반도 상황에 맞지가 않다

서북한 지역에서는 이미 서기 1~3세기 고구려계 물질문화가 관찰되며

고구려계로서 차차 백제적 특성을 띠게 되는
백제계 무덤과 성이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황해도부터 강원도, 경기도, 충청남북도에 광범위하고
지배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후한에 비해서 조위는
고구려를 제압하면서 친중국계의 기미 방식의 교류지역에 불과한 서북한 지역에 대한 직접지배, 또는 강한 복속상태 구축을 시도했으며 그것이 기리영전투라는 기사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위 관구검과 왕기의 고구려 침략 당시
군사활동 전개지에는 서북한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조위의 침략군은 군량을 서북한이 아닌 현도에서 1천 리 떨어진 부여에 직접 가서 지원 받았다

즉 서북한은 조위에 복속된 행정지가 아니었고
영향관계를 주고 받았으나 전혀 강한 지배력이나 우위성을 획득하지 못 한 관계였음을 시사한다

만약 서북한이 낙랑군이었다 한다면
군량문제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에 있어서도 양쪽에서 고구려를 공격할 수 있었음에도 전혀 그러지 않았으며
도주하는 고구려군이 남하했다가 북상하였음에도 이를 막지 못 했고 오직 왕기의 군대만이 그 뒤를 쫓아갔다가 헛탕을 쳤다

서기 1~3 세기 고구려의 활동반경을 보면
이미 현 요녕성 서부는 물론 하북성, 산서성까지 나타난다

위략-삼국지-후한서-삼국사기 등을 보면
두 곳의 낙랑이 존재하였다

신라본기에는 대무신왕의 낙랑정벌 이후
낙랑기사가 나오지 않고 대신 백제가 등장한다

미천왕 기사에서 고구려는 낙랑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약탈한 것으로 그 어디에도 빼앗았다 하는 기술이 없다

사서 기록은 일관성을 띠는데
빼앗았으면 빼앗았다고 쓰고
약탈했으면 약탈했다고 쓰지
빼앗은 것을 약탈했다고 쓰지 않는다

장통의 낙랑 1000여 호 어쩌구는
모용선비의 장수 장통이 고구려를 침입해 주민 1천여 호를 약탈한 사실을 윤색한 것이다

당시 서북한이 낙랑군이었고
장통의 낙랑 1천여 호 귀순이 사실이라 한다면
여기서 1천여 호(7천~1만 명)를 데리고 대체뭔 수로 아무런 갈등 없이 현 요동반도를 거쳐서 현 요서를 지나 가나?

고구려가 현 서북한 지역을 직접 지배지로 전환한 시기는
사학계 통설 미천왕 310년대가 아니라

백제와 첫 교전한 369년을 기점으로 한 4세기 후반으로 봐야 한다

후한-조위-서진의 서기 1~3 세기에
중국계가 칠로도산 동쪽 현 요서지역을 실질 지배한 때는
조위 시절 잠시뿐이었다

당시의 상황은 교치된 구 한사군과 기존 구 한사군이
병립해 있었다

이는 모용선비에 국가가 파괴된 부여가
서진에 국가재건을 요청한 기사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부여 사신은 서진의 요동군을 방문해 재건을 요청하였는데 서진의 요동태수는 군사를 이끌고 모용선비 지역을 거쳐서 부여사신을 호위하였다


서진은 이미 당빈이 장성을 쌓을 시기인 3세기 말에 요동군, 낙랑군 등을 모두 현 당산시-진황도시 일원에 교치한 상황이었고 이를 기준으로 평주를 새롭게 구획한 것이다 이 서진 평주는 한 우북평 영역에 상당했다

이것이 태강 지리지와 진서 지리지에서의 진장성과 갈석산 삽입의 곡절이다

이러한 구 한사군의 병립은
후한 시대부터 그러했을 것으로 판단되며

기존 낙랑군은
최초의 위치는 확언하기 어려우나
대체로 후한 시대부터
북연이 망할 때까지 현 대릉하 유역에 있었다

이상의 내용은 필자 본인이 동아게에서
지난 수년 동안 무수히 논의하고 설명하고 주장한 것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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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경 21-04-29 17:47
   
서북한 지역은 고구려가 취하기 전까지 한으로 대표되는 중국세력을 등에 엎은 토착세력이 지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

그러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낙랑국이라는 건 상상의 산물일 뿐임. 만약 낙랑 지역이 독자적인 국가체제였다면, 중국 사서에서 열전으로 다뤘겠죠.

그리고, 관구검이 고구려 침략시에 낙랑태수 유무 삭방태수 왕준이 동참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 고이왕 13년조에 버젓이 있는데 없다니 어이가 없네요. 당연히 백제가 그 틈을 노려 낙랑을 친 것만 봐도 낙랑군의 위치는 뻔한데 말입니다. 백제가 있고, 낙랑은 중국인들이 주인 군현도 아닌지라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주력을 끌고 갈 수 없으니 언급이 적었다고 보는게 맞죠. 당연히 고구려 원정에는 선비나 오환같은 이민족을 동원하는게 편하고요.

낙랑 같은 변두리를 중국 어떤 왕조라도 직접 통치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낙랑뿐만 아니라 다른 외곽 군현들 마찬가지죠. 아니 우리나라만 봐도 고려때에도 제대로 전 군현에 관리를 직접 파견하지 못한게 현실이니깐요. 그러나 서북한 지역이 고구려에 편입되기 전에는 독립적인 국가정치세력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없고, 중국 왕조의 위세를 따른게 팩트입니다. 그게 직접지배든 간접지배든 말입니다. 즉 낙랑국이라는 건 허구라는 겁니다.

서북한 지역은 왕검성(재야에서 인정안하겠지만)을 제외하더라도 유물유적들만 봐도 꽤 선진화된 지역이어서, 그 지역을 다스리던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있었으면 크게 언급이 되었어야 함에도 딱히 중국 사서에서 언급되는 게 없음. 삼한지역보다 오히려 발달된 지역이었을텐데 말입니다.
감방친구 21-04-29 18:21
   
조위의 침략 당시 고구려 서북쪽의 현도군에서 군사를 출정시킵니다

서북한 지역에서 고구려를 공격한 기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 주장은

1)
서북한 지역에 대한 후한-조위 등의 지배력에 대해서
최근 크게 후퇴하여 약한 지배력, 또는 간접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사학계 주류설의 입장에서 조금 더 후퇴해야 한다

2) 삼국지-후한서 등은 서북한을 조선, 또는 낙랑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후한-조위 시대에 동북방 정책의 대안책내지 차선책으로서 서북한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 시도와 서북한 토착민들의 고구려 견제 의지가 만나 생성된 새로운 구도로서 이 지역이 서기전 전한이 최초 설치한 낙랑군으로 볼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광개토경 21-04-29 18:48
   
낙랑태수 유무도 고구려 원정에 나갔다고 나오는데 왜 없다고 하죠?

관구검이 주력이고, 낙랑지역은 위나라가 공손씨로부터 쟁취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백제가 인접하고 있기에 핵심이 될 수 없어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거죠.
          
감방친구 21-04-29 19:05
   
그러니까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구체적 기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사행동 상황을 보면
고구려 서북부와 고구려 수도를 타격하며
그 일대에서 전투를 치렀고
왕기의 경우도 같은 경로에서 타격하다
옥저를 거쳐 북옥저 북쪽 끝까지 추격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도 적었지만
군량을 현도에서 1천 리 떨어진 부여까지 가서 직접 받습니다 서북한이 아니라


즉 이러한 사실에서
저는 낙랑태수와 대방태수 역시 현도군에서 같이 출정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감방친구 21-04-29 19:07
   
그리고 동아게에서는 처음 뵙는 분인데 다른 댓글을 보니
욕설, 반말, 조롱, 비하 등의 발언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러는 거는 아무 긍정적 소용이 없습니다
감방친구 21-04-29 18:28
   
조위는 서북한 지역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행사를 시도하였고
복속력을 강화시키고자 했으나 실상 실패하였으며
이를 과장하여 기록하였다 하는 것입니다

이미 백제는 서기전 1세기부터 후한-조위-서진에 해당하는 서기 1~4세기에 황해도ㅡ강원도ㅡ경기도ㅡ충청도를 지배하고 있었음이 물질문화상으로 분명히 나타납니다

풍납토성의 경우 서기전 2~1세기부터 조성됐는데 왕검성으로 비정된 평양 대성리 일명 낙랑토성보다 규모가 큽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특히 당시 한반도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그 사회를 후진적 사회로 묘사함과 동시에 조위의 지배력을 과장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촐라롱콘 21-04-30 12:23
   
[[이미 백제는 서기전 1세기부터 후한-조위-서진에 해당하는 서기 1~4세기에
황해도ㅡ강원도ㅡ경기도ㅡ충청도를 지배하고 있었음이 물질문화상으로 분명히 나타납니다 ]]
.
.
1~4세기 기간이라면 얼추 만 300년 동안의 기간이고, 이 기간 동안의 백제의 변화는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인구, 세력, 영역적인 측면에서 실로 상전벽해와 같은 격차가 나는데
너무 뭉뚱그려 표현하신 거라고 봅니다.

백제의 영역이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지역에까지 확대된 건
최소 3세기 중후반인 고이왕 시기 이후부터라고 봅니다.
그나마도 경기권 이외의 황해,강원,충청 지역은 백제영역으로 잠식해 들어가는
시작점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해당 지역 대부분을 백제가 영역화한 시기는
4세기로 넘어가야 될 거구요~~

3세기 초중엽만 하더라도 남쪽으로는 대체로 오늘날 안성-평택 일대에서
그 시기까지 마한 지역 패자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목지국와 경계를 이루며
북방 경계는 대체로 경기북부의 임진강 라인이 일반적이며
최대확장선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황해도 일부에 걸친 예성강 라인까지가
백제의 북방 한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또한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은 해당 포인트에서의 최초 축조 시기는 기원전 시기부터로 보고 있지만
이후 여러 차례 확장과 수축을 거듭하여 왕성 규모의 거대한 위용으로 완성된 시기는
기원 후 2~3세기로 보고 있다는 것이... 고고학 관점에서의 일반적인 견해로 알고 있습니다.
          
지누짱 21-05-01 15:48
   
고이왕시기에 풍납토성 축조가 중단되는데 이유가 뭘까요
포테이토칩 21-05-01 23:03
   
동천왕때 평양천도한 평양은 지금 평양이 맞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감방친구 21-05-02 01:07
   
오랜만입니다
저는 그렇게 안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서북한을 완전 영유한 때는
4세기 중후반이라고 판단합니다

고구려는 고토를 수복하고 지키고자 하는
이른 바 다물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한-조위-서진 시기에도
고구려는 서북한을 내지처럼 여겼다고 보이지만
직접 소유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태도를 취한 것 같습니다

모용선비의 침입을 받고 또 물리치면서
서북한 직접 영유의 필요성을 느낀 듯합니다

동북한 옥저와 예맥에 대해서는
쥐었다 풀었다 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서북한은 그보다 약하지만 비슷한 방식을 취하면서
유력한 세력이 성장하지 못 하게 관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백제가 그 초기에 고구려에 속한 1국 2체제였다고 보고
있는데 언제까지였는지 확신을 못 하고 있습니다

백제는 이미 서기 300년대까지 황해도ㅡ경기도ㅡ강원도ㅡ충청도를 석권하는데

고구려가 서북한을 직접 영유한 시기는 백제와 첫 전투를 치르는 369년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포테이토칩 21-05-02 15:16
   
저 역시 감방님과 대체로 같은 의견이지만

고구려의 평안도 영유가 강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아마 관구검의 침입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방친구 21-05-02 01:12
   
조계지, 또는 이중복속적 성격을 띠는 서북한 낙랑(서기 1~3세기 조선)의 영역은 서북한전체가 아니라 현 서북한 평양과 대동강 유역의 근소한 영역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엄근진 21-05-26 17:47
   
감방친구님이 생각하시는 낙랑군의 전체 역사가 궁금하네요.
전한 vs. 후한/조위의 낙랑군은 전혀 다른 정치세력으로 인식하시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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