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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05 23:00
[한국사] 신라의 역사는 그들이 어떻게 왜곡시켰나? 다시 배워야 하는 대한민국의 역사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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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진서』와 『후한서後漢書』에서는 한반도 남쪽에 있는 신라도 전부 중국인들이 지배했다고 왜곡하고 있지만, 조선 중종때 실록편찬 찬수관 이맥李陌(1455~1528)의 『태백일사』에서는 이 신라의 전신을 진한辰韓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라의 근원과 뿌리에 대한 역사 왜곡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신라의 건국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어머니가 중국 황실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을 『삼국유사』, 『삼국사기』에서 함께 왜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어머니는 선도산仙桃山 성모로 불리는 북부여의 5세 고두막高豆莫 단군의 따님 파소婆蘇이다.


또한 『삼국사기』는 신라를 정통으로 놓기 위해서 고구려를 폄하하고, 고구려의 시조에 대한 천륜을 파괴했다.


그러나 『북부여기』와 고려 말 수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을 역임한 행촌 이암(李嵒, 1296-1364)의 『단군세기』에서 말하는 삼국 건국의 결론은 신라 혈통의 근원이 북부여와 직접 연관이 있고, 고구려도 북부여 마지막 단군을 계승한 정통 왕조이며, 백제는 고주몽의 아들이 세웠으니까 말할 것도 없이 한 계통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크게 보면 가야伽倻까지도 단군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한 형제이고, 직계로 보면 바로 북부여를 뿌리로 한 형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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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라 왕가 전체 역사를 보면, 김씨 왕조 38명이 나오는데, 그 시조는 북방 유목문화와 관련이 있다. 한무제에게 생포됐다가 한무제의 목숨을 구했던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족의 왕자 김일제金日磾의 동생이 김륜金倫이고, 그 5세손 중에 형인 김알지金閼智가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이고, 그 동생 김수로金首露가 가야의 시조이다.


이 북방 유목문화는 어디서 나왔는가?


행촌 이암(李嵒, 1296-1364)의 『단군세기』 기록에 의하면 3세 가륵嘉勒 단군이 열양列陽 욕살褥薩인 색정索靖을 귀양을 보냈다가 사면을 해서 흉노 시조, 왕으로 임명했고, 4세 오사구烏斯丘 단군 때는 그 동생을 몽골의 초대 왕으로 임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3세 단군 때는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켜서 단군께서 지백특支伯特을 평정했는데, 강거는 돌궐의 시조이다. 대세를 보면 이 동서 유목문화의 큰 세력권은 바로 환국·배달·조선을 계승한 동방 우주광명 문화, 삼신사상을 가지고 있다.



신라는 전통문화인 신교(神敎)를 모체로 해서 유교도, 불교도 받아들이고, 도교와 함께 융합을 해서 신라 천년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화랑 문화를 보면, 화랑은 각자가 ‘화랑은 미륵의 화신이다'라는 미륵의 심법으로 미륵의 이상낙원을 건설하는 주인공이었다.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내려 준 세속오계는 환국·배달·조선에서부터 내려온 그 소도 제천의 성지에서 우주광명의 인간 심법을 전수하는, 경당扃堂에서 가르친 오상지도五常之道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왜곡된 한국사 역사의 축소판이 신라 건국의 첫 소식에 함축되어 있다.


당태종唐太宗이 고구려를 침공해서 양만춘楊萬春 장군에게 눈알이 빠지고 그 여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한나라 무제와 더불어 그들이 가장 위대한 제왕이라고 하는 당태종이 고구려침략을 감행하다 그렇게 무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는 『진서晉書』, 『송서宋書』, 『양서梁書』 같은 여러 책을 냈는데,


『진서』와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진한辰韓은 어떤 나라인가?


『진서晉書』를 보면 “자언自言호대 진지망인秦之亡人이 피역입한避役入韓하니라” 중국 진시황秦始皇 때 만리장성 노역을 피해서 이 동방으로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진한이 동방 진辰 자가 아니고 진나라 진秦 자 ‘진한秦韓’이다'라고 왜곡했고,


『후한서』에도 “진한기로자언辰韓耆老自言호대 진지망인秦之亡人이 피고역避苦役하야 적한국適韓國하니라”라고 하여 ‘진한의 노인들이, 우리는 노역을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내용을 슬쩍 끼워 넣었다.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보다도 그 근원에서 볼 때는 더 잘못되고 악질적이다.


그러니까 한반도에 있는 신라도 전부 중국 사람들이 지배했다는 것이다. 신라를 중심으로 해서 볼 때 한반도는 다 중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보면 “선시先是 조선유민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위육촌爲六村... 시위진한육부是爲辰韓六部”라 해서 ‘이보다 먼저 고조선의 유민들이, 단군조선이 망해서 내려온 백성들이 산과 계곡에 흩어져서 살았는데 이들이 바로 진한 辰韓 6촌부다’라고 했다.


신라의 본래 이름은 진한辰韓이다. 신라의 6부, 6촌의 지배 세력은 본래 고조선의 유민이다. 단군조선 역사가 망하면서 북방에서 내려온 것이다. “선시先是 조선유민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이 구절에서, ‘선시先是’, 신라의 진한辰韓이 생기기 이전은 언제인가?



『북부여기』와 『태백일사』를 보면, 서력 전 238년에 단군조선 마지막 47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단군 자리를 내놓고 은둔하셨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만주 영역인 진한(진조선)이 그때 망해 버리고 6년 공화정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진한이 망한 것을 기준으로 약 180년 전부터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바로 신라 땅 경주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신라 땅, 경주 이 지역도 본래 단군조선의 막조선영역이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선생은 신라의 진한, 가야의 변한, 그리고 백제의 전신 마한 즉 남삼한은 만주대륙 북쪽 삼한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신라의 첫 이름인 진한은 북쪽 단군조선의 삼한에서 진한 사람들이 내려와서 형성된 것이다. 조선 중종때 실록편찬 찬수관 이맥李陌(1455~1528)의 『태백일사』에서도 이 신라의 전신을 진한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동방 진辰 자의 실체가 아주 정확하게 중국 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나온다.


지금 역사 교과서에서는 준왕準王이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 수도는 대동강 평양이라 한다. 한반도 평양이 단군조선의 수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왕검성王儉城은,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갈석산碣石山 근교에 있는 낙랑군樂浪郡 창려현昌黎縣에 있었다.


당시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단군조선의 삼조선(진조선,번조선,막조선)가운데 번조선의 준왕準王이 있던 왕검성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하기 위해서 한나라 무제武帝도 왕검성으로 처들어왔다고 한다. 그러고서 한반도에다가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을 비롯해서 네 개 군, 한사군漢四郡을 위아래 쪽으로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 진실을 알 수 있는 「위지동이전」의 내용은, “초初, 우거미파시右渠未破時, 조선상역계경이간우거불용朝鮮相曆谿卿以諫右渠不用, 동지진국東之辰國”이다. 처음에 우거왕 때, 정승 역계경이 정책을 건의해도 안 받아주니까, 망명을 했는데, ‘동지진국東之辰國’, 동쪽 진국辰國으로 갔다고 했다. 동방에 진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 진국이라는 것은 원래 동방의 천자 나라, 진한(진조선)이다.


단군조선의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삼조선(三朝鮮) 중, 북쪽 만주에 있었던 진조선(辰朝鮮)이 서력 전 238년에 먼저 멸망 후 그자리에 북부여가 239년에 들어섰고, 44년 뒤인 서기 전 194년에 왼쪽 날개인 번조선의 마지막 75세 기준箕準이 위만에게 패망 당했다. 그래서 기준이 발해로 해서 황해 바다를 건너 군산群山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역사 인식이 전혀 없이 지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이 진국辰國 문제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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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은 동쪽이 아니라, 남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조선사대관』(1948)에 ‘남방의 진국’이라 써놓았다.


‘우거는 한나라 유망인流亡人(난민)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이고 남방의 진국이 한漢에 교통(왕래)하려 함을 방해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받아서 지금 강단사학에서 신라, 가야, 백제가 생기기 전에 거기에 여러 작은 성읍국가들이 있었는데 그때 중심 세력이 진辰이라는 것이다.


초등고교과서를 보면 남쪽에 진이라는 세력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로 성장했고, 그것이 삼한三韓이라고 왜곡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면 윤내현 교수는 논문에서 이 진국을 어떻게 말하는가?


“갈석산碣石山에서 조선(위만조선)을 지나 대인의 나라를 통과하면 동쪽의 해 뜨는 곳에 이른다.”는 말이 『회남자淮南子』 「시칙훈時則訓」에 나온다. 이것은 갈석산에서 ‘조선’ 즉 위만조선을 지나 ‘대인의 나라’를 통과하면 동쪽의 해 뜨는 나라에 이른다는 것이다. ‘대인의 나라’가 무엇인가? 이게 진국이라는 것이다. 진국은 중국 사서에도 동쪽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가 패망당한 뒤에 대중상大仲象이 후고구려를 세웠다가 뒤에 그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대진(大震, 발해)이라고 했다. 단군조선을 전체로 부를 때는 진국辰國이고, 그것을 나눠서 부를 때는 만주가 진한辰韓이고, 그다음에 왼쪽 요서, 산둥까지가 번한番韓이고, 한반도 전체는 마한馬韓이다. 나중에 22세 색불루索弗婁 단군 때 삼한이 삼조선三朝鮮 체제로 바뀐다.


조선 중종때 역사를 편찬하는 찬수관을 지낸 이맥李陌(1455~1528)의 『태백일사』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아주 명백하게 전하고 있다. “총지總之하야 명왈단군관경名曰檀君管境이니 시즉진국是則辰國이오, 사칭단군조선史稱檀君朝鮮이 시야是也라”, 이를 총칭하여 ‘단군관경’이라 하니 이것이 곧 진국辰國이라 했다. 단군이 이 전체 영역을 다스렸고 이것이 진국(辰國)이라 했다. 역사에서 말하는 단군조선이 바로 이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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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수 21-03-05 23:45
   
대체 <후한서><진서> 어느 구석에 중국인이 신라를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가?
이맥이 진한 지역에서 신라가 건국했다고 인식했을 근거로 당시까지 전해지는 우리의 문헌도 있었겠지만 <후한서><진서> 등도 당연히 근거했을 것이다.
 
역사를 왜곡한 대상을 정확하게 찾지 못한 결과이고 엉뚱한 곳을 공격하고 있다. 괜한 피해의식이다. 고.중.현세까지의 대한역사 왜곡.조작자는 일본이고 일본이 왜곡.조작한 결과 어부지리로 얻은 장물땅을 움켜쥔 자가 1948 년 이후의 중국이다. 장물땅을 토해내지 않는 이상 동북공정 같은 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중국이다.

그리고 왕검성이며 낙랑군 치소였을 것이고 고구려 평양성이였던 위치는 장성 기점 부근이고 갈석산이 있다는 지금의 하북성 창려가 아니다. 지금의 창려는 마한 땅이였고 왕검성.낙랑군.평양성은 지금의 창려 북쪽 건창 부근에 있었다. <진서/지리지> 낙랑군 수성현 기록에 근거한 윤내현.리지린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서진 시기의 낙랑군은 원래의 낙랑군 위치인 지금의 건창 지역에서 지금의 란하 하류를 서쪽으로 건너 옮긴 교치군.현이다. 또한 지금의 란하 하류 서쪽에 있었던 청 시기까지의 창려가 지금의 위치에 표시된 것은 1934 년 일본이 만주국지도를 통해 란하 중.하류를 황하.요하 하류 위치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진실된 역사 찾기에 쏟는 열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왜곡된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스스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남 얘기에 솔깃해서 창작된 역사를 열성적으로 홍보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리랑 21-03-06 09:11
   
10년 넘게 중국을 위해 왜곡된 지도만 팠으니
辰과 秦도 구별이 안되지?? 앞으로 댓글 달지마라. 니 댓글에는 답하기도 싫다.
          
스리랑 21-03-06 10:20
   
더 보충할 부분이 있네요.

신라의 십성十聖 가운데 한분인 안함로(安含老,579~640)의 『삼성기』 상上을 보면 신라 역사에 대해서 고정관념을 깨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부여고도夫餘故都하사… 시내신라고양야是乃新羅故壤也라”,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부여의 옛 도읍에 나라를 열었는데 그곳은 신라의 옛 땅’이라는 것이다. 이 고두막한은 동명왕東明王으로 불리는데, 한나라 무제가 처들어왔을 때 그걸 꺾어버린 인물이다. 지금은 고두막한이 고주몽高朱蒙으로 왜곡되어 있다.


『흠정 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라는 책을 보면 건륭제乾隆帝가 한 말씀을 유훈으로 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당나라 때 계림雞林으로 일컬었던 곳은 마땅히 지금의 길림吉林이란 말이 와전된 것이요, 신라·백제 등 여러 나라도 역시 모두 그 부근에 있었다.”고 했다. 당나라 때 계림이라 했던 곳은 지금의 길림이고, 신라도 백제도 그 건국조의 지배세력의 고향은 길림이라는 것이다.


중국어 발음에 길림과 계림이 성조는 다르지만 ‘지린’으로 발음이 같다.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언어 정서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삼국 이전 한민족의 뿌리 역사가 왜곡되어서, 남쪽의 삼한은 북쪽의 단군조선이 망하면서 그 삼한의 중심 세력들이 내려와서, 나라를 열었다는 이런 진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은 북쪽 삼한과 단군조선을 곰호랑이 신화로 왜곡하여, 근본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을 가보면 한국사 연표에 어떻게 나오는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가 있고 ‘원삼국原三國’이라는 게 있다. ‘Proto-Three-Kingdoms’, 원 삼국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기 전 100년부터 서력 300년까지 400년 동안은 한반도 북부에 고구려와 남부에 신라, 백제, 가야가 성립되기 전에 원삼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립 경주 박물관에도 원삼국실이라는 섹션이 있다.

그러니까 원삼국 전은 선사시대이고, 단군조선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리랑 21-03-06 10:39
   
길어졌지만 조금더 보충합니다.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BCE 109년, 한 무제가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다스리던 위만조선으로 쳐들어왔다.
한나라는 초기에 연신 패하였으나 이간책으로 위만정권 지도층을 분열시켜 결국 우거를 죽이고 왕검성을 점령하였다(BCE 108).

이때 한 무제는 새로운 점령지에‘ 한나라의 군현[漢四郡]’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거 제거에 공을 세운 한민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고조선 유민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데 그쳐야 했다.


위만정권을 무너뜨린 한 무제는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세 고우루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말았다.

이때 이를 지켜보던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였다. 그러고는 졸본卒本에서 나라를 열어(BCE 108) 졸본부여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였다.

고주몽이 동명왕이 아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가 자칫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한민족 상고사 최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동명왕은 구국영웅으로 추앙받아 북부여의 5세 고두막 단군으로 즉위하였다(BCE 86).

 

원래 북부여의 4세 단군을 계승하여 잠시 보위에 있던 해부루는 동쪽의 차릉(가섭원)으로 이주하여 동부여를 세웠다. 이로써 부여는 동서로 나뉘게 되고 후기 북부여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두막한의 등장으로 전기 북부여 시대가 끝나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북부여는 고두막 단군의 다음 대에 이르러 182년(BCE 239~BCE 58)의 짧은 역사를 끝내게 된다.



‘북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은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 맥을 바로잡는 핵심 요체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학계는 위만정권을 고조선의 계승자로 앉혔을(BCE 194) 뿐 아니라,‘

위만정권이 한나라에게 망한(BCE 108) 후 고조선이 있던 그 자리에 한나라가 네 개의 군[漢四郡]을 설치하였다’라고 가르친다. 북부여는 온데간데없고, 중국의 식민지인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강단사학자들은 또한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근거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를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버지로 설정하였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 고주몽이 태어나 고구려를 열었다’라고 하여, 해모수와 주몽을 거의 동시대 인물로 만들었다. 180여 년에 걸친 북부여 6대 단군의 역사를 완전히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왜 북부여사는 이렇게 난도질되었는가?


그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한 무제가 동명왕 고두막한에게 패한 치욕을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북부여사를 누락시킨 데서 비롯된다. 그 후 중국의 모든 사서에서 북부여 역사가 사라졌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사서들이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일제 식민사학자와 국내 강단사학자들이 다시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였다.

 

강단 사학계는 부여 역사를 외면하지만, 부여사는 단재 신채호가 한국 민족을 부여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민족사의 골간을 이룬다.

몇 안 되는 부여사 연구가 중에 신용하 교수는, 부여가 최소한 BCE 5세기부터 CE 5세기까지 약 천여 년 동안 만주 일대에 존재하였으며 CE 4세기 전반까지 동북아의 최선진국이었다고 말한다. CE 5세기라면 『북부여기』가 전하는, 북부여에서 분파된 마지막 부여인 연나부부여(서부여)가 멸망한 때(494)와 일치한다.

 

『후한서』, 『 삼국지』 등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부여사는 모두 서부여의 역사이다.


서부여는 동부여가 망한 후 요서에 생긴 망명부여로서, 서부여사는 부여의 끝자락 역사이다.

예를 들어『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울구태蔚仇台, 간위거簡位居, 마여麻余, 의려依慮 등은 모두 서부여의 왕이다. 그런데도 강단사학계에서 나온 책과 논문들은 서부여를 부여의 원래 모습인 양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부여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부여의 원형이 처참히 파괴되고 한국사의 허리가 잘려 버렸다. 한국사의 국통 맥이 어지러워지고 뿌리 역사가 소멸되었다. 북부여라는 잃어버린 고리가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제대로 연결되는 그날이 바로 동방 배달민족사의 국통 맥이 온전하게 서는 역사 광복의 날이 될 것이다.
백랑수 21-03-06 18:09
   
뭐라?
내가 10 년 넘게 중국을 위해 왜곡된 지도를 팟다고?
정말 무식한 놈이로고.
네 눈에 내가 추정한 지도가 중국을 위한 것이라고 보느냐?
한심한지고.

일본이 조작한 역사지리에 기반한 상생방송 역사프로그램과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틀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서 스스로 사료 원문을 찾아 공부하거라.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이뿐이니라.
     
위구르 21-03-07 03:03
   
말하는 꼬라지부터 틀려먹었네
마술 21-03-06 19:45
   
여기 가생이닷컴에서 논해 보아야, 글쎄...
지누짱 21-03-07 13:41
   
강단사학계를 비판비난하는 사람들은 환단고기뿐아니라 여러 문헌과 고고학적 유적유물이 뒷받침된 통사를 쓰세요. 그래야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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