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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5 22:46
[한국사] 백제의 요서영토, 산동반도 점유과정에 대한 추론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1,167  

사서에서 말하는 진나라는 2개입니다. 양쯔강 이북의 서진(西晉, 265년 ~ 317년)과 양쯔강 이남의 동진(東晉, 317년 ~ 420년)이 있읍니다
동진말엽이라고 하기에는 광개토대왕이 활약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백제는 대응할 여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서진 말엽이라고 볼수 있는데 미천왕이 활약하던 시기와 겹칩니다. 

한사군의 낙랑은 요동으로 비정할 경우 미천왕은 서기 313년 서안평을 점령하고 낙랑을 멸망시켰으니 낙랑이 요동에 있다면 사서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때 백제는 10대 분서왕(汾西王/298~304)때 이미 낙랑군의 서쪽 현을 점령(304년)했다고 하니 사서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양서, 남사, 통전의 기록은 모두 이 사건을 언급한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선후관계로 보면 낙랑군을 나눠먹으면서 백제가 먼저 요서를 점령하고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했다가 되겠네요
비슷한 시기이다 보니 중국 사서가 시간순서를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백제가 어떻게 요서를 점령할 수 있었을까요? 
이때 서진은 팔왕의 난(291~306)과 영가의 난으로 멸망직전에 있었고 본격적인 5호 16국 시대가 도래하던 시점입니다
16국 중 요동지역에 일어난 국가는 후조(319년-351년), 전연(337년-370년),후연(384년-407년) 등으로 분서왕이 낙랑을 점령할 당시(304년)요동,요서는 낙랑군외에는 무주공산이었습니다
따라서 손쉽게 낙랑군을 멸망시킬 수 있었고 일시적으로 영토를 영유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후 강력한 왕조인 후조,전연,후연이 들어서자 해안선을 따라 남하해서 무주공산인 산동반도쪽으로 와서 오랜동안 영토를 확보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산동반도에 당시 유목민족이 국가가 없습니다. 유목민족이라 해안가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북위가 양쯔강 이북을 거의 통일한 뒤 그제서야 백제 영토가 눈에 띄었을 것이고 489년에 쳐들어 왔으나 동성왕이 보낸 목간나 등에 의해 격퇴되었다
이렇게 보면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왜 이런 기록들이 남조 왕조들에게서만 남아있냐 하면 북조 왕조들은 유목민족들이라 기록을 소홀히 했을뿐만 아니라 누락된 기록이 많기 때문입니다
북제의 위수(魏收)가 쓴 북위서는 정사인데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라고 할만큼 신빙성이 없습니다

만약 산동반도의 백제가 남조 국가보다 일찍 멸망하였다면 기록을 했겠죠.
하지만 없는 것으로 봐서는 양나라때(502년~557년)까지는 존속했을 듯 합니다. 
마지막 왕조인 진나라 이후 망했다면 유목민족국가인 수나라가 제대로 기록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죠
554년까지 백제에는 성왕이 다스리고 있었죠

그리고 서해안은 그당시 조선기술로도 연안을 안거치고 충분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당나라가 백제를 침공할때 연안해안이 아니라 바로 바다를 건너왔으니까요

백제가 고구려에 의해 멸망직전까지 가서도 곧바로 회복하고 또 신라를 국력으로 압도할 수 있었던것도
산동지방의 영토를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그쪽지방의 물자와 인력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백제의 요서 점령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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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고려는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이른다.
其後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
《송서》 97권 동이열전 백제(5세기 후반)[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晋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고려 동북에 두었다.
《남제서》(南齊書), 《건강실록》(建康實錄)(537년 이전)

진나라 말기, 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낙랑도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6]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양직공도》 백제국사(6세기 전반)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晉世 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양서》 54권 동이열전 백제(7세기 전반)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晉世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남사》 79권 동이열전 백제(7세기 중반)


백제의 산동 반도 점령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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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위나라 오랑캐가 다시 기병 수십만을 보내어 백제를 쳐서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대를 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6세기 전반)

건무 2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지난 경오년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거꾸로 쳐서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去庚午年 獫狁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6세기 전반)

위나라가 병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했지만, 백제에게 패배하였다. 【진수가 말하길, 삼한은 78개국이고, 백제는 그 중 하나이다.】 【이연수의 사서에는, 그 전에 백가가 바다를 건넜는데, 후에 강성한 국가를 세웠으므로 백제라고 하였다. 진나라 시기에, 구려가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 2군의 땅에 의탁하였다.】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 陳壽曰: 三韓凡七十八國, 百濟其一也. 據李延壽 史, 其先以百家濟海, 後浸强盛以立國, 故曰百濟. 晉世 句麗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
《자치통감》 권136 제기2 세조무황제 상지하 영명6년(488) 12월조.

10년 위나라가 병사를 보내 쳐들어왔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삼국사기》 26권 백제본기 동성왕(12세기 중반)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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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길사한 21-01-26 21:54
   
임나일본부설만큼이나 신빙성이 낮은게 백제의 요서 산등경락설이죠. 임나일본부설과 유사하게 당시 국제교류가 활발했었던 증거로 봐야지 이걸 영토개념으로까지 확대해석하기엔 무리수가 너무 많죠. 오늘날의 국가개념과 달리 백제계사람들이 국제교역을 위해 요서 산둥지방에 많이 가 있었고 이들을 군사적으로도 활용하기위한 중국남조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싶네요. 백제도 이와 유사하게 왜계 이주집단을 이용했고 이걸 일본에서는 임나일본부증거라고 뻥치고 있죠.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7/12/021015000200712130689029.html
     
국산아몬드 21-01-27 01:28
   
희안한 기사를 링크로 다셨는데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이 일본보다 시기가 늦다는 것을 일본 왜인이 전라도일대를 다스렸다고 왜곡하시는 군요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B%B0%A9%ED%9B%84%EC%9B%90%EB%B6%84
에 보시면 나주에는 일본의 전방후원분의 원형이 되는 분구묘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서에 분명히 나와있는데 "국제교류가 활발했었던 증거", "영토개념으로까지 확대해석하기엔 무리수가 너무 많죠" 라는 단언을 무슨 근거로 하시는 가요?

본인의 의견이신가요? 사료적 근거가 있나요?

제 생각에는 백제는 고구려와 경쟁관계에 있기때문에 요서지방에 영토를 확보해야 할
충분한 동기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배후에서 위협할수가 있죠
삼바 21-01-27 00:13
   
산동경락과 요서 경락은 다름니다. 둘다 부정하기 위해서 뭉퉁그려 버리면 안됩니다.
산동 경락= 고구려와 백제의 전투로 5세기경 백제는 고구려에 밀리고 있었음. 백제의 험윤(고구려)을 북위로 오인한 결과임.
요서백제 모용선비가 요동을차지한 319년 이전의 사건으로 사서적 근거가 충분하고 역사적 사실이며, 유물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으며 대릉하 중하류 소릉하가 백제 요서 경락의 위치입니다.
한성백제 유물이 발굴이 거의 안되어 아직 유물적 비교가 힘든건 사실입니다만, 이 지역과 가야 왜는 이미 유물이 나온것이 많으며 링크한 글의 신라 마구 마저도 라마동의 영향을 받음. 가야의 경우 동복 대구 마구등 대릉하 중하류와 소릉하를 통해 온것이며, 신라 김씨. 가야 김씨도 사실 이 지역의 모씨와 관련 있고 백제의 여씨는 물른 모씨는 당연히 이 지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마디로 아니다 할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 백제 왜 포로 사민 위치도 밝혀젔으며. 모용선비 대극성이 대릉하 하류 의현이 아님이 이미 정리되고 있습니다.
     
국산아몬드 21-01-27 01:36
   
백제의 험윤(고구려)을 북위로 오인한 결과임.?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삼국사기는 동성왕 때 488년(동성왕 10년) 북위의 침공, 494년(동성왕 16년)과 495년 두 해에 걸친 고구려의 백제와 신라 침공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오인이라뇨?
백제가 위나라와 고구려도 구별못할만큼 어리석은 국가인가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서에도 정확하게 나와있는 내용인데도 백제가 북위를 고구려로 오인했다는 자신있게 주장하시는 근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바 21-01-27 17:21
   
삼국 사기는 자치통감 내용을 인용한것입니다. 사서는 결국 비평과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 경우는 남제서와 위서의 내용이 최 상위 내용이 됩니다.
남제는 488  국상중에 있는 북위를 공격하다가 되려 회수 이북을 전부 북위에게 내주고 맙니다.
상대국 상중을 이용하여 공격한것도 모자라 철저히 패전한 것을 북제는 기록하지 않고 슬그머니 백제 기사를 끼워 넣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치도 이런 수치를 감추려 살짝 백제를 이용한 것입니다.
백제 동성왕은 제위기간 내내 고구려에 매우 시달립니다. 이런 백제가 남제에 수십만의 기병을 상대할 군대가 잇었다면 불러들여 고구려 부터 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구려에 시달리던 백제는 무령왕때야 수습이 됩니다.
               
국산아몬드 21-01-27 21:29
   
그건 순전히 님의 추측일 뿐입니다
북위의 침공은 고구려의 침략이전에 발생한 겁니다
고구려의 침략 와중에 북위의 침공을 물리친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고구려 병종은 기병뿐만 아니라 창수,환도수,궁수,부월수등 다양합니다
기사처럼 기병만 수십만으로 구성된 군대가 아닙니다

병종도 틀리고 북위의 침략 시기도 고구려 침공 이전입니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네요

동성왕은 고구려의 침공을 물리치고 신라와 동맹을 강화했으며 탐라까지 정벌했습니다
전혀 백제가 밀리지 않는 모습입
니다

그리고 국가의 공식 역사서가 애들 장난입니까? 거짓말로 끼워 맞추게?
남제서는 남제왕조에서 작성한 것이 아닙니다 후대 왕조인 남조 양나라 때인 537년에 소자현이 편찬한 것입니다
남제왕조를 굳이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네요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84%B1%EC%99%95

동성왕은 488년(동성왕 10년) 백제를 침공한 북위의 기병을 사법명 등을 시켜 격퇴했으며, 493년(동성왕 15년) 신라의 왕녀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고,
494년(동성왕 16년)과 495년 두 해에 걸쳐 백제와 신라를 번갈아 침공해오는 고구려의 군대를 신라와 연합해 격퇴하는 등, 신라와의 동맹을 더욱 돈독히 다졌다.

498년에 공물과 세금을 바치지 않는 탐라국(지금의 제주도)을 친히 정벌하고자 무진주(武珍州: 지금의 광주)에 이르렀다가, 탐라국의 항복을 받고 그만두면서 탐라국을 복속시켰다.
                    
삼바 21-01-27 22:47
   
개로왕 사후 475년 부터 동서왕 501 시기까지는 백제가 한성지역을 상실하고 웅진에 천도하면서 국가의 국난이 수습이 안된 시절입니다, 모든 왕이 암살당하며 동성왕도 백가에 의해 암살되죠? 그렇게 강성한 백제라면 신라와 고구려를 막기위한 동맹에 힘쓰겟습니까?
남제에 북위 기병 수십만을 상대할 군대를 불러 들리면 되지요. 제 땅도 방어하기 급급한 백제가 남의땅 차지하려 군대를 다 남제에 둡니까? 그리고 승리한 백제가 싸운 지역이 산동 지역이라면 488년 북위에게 산동 뿐아니라 회수 이북을 다 상실 했는데, 이지역을 백제가 점령했다고 주장하실건가요? 탐라의 경우 정벌아니고 조공 받은 겁니다.
게다가 동성왕 이후 무령왕은 백제내 혼란을 수습하기위해 왜병을 이용합니다.
북제에 그런 거대한 군대가 있으면 그 군대를 불러오면 되지요.
                         
국산아몬드 21-01-28 01:49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EC%9D%98_%EA%B5%AD%EC%99%95_%EB%AA%A9%EB%A1%9D

장수왕 시절 백제관계
475년에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위례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살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489년에는 신라를 공격하여 호명성 등 7개 성을 함락시키고 미질부까지 진격하였다.
말년의 장수왕은 정복 전쟁을 그만두고 내치에 힘썼다

문자명왕때 백제와의 일진 일퇴
494년 7월 신라군이 패주하여 견아성(犬牙城)으로 들어가자 이를 포위하였으나,
백제가 3천 명의 구원군을 보내어 공격하므로 후퇴하였다.

495년 군사를 보내 백제의 치양성(雉壤城)을 포위하였으나, 신라가 장군 덕지(德智)를 보내서 백제를 구원하므로 물러났다.

496년 군사를 보내 신라의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이하(泥河)에서 패하였다. 이듬해인 497년에 다시 우산성을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켰다.

503년 백제의 달솔(達率) 우영(優永)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수곡성(水谷城)을 침범하였으나 막아내었다.

506년 겨울,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큰 눈이 내려 병사들이 동상에 걸리자 회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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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은 475년 개로왕을 죽인 이후 20년간 백제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백제입장으로서는 충분히 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탐라국을 싸우지도 않고 복속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백제의 힘이 회복되었고 만만하지 않다는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성왕대(479년 ~ 501년)의 문자명왕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백제는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와 일진일퇴의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교착상태라고 보면 되겠죠
일방적으로 밀린 상황이 아니란 말입니다

크게 밀리지도 않는 판국에 무엇때문에 산동반도의 병력을 불러들이겠습니까?
그리고 백제왕들이 살해된 이유는 내부분열때문인데 군대부른다고 분열이 사라지겠습니까?
삼바 21-01-28 02:08
   
자기 수도 한성지역 전부를 내주고 웅진을 신라와 동맹을 맺어서 지키고 있는 형편이 밀리고 있지 않다고요?
참 독특한 사고 방식입니다. 게다가 왕들이 계속 암살 당하는 시국에??
이 시기는 고구려에 힘에 밀리자 백제는 신라와 동맹으로 겨우 유지하자 귀족들이 혼란한 상황이며, 옛 마한지역도 통솔이 다시 힘들게 되니 옛 마한 지역도 단속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무령왕 시대 와서야 왜군을 이용해서 겨우 백제를 안정시킨 겁니다.
우리가 보는 전방후원분을 보면 옛 마한 중심지를 경계하는 와곽 지역에 전방후원분이 있는 이유도 무령왕 시대부터 라고 봅니다.
산동반도에 병력 있지도 않았으며 남제서에서 백제를 잠시 이용한것 뿐입니다,
이전 조공기록과 이후 조공 기록 전부를 보십시요, 백제는 험한 바다를 통해서 오고있으며. 바다건너 땅을 지키고 있다고 나옵니다. 이용당한 기사 한줄에 지금까지 이용당해야 합니까?
     
국산아몬드 21-01-28 02:19
   
님은 장수왕이 개로왕의 전사이후로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듯이 말씀하십니다

기록에도 있듯이 개로왕 죽음 후 20년간 백제와의 전쟁은 없었습니다
기록에도 있듯이 암살등 내부 혼란은 있지만 고구려와 백제는 일진일퇴의 상황이었습니다
기록에도 있듯이 동성왕 말년에 혼란은 있었지만 대부분 기간동안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했습니다

기록을 기반으로 논쟁을 하시지요

동성왕대 백제가 고구려에 밀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시려면 기록을 가지고 오세요

저는 기록을 아무리 봐도 고구려와 백제가 일진일퇴의 양상입니다
신라는 고구려에 밀리는 형국(494년 7월 신라군 패주,496년 신라 우산성 함락)이나
백제는 일진일퇴(494년, 백제가 신라를 구원, 503년 고구려 수곡성 공격)입니다
          
삼바 21-01-28 04:00
   
그러니까 백제가 고구려 방어에 충분해서 산동에 군사가 있는데, 한성 지역 수복안하고, 신라와 동맹으로 방어하고 산동의 군사는 있는데 저러고 있다 이말씀 이신가요.
사서에 밀린다 라는 말이 없으니??? 사서에 북위군 격파가 있으니 정말 북위와 전쟁하는것이구요. 앞뒤 사정은 다 빼고요.
한성 방어에 밀린것은 밀린것 아니고 동성왕때 웅진 방어 하고 있으니 고구려와 동급으로 보시는 모양인데.동성왕때 까지는 백제 안정도 안되였는데 무슨 산동 경락이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삼국중 이시대에 가장 곤란한 국가가 백제입니다.
남쪽 탐라가 조공 끊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잘나가는 백제에  조공을 하지 않다가 동성왕이 무력으로 무진주까지 가자 조공 재개 된것이 조공이 끊긴기간이 백제가 강해서 끊긴 것입니까? 산동에 그많은 병력이 있다면 이런일이 있었을 까요?
그리고 삼국사기 님만 보는것 아닙니다.
 저라고 왜 산동 백제 주장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뻔히 보이는 사서 장난질에 아직까지 이용 당하시지 않으시려면 되려 님께서 위서 남제서 다 보시고 이야기 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위에 댓글 단 이유로 백제 산동 경락설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요서 경락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서경락설이 산동경락설 과 같은 취급을 받아 요서경락설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제서의 허무한 기록을 요서 경락설에 대입해서 요서 경락설마저 부정하는 사람도 있게된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국산아몬드 21-01-30 20:56
   
백제가 고구려 방어에 충분해서 산동에 군사가 있는데, 한성 지역 수복안하고, 신라와 동맹으로 방어하고 산동의 군사는 있는데 저러고 있다 이말씀 이신가요.

--> 산동에 강력한 군대가 있더라도 산동도 당장 북위의 침략에 노출되어 있는데
어떻게 불러들이겠습니까?
산동도 북위의 공격에 직면해 있으니 불러들이기가 쉽겠습니까?
그래서 동성왕이 장군 몇명만 파견해서 지휘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동성왕때 까지는 백제 안정도 안되였는데 무슨 산동 경락이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 자꾸 왜곡을 하시는데 동성왕때 산동경략한게 아니잖아요
사서의 기록으로 보면 백제는 동성왕 이전부터 산동지방을 영유했었고 동성왕때 공격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동성왕때 산동경락을 했다" 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엉뚱한 주장을 가지고 그것이 틀렸다고 저와 논쟁하시는 건가요?

남쪽 탐라가 조공 끊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
탐라가 조공을 끊었다고 백제가 약해졌다고요? 네 개로왕 사후 3~4년간은 약해졌죠
하지만 동성왕때 회복을 했지 않습니까? 왜 그 사실은 빼먹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로왕의 죽음이후 20년간 고구려의 침략이 없었습니다
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동성왕은 제위기간 대부분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제위 말기에 방탕하기 시작하니 암살을 당했던 겁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다면 고구려를 공격하고 고구려 공격을 격퇴하고 신라를 도와주고
탐라를 복속시키고 .이런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동성왕 제위 기간 내내 혼란스럽다고 주장하시니 당황스럽네요



 북제서의 허무한 기록을 ?
--> 남제서는 남제 왕조때 만들어진게 아니라 양나라때 만들어진겁니다
남제서는 굳이 백제를 과장되게 표현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남제서에 나와 있는 사실을 정당한 이유도 없이  너무 쉽게 무시하는 군요


사서에 밀린다 라는 말이 없으니???
--->
그리고 제가 언제 사서에 "백제가 밀렸다"라는 기록을 가져오라고 했습니까?
사서에 밀린다 라는 말이 없으니 밀리지 않았다고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서로 판단하건데 분명 고구려와 일진일퇴 인데 님은 밀린다고 하시니 백제가 밀렸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를 보여달라고 한거 이닙니까

백제가 고구려에 패했다던지, 성을 빼앗겻다던지 , 왕이 조공을 했다던지
뭐 이런 기록이 있어야 밀렸다고 판단할거 아닙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질문한 것을 왜곡해서 답하시고 , 또한 팩트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을 하시는 군요.

몇번씩이나 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제발 님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팩트나 정황증거라도 보여주세요.
그래야 님의 주장이 맞는제 제 주장이 맞는지 제대로 논쟁이 될것 아닙니까?
왜 제시하라는 팩트는 없이 실체없는 모호한 주장만 하시나요?
답답하네요
                    
삼바 21-02-05 15:38
   
참 착각이 심하시네요.
개로왕은 475년 아닙니까? 본토가 백제라면 산동에 군이 그리 많다면 475년 이후 군을 불러들여야 하는것 아닙니까?
그리고 488년 산동 관련 역사는 님이 제게 증명을 해야 하는 겁니다,
없던 백제군을 남제저에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는분이 님 이십니다.
게다가 다른 님의 글을 보니 소설도 역사랍시고 인용하시던데 그런게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역사는 후대에 기록되는 것이 맞습니다만, 그 이전 기록을 참조로 만드는겁니다.
님제에서 이용당한것 말고 님께서는 어떤 근거를 제게 보여준것이 있습니까?
탐라=잠시 조공 끊긴것 뿐이다.
백제가 강했다면 동성왕이 직접 무진주에 왜? 갑니까?
옛 마한 땅도 백제를 외면하여 개로왕 사건이 나오고 연속으로 왕이 암살 당한것아닙니까?
작은 섬 하나가 배반한 시기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남제서와 위서를 보면 남제서 백제 기사는 위사입니다.
치부를 감추기 위해 백제기사를 이용한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님이 위 두사서를 분석해 보시는것이 좋겠습니다.
백랑수 21-02-02 21:43
   
백제의 요서 경략 위치가 산동반도라니요?
산동반도가 한 요서군 지역일 수가 없는데 어찌 산동반도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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