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쓰신 문헌에 대한 내용은 동의합니다.
첫번째 지도도 정확하네요.
블로그 가서 글을 읽어보니, 흥미를 끄는 내용도 있고, 문헌 찾아내시는거나, 해독하시는거나 본받을만한 점이 있네요.
그런데, 요수를 청룡하, 폭하로 말씀하신 것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참 어려운 주제인데요. 예를 들어서 요양이라는 지역이요.
고대에서 근대까지 현재 요양시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느냐 찾아내는 것 말입니다.
문헌 고증한 것을 지도에 비정할 때, 정말 청룡하와 폭하가 맞느냐, 저는 의문이 듭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면들을 보고 판단합니다.
요양시에 성곽 유적, 유물이 현재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요양이 현재의 요양시와 위치변화가 크게 없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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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문헌을 중심으로 얘기해보죠.
말씀하셨듯이 고려 말기의 압록강은 혼하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고려시대 말에 원나라가 요동에 세력이 남아 있을 때, 동녕부의 일부를 원나라에게서 돌려받았고, 고려 왕족이 심왕에 꾸준히 봉해졌습니다.
그래서 현재 요양시는 원나라 세력권이나, 현재 심양시에서 동북쪽은 고려의 영토권 내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혼하의 중류에서 하류는 원나라가 영토를 가지고 있고, 혼하의 상류는 고려의 영토로 돌아오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명나라로 교체가 되면서는..
1370년에 이성계가 공격하여 동으로 황성, 남으로 압록, 서로 바다, 북으로 동녕부까지 비워습니다.
1372~1376년에 걸쳐서 명나라가 정료, 해주, 개주, 복주위를 설치하는데, 동녕위는 1380년, 심양위는 1386년,삼만위는 1387년으로 비교적 나중에 세워집니다.
정료위에서 해주,개주,복주위 들의 영토를 계산해보면, 서쪽으로 요하, 남쪽으로 바다, 북쪽으로 혼하, 동쪽으로는 압록강, 봉황성까지였습니다.
정료위의 동쪽 영토가 압록강과 봉황성이 동시에 나옵니다. 아마 현재의 압록강까지 오지 못한 것 아닌가 하네요.
또, 심양 북쪽은 한참 뒤에나 차지하게 되고, 심양중위 동쪽경계가 무순관까지이고, 삼만위 남쪽경계는 무순역이고, 동쪽경계는 분수령입니다. 현재 압록강 중류에서 상류는 전혀 차지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요하, 혼하, 태자하의 중류에서 하류까지를 명나라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목은 이색의 기록에 보면 명나라가 압록강의 남쪽과 북쪽 언덕을 다 차지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앞선 기록 정료,복주,해주,개주위의 영토범위와 대조해보면, 정료위가 현재의 압록강까지 오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청일통지나, 우리측 조선시대 중후기 기록을 보면, 혼하가 백산에서 발원한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보통 압록강이 백산에서 발원한다는 기록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이런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고려 말에 혼하가 압록강이었고, 정료,복주,해주,개주위가 설치되면서 혼하(압록강)의 중류, 하류를 빼앗기게 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고려 말에 압록강이 혼하에 있었다가, 명나라가 정료위를 설치하면서 현재의 압록강유역으로 이동되었던 것으로 봅니다.
목은시고 제20권
합좌(合坐)
압록강에 사람 왕래를 어찌 제한할꼬 / 鴨江豈限人來去
양쪽 언덕이 모두 명나라에 속하거늘 / 兩岸如今屬大明
정료위(定遼衛)가 재촉하여 유이문(流移文)을 발송하였다. /定遼衛催發流移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