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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08 07:42
[한국사] 명나라의 한국사 인식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1,382  

http://egloos.zum.com/history21/v/319653

동북공정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고조선부터 발해를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한강 유역가지 중국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고구려가 충청도까지 남하하였으니, 거기까지도 중국 영토였다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이에 우리의 방송사들은 분연히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드라마들을 만들겠노라 나섰지만, 차라리 <하늘이시여>를 150회까지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2004년의 고분벽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의 문제도 있었기에 동북공정에서 관심을 모으는 건 고구려이다. 중국사서에 나오는 고구려 같은 얘기는 언론에도 나온 바 있고 하니, 여기서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고구려의 모습을 한편 살펴보겠다. 실록에서 ‘고구려’로 검색하면 200편이 넘는 기사가 나온다. 이를 모두 보고 인용하기는 어려우므로 이 중 당시 중국과 관련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성종 12년인 서기 1481년,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조선에서는 창덕궁 인정전에서 연회를 베푼다. 이 때 사신은 어린 기생이 추던 춤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 사신과 성종 사이에 이런 문답이 오갔다.


“이것이 무슨 춤입니까?”

하였는데, 임금이말하기를,

“이 춤은 고구려때부터 있었던 것으로이름을 동동무(動動舞)라 하지요.”

- 성종실록 132권 12년 8월 3일


성종의 답변은 조선이 고구려를 계승하였다는 전제로 한 말이며, 사신도 이런 성종에게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7년 후, 역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였던 원접사 허종이 올린 상소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묘문(廟門)을 나와 단군묘(檀君廟)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는 무슨 사당입니까?’ 하므로 말하기를, ‘단군묘(檀君廟)입니다.’ 하니, 말하기를, ‘단군(檀君)이란 누구입니까?’ 하기에 ‘동국(東國)에 세전(世傳)하기를, 「당요(唐堯)가 즉위(卽位)한 해인 갑진세(甲辰歲)에 신인(神人)이 있어 단목(檀木) 아래에 내려오니, 중인(衆人)이 추대하여 임금으로 삼았는데 그 뒤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죽은 곳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니, 말하기를, ‘내 알고 있습니다.’ 하고,드디어 걸어서 사당에 이르러 배례(拜禮)를 행하였습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동명왕(東明王)의 신주(神主)를 보고 이르기를, ‘이 분은 또 누구입니까?’고 하기에, 말하기를, ‘이 분은 고구려 시조(高句麗始祖) 고주몽(高朱蒙)입니다.’

-성종실록 214권 19년 3월 3일


역시 사신은 조선이 고구려시조의 사당을 지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 당시엔느 조선의 학자들도 사실로 여기던 기자에 대하여 주로 관심을 가졌을 뿐이고,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인식을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에 단군묘와 기자묘가 평양에 있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 역시 조선의 역사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할 수 있다.


같은 해 이번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채수의 장계에는 명나라 관리 최헌과의 대화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도 당대 중국인들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하루는 경사(經史)를 담론하다가 최헌이 신에게 이르기를, ‘새 천자(天子)는 심히 엄명(嚴明)하여 온 천하가 모두 심복(心腹)하고 있으며, 또 기순(祁順)·동월(董越) 등의 사신들이 돌아와서 모두 그대의 전하(殿下)는 현명하다고 하고 칭송하여 중국(中國)에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대의 전하는 과연 어떠한 임금입니까?’고 묻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전하께서는 성명인서(聖明仁恕)하시고, 학문을 좋아하시고 정사를 부지런히 하시며, 재예(才藝)에 이르러서도 그 정묘함이 극에 이르지 아니함이 없으시어, 온 나라 사람들이 떠받들기를 부모와 같이 하며, 두려워하기를 신명(神明)과 같이 하니, 참으로 성주(聖主)입니다. 또 우리 나라 옛날의 고구려(高句麗)·신라(新羅)·백제(百濟)·동옥저(東沃沮)·북옥저(北沃沮)·예맥(穢貊) 등지를 모두 하나로 합하여 땅은 수천리(數千里)를 보유하고 갑병(甲兵)이 수십만이며, 나라는 부(富)하고 병정은 강하며,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여 무릇 진공(進貢)하는 토산물은 모두 친히 감동(監董)하고 선택하며, 배표(拜表)19881) 하는 날에는 새벽에 교외(郊外)까지 나와 전송하고, 성절(聖節)과 정조(正祖)에는 백관을 거느리고 배하(拜賀)하십니다.’ 하니, 최헌이 말하기를,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습니다. 참으로 현군(賢君)이십니다. 그러나 그대의 말로 성(聖)이라 함은 지나치거니와, 황제는 참으로 성명(聖明)이십니다. 성(聖)자를 번왕(蕃王)에게 붙이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순(舜) 임금은 동이(東夷)의 사람이고, 문왕(文王)은 서이(西夷)의 사람입니다. 현인(賢人)·성인(聖人)이 나는 바를 어찌 화이(華夷)로 구분하겠습니까? 공자(孔子)도 또한 필부(匹夫)이면서 성인이시거늘, 어찌 우리 전하께서 해외(海外)에 거(居)한다 해서 성인이 되지 못한단 말입니까?’ 하니, 최헌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정말 옳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종실록 219권 19년 8월 24일


최헌은 고구려까지 합하였다는 채수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음은 물론 중국 삼황오제 중 한 명인 순임금이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라고 말하면서 성종의 현명함을 칭송하며 조선의 왕이 성군이 될 수 있겠냐는 최헌에게 반박하고 있으며, 최헌은 이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순임금도 우리 민족, 그러므로 중국 고대사도 우리 역사’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건 동북공정 못지않게 과장스럽지만 적어도 당시 중국인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는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예 명나라 사람이 조선이 고구려를 계승하였다는 걸 직접적으로 인정한 기록도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유원외와 선조의 대화 중 일부이다.


(유원외가) 또 말하기를,

“귀국은 고구려 때부터 강국이라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와서 선비와 서민이 농사와 독서에만 치중한 탓으로 이와 같은 변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지금 천조는 귀국을 금구 무결(金甌無缺)한 국가로 삼으려고 하는데 귀국은 이를 알고 있습니까?”

-선조실록 39권 26년 6월 5일


요동 부총병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승훈은 요동 출신이라고 조선에 대해 동족의식과 비슷한 발언까지 한다.


총병이 말하기를,

“앞서 많은 후사(厚賜)를 받았는데 나는 조선과는 한 집안 사람입니다.【요동(遼東)은 옛 고구려(高句麗)의 땅으로 동령위(東令衛)의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가리켜 본향(本鄕)이라고 했다.】 중국 조정의 문무 관원들이 이곳에 많이 나와 있어 용도가 매우 많으니 두루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받으려면 선뜻 받지 어찌 근교(勤敎)를 기다리겠습니까.”

- 선조실록 103권 31년 8월 9일


그렇게 조선을 한 집안으로 여겼으면 좀 잘 싸우지 그랬냐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고구려가 멸망한지 수백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요동 출신 사람들이 요동이 고구려의 옛 땅이라는 이유로 조선을 본향으로 여겼단느 점은 역시 고구려의 계승자는 명나라가 아닌 조선이라고 인식되었음을 알려준다.


1598엔 명나라 병부조사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을 끌어들여 명나라를 친공하려 한다고 무고한 사건이 일어났다. <선조실록>에는 정응태의 무고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 일부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찬획 주사(贊畫主事) 정응태(丁應泰)의 한 주본(奏本)에,

“속번(屬藩)의 간사함은 증거가 있고 적당(賊黨)의 떼지은 음모는 이미 드러났습니다. 신이 협강(夾江)의 중주(中洲)에 행차하여 콩과 기장이 무성한 것을 보고 길가는 요동(遼東)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기름진 땅이어서 수확이 서쪽 지방보다 몇 배나 된다. 전년에 조선이 요동 백성과 쟁송(爭訟)하자, 요동 도사(遼東都事)가 여러 차례 단안(斷案)을 내렸는데, 조선 사람들이 불평을 가지더니 만력(萬曆)4103) 20년4104) 에 끝내 저들 나라에 세거(世居)하는 왜인을 사주, 제도(諸島)의 왜노(倭奴)를 불러 군사를 일으켜서 함께 천조(天朝)를 침략함으로써 요하(遼河) 동쪽을 탈취하여 고구려의 옛 지역을 회복하려 하였다.’는 등의 말을 하기에, 신은 놀라움과 괴이함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 선조실록 104권 31년 9월 21일


정응태의 무고 내용이야 근거가 없는 거였지만, ‘고구려의 옛 지역을 회복하려’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점은 조선을 무고하던 정응태도 고구려사가 조선사라고 생각하였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중국과는 달리 명나라 사람들은 고구려가 조선의 전대 왕조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혹 저게 다 조작된 거라 말할 런지도 모르지만, 그런 주장을 하고 싶을 때는 당연히 거기에 맞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근거 없이 조작설을 내세우는 사람은 이미 학문을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지만)



전에 조일전쟁 때 명나라가 조선에게 '강대한 고구려의 후예가 어째서 그 모양이 되었는가' 운운한 기록이 사실인지 찾아볼려고 검색하다가 발견한 좋은 글이라서 가져왔습니다.


료약 


1. 명나라는 조선을 고구려의 후예로, 고구려를 한국사로 인정했다

2. 거기다 상고시대의 순임금과 주의 문왕이 동이족이라고도 인정했다

3.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이라면 그 조상나라와 인물들(요순 임금과 고구려)이 모두 한족의 력사가 되는데 그런 주장과 인식은 찾아볼 수 없으므로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은 명나라측 인물의 발언에 의해서 역시 신빙성을 잃는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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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21-04-10 13:02
   
고려의 고구려와의 련관성과 동질성, 당대 외국의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보는 시각을 종합적으로 살핀다면 확실히 근거를 구축할 수 있을듯 합니다
     
위구르 21-04-10 13:00
   
하긴 고구려를 지칭했으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고구려라 하거나 고씨 고려라 해야 했는데 고려라고만 기록한게 이상하죠. 거기다 동령위지인 지아국위본향: 동령부 사람들은 아국을 본향으로 여긴다 라고 되어있으니 망한지 900년이 된 고구려보다 비교적 최근에 존속한 고려의 땅이어야 납득이 가능합니다. 연산군 일기의 기록도 고구려를 고려로 고쳐야 리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작정 퍼오기만 하고 검토를 안해봤는데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산아몬드 21-04-08 23:53
   
명나라든 청나라든 중국의 동북공정 이전에는 고조선, 고구려, 부여,발해등을 중국 역사라고 우긴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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