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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3 10:40
[한국사] 독립군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환단고기 책이 진실이라는 증거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214  



독립군 홍범도장군과 오동진장군의 자금 지원으로 출간한 환단고기 책은 그당시 독립군과 자손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책이다. 그런 책을 그들은 왜 증오하는 것일까??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고유사서


안함로의『 삼성기三聖紀 上』,

원동중의『 삼성기三聖紀 下』,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檀君世紀』,

범장의『 북부여기北夫餘紀』,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太白逸史』이 다섯 종의 책을 한 권으로 묶은 史書이다.

신라의 고승高僧 안함로에서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천년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역사서(歷史書)가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 된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까지 전해 준 그분들의 노고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텐데 그들은 왜? 그렇게 증오하는 것일까?


환단고기 책이 진실이라는 생생한 증거들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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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20-12-13 10:51
   
내용을 보시면 과거 일제시대의 주구(走狗)였던 식민사학자들이 지금까지 학계에 살아남아
어떤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스리랑 20-12-13 11:01
   
우리가 지금도 학문의 전당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책은 일제가 만들어 준 거짓된 역사입니다.

독립군들이 가르치고 배웠던 환단고기 책은 당시 일제에 몸담았던 식민사학자들과 그들이 길러 낸 후학들이 가장 증오하는 책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Korisent 20-12-13 11:34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pontte 20-12-13 19:49
   
증산도 ㅋㅋㅋㅋ
아무 20-12-14 08:10
   
홍범도, 오동진 장군이 출간을 지원했다고 해도 두 사람이  그 책을 평생 신뢰했다고 할 수 없어요. 누구나 실수는 합니다.

설령 두 사람이 그 책을 신뢰했다고 해도 그 사실이 덕립군 전부가 그랬다고, 독립군의 사상의 근간이었다고 할 수 없고 그런 증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일부를 전부인 것처럼, 현상을 본질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사교나 환단고기 같은 위서, 유사과학이 잘 사용하는 수법이자 멀쩡한 시람도 이런 논리에 빠지면 사교나 위서, 유사과학에 빠지게 됩니다.

몇몇 물리학자들이 유사과학에 빠지고 개신교도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공룡 시대가 없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 등이 모두 이런 자신의 의도니 욕망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재단하고 취사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식민사학자들이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것은 그게 민족사돤이래서가  아니라 식민사관학자들에게 조차 말이 안되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식민사학 반대하면 민족사학이고 선이다? 전형적인 흑백논리이고 이게 이들 주징의 본질입니다.
     
위구르 20-12-14 08:29
   
식민사학 반대하면 민족사학이고 선이다? 전형적인 흑백논리이고 이게 이들 주징의 본질입니다. <- 반대로 식민사학 추종하는 작자들이 매국노인건 변함없는 사실
          
아무 20-12-14 10:40
   
그건 맞는 말이죠. 식민사학자들이 매국노인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사역사가 참인 것은 아니죠.

검증되지 않은 위서를 역사서로 맹신하는 것 역시 식민사학 만큼이나 우리를 좀먹고 병 들게 하니 경계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Tenchu 20-12-14 09:50
   
환단고기 (x)
당시 대종교가 쓰던책은 환단개고기가 아니라 삼일신고임.

여기에 친일파 단군교가 쓰던 천부경을 추가한거고
스리랑 20-12-14 11:51
   
위에 아이디 "아무"라는 사람의 말을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에
홍범도, 오동진 장군이 출간을 지원했다고 해도 두 사람이  그 책을 평생 신뢰했다고 할 수 없어요. 누구나 실수는 합니다. 설령 두 사람이 그 책을 신뢰했다고 해도 그 사실이 덕립군 전부가 그랬다고, 독립군의 사상의 근간이었다고 할 수 없고 그런 증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증거가 더더욱 없다고요??
     
스리랑 20-12-14 11:52
   
단학회의 제천혈맹과 조선인 십보장 선언 명단을 검토해 보면 실제 역사임을 알 수 있고, 당시 독립신문에도 기사화되었다.

​커발한 잡지를 통해서도 단학회의 간부명단과 중앙조직, 지방분회조직을 알 수 있으며 단학회 지역 분회장 절반 이상이 독립운동 건국훈장을 받게 됨으로써 이유립 선생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독립운동가 오봉록 지사의 증언을 보면 천마산대(1920년 3월경 최시흥장군이 조직) 출신의 오봉록(1902~1981)은 1977년 4월에 천마산대 대원의 이름과 활동을 기록하여 '삭주군지' 에 실었다. 이들 66명 중 최시흥 장군과 그의 동생 최시찬에 관한 서술에서 '단학회'가 등장한다.


그리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최시찬의 다른 이름이 최오산 이라는 것을 조선총독부의 <용의 조선인 명부>에서 확인되고 '공훈 전자 사료관'에서 실존 인물로 드러난다. 결국 최시찬 선생이 단학회의 재정보조를 했다는 것과 그의 형인 최시형 장군이 단학회 3대 회장이라는 것이다.

 
단학회의 계보는 1대회장 이기, 2대 계연수, 3대 최시흥, 4대 이덕수,5대 이용담, 6대 이유립 선생으로 이어졌다.
 

배달의숙은 1918년 독립군 오동진 장군이 이상룡 선생과 함께 출연해 개교했다. '의숙'이란 의연금을 모아 지은 학교라는 뜻이다. 오동진 장군은 홍범도 장군과 함께 1911년 <환단고기> 목판본 30권을 발행하는 일도 후원한 바 있다.


1910년 11월부터 조선총독부 산하의 ‘취조국’으로 하여금 1911년 12월까지 조선총독부 관보(官報)를 근거로 하여 ‘수거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광복 후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 저>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에서 밝히고 있다. 그 중에는 1911년에 발행한 환단고기 책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가관인 것은 자신들이 1922년 12월에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조선사(朝鮮史)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편찬한다. 즉 1938년까지 엄청난 돈을 일본이 부담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자기만의 역사서를 편찬한다.
          
스리랑 20-12-14 11:54
   
해학 이기선생은  발기총회 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데 대한 비분강개를 이기지 못하여 서울에서 절식자진하게 된다 해학 이기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운초 계연수선생이 단학회 2대 회장이 되었다.

운초 계연수선생은 1914년 3월16일 대영절에 평안북도 천마산 성인당에서 천제를 올렸다. 당시 참석한 중요 인물은 운초 계연수, 단해 이관집, 석천 최시홍, 송암 오동진, 백하 김효운, 벽산 이덕수, 일봉 박응백, 창춘 양승우, 직송헌 이용담, 국은 이태집, 녹수 서청산, 백주 백형규등 12명이었다 그리고 1918년 7월에 백암 홍범도 장군과 석주 이상룡선생은 벽산의 소개로 참가하게 된다

 
이해 겨울에 단학회를 요령성 관전현으로 옮겼는데 오동진 장군이 단학회관을 짓고 전토를 사서 기증하였다고 하며 여기에서 운초 계연수가 배달의숙을 열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역사교육을 하게 된다 1919년 3월16일 운초는 단학회보 창간호를 간행하였고 8호까지 간행을 한다. 화보 간행의 비용은 서로군정서 총재인 이상룡선생이 보조했다.


1920년 8월15일 운초 계연수가 피살되자 석천 최시흥이 제3대 단학회장을 맡고, 4대 벽산 이덕수, 5대 직송한 이용담으로 계승이 되었다. 단학회에서 3종5정으로 받드는 분이 있는데 3종은 해학 이기,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이고, 5정은 운초 계연수, 백암 홍범도, 송암 오동진, 석천 최시흥, 벽산 이덕수이다. 운초 계연수선생의 집안에서는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가 전해 내려왔다.


이후 운초는 당시 장서가로 소문이 난 백진사 관묵의 집을 방문하여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와 단군세기를 얻게 된다. 백관묵은 1840년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은거하면서 오로지 죽을 때까지 경전만을 연구하였으며 6권의 문집을 남겼다. 그의 집안에는 본래 책을 많이 소장하였다고 하니 아마 운초가 소문을 듣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을 방문하여 삼성기와 단군세기를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운초는 삭주 배골 이형식의 집에서 범장이 지은 북부여기와 천리경을 얻었다. 고성 이씨 족보를 보면 이형식은 1796년에 태어나 1867년에 돌아가셨다고 되어 있다. 이로 보면 그의 사후에 그집을 방문하여 얻었으리라 여겨진다.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도 스승인 이기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책인데 전해 받았다.


계연수선생은 1898년에 「태백진훈」 과 「단군세기」 를 1899년에는 「참전계경」 , 「태백일사」 , 「천부경요해」 를 간행했다.

1909년 해학 이기 선생이 '단학회'를 창립, 1대회장이 되었고 그해 7월 13일에 나라를 뺏긴 것에 분개하여 절식으로 자진하신후 2대회장이 되었다.


1911년 드디어 「환단고기」 를 만주 요령성 관전현에서 간행하였고, 1912년 5월에 「성릉비문징실고」 를 발표하였다.

1914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1919년 배달의숙을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역사를 교육하게 된다.

동시에 이상룡 선생의 막하에 나아가 서로군정서 에 참여한다.


1920년 8월 15일에 한간韓奸 감영극에게 피체되어 시신이 토막이 나서 압록강에 던져졌고, 배달의숙과 초고 10여 종과 장서 3천여 권이 모두 불태워졌다.
               
스리랑 20-12-14 11:56
   
운초는 안함로의 「삼성기」 , 원동중의 「삼성기」 , 이암의 「단군세기」 , 범장의 「북부여기」 , 이맥의 「태백일사」 다섯 권을 묶어 해학 이기의 감수를 거친 다음 1911년 5월 5일 묘향산 단굴암에서 환단고기 의 서문을 쓰고 만주의 관전현성 안에서 목판본 30부로 【환단고기】 를 간행했다.

일제는 조선의 민족혼 자체를 말살시켜 일본인에 동화될 수 있도록 그들의 역사보다 수천 년이 앞선 조선역사의 왜곡과 조작을 조선 총독부에 의하여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차원으로 추진했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이후 민족의 근간을 바꾸기 위하여 민족의 서적을 약탈했다. 1910년 11월부터 조선총독부 산하의 ‘취조국’으로 하여금 1911년 12월까지 조선총독부 관보(官報)를 근거로 하여 ‘51종 약 20만권"정도를 약탈했다.
                    
스리랑 20-12-14 12:00
   
환단고기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서 무조건 위서라고 우기는 식민사학의 앵무새들
환단고기가 진실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동안 80년 가까이 유지했던 철밥통도 깨지고, 자신들이 민족 반역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들어나는 것이 두렵겠지요.
신서로77 20-12-15 16:50
   
환단고기를 위서라 주장하면 그증거는 주장하는 사람이 가지고와야 논리적으로 맞죠...일부 역사적 사실과 다를지언정 그모두를 부정하기에는 무리가있고 그런식이면 세상에 위서 아닌 역사서가 존재할수나 있나 생각합니다...이런 저런 논란을 없도록하기 위해서라도 환단고기는 편견없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푸른마나 20-12-16 10:03
   
환단고기는 실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단지 일제의 상고사 역사 말살정책으로 인해 상고사 역사책이 사라진점이 이 환단고기의 진위여부를 알수없게 되었죠...

하지만 환단고기 내부의 책 제목이 다른 역사책에 나타나는걸 보면 환단고기 내용중 사실도 상당부분 있을거라고 봅니다... 지금의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식민사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환단고기를 외면하는거지만요...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책을 옮겨적엇던 저자들이 종교적목적, 일제시대 자긍심을 가지게 해서 독립심을 고취시키려.....,등등의 이유로 첨부한 내용때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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