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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30 23:52
[한국사] 산동백제에 대해서 ㅡ 국산아몬드님께 답변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830  

저는 지금 몇달째 고려 강역사 연구한 것을 정리하고 있어서 여력이 없습니다

지난 5 년 동안 이곳 동아게에서 백제 문제를 가장 많이, 가장 자주, 가장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유저를, 게시판을 갈무리해서 보시면 뜻밖에도 저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뻔히 지도로 제시한 반론을 가지고 육하원칙 운운하시는 것은 지나친 태도십니다

그게 쉬운 지도처럼 보여도 근 1년 6개월의 기백 개 연구를 집약한 것입니다 모두 제 자력으로 연구한 것이고요

저는 이곳 동아게에서 몇 가지 가정, 또는 추정을 했습니다

1. 초기 백제는 고구려에서 그렇게 멀리 이주해 자리잡지 않았을 것이다

2. 초기 백제의 일부는 고구려에 속한 한 세력으로 더부살이를 했을 것이고, 속해 있다가 이탈한 집단도 있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속하지 않은 집단도 있었을 것이다

3. 요서백제는 왕망의 신나라 이후 조백하, 또는 난하 바깥 지역에 후한 때까지 발생한 힘의 공백, 그리고 이후 공손씨와 모용선비, 이 시기,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후한이 낙랑을 접수한 것은 고구려의 방관에 따른 것으로 고구려는 이들 지역을 조차지, 또는 홍콩이나 마카오를 대하는 중국처럼 삼았을 것이다

5. 고구려 초기에 부용한 마한은 백제일 가능성이 있다

6. 만약 요서백제가 발해(현 천진ㆍ창저우ㆍ빈주 일대)와 산동지역으로 이동해 근거하였다면 5호 16국, 특히 모용선비의 하북 진출의 진퇴거듭의 연대기 속에 틈이 있었을 것이다

7. 부여유민과 백제와의 커넥션은 검토할 수 있는가

8. 회수 이북의, 현 산동지역은 북위 태무제 이후 북위 영토였는데 강하게 상충하는 기록을 어떻게 풀 수 있는가
ㅡ 이게 핵심 1



9. 당시 국제 정세는 어떻게 흘러갔고, 백제는 어디에 주력했는가
ㅡ 이게 핵심 2

논리가 서지 않으면 주장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논리는 어디까지나 근거에 바탕하고
과학적 계산을 거쳐서 나옵니다

사료가 정면으로 상충하면
그것들은 어느 한쪽만 절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요서백제는 가능성이 높다
산동백제는 가능성이 적다

즉 이러한 추정결론밖에 내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가지고 누가 더 잘 추론하느냐"가 관건이라 하셨는데 그 누구나 아는 그 사실도 누군가 여러 사람의 생고생이 바탕된 것이고, 아무도 모르거나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기록, 시각, 접근론을 찾으려 끼니 거르며 밤을 새는 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선의 백제사는
김상 선생의 삼한사의 재조명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김상 선생님은 예전에 몇 번 말을 걸었는데 취급을 안 해주시더군요 당신이 보시기에 제가 같잖아 보이셨나봅니다

이 지도는
김영덕 교수님의 연구를 바탕한 것입니다

더하여서
동아게에서 제가 몇 번 주장한 바가 있는데
조선과 일본 사이의 대마도의 성격에서 어쩌면 산동이든 요서든 마지막 힌트가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덧붙이자면
5호 16국보다 더 어지러웠던 중근세 유럽사에서
백제사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영덕 교수님은 좌현왕 여곤이 왜왕 무, 우현왕 여기가 큐슈지역 다무로의 후왕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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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아몬드 21-01-31 20:56
   
태무제가 화북을 통일하였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위서 원문은 저에게 없고 블로그에서 아래와 같이 태무제의 친정 내역이 나오더군요
https://coderlife.tistory.com/809

북위 연화 2년(433) 북위군은 북연의 용성을 불태우다
태연 5년(439년) 탁발도가 북량군을  패퇴시키자 저거목건은 성문을 열고 항복하다
태평진군 4년(443년) 유연의 가한 오제를 격파하다
태평진군 6년(445년) 북방의 노수호 부족을 토벌하다
태평진군 7년(446년) 연주,청주,기주를 공략하다
태평진군 10년(449년) 유연을 공략하다
태평진군 11년(450년) 남방국가 송나라를 공격하다

여기서 확실하게 멸망시킨 나라는 북연과 북량입니다
기사의 내용에서도 멸망을 알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연주,청주,기주 그리고 유연에게는 공략하다, 송나라에게도 공격하다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멸망시키지 못한것이죠
실제 유연은 6세기 말까지 존속하고 송나라도 479년가지 존속합니다

그렇다면 연주,청주,기주도 마찬가지로 점령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연주,청주,기주 중 청주가 산동반도 유역입니다
그리고 송나라와 별개로 언급한 것으로 추측하건데 산동반도는 송나라에 속하지 않은 독자세력인것을 알수 있습니다

6하원칙을 요구한것은 말씀하신 내용으로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논의의 범위를 좁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감방친구 21-01-31 22:26
   
저는 사서를 직접 보면서, 또 직접 해석하여 교차하면서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회북(淮北)은 회수의 북쪽 지역으로서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북쪽으로부터 산동성 지역까지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북위 태무제 때부터 송(劉宋)이 회북 지역을 상실했다 하는 것은 과장된 발언은 맞습니다만 북위의 공격을 받고서 송 명제(明帝), 동시기 북위 문성제(文成帝) - 헌문제(獻文帝) 시기에 이 회북 지역을 북위에게 상실하고서 그 지역에 있던 행정지를 남쪽으로 대거 교치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송서(宋書)의 명제 본기와 주군지에 잘 기술돼 있습니다

__________

설안도(薛安都)가 삭로(索虜, 북위)를 끌어모으니 장영(張永)과 심유지(沈攸之)가 대패(大敗)하였다. 이로써(이 때에) 마침내 회북(淮北)의 4 개 주와 예주(豫州), 회서(淮西)의 땅을 잃었다. 〔 원문 발췌 및 국역 : 무쿠리(mvkuri) 〕
薛安都要引索虜張永沈攸之大敗於是遂失淮北四州及豫州淮西地《宋書 卷八本紀第八 明帝》
____________

이 때가 송 명제 태시(泰始) 2년으로, 466년입니다

송서 주군지(州郡志)에는 徐州(서주), 青州(청주), 兗州(연주) 등이 이 때에 상실돼 교치하였다(失淮北僑立)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제가 본문에 지도를 그려 제시한 내용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것들로서,
중국사서에도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 480 년의, 고구려 사신이 북위의 광주 앞바다에서 붙잡힌 사건을 보면

_______

광주(光州)에서 연(璉, 장수왕)이 소도성(蕭道成, 남제 창업주)에게 보낸 사신 여노(餘奴) 등을 해상(海中)에서 체포하여 대궐로 압송하여 왔다. 時光州於海中得璉所遣詣蕭道成使餘奴等送闕 《위서 고구려전/동북아역사넷 국역본 근거》
___________

이 기사의 내용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68년(480) 기사에 보다 구체적으로, 거의 동일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光州(광주)는 지금의 산동성 래주시(莱州市)입니다.
     
감방친구 21-01-31 22:47
   
冀州(기주)의 경우

송서 명제 본기 태시 4년(468) 정초 기사에 북기주니 동청주니 하는 식의 분치와 교치 기사가 나오는데

위서 지형지의 제주(齊州) 조를 보면 황흥 3년(469)에 기주의 이름을 제주로 바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齊州治歷城劉義隆置冀州皇興三年更名《魏書 志第六 地形二中》)

따라서 늦어도 467년 이전, 대체로 466년에 기주가 북위에게 함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산아몬드 21-02-01 22:30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더군요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왕은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남제에 조빙케 했는데, 위나라 광주(光州) 사람이 바다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위나라] 대궐로 보내니 위 고조가 왕에게 조서를 보내 책망했다.


기록대로라면 광주에서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해로에 밝은 광주사람이 바다에서 여노를 붙잡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출신이 광주사람이란 것이지 광주 앞바다란 증거가 없습니다

광주 앞바다라면 더 이상합니다
남제로 가는 고구려 사신이 왜 북위영토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잡혔을까요?
남제로 갈려면 산동반도 아래에 있고 남제 영토인 연운항으로 가는게 정상이지 않습니까?
광주라면 산동반도 위쪽, 북위 영토 깊숙한곳으로 들어갔다가 잡혔다는 뜻인데
사신이 북위에 붙잡히러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런 항로로 갔다는 것이 상식적일까요?

그리고 북위는 고구려 사신이 남제와 교통하려고 사신을 보내는 것을 사전에 파악했습니다
그말인 즉 북위 광주 사람이 바다 어디에서 매복해 있다가 고구려 사신을 붙잡았다는 뜻이지 광주해상에서 통상적인 영해 순찰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잡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주는 산동반도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지역입니다
산동성 서부, 허난성 북부에 있는 지역입니다. 상당한 내륙이죠
기주가 북위에게 점령당했다고 해서 산동반도가 북위땅이라는 논리는 성립이 안됩니다

그리고 송이 청주(산동반도) 지역을 애초에 영유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만약 청주가 송의 영토였다면 태무제의 기록에
"태평진군 7년(446년) 연주,청주,기주를 공략하다" 가 아니라 "송나라를 공략했다"라고 했어야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태평진군 11년(450년)"에야  "남방국가 송나라를 공격하다"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는 북위가 청주와 송나라를 구분해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다른 세력이란 뜻이죠

그리고 북위가 청주지역을 별도의 왕조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백제의 행정구역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서를 직접 연구하시는 것은 존경할만한 일이나
중요한 것은 기록들의 행간을 파악하고 숨은 역사의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작업은 사서를 직접 연구한다고 해서 더 유리하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감방친구 21-02-01 22:55
   
국산아몬드님, 왜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아전인수식으로 역사를 해석하십니까

그러시는 것은 역사 연구든 단순 관심이든 그 무엇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국산아몬드 21-02-01 22:59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아전인수식으로 역사를 해석하십니까?
-------------------------------------------------------------
어떤 부분이 아전인수인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충분히 가능성있는 가설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반박을 하시려면 어떤부분에 어떤것이 잘못되었다고 증거를 가지고 제시하시면 됩니다
아전인수인지 뭔지 모호한 개인적인 판단은 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안됩니다

저보고 아전인수라고 하셨는데 감방친구님에 대한 저의 생각도 말씀드리죠
감방친구님은 사서의 전후 맥락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서투릅니다
또한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대충 판단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주와 청주는 엄연히 다른 지역인데 뭉뚱거려 산동지역이라고 판단하셨죠

이렇게 말하니 기분나쁘시죠?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서로 들이밀면 서로 기분나쁩니다
서로 자제합시다
                         
감방친구 21-02-01 23:11
   
아니 본인이 뻔히 그러시고도 그걸 되물으세요? 이런 식의 대화는 저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고통입니다

위에 제시한 송서 기록은 왜 빼놓고 그러시는 건데요?

고대의 해운은 기본적으로 해류를 따르는 연안항해이고 이조차도 위험했으며 조난, 난파 당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북위가 난파 당한 사실,
백제가 고구려 해군에 막혀 돌아온 사실
등도 같이 검토하셔야죠

이 주제에 대한 대화는
여기서는 그만 하겠습니다
                         
감방친구 21-02-01 23:15
   
아니 기주가 어딘지도 모를까봐 그러세요?

대체 저에게 사서를 보는 게 서툴다고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씀 하세요?

코웃음밖에 안 나올 소리를 저에게 하십니다
대체 기가 막혀서
                         
감방친구 21-02-01 23:22
   
기주가 한두 곳인줄 아세요?
산동에 있던 기주는 지금의 산동 제남시로
위에서 송서 기록 국역해 보여드렸는데
뭘 보셨어요?

사서를 뭘 어째요?
님이 정말 사서를 보는 분이세요?
                         
국산아몬드 21-02-02 20:21
   
고구려시대에 연안항해라니 ㅎㅎㅎ

님 말대로 연안항해만 가능했다면 고구려와 남제가 서로 방문하려면 북위연안을 수천리 항해해야 한다는 건데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북위가 곱게 내버려둘것 같습니까?

연안항해만 가능하다면 소정방이 당나라 13만 대군을 이끌고 어떻게 백제땅에 쳐들어갔겠습니까?
소정방이 고구려 연안을 따라 백제에 쳐들어 갔을까요?

백제는 고구려, 북위 해안을 따라 멀리 돌아서 남제와 교류했나보죠?

고대에 연안항해만 가능하다라는 것이 님의 주장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시나요?
200년 남짓한 세월에 조선기술이 급속 발전했나보죠?

저 직장인이고 사서를 연구하는 사람 아니라고 이전에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굳이 사서를 연구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꾸 기주와 청주(산동)을 묶지 마시라니까요
기주와 산동반도 끝자락인 위해시까지는 480km가 넘어요
평양에서 부산까지 거리입니다. 얼마나 넓은 거리인데 한덩어리로 묶나요?
남연 모용덕이 청주 지역을 차지하는 기사만 봐도
활대(기주)에 터를 잡고  연주를 쳐서 정복하고 청주의 벽려혼을 정벌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기주,연주,청주 죄다 서로 다른 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시는데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닥치고 기주와 산동은 인근지역이라고 하지 않나
고구려 항해는 연안항해만 가능하다고 우기지 않나?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사실만으로 얼마든지 반박가능한 사실인데 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겁니까?

제 논리 어디에 허술한 구석이 있어서 억지부린다고 왜곡하시나요?
아직까지 제대로된 반박이 없는것으로 보이는데요
                         
감방친구 21-02-02 21:19
   
대체 왜 자꾸 그러십니까?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이 논쟁은
국산아몬드님이
제가 산동은 북위 영토였다고 하니까
북위 영토가 아니었다고 하신 데에서 촉발된 것입니다

그리고 논쟁의 원점은 과연 삼국사기 백제본기, 남제서의 북위와 백제의 전투가
가능했느냐, 산동에 그 당시에 백제가 있었느냐
이것이 논쟁의 원점
백제와 북위 전쟁 기사는 480년대 말부터 490년대 초까지 총 3 차례

산동백제를 지지하는 입장은
백제가 이 당시에 발해와 산동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더 나아가서 남중국 동해안 일대 역시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제가 본문에서 얘기했죠?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수시로 얘기한 거
산동백제가 가능하려면
5호 16국 시대부터 남북조 조성 초기에 백제가 이 지역에
조선과 일본 사이의 대마도와 비슷한 성격의 지방정권내지 세력이 자리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그 지역의 대세력에 부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백제와 연결돼 있는 그런 식으로서 작용했을 것이고

모용선비의 남연이 400년 전후로 산동지역을 차지하고 있다가
망했는데 유송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전까지 이리저리 왕조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힘의 공백기가 생겼을 때에
모용선비와 함께 했던 요서백제의 유민이거나 부여의 유민이 산동 지역 일부의 지역군벌로 있다가 유송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에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하는 등등의 추론이 그것

-----------------

다시 국산아몬드님과 저의 이 논쟁으로 돌아가면

추정과 추론으로는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가능성이 있다
가능성이 높다
가능성이 낮다

이 정도밖에는 언술할 수 없습니다

북위가 산동지역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하셨죠?

님과 저의 이 짜증나는 논쟁의 핵심은
님은 북위가 산동지역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고 했고
저는 북위가 산동지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며 맞선 것이고

저는 사서 기록을 가지고 근거로 제시를 했습니다

그 근거
삼국사기
위서
송서
의 기록들을 보고서도

북위가 회수 북쪽을 차지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이 기록들을 뭔 수로 부정을 해요?
                         
감방친구 21-02-02 21:23
   
더이상 국산아모드님과 이 문제로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런 대화가 안 돼요

사실을 취사선택해서 아전인수한다는 말에 왜 역정을 냅니까?
안 그랬어요?

제가 뻔히 일삼아 사서원문 찾아서 국역해서 보여주는데도
그거에 대해서 일언반구 아무런 언급도 없이
그냥 끝까지 자기 얘기만 하고 있잖습니까

그런 태도로 뭔 대화를 해요

그냥 댁은 댁이 알아서 백제 연구 하시고
저는 제가 알아서 백제 연구하면 되는 겁니다
                         
감방친구 21-02-02 21:25
   
님과 제가 논쟁을 하면
우리가 주고 받은 말을 우리 두 사람만 보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다 지켜보고
여기에 몇 년이고 그대로 남습니다
                         
감방친구 21-02-02 21:34
   
그 놈의 소정방 얘기는 참
여보세요
고구려가 어디서 배를 띄워서 남제로 사신을 보내요?
그런데 왜 지금의 래주에서 붙잡힙니까?

북위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감시를 해요?
북위가 무슨 항공모함이라도 가지고 있었어요?

유송과 남제로 보낸 백제 사신선은 왜 고구려 해군에게 발각돼 돌아옵니까?

북위 사신선은 왜 난파됐어요?

고구려가 남조로 항해해 가려면 대체 무엇을, 아무런 이정표 없이 쭉 갑니까?

아니 왜 자꾸 본인의 지식이나 통찰을 과장해서 말을 하십니까

다른 말 필요 없이

산동백제 문제 열심히 연구하셔서 논설로서 결과를 내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저도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
                         
감방친구 21-02-02 21:42
   
기주와 청주 묶지 말라니
도대체 뭔 소리여?

대체 이해가 안 가는 소리를
아니 계속 어떻게 저런 무식한 소리를 계속 할 수가 있지?

기가 막히네

아니 송서 본기랑 주군지 원문 가져다 보여주고
위서 지리지도 교차해서 설명해줘도
어떻게 저런 소리를 계속 할 수가 있지?

失淮北四州及豫州淮西地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나?
내가 국역해서 내가 왜곡해서 해석했다고 여기는 것인가?

그리고 자꾸 왜 갑자기 기주 가지고 저러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유송의 기주는 현 산동 제남시 자리에 있었는데 북위에게 빼앗겨서
제주로 명칭이 변경됐다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거여?

기주랑 청주를 묶지 말라니 뭔 소리여?

누가 엮었는데?
내가?

아니~ 기주도 산동의 다른 지역이랑 같이 북위 땅이 됐다고 말하는 건데

뻔히 사서 기록 교차해서 보여주며 청주, 연주, 서주, 예주, 기주 등이 다 북위 땅이 됐다는데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왜 해야 하는 겁니까?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갉아먹고 무용하게 소진시키는 이런 식의 대화는 정말 더이상 안 하겠습니다
                         
감방친구 21-02-02 21:48
   
송서에도 회수 북쪽과 회수 서쪽이 다 북위에게 빼앗겼다고 적었고
위서와도 교차가 되고

산동이 북위 땅이 아니라고 해서 기록 가져다 보여줬더니
아직도 저러고 있고

기주 가지고 그러길래
기주는 시대별, 왕조별로 여러 곳인데 유송의 기주는 현 산동 제남시 일대로
북위가 차지한 후에 제주로 바뀌었다고 설명해줬는데도

뭘 대체 어쩌라는 거여?

그러면 이런 사서 기록을 다 부정한다는 거 아녀?

사서 기록을 다 부정하면 대체 뭘 가지고 얘기를 하자고 그러는 거여?

아 정말

왜 이러는 겨 대체

정말 짜증나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감방친구 21-02-02 21:54
   
아니 어지간히 상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면은
이렇게까지 하질 않지

이미 북위가 고구려 사신선 나포한 거랑
북위가 백제에 사신선 띄웠다가 난파된 거
백제가 유송과 남제에 사신선 띄웠다가 고구려가 가로막아서 보내지 못한 거

이거 제시한 것만 보고서도
더 진중하게 깊이 고민해볼 문제라고 여겨서
자중할 텐데

그 당시 산동이 북위 땅이 아니었다고 나오네?
그래서
그 당시 산동이 북위 땅이었다는 사서 기록을 가져다 보여주니까?
뭐?
이제는 또 뭔 기주 가지고 자꾸 헛소리를 하는 겨?

산동지역은 그 당시 북위 땅이었음

물론 사서 기록이 조작됐을 것이다 라고 혼자서 생각해볼 수는 있지
근데 그걸 가지고 논설을 작성할 수는 없음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붙잡고서도 수십 년 챗바퀴인지?

그거를
지금 알량한 지식과 논리로 단 며칠만에 어거지로 우겨대려고 하네?

누가 산동백제 완전히 부정하자고 해?
내가 언제 산동백제 완전히 부정하자고 했냐고?

이렇게 기록이 서로 강하게 상충하니까
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니까
확언을 하지 말라는 얘기지
                         
국산아몬드 21-02-03 19:22
   
이제 반말이네. 그럼 나도 그렇게 하지

당신은 고구려가 해상권을 장악한줄 아는모양인데
백제의 송에게 사신을 보낸 기록만 해도 18회다
(420(1),424(1),425(1),429(1),430(2),440(1),443(1),450(3),457(2),458(1),463(1),467(1),471(1))
1년에 3차례도 있음
송이 59년간 존재했으니까 3년마다 갈 정도로 빈번했던 셈인데 백제가 해상봉쇄를 뚫고
고구려, 북위 연안으로 다녔단 말인가?

도데체 누가 비정상이란 건가?
말이 안되는 소리는 누가하는줄 모르겠네

"유송의 기주는 현 산동 제남시 일대로"? "산동이 북위 땅이었다는 사서 기록을 가져다 보여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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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제남시가 지금의 산동성에 속해있으니 고대에도 같은 산동지역이라고 우기는  건가?
근거가 고작 그것인가? 도데체 누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건가?

기주(제남시)와 산동해안가 거리가 580km가 넘고 그 거리는 평양과 부산만큼 멀뿐더러
사서에도 기주(제남시)와 청주(산동)는 별개 취급하고 산동지방에 벽려혼이란 군벌까지 있었다
(벽려혼의 벽씨는 중국에는 없음. 한국에는 있음. 그것도 귀족,왕족 출신임. 신라 6부의 성에 "벽"씨가 있고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백제의 "벽류왕"이라고 있으니 백제계라고 추정하고 있음. 또한 칭제건원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음)

제남시가 지금 산동성에 속해있으니 산동지역이라고 우기는 당신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갃하는 건가? 어느 주장이 더 합리적인가? 도데체 누가 우기고 있는지 모르겠네

당신 사서연구한다고 굉장히 잘난줄 아는 모양인데 당신 논리 전개하는 꼴을 보면 가소로운 얼치기야

북위서 저자가 북제의 한족인 위수(魏收)이고 분명 중국의 춘추필법으로 쓰여졌고 수치스러운 역사는 죄다 축소시켰을 것을 감안해야지(거짓말은 아닐꺼야. 누락하거나 굉징히 축소시켰겠지)

이러한 점도 염두에 두지 않고 사서를 문자 그대로 맹신하는 꼴이라니 한심하다
뭐하나 제대로된 반박이 있을 줄 알았는데 닥치고 믿으란다. 그럴려면 차라리 교주나 하지

일관성있게 말하지만 나의 다음 두가지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반론을 해봐

1. 당신은 고구려가 연안항해만 가능하다고 했지. 그래서 고구려 사신이 북위 해안가를 따라서 븍위의 적국인 남제와 교류하려고 산동반도가 시작되는 곳이고 북위 깊숙한 곳인 래주에서 잡혔다고 했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지 신기하기만 함)

  그런데 나는 고구려와 남제와는 충분히 직항으로 왕래할 수 있었다고 헀다
  증거로는 소정방의 백제 침공때도 바로 바다를 건너 침공했다

  내글에 반박할려면 당신은 소정방의 백제 침공 사실을 부정해야 할꺼야

2. 당신은 기주(제남시)가 산동이라고 우겼지만 나는 기주(제남시)와 청주(산동)은 별개라고 했다
  근거로는 기주(제남시)와 산동해안가 거리가 580km나 되고  평양-부산거리라고 했다
  한반도에도 그정도 영토에서 백제,신라,고구려 그리고 후백제,후고구려, 신라가 있었다
  사서에서도 분명 기주, 청주는 구분했고  청주지역만 장악한 벽려혼이란 군벌도 존재
  했다고 했다

  당신은 내가 주장한 2가지 사실을 부정할려면 내가 제시한 모든 팩트를 부정해야 할꺼야
 
나도 직장인이고 집에 오면 쉬고 싶다
더이상 제대로 반론하지 않고 비상식적이니 우긴다는둥 헛소리하는거면 나는 당신을 무시할련다.
수준낮은 글에 아까운 시간에 에너지 소모하고 싶지 않다
                         
국산아몬드 21-02-03 21:19
   
북위가 회수 북쪽을 차지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
당연한거 아니오?

남연이 산동지방을 차지한 건 고작 10년이오
그 이전에는 벽려혼이란 군벌이 차지하고 있었고
벽씨란 성씨, 그리고 칭제건원을 하지 않은것으로 봐서 백제계일수도 있어요

그 이후 송이 남연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북위는 기주,청주,연주를 공략하는 거와 송을 공략하는 것을 구분했다오
다시 말하면 송이 산동지방을 영유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리고 북위가 기주,청주,연주를 공략했다고 했지 점령했다고 했나요?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북위가 산동반도를 영유했다고 믿고 있는거요?
당신은 중국 춘추필법의 말장난에 속고 있는거라오

----------------------------------------------------------------
사서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행간을 봐요
한족 사가의 머리속에 뭐가 있는지. 그래야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될거요

----------------------------------------------------------------
그리고 나보고 자꾸 기주를 들먹인다고 하는데
당신이 기주는 제남시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산동과 같다며?
그래서 내가 틀리다고 말한건데 뭘 이해를 못해요?
내가 외국말하나?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광주사람이 바다에서 여노를 붙잡았다고 되어 있다고 했는데
끝까지 래주에서 붙잡혔단다

고구려 사신이 남제가는데 배타고 북위영토인 래주까지 가는게 상식적이냐고
그런데도 "광주사람" 이 문구하나로 래주에서 잡혔다네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포테이토칩 21-02-04 15:07
   
설안도(薛安都)가 삭로(索虜, 북위)를 끌어모으니 장영(張永)과 심유지(沈攸之)가 대패(大敗)하였다. 이로써(이 때에) 마침내 회북(淮北)의 4 개 주와 예주(豫州), 회서(淮西)의 땅을 잃었다. 〔 원문 발췌 및 국역 : 무쿠리(mvkuri) 〕
薛安都要引索虜張永沈攸之大敗於是遂失淮北四州及豫州淮西地《宋書 卷八本紀第八 明帝》
____________

이 때가 송 명제 태시(泰始) 2년으로, 466년입니다

송서 주군지(州郡志)에는 徐州(서주), 青州(청주), 兗州(연주) 등이 이 때에 상실돼 교치하였다(失淮北僑立)고 적혀 있습니다
/////////////////////////////////////////

님이 감방친구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것 같은데요.

감방친구님은 청주 등등 산동지역의 여러 주들이 기주와 함께 북조에게 상실되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건데 님이 기주와 청주의 거리를 언급하면서 논지가 이상해진것
같은데요.

그리고 연주 청주 기주를 공략했다고 기록됐으니 송나라가 아닐 것이다는 논리도
비약입니다.

동천왕 때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쳐 깨트렸다."라고 기록에 나와있는데 그 논리면
고구려가 친 것은 위나라가 아닌 제3세력이라는 논리도 성립하거든요.
포테이토칩 21-02-03 13:48
   
위에 답답해서 글 남깁니다만 고구려시대에 연안항로를 왜 안 씀??

전쟁이 벌어지거나 혹은 적국이 해안선을 점거하고 있을때나 부득이하게 직항로를 쓰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연안항로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았음.

당장 삼국사기만 봐도 백제의 사신선이 북위로 가는 길을 고구려에게 가로막히거나 북위 사신선이
백제로 가는 길을 고구려에게 가로막히는 기록이 보이고 명나라때까지 하북 해안선을 경유하는 항로가 있었는데.
     
감방친구 21-02-03 15:18
   
고구려에 막히자 연안이 아닌 절강성 등지의 남방항로를 통해
남조와 교류하였는데

한의 오환이나 조위ㆍ서진의 선비 등과 같은 성격으로
회수 이남에서 산동 남부에 이르는 지역에서 백제가 활동하였을 가능성을 저는 연구안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제는 유송이 북위에게 잃은 회수 북쪽 지역에서
산동남부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회복하고
기주와 청주를 두었습니다

즉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간 것이죠

북위와 백제의 전쟁은 남제 시기로
사실이 일면 부합하고

최치원이 말한 오ㆍ월 지역은
회수, 양자강 등지이므로
사실을 꿰어맞추어 얼개를 잡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정과 논증은 성격이 다르죠

논리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억지를 부리고 다람쥐 챗바퀴를 돌리면
이거만큼 고통이 없습니다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337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82%9C%EC%9B%90%EA%B2%BD&sop=or
     
국산아몬드 21-02-04 01:41
   
전 님이 백제가 연안항해로 고구려, 북위를 거져 연안항해로 송나라와 교류했다고 믿는 자체가 놀라워요

고구려와 백제는 고국원왕의 전사(371년) 후 철천치 원수가 되었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백잔이라고까지 표현했죠

그런 적대국가인 백제가 고구려 연안을 항해했다면 고구려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런데 백제는 유송과 활발한 교류를 합니다. 유송에 사신을 보낸 기록만 해도 18회입니다
420(1),424(1),425(1),429(1),430(2),440(1),443(1),450(3),457(2),458(1),463(1),467(1),471(1)

직항이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입니까?
          
포테이토칩 21-02-04 14:54
   
전쟁이 벌어지거나 혹은 적국이 해안선을 점거하고 있을때나 부득이하게 직항로를 쓰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연안항로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았음.
///////////

고구려가 연안항로를 틀어쥐고 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직항을 택했다는 말임.
댓글 좀 자세히 읽고 답변 좀........

아니 그리고 백제가 고구려에게 사신선 막혔다는 내용만 삼국사기에서 몇번을 등장하는데
그 기록들은 다 무시하심?
               
국산아몬드 21-02-04 20:40
   


기가 막혀서
이것 보세요. 고구려는 일본까지 항해한 나라인데 무슨 연안항로로만 다녀요?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40520/63597977/1

[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이야기]<11>바다를 지배했던 고구려 정신에서 배우자

중국의 화북 지역으로 들어갈 때는 평양성 부두를 출항하여 대동강을 빠져나간 다음 혹도(현재 백령도)를 경유하여 대략 300km 항해하여 산동반도에 도착했다.
남방으로 갈 때는 황해를 500∼700km 길게 비켜 질러 상해만을 통과한 후에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이 항로는 북위가 심하게 견제해 사신선이 해상에서 나포된 일도 두 번 있었다.

일본열도로 갈 때는 남해동부 항로도 이용했지만 주로 동해 북부항로를 이용했다. 연해주 남부 일대와 2006년도에 중국이 조차했다고 알려진 두만강 하구의 나진항, 중국이 최근에 임대한 청진항, 원산 등이 출항지이다. 그렇게 출항한 배들은 일본열도의 니가타(新潟), 쓰루가(敦賀), 이즈모(出雲·혼슈 서부 시마네 현의 작은 도시·신라계 신을 모신 가장 오래된 신사 이즈모대사·出雲大社가 자리한 신들의 고향) 지역에 도착했다.
                    
포테이토칩 21-02-04 23:37
   
아저씨, 글 못 읽어요??

고구려가 백제의 외교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연안항로를 점거하며 백제의 사신선을
가로막았다-가 어떻게 고구려가 연안항로'만' 이용했다고 해석되는거죠....??

당연히 왜는 섬나라니까 어쩔수 없이 교류하려면 직항을 이용해야겠죠 ㅋㅋㅋ
                         
국산아몬드 21-02-05 00:23
   
도데체 누가 또라이인지
직항해를 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연안항해를 하는 바보가 어디 있다고?
당신같으면 가능하겠네
                         
포테이토칩 21-02-05 09:31
   
아 네네^^

직항이 위험성이 더 크다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아무튼.....먼저 욕설을 내뱉은 쪽과 더 이상 하고픈 말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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