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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16 20:42
[한국사] 고려와 몽고의 종전협정과 세조구제 그리고 부마국 요청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1,799  

https://namu.wiki/w/%EC%97%AC%EB%AA%BD%EC%A0%84%EC%9F%81

전쟁종식을 위해 몽고와 강화협상을 하고 세조구제를 받아내다

몽고는 6차까지 고려침공에 실패합니다. 7차때는 강화도를 직접 공략하려고 했습니다만 곳곳에서 패전하여 실패했습니다
- 대원령 전투 (1255년 10월, 고려 승),조도 해전 (1255년 10월, 고려 승),아주 해전 (1256년 3월 / 지휘관: 충주도 순문사 한취,고려 패),3차 충주성 전투 → 대림산성 전투 → 덕주산성 전투(1256년 중순, 고려 승),온수현 전투 (1256년 6월 / 지휘관: 이천, , 고려 승),압해도 해전 (1256년 6월, 고려 승),애도 전투 (1256년 10월, 고려 승)

8차 침략부터는 작전을 바꾸어 전투보다는 전쟁종식을 위한 여론으로 바꾸기 위해 곳곳에 방화와 약탈을 하러 다녔고 실제로 효과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몽골군은 고려와의 전투에서 계속 패합니다만 국민 여론은 전쟁을 종식하자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 창린도 전투(1257년 9월 / 지휘관: 웅진 현령 이수송, 고려 승), 기암성 전투(1259년 1월 3일, 고려 승), 한계성 전투(1259년 2월 / 지휘관 : 방호별감 안홍민, 고려 승)

9차침입은 최씨정권의 마지막 권력자 최의가 실각하고 김준이 실권을 장악한 지 한달만에 발생합니다
정권 기반이 취약한 김준은 예전처럼 강력한 대몽항쟁을 이끌 수 없었고 9차 침입을 막아낸 뒤 무신들까지 합세한 종전 여론에 의해 할수없이  원종을 몽고로 파견을 보냅니다
거기서 원종은 쿠빌라이와 강화협상 즉 평화협상을 하게되고 세조구제를 약속받고 전쟁은 끝을 맺습니다(1259년)

<세조구제>
1. 옷과 머리에 쓰는 관은 고려의 풍속에 따라 바꿀 필요가 없고
2. 사신은 오직 원나라 조정이 보내는 것 이외에 모두 금지한다.
3. 개경환도는 고려 조정에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4. 압록강 둔전과 군대는 가을에 철수한다.
5. 전에 보낸 다루가치는 모두 철수한다.
6. 몽고에 자원해 머무른 사람들은 조사하여 돌려보낸다

협정 내용대로라면 몽골인들이 고려땅에 거주를 못하니 인구조사도 못하고 공물량을 마음대로 정할 수도 없습니다. 고려의 풍속과 제도도 바꾸지 못한다는 조건입니다
만약 몽고가 스스로를 전승국이라고 생각했다면 치욕적인 조건입니다. 몽고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몽고는 받아들였습니다.전쟁에서 이긴것이 아니었으니 일방적인 요구를 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몽골은 고려 정복을 포기한지 오래고 단지 고려가 배후의 위협세력만 아니기를 바랄뿐이었기 때문에 협정은 성사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와 몽고는 평화협정을 맺은것이지 항복 협정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몽고가 항복한 국가를 간접지배하면서 착취한 사례는 모스크바 공국이 대표적이며 타타르의 멍에라 부를 정도로 가혹했죠(아래 참조 )
만약 항복조건이었다면 모스크바 공국과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겁니다


왕권의 안정을 위해 원과 결탁한 원종. 그리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은 고려와 원

협상을 성공적으로 한 원종이었지만 여전히 무신정권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왕권 복고는 그 이후 10년 뒤인 1270년에야 이뤄지죠. 1268년 임연과 공모하여 김준을 죽이고 임연의 아들 임유무까지 죽인뒤 개경환도와 왕정복고에 성공하게 됩니다

가까스로 무신정권을 제압한 고려왕실은 언제든 다시 무신정권에 의해 짖밟힐 수 있는 불안한 처지였습니다
임유무를 죽인 세력도 여전히 무신이었기 때문이죠
때문에 고려왕실은 왕권보호를 위해 원나라에 부마국이 되기를 요청합니다
원의 입장에서도 고려왕을 통해 간접 통치를 할수 있다고 여겼기에 동의합니다
지속적으로 딸을 보내게 되면 언젠가는 완전한 몽고인이 고려왕이 된다는 기대도 했었죠
(하지만 2대까지 몽고의 피를 받은 왕은 충숙왕뿐이었고 대부분 1대에 그치게 되거나 한국인을 어머니로 두었죠. 충혜왕, 공민왕은 어머니가 공원왕후로 한국인이었습니다)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서 부마국관계를 맺은 이후로 상호 영향을 주게 됩니다
친척국가란 이유로 고려왕이 원황실에 의해 폐위될 수도 있었지만 원의 정치도 고려왕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충렬왕은 황위 서열 4위, 충선왕은 6위에 올랐을 정도였습니다

그로인해 원의 사신이 고려에 와서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수도 없었고 공물을 강요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기껏해야 당시 상류층의 엄청난 사치품이었던 사냥매, 수달피 그리고 제주도에 '탐라총관부' 를 설치해 몽골의 말을 기르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세계시장으로 상권을 확대한 고려상인과 만주까지 다스린 고려왕

세계제국인 원의 상업 네트웍망에 포함되면서 전세계인들을 상대로 상업교류를 하게 되어서 대상인이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고려전기에 13명에 불과하던 거상들이 원간섭기 31명이나 활동하게 됩니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code=rp0702&index_id=rp07020001&content_id=rp070200010001&search_left_menu=1
특히 충혜왕 같은 경우 적극적인 무역을 통해서 고려 왕실의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영토면에서도 고려왕은 더넓은 만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충선왕의 도움으로 황제가 된 무종은 그 보답으로 충선왕에게 심양왕이란 직책을 주고 만주를 통치하게 맡긴 겁니다
충선왕 이후 원이 망할때까지 심양왕은 고려왕족이 맡게 됩니다

인적 교류가 활발했던 양국 관계

원과의 관계중 공녀가 가장 수치스럽다고 여기는데 공식적으로는 80년간 713명이라고 하는데 50년간 2000명 정도라고 하는 연구도 있더군요
그 공녀들 중 상당수가 황후, 궁녀, 고관대작의 부인등이 되었고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하니 일제시대 성폭행을 당했던 위안부같은 경우를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또한 고려여인보다 100배나 더 많은 20만명의 몽골여인들이 고려에 왔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몽고 뭉크하누대 바트술해 교수>
https://books.google.co.jp/books?id=tRxRCgAAQBAJ&pg=PT38&lpg=PT38&dq=%EB%AA%BD%EA%B3%A8%EC%9D%98+%EA%B5%B0%EC%82%AC%EA%B7%9C%EB%AA%A8&source=bl&ots=wEN5Tfsyb2&sig=D6bmSas4bIId1sOOkjjiKrzqcp0&hl=ko&sa=X&ved=0ahUKEwjBw9qbz-7OAhWIspQKHWQ_AyIQ6AEIXDAO#v=onepage&q=%EB%AA%BD%EA%B3%A8%EC%9D%98%20%EA%B5%B0%EC%82%AC%EA%B7%9C%EB%AA%A8&f=false

이 모든 파격적 관계의 바탕에는 몽고가 고려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한데서 오는 존중이 있죠

원나라와 관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영향 
원나라와 이렇듯 관계가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치명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은 원나라로 인해 고려 내부의 모순이 격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원과 결탁한 부원세력이 농민들을 착취하고 대농장을 만드는등 국가와 사회를 붕괴시키는 데도 제대로된 대응을 할수 없었죠
내부 모순이 극에 달한 고려는 결국 조선으로 교체되게 됩니다

<몽고의 가혹한 모스크바 대공국 착취>
https://ko.wikipedia.org/wiki/%ED%83%80%ED%83%80%EB%A5%B4%EC%9D%98_%EB%A9%8D%EC%97%90
루스를 지배하게 된 몽골은 처음에는 직접 다루가치(총독)와 바스카크(사정관)를 파견해서 행정 · 징세 · 징병 등의 업무를 집행했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 인구조사도 세 차례나 했다. 세금은 납세능력에 관계없이 머릿수대로 거두었다. 사정관의 징세는 철저했고, 이에 저항하는 주민들은 참혹하게 진압됐다. 인구조사 결과는 징병에도 이용돼, 많은 루스인 청년들이 몽골을 위해 병역에 복무했다.

루스인이 반발하자, 13세기 말에 루스의 여러 공들에게 권한을 위탁하고 세금을 받는 간접지배 방법으로 전환했다. 몽골 지배하에서 루스는 북서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공업, 경제, 산업, 과학기술 등이 붕괴되어 농업이 유일한 주된 나라로 변했다. 그나마 혹독한 기후와 황폐한 땅에서 쉽게 농업을 정착, 발전시키는 것마저도 어려웠다. 게다가 몽골의 징세가 빈약한 루스 경제를 더더욱 쥐어짰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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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oB 21-01-16 21:07
   
솔직히 이런글 보면 답답함

심양왕은 원래 고려땅을 고려왕과 심양왕으로 나눈거라고 봅니다.

압록강이 한글로는 압록이지만,
물수변 압록과, 실세변 압록 두개가 있는데
조선조에 편찬된 고려사에서 물수변 압록을 죄다 실세변 압록으로 바꾸고 현재 압록강을 압록이라 칭합니다.
또 말이 않된다 싶으면 압강으로 줄이죠.

그 원인은 조선의 친명 존화주의 사관,
혹은 고려말조선초 왜구 원나라 세력등의 외침이 많아 실제 국력이 않되서 줄이던간에 말이죠.

고려 서희의 강동6주 - 그게 생각해보세요. 저기라면 강남6주이지 강동6주가 될수 있겠습니까?

요사지리지의 국경선 성벽초소위치- 그게 명대에 만들어졌다던가.. 그 근거자료가 공교롭게 건너편 고려자료를 바탕으로 합니다. 현재 요하입니다. 심양

요탑의 존재지역 - 역시나 요하 이서지역

철령위 - 훗날 주원장이 조선과 갈등한 철령위 설치문제... 현재 테링시(철령시) 어디입니까? 역시나 심양 요하 근처입니다.

천리장성 위치- 거기도 보나마나 현재 동북공정 중국이 새로 주장하는.. 거기 요하 이동 남만주는 한반도와 비슷한 산악지역.. 거기 산성..../ 아니 강단사학서 주장하는 거기라면 상식적으로 개마고원 2천미터 누가 공사합니까? 거기 뭐 올께 있어서 사람들 그 산골짜기까지 돌들고 나르게 하고.. 말도 않되는소리

고려의 서경또한 아니.. 상식적으로 개성과 현재 평양의 거리라면 말타면 몇시간이면 갈껀데.. 거기가 한반도에선 가장 그래도 평야지역이고.. 묘청이 현재 평양이라면,, 몇일이면 점령당할건데.. 수도에서 그리 가까이 할까요?

조선 훗날 임진왜란 이여송 또한 원래 조선인계통 출신이고, 애초 명나라 사신들 상당수가 요심지역 조선계출신
훗날 열하일기에서도 자긴 조선계 출신 소리.. 나오기도 하고

고려당시 막판의 요동수복운동은.. 몇백년전 고구려가 아닌 불과 백년전의 영토수복운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이관점서 이런글 답답합니다.
     
국산아몬드 21-01-16 21:12
   
고려왕이 통치하던 만주와 고려의 경계가 만주지역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까지라고 적지는 않았는데요
          
KilLoB 21-01-16 21:16
   
제보기엔 님적은글은 그시각을 기본으로 깔고있습니다.

만주까지 지배한... 이 아니고...

원래 남만주는 고려가 지배했었는데... 몽골에 뺐기고
대신 심양왕 뭐 거기 포로출신 고려인 관리어쩌고... 그거 그들이 둘러대는거를,
그대로 적고있으니 답답합니다.

훗날 요동수복은... 몇백년전게 아니고, 바로전것 찾자는것.
               
국산아몬드 21-01-16 21:21
   
문헌을 보면 고려가 남만주까지 지배한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만주전체를 지배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이지 않나요?
만주 북쪽은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없고 오로지 유목과 수렵으로 생활해야 하는 지역인데
고려가 누구를 어떻게 지배한단 말입니까?

고려가 유목민족 국가였다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정주민족입니다
북만주를 점령할 이유가 없습니다. 힘들게 지배해봤자 얻을 수 있는게 없잖아요

고려왕이 심양왕이란 직책으로 만주를 지배했다는 건 몽고병사들을 이용해서 북만주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KilLoB 21-01-16 21:21
   
고려영토에 관해서 전성기 말이죠..

서쪽은 고구려보다 적었으나 동쪽은 컸다...

이게 볼수록 말이되는겁니다.

요나라와 사실상 전쟁에서 승리한(형아우 질서는 인정했으니 평화협정쯤이죠-대신 실리를 챙기고)
이후 동북방향.. 귀부정책을 추진했던걸로 봅니다. 이게 윤관9성이고, 이거에 반발한게 금나라 아골타였고. 요나라가 여진을 치기위해 고려에 길을빌려달라 요청했다는게 이리보면 말이되는
거기져서 잃기전까지가 고려 최대영토

고구려 최대영토는 내몽골 산서성까지도 있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수,당이 고구려 공격할때 몇십만 집결지가 현재 북경부근입니다... 상식적으로 적과 마주한 최근방에 한다고 보면,, 거기 바로위 강이 고구려-수당의 국경이 되는거죠

그관점서 보면 고려는 요하고 고구려는 북경부근 무슨강이니.. 서쪽은 고구려가 더 넓다는거 이해되고.
동쪽은 현재 러시아쪽 연해주. 고려청자가 나오는데 어느시기 귀부정책시도의 일환이 아닐까...
물론 연해주란게 흑수말갈.. 현재도 겨울에 기본 영하20도고 죄다 산악지역 농사가 될턱이 없는 곳이라 중요도는 없겠으나..

그 말이 맞을수도 있다고 봅니다.
     
비좀와라 21-01-16 22:47
   
"고구려 최대영토는 내몽골 산서성까지도 있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대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몽골이 고려를 치고 쌍성 총관부를 세우죠. 이 쌍성 총관부가 화주라고 하죠. 그리고 이성계의 고향이 화령이라고 해서 후일에 고려가 쌍성 총관부를 재 탈환시에 이성계 일족이 고려에 대응하면서 이씨 일족이 고려 조정에 등장하게 되죠.

그리고 이성계는 주원장에게 조선과 화령 둘 중에 국호를 정해달라 요구하죠.

자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화령이 지금의 호화호특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죠.

1. 화령 즉 화주는 내몽골지역 이다라는 주장
2. 화령 즉 화주는 함경도다 라는 주장

1의 주장을 따르자면 고려가 몽골의 간섭기 전에는 내몽골지역을 실제로 지배했고 이성계는 여진족이 아니라 선비계 몽골족이다 라는 주장이 맞는 것이고.

2의 주장을 따르자면 화주는 함경도이고 이성계는 여진족이었으며 함경도는 여진족의 영토 였으며 누르하치 등도 함경도 사람이다. 라는 주장이 맞는 것이죠.

일단 나는 지금의 함경도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함경도가 아니란 주장이 맞다는 사람으로써 몽골 침입당시에 고려는 실질적으로 내몽골을 지배했고 화령은 말 그대로 지금의 호화호특 일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 합니다.

실제로  내 몽골지역에서 고려성곽이 발견 되고 있고 그 후에 이성계와 근세조선 초기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되거든요.

이성계가 근세조선을 건국 한 후에 그 당시 모든 몽골 부족장들이 근세조선의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서 왔었고 그 왕중에 자리싸움도 하는 일도 벌어지죠. 당시에는 모든 몽골족의 수장이 이성계 였음을 였볼수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많은 수의 위구르인들이 근세조선 초기에 이주해 오는데 이 또한 이성계가 호화호특 사람이라는 것인데 위구르족은 티벳에 있었던 토욕혼의 후손으로 선비족과 같은 종족으로 동호이면서 고조선 이란 거에요.

여기서 우리는 고조선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같은 고조선의 후예인 선비족과 오환족을 우리의 조상으로 여기질 않죠? 아주 웃기는 짜장과 같다 말이죠.

고구려는 기본적으로 고조선계이면서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동호(=고조선)를 선비와 오환으로 나뉜 흉노의 후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구려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고 고구려 보다 동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라의 후손이 훨씬 많은데 왜 선비와 오환은 다른 종족으로 보고 역시 고조선의 후예인 위구르를 다른 이들로 보냔 말이죠.

오히려 중국 한족이 우리완 많이 다른데 한족과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똘아이들이 넘 많아요.

그리고 근세조선 초기에는 이슬람교가 사실상 국교 였거든요. 만조백관이 모인 자리에 이슬람식 예배를 보았다는 기록도 있죠. 이런 것이 태종 때 까지는 유지 하다가 세종 때 확 바뀌는 거죠.

세종의 정책은 사실상 한화漢化 정책 인거죠.

그 전의 한국인들은 대단히 호전적이고 능동적 이었는데 세종 때 부터 실시해온 교화정책으로 많이 순해진거죠.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 후에 호전적인 서양문명 특히 미국의 영향으로 다시금 활동적으로 변해서 지금의 부를 축적한 거에요.

그리고 이성계의 곤룡포는 청색이죠. 이성계는 청색의 곤롱포를 입었다가 태종이후 세종 때 부터 붉은 색으로 통일 되는 거에요. 청색은 유목민이 입는 복장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성계는 유목인으로 내가 카우보이라고 했다가 핀잔을 받았는데... 이성계는 카우보이고 실제로 근세조선 초기의 왕실문화는 카우보이 문화에요 ㅋㅋㅋ

이런 저런 이유로 이성계의 고향은 호화호특이 맞단 말입니다. 고려시기 압록강은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라 시마루렌 강이 맞을 것이고 이 시마무렌강의 뜻이 황하에요.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시마무렌 강 역시 옛날의 시마무렌강이 아니라고요.

정리하면 압록강은 황하의 한 지류 내지는 황하 그 자체이고 사실상 요하나 요수 모두 황화의 지류 입니다.
          
워해머 21-01-18 06:08
   
압록강이 황하라니.... 이 사람의 주장은 늘 새롭단 말이야 ㅋㅋㅋㅋ
               
국산아몬드 21-01-19 02:06
   
그런 느낌이 들죠
한민족 역사의 무대를 한반도,만주가 아니라 중국에 두는 듯한 느낌이죠
그것도 일종의 사대사상이 아닐까 합니다

한반도와 만주는 세계적으로 이른 시기에 청동기 문명과 철기문명을 일으킨 곳입니다
전세계에 있는 고인돌의 50%가 한반도에 있습니다

한민족의 중심무대는 한반도와 만주여야 하고 중국 대륙이 한반도,만주에 종속되는 역사해석을 해야합니다

한민족의 무대를 중국으로 옮기면 한반도는 변방이 되고 우리 역사도 변방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신서로77 21-01-19 13:17
   
읽다보면 그럴듯 하다가도 결론은 이상한데로 닿아있네요...뭐가뭔지 모르겠네요...압록강이 황하는 아닌것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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