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천 년대 초반에 러시아 아무르주 주도인 블라고베셴스크시 근처의 트로이츠코예 지역에서 발해 고분군이 비교적 대단위로 발굴되었습니다. 우리 고고학계에서는 2008년에 연구결과를 묶어서 발표한 바 있으며 이후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트로이츠코예 유적이 특기할 일인 것은 그동안 우리 사학계 통설이 비정한 발해 강역을 크게 벗어났다는 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발해유적이 아니다 하는 식의 견해가 주를 이루었으나 연구가 지속되면서 이런 소리는 쑥 들어갔습니다. 여기 뿐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이 근방 몇 곳에서도 발해 유적이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 발해 뿐만이 아니라 신석기 물질문화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트로이츠코예 유적을 기점으로 발해의 북방 한계선을 어디까지 그을 수 있는지 말씀드릴게요
우선 트로이츠코예의 위치를 보면 셀렘자 강(Y자의 오른쪽)이 제야강에 합수한 후에 다시 흑룡강으로 흘러드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제야강과 셀렘자강은 북쪽의 거대한 산맥인 스토노보이, 즉 외흥안령 산맥에서 흘러나옵니다
스토노보이 산맥은 만주와 시베리아의 분기선으로서,
요나라도 금나라도 청나라도 이 산맥을 넘어 영역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제야강과 흑룡강 합수지점에 발해의 마을이 있었다 하는 것은 발해가 이곳으로 통하는 인적ㆍ물적 유통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발해 역시 스토노보이 산맥 남쪽까지 영역으로 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금나라의 경우 금사 지리지에 따르면
포여로(蒲與路) 북쪽 3천 리 경에
화로화톤(火魯火畽, 화로화탄) 모극(謀克)을 두고 있었는데
이 위치는 제야강 상류, 스토노보이 산맥 남쪽에 해당하며
중국 역사학계 역시 이 일대에 비정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조그맣게 영역을 그려놓고서
요와 금은 훨씬 더 북쪽까지 칠해놓는 짓은
돌대가리 똘빡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발해는 역사상 최초로
우리가 지금 연해주라 부르는 외만주 지역과 그 거주종족을 완전지배한 나라이며
그 방계 자손이 거란의 요, 여진의 금입니다
다음으로
발해의 내지에 해당하는 기존 발해 유적에서
소그드 은화, 위구르 토기, 경교 십자가, 유리병, 룬 문자가 새겨진 강돌 등 서역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발해가 대흥안령 서쪽의 이들 세력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대흥안령 서쪽, 그보다 먼 지역의 나라 및 종족과 교류하려면 우선 교통로가 그 영역으로서 확보돼 있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교통로가 바로 현 조아하가 발원해 흘러나오는 대흥안령 중단지역으로, 지도상에 점선원으로 제가 표시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과거 고구려 장수왕 대에 지두우국이 있던 곳으로 유연과 분할하여 고구려가 차지한 바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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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및 작성 : 무쿠리(mvk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