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壤(평양)의 어원을 분석할 때, 평야지대로 해석해왔다.
부루, 펴다, 벌
너른 들판을 말한다.
순우리말 고어와, 한자의 고대음을 가지고 언어학적으로 이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대로 따라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언어학적인 근거가 그렇다니 별 말이 없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면 모순이 있다.
평양의 다른 이칭인 아사달, 장당경, 궁흘 등이 해석이 안된다는 것이다.
아사달(阿斯達), 궁흘(弓忽), 장당경(藏唐京), 금미달(今彌達), 장안성(長安城)
여기에 한자 고대음에서 공통점이 있는가?
순 우리말 고어로 부루가 저기에 맞아들어가는가?
평양의 어원이 평야지대가 되므로, 너른 들판에 도읍지가 자리잡았다고 해석해왔다.
그런데 집안, 개성, 한양, 익산, 공주, 부여, 경주 전부 다 산이 둘러싸고 있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도읍지 자리는 전부 산을 곁에 끼고 있었다.
익산은 주변 지리가 평야지대여도 남쪽이 강이 있고, 서북동이 산이 둘러치고 있다.
조선시대 도읍지의 후보지로 서울 연세대 자리, 계룡산 신도안자리가 있다.
서울은 도시 많이 개발되어 자연이 훼손되었으므로, 원래 지형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 외 지역은 지도에서 확인해보면 바로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 초에 명당 도읍지로 손 꼽히던 곳이 어느 지형이었는가.
그러면 고구려와 고려의 도읍지였던 평양은 이와 달랐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강대국의 공격을 항상 받아왔다. 때로는 도읍지가 함락되어 왕족들이 잡혀가기도 했다. 고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대로부터 항상 산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면서 끝까지 버텨서 끝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平壤(평양)에서 平을 훈독하면 (고르다)이다.
아사달(阿斯達)에서 아(阿)는 (고개)(구릉)(기슭)
궁흘(弓忽)에서 궁(弓)은 (굽),(꿈치)
장당경(藏唐京)에서 藏(장)은 (감추)
금미달(今彌達)에서 금(今)은 (곧)(머금다)
장안성(長安城)에서 장(長)은 (길다)
이 모든 글자들을 염두에 둬서 해석해보면 고개, 골짜기, 고랑, 구릉 등이 된다.
이미지로 말해보면, 산과 산 사이.
논밭에서 고랑에 해당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이 묘향산 산신이 되었다거나, 태백산 정상에 내려왔다거나 하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다.
達은 山(산)을 뜻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사달(阿斯達), 금미달(今彌達)에서와 같이 산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면 우리는 평양의 지형지리에 대해서 알게 된다.
산으로 둘러쌓인 곳이다.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고랑, 골짜기 라는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 고려의 수도로서 현재의 평안도 평양은 전혀 마땅한 곳이 아니다.
만약 이 지역이 수도였다면 더 동쪽으로 한참 이동해야한다.
마찬가지로 요녕성 요양시 중심부도 평양이 아닌 것이다.
고려 시대의 평양으로 궁장령구로 말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요령성 궁장령구는 평양 도읍지 자리로 맞다.
요령성 봉황시도 맞다. 도읍지 자리가 맞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령성 본계시도 맞다.
고려의 평양이 있었던 곳은 사실 평야지대가 아니라 서울 경복궁, 서울 연세대, 계룡 신도안 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곳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