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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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부여 사람들은 모자를 금, 은으로 장식하였고 고구려에서는 대가주부(大加主簿)는 무후책(無後?)을 소가(小加)는 절풍변(折風弁)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남제서(南齊書)』, 『위서(魏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주서(周書)』, 『양서(梁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당서(唐書)』, 『한원(翰苑)』 등의 문헌에도 고구려 관모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에 의하면 무후책과 절풍변 이외에 절풍건, 절풍, 책, 나관, 조우관, 조우절풍변, 변, 피관, 자라소골, 조우소골, 금은녹이무후책 등의 모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신라에서는 유자례(遺子禮)라고 하는 관과 흑건을 썼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남자는 복두와 소립을 , 여자는 관을 썼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인다. 고려 때에는 『고려도경(高麗圖經)』과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면류관, 오사고모, 복두, 조건, 사모, 고정립, 감투, 평정두건, 전모, 고정모, 유각평건, 사대문라건, 문라건, 문라두건, 죽관 등의 모자를 썼고, 군인들은 복두, 전각복두, 금화대모, 투구, 문라두건, 절각복두, 권착복두, 피변, 피몽수, 오사연모, 문라건을 썼다고 한다.조선시대에는 왕을 비롯하여 서민에 이르기까지 계급에 따라 다양한 모자가 있었으며 그 유물과 기록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모자로는 면류관, 원유관, 통천관, 익선관, 전립, 복두, 공정책, 양관, 제관, 탕건, 초립, 감투, 평량자, 갓, 방립, 이암, 유각평정건, 조건, 동파관, 충정관, 정자관, 복건, 방건, 와룡관, 유건, 휘항, 풍차, 만선두리, 송낙, 고깔, 대삿갓, 화관, 족두리, 여자용 전립 등이 있었다. 개화기와 일제시대에는 서양의 의복이 전해지면서 실크해트(silk hat), 중절모자, 맥고모자, 파나마모자와 같은 서양의 모자도 들어와 사용하였다.<일반적 형태 및 특징>기본적으로는 방립형(方笠型) ·평량자형(平凉子型)의 2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용구로서 입형(笠形) 관모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나중에 재료 ·수식(修飾) ·제작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조선시대에 여러 종류의 갓이 출현하였다. 그 중에서 흑립(黑笠)은 갓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마지막에 정립된 입제(笠制)로서, 조선시대 500년을 이어오는 대표적 관모이다. 따라서 갓이란 광의로는 방립형 ·평량자형에 해당하는 모든 종류의 것을 말하나, 협의로는 흑립을 지칭하는 것으로, 후세의 ‘갓’이란 흑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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