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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16 21:11
[한국사]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조선에 망명’이 고려 때 ‘기자가 평양 왔다’로 둔갑하다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1,075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조선에 망명’이 고려 때 ‘기자가 평양 왔다’로 둔갑하다
입력: 2018.01.22 23:16 수정: 2018.01.23 01:52

<3> 기자는 평양으로 왔는가

조선 사대부들은 평양을 기자(箕子)의 도읍지란 뜻에서 기성(箕城)이라고 불렀다. 기자가 평양으로 와서 기자조선의 왕이 되었다는 이른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이다. 지금 사람들은 기자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고려,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기자는 국조(國祖) 단군(檀君)에 버금가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세상을 중화족과 이족(夷族)으로 나누는 화이관(華夷觀)으로 바라보던 고려,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에서 온 기자를 우리 선조로 삼으면 우리 민족이 이(夷)가 아니라 화(華)가 된다고 생각했다.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둘째 치더라도 기자 존숭 사상이 한국 사대주의의 뿌리라는 점에서 ‘기자동래설’은 범상히 넘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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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사 기자 화상. 이는 조선에서 그린 그림이다.

서기전 12세기경의 인물인 기자는 은(殷)나라 왕족이었다. 그의 부친은 은(殷)나라 28대 임금 문정(文丁: 태정(太丁)이라고도 함)이었고,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의 숙부였다. 중국은 전 왕조의 마지막 임금을 폭군으로 그리는 것으로 역성혁명을 정당화했는데, 은나라 주왕도 이런 필법에 따라 극악한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폭군 곁에는 늘 임금의 눈을 가리는 여인이 있다는 것도 중국식 역사서술 방법의 하나인데, 주왕에게는 총희(寵姬) 달기(?己)가 있었다. 술로 만든 연못과 고기로 만든 수풀이란 뜻의 ‘주지육림’(酒池肉林)도 주왕과 달기의 연회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기’의 ‘은(殷) 본기’ 주왕(紂王)조에서 ‘주왕이 술로써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으로 만들었다’(以酒爲池, 縣肉爲林)고 묘사한 데서 나온 사자성어다.



●“殷 왕족 기자 周 통치 못참아 조선행”

실제 폭군 여부를 떠나서 망국(亡國) 군주가 비판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또한 망국 군주들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간쟁을 거부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은나라 주왕도 그랬다. 주왕의 실정을 간쟁한 은나라 세 왕족은 공자 때문에 유명해졌다. 공자가 ‘논어’의 ‘미자(微子)편’에서 비간(比干), 미자(微子), 기자를 은나라의 ‘세 어진 사람’(三仁)이라고 크게 높였던 것이다. 이 중 가장 강력하게 간쟁한 인물은 28대 문정의 둘째 아들이자 주왕의 숙부인 왕자 비간이다. 비간의 간쟁에 분노한 주왕은 “내가 들으니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면서 비간의 가슴을 갈라서 그 심장을 꺼내 보았다고 한다. 이 소식에 놀란 미자는 도망쳤고 기자는 미친 척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사이 은(殷)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나라 서백(西伯·문왕)은 여러 제후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길렀다. 서백의 아들 무왕(武王)은 부친 사후 제후들을 연합해 주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주나라 천하를 세운 무왕은 자신의 동생 소공(召公) 석(釋)을 시켜 감옥에 갇힌 기자를 석방했다. ‘상서대전’의 ‘은전’ 홍범 조는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석방된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조선으로 도주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기자가 동쪽 (고)조선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의 뿌리인데, 기자가 도주했다는 고조선은 단군조선을 뜻한다.

고려의 유학자들은 ‘조선으로 도주했다’는 구절 앞에 ‘동쪽’이란 방위사를 자의적으로 넣어서 기자가 평양으로 왔다고 둔갑시켰다. 기자가 세상을 떠난 지 2400여년 후인 12세기경인 숙종 7년(1102) 10월, 예부(禮部)에서 숙종에게 이렇게 주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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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 있는 기자릉
서기전 12세기경의 인물인 기자는 사후 2600여년 후 고려 유학자들에 의해 평양에 가짜 무덤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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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평양일대 기자 무덤 뒤지다 헛수고

“우리나라의 교화와 예의는 기자에서 시작되었는데, 아직 국가에서 제사 지내는 사전(祀典)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 무덤을 찾고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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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무덤을 찾아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주청이다. ‘고려사’의 ‘정문(鄭文·?~1106) 열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정문이 “임금의 서경(西京) 행차를 호종하면서 기자 사당을 건립할 것을 청했다”라고 돼 있어 정문이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정문의 아버지 정배걸도 유학의 학술(儒術)로 문종(文宗)을 보필했다는 인물이므로 대를 이은 유학자 집안이었다. 숙종의 허락을 받은 예부에서 평양 일대를 뒤지며 기자의 무덤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기자의 무덤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의 ‘송미자 세가’ 주석에는 두예(杜預·222~285)가 “기자의 무덤은 양국(梁國) 몽현(蒙縣)에 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3세기경 서진(西晋)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두예가 말한 양국 몽현은 지금의 하남(河南)성 상구(商丘)시 북쪽이다. 은(殷)나라는 상(商)나라로도 불렸는데 구(丘)자에는 ‘옛터’라는 뜻이 있으니 상구(商丘)는 ‘은나라 옛터’라는 뜻이다. 필자는 2016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하남성 상구시 북부와 산동(山東)성 조현(曹縣)이 교차하는 곳인데, 무덤이 있다는 농촌 마을을 찾아갔지만 옥수수밭 천지여서 찾을 수가 없었다. 한 현지인이 오토바이 수레를 타고 나타나 대략 위치를 짚어 주어 옥수수밭을 헤치고 들어가니 실제로 기자의 무덤이 있었다. 두예의 말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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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성 상구시 기자묘
하남성과 산동성 경계의 실제 기자묘는 옥수수 밭 사이에 가려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하남성 상구시에 있는 기자무덤을 수천리 떨어진 평양에서 찾았으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고려 유학자들은 기자 무덤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220여년 후인 고려 충숙왕 12년(1325) 10월자 ‘고려사’의 ‘예지’는 “평양부에 명을 내려 기자의 사당을 세워서 제사하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평양에 기자의 가짜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서기전 12세기 때 인물인 기자는 사후 2600여년 후인 14세기에 평양에 가짜 무덤이 생겼다. 그렇게 평양은 기성(箕城)이 되었다.

기자의 무덤이 어딘가 하는 문제가 왜 중요하냐면 ‘기자=평양설’이 중국 동북공정의 주요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한국 고대사가 순수 고대사가 아니라 첨예한 현대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기자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이라며 북한강역을 자국의 역사강역이라고 우기고 있는 중이다. 하남성 상구시의 옛 기자 무덤에 새로 세운 묘비에는 ‘고려사’ 등 한국 사료만 잔뜩 쓰여 있었다. 중국의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기자의 무덤을 평양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하남성 상구시의 기자묘를 슬그머니 없애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中, 기자동래설을 동북공정 침략논리로

조선총독부는 한국 강점 직후 중추원 산하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름 자체에 한국사의 공간에서 ‘대륙과 해양’을 삭제하고 ‘반도’(半島)로 축소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들어 있다. 이때 만든 ‘조선반도사’의 상고 부분은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썼는데 “이른바 기씨(箕氏)조선은 본래 한강 이북 대동강 방면에 있어 중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고 썼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기자를 인정하면 한국의 종주국이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마니시 류는 ‘기자조선 전설고(考)’(1922)를 다시 써서 기자를 부인했고 시라토리 구라기치, 나카 미치요 같은 식민사학자들이 뒤를 이어 기자를 부인했다. 한국사를 중국사에서 떼어 일본사에 붙이기 위한 것이었다. 나아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몰아붙이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고안해 한국사의 시간도 반만년에서 1500년으로 대폭 축소했다. 반면 빨라야 3세기 후반부터 시작하는 일본사는 서기전 660년에 야마토왜가 건국했다고 무려 1000년을 끌어올려 2600년 역사로 조작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일본부라는 고대판 조선총독부가 있었다고 우겼다. 지금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극우파의 이런 역사침략은 계속된다.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지금의 동북아 역사전쟁과 맞닥뜨리게 된다.

■만주 서쪽에도 ‘평양 ’… 고구려의 수도 의미

‘평양’은 현재의 평양뿐인가

평양은 특정 지역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구려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장수왕 15년(427)에 천도한 평양 외에도 평양은 많았다. 고구려는 동천왕 20년(246)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丘儉)의 침략으로 수도 환도성이 일시 함락되었다. 동천왕은 이듬해(247) 천도를 단행하는데, ‘삼국사기’는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仙人王儉)의 옛 터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인 왕검이란 물론 단군왕검을 뜻한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을 처음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때의 평양은 물론 지금의 북한 평양이 아니라 만주 서쪽에 있던 평양이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cp=seoul&id=20180123018004#csidx911a03e860242efb2ee7cd4c8a03596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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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1-02-16 21:14
   
그림은 첨부방법을 몰라 놔두었네요. 출처에 가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이로써
1. 기자동래 평양설은 문헌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완전히 깨졌고
2. 고조선의 서쪽경계가 기자당시 산동과 하북성 영역이었으며
3. 그뒤 세력변동에 따라 위만이 넘어올때는 난하유역이었다.
     
부르르르 21-02-20 03:02
   
기자가 조선땅을 한 번이라도 밟아보긴 했을까요?
비좀와라 21-02-17 03:08
   
"그뒤 세력변동에 따라 위만이 넘어올때는 난하유역이었다."

이 것도 조금 이상하죠.

북경은 얼마전 까지 그 곳 현지 사람들은 북평이라고 불렸다고 해요. 원래 북경의 옛 이름이 북평 이었다고요.

그럼 북평은 어떤 곳 일까요? 공손찬이 있었던 곳이죠. 그런데 우리는 북평을 어디로 보나요?
     
지누짱 21-02-17 10:33
   
3번은 윤내현교수 의견인데 님의견도 일리있네요.
근데 제상식으로 북평은 북경근처로 알고있어요
영종햇살 21-02-17 12:57
   
지금은 없어진 향고도님의 블로그에 보면.....
산서성에 기산(箕山)이 있고 산위에 기자묘가 있다고 나옵니다.
     
지누짱 21-02-18 12:22
   
그분 블로그에 나온다해도 진실이라고는 할 수없죠
백랑수 21-02-18 12:48
   
평양이 고구려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고 그 수도 많다고?
헐!
정말 정확하게 짚어내고나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대체 이덕일가 말하는 평양은 만주 서쪽 어디라는 것인가?
<수서/지리지> 상곡군 수성현 기록은 왜 들먹이냐?
그 보정 지역을 낙랑군이고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냐?

이덕일은 리지린.윤내현같은 부정확하지만 열성적인 노력에 근거한 논리나 정확한 지식도 없이 무조건 기승전, 현평양.낙랑군 부정이다.

평양은 보통명사도 아니고 많지도 않다. <삼국유사>의 평양과 <삼국사기>의 평양, 2 개가 전부다.
<유사>의 평양은 왕검조선의 첫도읍이고 <사기/고구려본기>의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은 준왕조선의 왕검성이였다.

왕검조선의 첫도읍인 평양.임검성은 현 요녕성 능원 부근이고 <청사고/지리지> 길림성 길림부 쌍양현이며, 동천왕이 천도한 평양성은 현 요녕성 건창 부근이며 고려의 서경이며 이조선의 평양부였다. 즉 2 개 평양 모두 지금의 란하 동쪽에 있었다.

왜일까?
시황 진까지의 요수는 난수 곧 한 시기 어양.우북평.요서 3 개 군을 경유하는 난수이며 송 이후 개칭된 란하였고 유방 한부터의 요수는 요서군에서 북쪽으로 300 리 떨어진 요동군을 흐르는 1250 리 길이 대요수 곧 송 이후 황하였으며 송.거란 이후의 요하는 한 시기 요동군으로 흘러든 현토군 서개마현을 흐르는 마자수를 받아들인 2100 리 길이 염난수였다. 즉 3 개 물길을 지금의 란하 각 지류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란하.황하.요하를 일본 명치왕군부 참모국 아이들이 지도조작하는 습작질과 대대적 홍보질을 하다가 1934 년 만주국지도에서 변조.이동 등의 조작질로 완결한 것이 지금의 란하,서요하,요하이고 압록강이다. 동시에 각 물길 주변에 설치되었던 모든 지명 역시 몽땅 옮겼고 그 만주국지도 표시를 그대로 습용한 것이 지금의 중국전도와 한국전도다.

따라서 임검성.평양은 지금의 란하 지류 열하와 지금의 서요하 지류 노합하를 가르는 분수령의 동쪽에, 준왕조선.고구려.고려.이조선의 평양은 지금의 란하 동쪽 큰 2 개 지류 중 남쪽에 흐르는 지금의 청룡하 동쪽에 있었다.

임검성.평양은 <규원사화>와 <청사고/지리지>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왕검성.평양은 중국의 <사기>부터 <청사고/지리지>까지 북경 이동의 지리를 설명한 모든 정사급 지리지 기록과 대한의 <삼국사기>부터 <삼국유사><제왕운기><고려사><승람><실록> 및 이조선의 모든 선학들의 인식과 일치한다.

단지 현 대한의 강단사학계는 물론이고 식민사관을 비판한다는 리지린.윤내현을 필두로 모든 재야까지도 미숙하고 엉성한 논리에 근거하며 게다가 일본이 조작한 지리 1934 년 간행 만주국지도의 지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니 글이 꼬이고 꿰어맞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정사급 지리지 기록과 변조되지 않은 고지도를 토대로 다시 공부하라.
처절하게 머리를 굴려야 할 것이야.
     
위구르 21-02-18 13:33
   
이덕일은 리지린.윤내현같은 부정확하지만 열성적인 노력에 근거한 논리나 정확한 지식도 없이 무조건 기승전, 현평양.낙랑군 부정이다. <- 후한서 '락랑군 구조선국 재료동'같은 기록을 근거로 만주 서쪽에 있다 주장하는데 지식도 없이 부정한다고? 늙은 놈아. 나이살 처먹었으면 글 그따위로 쓰지 말고 잠자코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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