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시대 말>
향산 윤필암 기 (1300년대 중후반)
이 기록에 따르면 다음 내용을 알게 된다.
향산은 요양과 접경했다.
향산은 현재 압록강 북쪽에 있었다.
위치가 지금과 다르다.
2.
사가집 (1470년대)
사가집 제6권 송욱상인유묘향산서, 사가집 제5권 송준상인유묘향산서
고려시대 당시 지명이 사용되어 기록되었다.
고려시대 기록인 향산 윤필암 기와 거의 같은 내용이 있다,
조선 초까지 전해져 온 고려시대 기록이다.
고려시대 향산의 위치는 현재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세종실록지리지 (1454년)
묘향산의 위치가 나와 있다.
현재 평안도 안변의 묘향산이다.
현재 위치와 동일하다.
조선 초에 영토 축소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4.
향산의 위치 변화
조선왕조실록 1410년에 박은이 옛 수주에 향산성을 쌓았다.
현재 지명과 다르다. 이 수주는 현재 정주, 곽산인데, 향산이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박은은 향산이 희천과 덕천 근처였다고 기록했다.
박은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관직에 있어서 시대를 단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박은은 덕천군조에 관청에 대한 기록도 또한 남겼다.
그리고 박은은 서북면 도순문사로 1409년,1410년에 부임하여 북방에 있었다.
이 때 쓴 기록으로 판단된다.
희천군, 덕천군은 1413년에 현재의 지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토 이동이 있을 때, 지명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보통 지명이 바뀌면서 영토 이동이 마무리 된다.
1413년 이후에 향산의 위치가 이동되었다고 자연스럽게 판단된다.
5.
영토 변화
조선왕조실록 1414년에
옛 수주 청산성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지명과 다르다. 현재 곽산, 정주에 청산이라는 지명은 없다.
조선왕조실록 1423년에
운산군에 청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지명과 똑같다.
10년 사이에 지명 이동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청산은 운산과 창성 사이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창성도호부조에도 청산성이 기록되어있다.
1414년에 성을 쌓은 청산성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동일한 청산성이 수주에서 창성으로 이동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창성도호부조에는 창성의 동쪽에 청산현이 있다고 한다.
현재 청산은 창성과 운산 사이에 있다.
현재 지명과 맞는다.
1414년 이후에 지명 이동이 있었다.
6.
결론
1413~1414년에 영토 이동이 있었다.
요령성에 있었던 향산이 평안도 묘향산으로 이동되었다.
내부적 요인: 요동 정벌 주장하던 정도전 측 실각
외부적 요인: 영락제 정료위 영토 확대
여진 맹가첩목아가 1411년에 개원로로 남하
1416년에 맹가첩목아가 건주좌위를 맡으며 명나라로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