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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15 00:09
[한국사] 발해 국호에 대한 이해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429  

# 이 글은 최초 잡담게시판에 쓴 것으로, 내용을 다소 보충하여 이곳 동아게시판에 옮겨와 붙입니다.


저는 고려, 발해, 고구려 등 우리 고대강역사를 연구하는 민간 연구자입니다. 발해 국호 관련 게시글이 있는 것을 보고 발해 국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이 소개글에는 필자 본인의 분석과 견해가 포함돼 있습니다.


■ 진국

발해가 건국된 후에 가장 먼저 사용된 국호가 바로 진국입니다. 진국은 문헌 상에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 또는 진국(振國)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국호에 대한 통설의 설명은 걸걸중상이 측천무후로부터 받은 벼슬인 '진국공(震國公)'을 그 아들인 대조영이 세습하면서 국호로 삼았다 하는 것입니다. 걸걸중상이 측천무후로부터 진국공 벼슬을 받았다 하는 기사는 《오대회요(963)》와 《신당서(1060)》에 기술돼 있습니다.

697년 경, 당나라 측이 회유책의 일환으로 걸사비우에게 허국공(許國公), 걸걸중상에게 진국공(震國公)의 벼슬을 내렸으나 걸사비우는 이를 거절하였고,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죽임을 당했으며, 걸걸중상의 무리 역시 맞서 싸우다가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대를 궤멸시키고 마침내 동모산에 의지해 '대진국'을 건국하였습니다. 

걸걸중상은 걸사비우가 죽임을 당한 그 전후의 시점에 이미 죽은 것으로 기술돼 있습니다. 즉 걸걸중상이 측천무후로부터 '진국공'이라는 벼슬을 받았는지 알 수 없고, 당시 사적 맥락에서 보면 발해건국세력은 당나라에 전혀 순응하지 않고 맞섰습니다. 이러한 반당적 태도와 행동은 대무예가 산동과 평주를 공격한 730년 대까지 근 40년 계속되었습니다. 

'허국공'이라는 벼슬은 역사에서 몇몇 사람이 받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진국공'이라는 벼슬은 오직 걸걸중상과 관련하여서만 나타납니다. 대조영은 걸사비우의 남은 무리까지 흡수하여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대진국을 건국하였는데 그 당나라 측천무후가 회유책으로 준 벼슬 이름을 국호로 삼았으리라 보는 것은 상식밖의 일입니다.

즉 애초 허국공과 진국공 벼슬 하사 운운한 기록이 당나라 역사를 윤색하기 위한 위사(僞史)일 가능성을 사적 맥락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震과 振은 모두 '위세를 사방에 떨침'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이러한 뜻을 지닌 벼슬을 진압대상에게 줄리 만무하며, 오히려 대조영의 발해건국세력이 스스로 국명으로 삼고, 그 후에 중국 사가가 마치 그 벼슬을 준 것처럼 윤색하였을 가능성이 오히려 충분합니다. 

저는 이를 진한(辰韓), 즉 진국(辰國)의 국명을 계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국명은 발해의 건국지 연고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학계 통설에서는 발해의 구국, 즉 최초 건국지를 길림성 돈화시(敦化市)로 보고 있으나 저는 현 요양과 심양 일대(요녕성 개주시~철령시)로 파악하였습니다. 이곳이 발해의 구국이자 고향인데, 이 지역에 본래 진한, 즉 진국(辰國)이 있었고, 훗날 위만조성의 성장과 한나라의 침략 등으로 인해 파괴돼 현 서북한과 경상도 일대로 이주한 것으로 저는 파악하였습니다.


■ 고려

일본의 《속일본기》와 헤이조궁(平城宮) 유허지 출토 목간 등의 사료에는 발해가 문왕(737~793) 재위 초부터 스스로 고려를 칭했으며, 이에 일본 또한 상당 기간 발해를 고려로 호칭한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대 일본에서는 발해와 고려, 두 호칭이 혼용되었습니다.


■ 발해

발해(渤海)라는 말은 본래 지금 중국 하북성 창주시(滄州市) 동부와 그 연안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창주시의 동부는 바다였습니다. 지금 하북성 진황도시와 산동성 사이의 바다를 요해(遼海)라 불렀고, 그 요해의 서쪽에서 육지를 감아도는 바다를 발해라고 하였습니다. 시대가 흐르며 점차 발해와 요해가 혼용돼 사용되었고, 또한 창해(滄海)라는 이름이 역시 혼용되었으며 나아가 이들이 가리키는 바다의 범위가 현 요동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 창주시(滄州市) 일대에 하간군과 분리돼 설치된 것이 발해군(渤海郡)입니다. 

발해가 건국된 후에 당과의 국교가 수립되면서 대조영에게 발해군왕(渤海郡王)이라는 호칭이 내려졌는데 이 발해군왕은 발해군(渤海郡)과 무관하며, 발해국왕을 격하한 호칭으로 생각됩니다. 

발해(渤海)가 왜 발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는지는 미스테리인데 아마도 '진국'과 관련이 있다 보이며, 당시 어떤 말을 음차한 말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단국

제가 아는 한, 발해의 국호가 단국(丹國, Dan gur)이었다 하는 주장과 연구는 일본 교토대학의 요시모토 미치마사 박사가 최초입니다.

요시모토 미치마사 교수는 몽골과 거란 연구의 권위자인데 거란소문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해 국호의 새 단서를 발견하였고 이를 몇 편의 논문으로 낸 바 있습니다.

거란문자가 적힌 문헌과 금석문 등의 자료에서 동단국을 거란문자로 'Dan gur'로, 발해는 대국(大國, 대씨의 나라)를 뜻하는 'Mosi gur', 또는 'Dan gur'로 적힌 바 있음을 밝혀낸 것입니다.

저는 이 단구르의 단(당)은 天을 뜻하는 우리말인 것으로 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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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무쿠리(mvkuri)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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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1-03-15 02:02
   
진국을 계승했다고 보는 견해는 김상님 견해인데 두분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네요.
하나더 말씀드리면 윤내현교수는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던 기자국을 위만이 찬탈한 후 현 요하 서쪽을 거의 모두 차지하자  고조선은 중심지를 거수국인 진국으로 옮겨갔고 진국은 한반도로 이동했다고 보고있죠. 그러면서 위만과 한의 위세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부여 고구려 등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열국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고있죠. 즉 감방친구님과는 진국의 이동의 원인은 같으나 근인은 다르네요
감방친구 21-03-17 12:39
   
가볍게 쓴 글이라서 빼먹었는데
단구르의 '단'이 단(旦)일 가능성 또한 고려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발해의 최초 국호를 진단(震旦)이라 적었다
진단은 해 뜨는 곳이라는 뜻인데
불교에서 중국을 비롯한 동방을 가리키는 치나스타나의 음역이기도 하다
차이나의 옛말인 지나는 여기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만약 발해 최초 국호에 진단이 고려될 수 있다면
삼국유사가 단지 승려가 편찬하여 그 국호를 진단이라 적은 것이 아니라 볼 여지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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