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과 예(濊), 진(辰)의 의미망(意味網) 검토
라. 우리말 ‘해(日)’의 고대 소리값(音價) 재구(再構) (1)
중국 북송(北宋) 말기인 1103년(고려 숙종 8년)에 고려를 방문한 손목(孫穆)이 지은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그 당시 고려말로 ‘해(日)’를 ‘姮(항)’이라 하고 ‘달(月)’을 ‘契(계)’라고 했다고 적었다.
日曰姮
일왈항
月曰契(黒隘切)
월왈계(흑애절)
《鷄林類事·卷三·方言》
이를 합리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① 日과 月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며,
日 ↔ 月
② 姮(항)은 妲(달/탄)의 오기(誤記)임을 알 수 있다.
姮 → 妲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교감(校勘)할 수 있다.
日曰契(黒隘切)
일왈계(흑애절)
月曰妲
월왈달
지금의 우리 한자음으로 보면 9백 십수년 전 고려시대에도 지금과 같이 해를 해라고 하고, 달을 달이라고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말조차 시대에 따라 음운이 변동하는데 하물며 1천여 년전의 한자음(漢字音)이 지금의 우리 한국한자음과 그대로 같았다고 보는 것은 경솔한 접근이다.
북송(北宋) 대중상부(大中祥符) 원년(1008)에 완성된 운서(韻書)인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 약칭 《광운(廣韻)》을 중심 근거하여서 베른하르드 칼그렌, 정장상방(鄭張尚芳), 에드윈 풀리블랭크 등의 언어학자들은 이 관련 한자의 당송음을 다음과 같이 재구하였다.
글자 |
당송음 |
구성 |
契 |
kʰiei
kʰei
kʰɛi
kʰɛj |
켸 ↔ 계 |
黒 |
xək
hək |
xai
hai |
개 ↔ 해 |
隘 |
ʔai
ʔɛ
ʔæi
ʔɣɛ
ʔɯæ
ʔaɨj |
妲 |
tɑt
tat |
닫 → 달 |
현대 한국한자음에서 契의 음(音)은 그 뜻에 따라 [계], [결], [글], [설]로 총 4 가지이며, 크게 [ᄀᆞ]계열과 [ᄉᆞ]계열 두 가지로 구분된다. 명나라 초의 운서인 홍무정운(洪武正韻)을 근거하여 이 ᄉᆞ계열의 음을 재구하면, 그 소리의 위치에 따라 평성은 /siɛn/, 상성은 /siɛn˥˧/, 거성은 /siɛn˨˦/, 입성 /siɛʔ(t)/으로 재구된다.
계림유사(鷄林類事)는 고려에서 ‘해’를 뜻하는 말이 “日曰契(黒隘切)”라고 적었는데, 해(日)가 고려말로 契라고 하고서, 契의 소리값을 “黒隘切”이라고 하여 부연(敷衍)하고 있다. 위 표에서 보인 바대로 송대(宋代) 광운(廣韻)을 근거한 黒의 당송(唐宋) 시대 소리값은 /xək/, 또는 /hək/으로 재구된다. /h/은 /ㅎ/에 해당하지만 /x/은 무성연구개마찰음(無聲軟口蓋摩擦音)로서 소리값 자체로는 /ㅎ/에 연접하지만 실제 그 소리는 /ㅋ/, 또는 /ㄱ/에 가깝게 들린다. 목구멍에서 나온 공기가 여린입천장을 긁어서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契의 첫소리는 /kʰ/, 또는 /s/ 였으므로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 “日曰契”이라 적고 그 뒤에 “黒隘切”하여 契의 소리값을 부연한 까닭은 契의 두 가지 소리값 가운데에 하나임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그 가리킨 바는 당연히 /s/이 아니라 /kʰ/이다.
따라서 “黒隘切”에서 黒의 소리값은 /hək/이 아니라 /xək/이며, 고려시대 ‘해’의 소리값은 지금과 같은 [해]가 아니라 보다 [개]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대로부터 고대로 갈수록 더욱 [개]에 가까웠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근거하여 우리말 ‘해’의 그 소리값의 변천을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ᄀᆞ/ᄁᆞ/ᄏᆞ → 개/해 → 해
- - - - -
/x/은 무성연구개마찰음(無聲軟口蓋摩擦音)으로, 목구멍에서 나온 공기가 여린입천장을 긁듯이 마찰을 일으킬 때에 나는 소리이다. ‘아흑아’, ‘흑아’, ‘흐카’ 등을 발음할 때에 나는 소리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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